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2화 1. 지르딘의 부탁 (3) >
* * *
“정말…… 다섯 권을 전부 가져왔단 말인가?”
“지금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흐흐.”
“보고도 믿기가 어려우니 하는 이야길세.”
어둠의 요새 내부에 존재하던 황금빛의 고서들.
그 다섯 권이 전부 눈앞에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한 지르딘은 적잖이 놀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어둠의 요새는 오래 전 그의 주도하에 설계된 곳이었고, 때문에 요새를 지키는 문지기들이 얼마나 강력한 괴수들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였으니 말이다.
“문지기 한둘이야 처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문지기까지 전부 쓰러뜨리다니.”
하여 지르딘은 잠시 멍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전개와 상황은 그의 AI 안에 고려되지 않은(?)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이 이안의 퀘스트 전개가 잠깐 멈춰 있던 이유였다.
퀘스트 완수 메시지는 이미 떠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보상 메시지가 이어서 생성되지 않은 것이다.
‘뭐지? NPC가 렉이라도 걸린 건가? 왜 저러고 가만히 있어?’
하여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어, 참지 못하고 다시 지르딘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로부터 받게 될 보상들이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다, 보상을 받기 전까지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절반 정도의 랜덤성까지 띄고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보상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새 기본 보상이자 퀘스트 아이템이었던 ‘마력 차단기’보다는 추가 보상에 더 관심이 많은 이안이었다.
“자, 지르딘 님. 그럼 이제 약속은 지켜 주시죠.”
“야, 약속?”
“분명 두 권 이상의 책을 가져오면, 저와도 내용을 공유해 주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참. 마력 차단기도 주시기로 했고요.”
“그래. 그랬었지. 걱정 마시게. 당연히 약속은 지킬 생각이니까.”
이안의 독촉이 효과가 있었는지,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던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특수한 조건을 달성하여 추가 보상이 책정됩니다.
-어둠의 기계공학자 지르딘으로부터 ‘고대 아티펙트 연성술’ 에 대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어둠의 기계공학자 지르딘으로부터 ‘고대 정령 마수 연성술’ 에 대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중략……
-어둠의 기계공학자 지르딘으로부터 ‘고대 정령 연성술’ 에 대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전부 확인한 이안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황금 고서 중 하나에, 그가 가장 원했던 ‘정령 연성술’에 대한 단서가 들어있었으니 말이다.
아직 그 내용을 공유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황금빛 고서들의 제목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안은 충분히 흥분되기 시작한 것.
게다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섯 권의 황금서 중 두 권은 크게 쓸모없는 잡화 아이템이었지만, 아티펙트와 정령 연성술을 제외하고도 이안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할 만한 고서가 한 권 더 있었던 것이다.
‘잠깐. 이건 또 뭐야? 고대 정령 마수 연성술? 마수 연성술까지 황금서랑 연관이 있었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성의 연속에 두 동공을 더욱 크게 확대시킨 이안.
그리고 이런 이안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 * *
“팀장님.”
“응?”
“이제 어쩌실 겁니까?”
“뭘 어째?”
“분명 이안이라 해도, 절대로 세 권 이상은 못 얻을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흠…… 그랬었지.”
“그런데 세 권은커녕 지금 다섯 권 아닙니까.”
“맞아.”
“이제 저희, 망한 거 아닙니까?”
기획 1팀의 모니터링실.
팀장인 김의환과 1팀의 직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둘러앉아 모니터링실의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니터링실 앞에 모인 이들이 스크린 너머로 보고 있는 인물은 기획팀원들에게 그 누구보다 익숙한 유저.
다름 아닌 이안이었다.
“사실 조나단이랑 퀘스트를 같이 진행하게 될 줄은 예측하지 못했었는데…….”
김의환이 말끝을 흐리며 입을 열자, 옆에 있던 팀원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꾸하였다.
“제가 볼 때 조나단 없었어도 충분히 두세 권은 먹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흠, 흠. 어쨌든 다섯 권 다 싹 쓸어 갈 수 있었던 데에는 조나단의 역할이 엄청 컸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기획 1팀은 잠시 침묵하였다.
지금 그들이 고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였다.
첫째는 그들이 몇 주에 걸쳐 만든 퀘스트들을 이안이 한 순간에 깡그리 독식했다는 점.
둘째는 그 독식한 퀘스트들 중 대부분이 마족 유저를 위해 만들어져 있던 퀘스트라는 점이었다.
사실 다섯 권의 고서 중 유일하게 인간 진영과 관계 있는 고서인 ‘정령 연성술’조차도, 인간 진영에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넣어 놓은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정령 연성술은 사실, 정령계와 라카토리움의 전쟁 에피소드가 끝날 무렵 파프마 일족의 에피소드와 함께 자연스레 드러나기로 되어 있었던(?) 콘텐츠였으니까.
“아, 허무하네. 이거 이안 혼자 다 하라고 그 고생하면서 만든 콘텐츠가 아닌데.”
“그러게요. 주임님 말씀처럼 진짜 한 달 내내 밤새면서 만든 콘텐츠 서너 개를, 이안이 1주일 만에 싹 다 털어 가네요.”
“하, 멍청한 어둠의 군단 AI들은 대체 왜 물의 부족을 잡으러 가서…….”
“쉿, 그거 팀장님이 설계하신 건데.”
“헉, 그, 그래?”
이안이 어둠의 요새 콘텐츠를 깡그리 가져간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자리를 뜨지 못하는 1팀의 팀원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팀장인 김의환의 표정은 다른 팀원들만큼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약간의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후후, 다들 너무 걱정이 많은 거 아냐?”
김의환의 이야기에 팀원들이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아니, 그럼 이 상황에서 걱정이 안 되게 생겼습니까?”
“맞아요, 팀장님. 다음 보고 때 실장님한테 영혼까지 털릴 것 같은데…… 팀장님은 왜 이렇게 태평하세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김의환은 손가락을 까딱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일 없을 테니. 다들 걱정 말고 돌아가서 일이나 보도록.”
“네……?”
“팀장님 대체 무슨 자신감……?”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미리 안전장치를 좀 숨겨 놨거든.”
“오?”
“안전장치요?”
그리고 김의환의 그 자신만만한 이야기에 팀원들은 다시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김의환이 자신하는 그 안전장치(?)가 대체 뭔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팀장님……!”
“휴, 십년감수했네.”
“그 안전장치가 뭔데요?”
하지만 김의환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도, 대부분의 팀원들은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안이 세 권 이상의 고서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 장담한 것도 김의환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의 안전장치라는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긴 힘들었으니 말이다.
하여 김의환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하자, 팀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집중하여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였다.
“원래 각각의 고서를 얻으면, 곧바로 해당 카테고리의 기초 스킬을 배울 수 있었던 건 다들 알고 있지?”
“그렇죠. 그걸 아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옹기종기 모여 자신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팀원들을 한차례 둘러본 김의환은 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최종 기획안 올리기 전에 그 부분을 수정했었거든.”
“수정이라면, 어떻게요……?”
“약간의 ‘조건’을 걸어 둔 거지.”
“조건……?”
김의환은 씨익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티펙트 연성술의 경우, 대장장이 스킬 숙련도가 마스터 이상이 아니면 습득 불가능하게 변경했고…… 정령 연성술의 경우 ‘고대 정령술’ 습득 조건. 마수 연성술의 경우, ‘고대 마수 소환술’ 습득 조건을 걸어 놨지.”
“오, 오오……!”
“물론 이안이 고대 정령술을 습득한 상태이니 정령 연성술은 배울 수 있겠지만, 아마 나머지 두 스킬은 배울 수 없을 거야.”
김의환의 이야기를 듣던 대리 하나가, 뭔가 허점이 떠올랐는지 재빨리 덧붙여 물었다.
“대장장이 스킬이야 그렇다 치고. 마수 연성술은요? 이안 서브 클래스 중 하나가 마수 연성술사잖아요.”
하지만 김의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마수 연성 쪽으로 이안이 노가다를 더 한다면 충분히 ‘고대 마수 소환술’도 배울 수 있겠지만…… 그게 하루 이틀로 될 만한 수준은 아닐 테니까. 퀘스트가 전부 마계 쪽에 있으니, 리스크도 상당할 테고.”
“아하……?”
“이안이 그거 하러 가서 시간 쓰고 있으면, 오히려 우리한텐 시간을 버는 셈이지.”
김의환의 이야기가 끝나자 기획팀원들의 표정은 한층 더 밝아졌다.
그가 이야기하는 안전장치가 팀원들의 생각보다 더 그럴싸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구멍(?)이 다 메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팀장님.”
“음?”
“이안이 이 고서들을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할 경우는요?”
“엇, 생각해 보니 그러네. 그럼 이안에게 콘텐츠가 집중되진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콘텐츠 소모 속도는 똑같잖아요?”
팀원들의 의문에 김의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의 이 마지막 의문도 너무 당연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도 이미, 김의환이 생각해 봤던 범주 안쪽이었다.
“바보들. 당연히 계정 귀속이지.”
“……!”
“판매, 양도, 드롭, 전부 다 불가야.”
“……!”
“아마 떨어뜨리는 순간, 소멸될걸?”
이어서 김의환의 깔끔한 마무리에, 팀원들은 다시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요?”
“우리 팀장님이 이렇게까지 꼼꼼했다고?”
“시끄러!”
그리고 팀원들의 놀란 표정을 본 김의환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으쓱한 표정과 달리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휴, 그때 지찬이 말대로 안 해 뒀으면, 정말 끔찍할 뻔했어.’
사실 이 의견은 100% 김의환의 의견이 아닌 나지찬의 의견이 들어간 내용이었다.
그 때문에 기획서 초안을 올릴 때 나지찬을 한번 보여 줬던 것이 그로서는 정말 다행인 셈이었다.
‘흐흐, 이안 이 녀석 성향상, 머리 좀 아프게 생겼군. 이거 완전히 계륵이니 말이야.’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의환은 이번엔 이안을 떠올리며 히죽 웃었다.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그 누구보다 가득한 이안이라면 분명히 정령술을 제외한 다른 콘텐츠들도 포기하지 못할 것이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다 보면, 당연히 메인 에픽 퀘스트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
만약 이안이 반대의 스탠스를 택하여 에픽 퀘스트를 우선시한다면, 그사이에 다른 마계 유저가 관련 퀘스트를 진행할 것이고.
그러면 적어도 이안의 독식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니, 이것도 나쁠 게 없는 것이다.
“좋아. 이제 그럼 다들 자리로 돌아가서 일 보라고. 야근 걱정은 접어 두시고 말이지.”
“캬,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휴우, 십년감수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김의환이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안의 창의성(?)이었다.
그리고 이안의 게임 이해도가 어지간한 기획자보다 더 높다는 것 또한, 김의환이 간과한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