< 964화 2. 이안의 제안 >
요르간드의 단검은 그가 명계에서 에픽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은 최상급의 초월 무기였다.
바로 엘라시움의 유적 중 한 곳인, ‘파괴자의 유적’을 클리어하고 얻은 ‘파괴자의 단검’이었던 것.
이것은 이안이 가지고 있는 심판 검과 비교해도, 크게 꿀리지 않는 수준의 무기였고, 때문에 조나단의 퀘스트 보상과 비교하더라도 오히려 더 좋은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이 무기가 요르간드가 가졌던 물건이라는 사실까지는 조나단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요르간드가 자신의 무기를, 공개적으로 자랑한 적이 있을 리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조나단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런 최상급의 신화 등급 초월 단검이, 어째서 이안의 손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대충 봐도 마계 진영의 무기같은데…… 이걸 어떻게 구한 거지, 이 괴물 자식은……?’
이안의 손에 들려 있는 ‘파괴자의 단검’을 다시 응시한 조나단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뻗었다.
이것이라면 피 말라 가며 고생한 한나절의 시간이, 충분히 보상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척-!
조나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그를 향해 내밀었던 단검을 이안이 다시 거둬들였으니 말이다.
“뭐지? 지금 놀리는 건가?”
살짝 노기 어린 조나단의 목소리에 이안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그럴 리가.”
“……?”
“내가 그렇게 쪼잔한 놈은 아니라고.”
이안의 능청스런 말에, 조나단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그걸 왜 다시 거둬 가는 거지?”
“그 이유야 간단해.”
“……?”
“지금 네게, 선택권을 한 번 더 주려고 하거든.”
“선택권……이라고?”
“그래. 선택권.”
꿀꺽-!
장난기가 어려 있긴 하지만 제법 진지한 이안의 제안에, 조나단은 마른침을 꿀꺽 집어삼켰고,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말 그대로 네게 선택의 권한을 주는 거야.”
“어떤 선택이지?”
“이 파괴자의 단검에 만족하고 여기서 나랑 헤어지거나.”
“……!”
“아니면 내 새로운 제안을 한번 들어 보거나.”
이안의 이야기를 들은 조나단은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안에게 말려들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안이 무슨 제안을 할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제안을 들어 본다고 해서, 파괴자의 단검을 선택할 선택권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
“그야 물론이지.”
“그렇다면…… 한 번 들어 보기나 하자고.”
조나단의 대답을 들은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이어서 은근한 목소리로 천천히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나단은 다시, 이안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 *
이안의 제안은 간단했다.
하지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 대신 퀘스트를 하나 해 줘.”
“퀘스트……?”
“간단한 퀘스트야.”
“……?”
“이 마력차단장치를 가지고 정령계로 가서, 샤이야 봉우리의 ‘마력환원장치’를 해제해 주면 돼. 물론 나랑 파티인 상태로 말이지.”
처음 이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나단은 다시 어이없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파괴자의 단검보다 더 매력적인 무언가를 제시할 것이라 기대했는데, 뜬금 없이 심부름(?)을 시키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내가 왜 해야 하지?”
하지만 당연히, 이안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거, 무려 정령계 메인 에픽 퀘스트라고.”
“……?!”
“물론 파티 상태로 클리어하면…… 내가 지금까지 해 둔 게 있어서 보상이 나뉘긴 하겠지. 하지만 거의 다 된 밥에 숟갈만 얹는 기분일걸?”
“흐으음…….”
“명성만 최소 5만 이상은 당겨 갈 수 있을 텐데.”
“확실히 괜찮은 제안이기는 한데, 그래도 이해할 수 없군.”
“뭐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파괴자의 단검보다 나은 조건인지는 잘 모르겠어서 말이지.”
조나단의 말에, 이안이 씨익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내가 한 가지 빼먹은 말이 있었네.”
“응……?”
“이 선택지를 네가 선택한다 해도, 파괴자의 단검은 얹어 주는 거야.”
“……?”
“단, 네가 이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해 줬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말이지.”
쉽게 말해 이안의 제안은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안이었다.
조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라면 퀘스트의 난이도였는데, 그 마저도 이안이 어려운 부분은 전부 클리어해 둔 상태였으니.
꿩 먹고 알 먹는 격인 이 제안을 조나단으로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잠시 말을 잃었던 조나단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안을 향해 물었다.
이쯤 되자 조나단은, 이안이 왜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인지 의아해졌으니 말이었다.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뭐지?”
그리고 조나단의 질문에 대한 이안의 대답은, 무척이나 간단한 것이었다.
“시간.”
“……?”
“다른 걸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얻을 수 있지.”
“그게 무슨…….”
“아무튼, 할 거야 말 거야. 그거나 결정해.”
“……!”
“나 갈 길이 좀 바쁘거든.”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조나단은 이안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파괴자의 단검에 정령계 메인 스토리의 에픽 퀘스트 공유까지.
조나단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군침이 흐를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제안은 받도록 하지.”
“굳. 잘 생각했어.”
하여 제안을 수락한 조나단은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을 한 가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어차피 줄 거면, 파괴의 단검은 왜 미리 주지 않는 거지?”
“음?”
“그게 있으면 퀘스트 진행이 더 수월할 텐데 말이지.”
그리고 이안은 그 마지막 의문점에도, 아주 깔끔하고 명쾌한 답을 내어놓았다.
“그건 일종의 보험. 그리고 동기부여 같은 거야.”
“……!”
“물론 네가 파티 끊고 혼자 퀘스트를 꿀꺽해 버릴 양아치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안전해서 나쁠 건 없잖아?”
“후우, 날 어떻게 보고…….”
“그리고 이 단검을 빨리 써 보고 싶어서라도, 퀘스트를 빨리 클리어해 주겠지.”
“그건…… 부인할 수 없군.”
이안의 깔끔한 설명에 저도 모르게 수긍해 버린 조나단.
“그러니까 빨리 출발하시라고.”
“알겠다. 금방 돌아오도록 하지.”
그렇게 이안과 조나단의 두 번째 계약(?)은 결국 성사되고야 말았다.
* * *
사실 이안이 조나단에게 굳이 ‘심부름’을 시킨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결과적으론 조나단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시간’을 벌기 위한 선택이 맞았지만, 그 안에는 더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에픽 퀘스트도, 신규 콘텐츠도. 전부 다 놓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안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고대 정령 연성술(사본)’ 아이템을 사용한 뒤 떠올랐던 시스템 메시지 때문이었다.
띠링-!
-‘고대 정령 연성술(사본)’ 아이템을 사용하셨습니다.
-‘고대의 정령 연성술’을 습득하셨습니다!
-‘고대의 정령 연성술’ Lv 1/숙련도 0%
-‘고대의 정령 연성술’의 기본 스킬인 ‘원소 연성’ 고유 능력을 습득하셨습니다.
-‘고대의 정령 연성술’의 기본 스킬인 ‘정령력 부여’ 고유 능력을 습득하셨습니다.
……중략……
-고대의 실전된 연성술을 성공적으로 습득하셨습니다!
-고대 연성술의 전승자가 되셨습니다.
-이제부터 ‘고대의 정령 연성술’은 어떤 유저든 같은 경로의 습득이 불가능해집니다.
조나단이 있던 자리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안의 머릿속을 가장 복잡하게 했던 것은 바로 이 메시지였다.
‘이거…… 독점 콘텐츠였잖아?’
카일란의 퀘스트 중에서, 가장 희소성이 높은 콘텐츠인 독점 콘텐츠.
누군가 한 명이 차지하면 다시는 누구도 해당 보상을 얻을 수 없는 구조인 독점 콘텐츠가, 바로 이 연성술 콘텐츠였던 것이다.
‘하…… 하필 왜 이런 타이밍에…….’
물론 어둠의 요새 퀘스트가 아닌 다른 루트를 탄다면, 분명 다른 유저도 연성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게 아니었다.
이안이 힘들게 얻어 낸 나머지 두 가지의 연성술들.
고대 아티펙트 연성술과 고대 마수 연성술 책자가, 자칫 잘못하면 사용할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안이 정령계 메인 퀘스트에 발목 잡혀 있는 동안 다른 마족 유저가 어둠의 요새 퀘스트를 발견한다면, 이안이 책자를 습득하기 전에, 그쪽으로 콘텐츠를 빼앗길 위험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정령계의 메인 퀘스트를 미뤄 두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이안이 진행 중인 에픽 퀘스트는 차원 전쟁이 기계 문명의 승리로 끝나는 순간 전부 도루묵이 되어 버릴 퀘스트들이었고.
그 때문에 다른 연성술들이 아깝다고 해서, 정령계 퀘스트를 미뤄 둘 수도 없는 것이다.
만약 조나단이 이러한 이안의 내부 사정(?)을 알았더라면 욕심쟁이라고 욕을 퍼부었겠지만, 그런 것이 이안에게 중요할 리 없었다.
게임 콘텐츠에 한해서라면, 이안은 말 그대로…… 탐욕 덩어리 그 자체였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샤이야 산맥에 포진한 어둠의 군단의 감시를 뚫고 마력환원장치를 해체하러 가는 임무 자체도, 결과적으로 보면 조나단에게 무척이나 어울리는 심부름(?)이었다.
암살자의 클래스 특성상, 어쩌면 이안보다도 더 깔끔하고 완벽하게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조나단인 것이다.
“후후, 아주 만족스런 선택이었어.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벌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으로 콘텐츠를 독식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된 것은 아니었다.
이안에게는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나머지 두 연성술을 성공적으로 습득해 내느냐 하는 것.
마수 연성술이야 시간을 번 것으로 어떻게 해 본다고 해도, 사실 아티펙트 연성술은 시간 좀 벌었다고 이안이 배워 낼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계정 귀속에 독점 콘텐츠 제한까지 걸어 둔 걸 보면……. 분명히 한 명이 전부 가지는 걸 방지하려는 기획 의도인 것 같지만…….”
두 권의 연성술 사본을 번갈아 살펴본 이안은 씨익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마법 스크롤을 꺼내었다.
그것은 바로 길드 거점으로 복귀할 때 쓰는 순간이동 귀환 스크롤.
이안은 망설임 없이 그것을 찢어, 귀환 마법을 발동시켰다.
우웅- 우우웅-!
“오랜만에 한을 찾아가야겠군. 지금쯤 길드 대장간에서 작업 중이겠지?”
계정 귀속 아이템은 유저끼리 거래가 불가능하며 npc에게 양도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도 가능한 단 하나의 케이스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개인에 귀속된 ‘가신’이었다.
길드와 연관되어 있지 않은 개인 귀속 가신에게는 계정 귀속 아이템을 양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에게는 어지간한 대장장이 유저 이상으로 뛰어난 대장 실력을 가진 아이언 드워프.
‘우르크 한’이 개인 가신으로 오랜 시간 함께하고 있었다.
“한이라면 충분히 이걸 배울 수 있겠지. 후후, 한에게 이걸 넘겨준 뒤에, 바로 마계로 넘어가야겠어.”
누군가(?) 들었더라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이야기를 중얼거린 이안은 그대로 귀환하여 길드 거점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 누군가에게 재앙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