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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55화 (956/1,027)

< 955화 7. 어둠의 요새 (1) >

과거, 대장군 카이를 상대로도 비등했던 피지컬.

그리고 PVP에 특화된 ‘암살자’라는 클래스의 이점.

이 모든 전제들을 감안해 보더라도, 조나단이 이안을 일대 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너무 확실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PVP에만 한정짓는다면, 이안과 조나단의 차이가 그렇게까지 큰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사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PVP에 한정지었을 때뿐이었고, PVE로 비교군을 전환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암살자 클래스가 PVP에 최적화되어 있다면, 소환술사클래스는 PVE에 최적화 되어 있었고.

직업상성으로 인한 차이가 역전되는 순간, 이안과 조나단의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었다.

‘마, 말도 안 돼……!’

해서 지금 이안의 뒤를 쫓는 조나단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이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치 짚단처럼 스러져 버리는 초월 100레벨대의 몬스터들을 보고 있자니, 현실감이 너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어둠의 요새 필드는 좁은 통로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안은 아직 소환수조차 운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조나단을 당황케 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인간 진영의 전사 클래스 중에…… 저런 괴물이 있었다고?’

물론 조나단에게도 초월 100레벨대의 몬스터를 어렵지 않게 사냥할 능력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이안처럼 저렇게 두셋 이상의 개체를 순식간에 쓸어 버리면서, 전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일 타깃의 기술이 아니라면, 조나단은 극한의 대미지를 뽑아낼 수 없었으니 말이었다.

쉽게 말해 단일 타깃 최강 클래스인 암살자의 입장에서 다중 타깃으로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강력한 대미지를 뽑아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이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친구, 하나 넘어간다!”

“어, 어……? 알겠다. 처리하지.”

쐐애애액-!

이안이 흘려보낸 몬스터 한 마리가 조나단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녀석을 발견한 조나단은 언제 놀라고 있었냐는 듯 침착하게 움직여 녀석을 순식간에 마무리하였다.

-고유 능력, ‘핏빛 암격’을 발동하였습니다!

-고유 능력, ‘은밀한 사냥꾼’ 효과가 적용됩니다.

-‘어둠의 기계 병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어둠의 기계 병사’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암살자 클래스의 최상위권 랭커다운 깔끔한 스킬 운용과 정확한 타격.

그것을 힐끔 본 이안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오호, 생각보다 더 실력 있는 친구였잖아?’

지금까지 이안이 만났던 암살자들 중 가장 실력이 좋은 유저는 림롱과 요르간드 정도였는데, 어쩌면 이 녀석이 그 둘과 비견되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이 한 수로 속단하기는 일렀지만 말이다.

“다음 좌표는 어디야?”

“북서쪽 확인해 봐. 찍어 뒀어.”

“오케이.”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두 랭커의 필드 진행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처음에는 이안을 구경(?)한다고 수동적으로 움직였던 조나단이 이제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두 사람 사이의 합이 맞아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나단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와, 이걸 이렇게 떠먹여 준다고?’

그가 평소에 솔로 플레이를 좋아하여, 다른 랭커들에 비해 파티 플레이 경험이 적은 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처음 만난 유저와 이렇게까지 손발이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한번 자신이 고유 능력을 보여 주면, 해당 고유 능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몬스터들을 유도해 주는 것.

심지어는 사용하는 주력 스킬들의 위력까지도 이미 다 파악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

조나단으로서는 이안의 플레이를 보며 식은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었다.

‘후, 미친놈이다. 미친놈이 분명해.’

그리고 그렇게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자, 여기가 네가 찍어 준 마지막 좌표인데…….”

“이 위치가 맞다.”

“그런데 왜 막다른 길이지?”

“그야, 아직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 남아 있으니 그렇다.”

“오호. 그래?”

조나단은 결국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한 최종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제는 이안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PK가 가능했다면…… 어쩌면 내가 졌을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조나단은 이전 연계 퀘스트로 얻었던 ‘피의 보석’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이 어둠 요새의 기계 설비를 작동시킬 수 있는 매개체였고, 이것을 사용해야 목적지였던 ‘비밀 연구소’에 들어설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저벅- 저벅-.

피의 보석을 손에 쥔 조나단은 천천히 움직여 시커먼 벽면을 향해 걸어갔다.

이어서 조심스레 보석을 들어 올려 벽면에 새겨진 사나운 표범 문양의 눈 부위에 그것을 끼워 넣었다.

“이걸 여기에 끼우면…….”

딸깍-!

띠링-!

-‘피의 보석’ 아이템을 사용하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그리고 벽면의 표범이 붉은 눈을 번쩍임과 동시에.

번쩍-!

-어둠 요새의 ‘기계 설비’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좁다란 막다른 길이었던 요새의 지형이 거대한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쿠구구궁-!

기이잉- 기기기깅-!

“……!”

그리고 벽면에 새겨진 조각상으로 생각했던 거대한 표범이, 두 사람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었다.

* * *

띠링-!

-파티원 ‘???’가 ‘어둠의 기계 표범’을 작동시켰습니다.

-핏빛 기운이 기계 설비를 움직입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기계 루카크’가 복원되었습니다.

고오오오-!

고막이 터질 듯 시끄러운 굉음들 사이에서, 이안은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시스템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호, 이놈이 문지기쯤 되는 건가?’

그리고 이안의 여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조나단의 입장에서야 나름 사활(?)을 건 퀘스트였지만, 이안에게 S-등급 퀘스트는 그저 거쳐 가는 워밍업 수준의 난이도였으니 말이다.

‘마지막 문지기인 걸 감안했을 때…… 대충 초월 130랩쯤 되려나?’

굉음이 잦아들고 사방에서 피어난 연기가 가라앉자, 붉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한 마리의 거대한 표범이 어둠 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 위에 떠있는 시스템 박스를 확인한 순간.

‘빙고.’

이안은 씨익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예상이 거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으니 말이었다.

-기계 루카크(전설)/Lv.138(초월)

이어서 녀석의 레벨을 확인한 이안은 조나단에게로 시선을 슬쩍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친구, 어떻게 할까?”

“뭘…… 말이냐?”

“잡아 줘? 아니면 너한테 기회를 줘?”

“……!”

“서포팅은 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이안의 말을 들은 조나단은 살짝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말고 있었으니 말이다.

‘초월 130랩 후반대 보스를 눈앞에 두고, 이런 여유라니…….’

카일란에서 이렇게 던전 끝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와 드롭 시스템이 조금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장비 아이템 같은 경우 평범한 몬스터처럼 조건 없이 드롭되도록 되어 있었지만, 골드나 차원 코인 등의 재화나 퀘스트에 필요한 잡화 아이템 같은 경우, 해당 보스 처치에 기여한 기여도에 따라 유저별로 차등 드롭되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의 제안은 사실 조나단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었다.

이 퀘스트 자체가 조나단이 가져 온 퀘스트였고, 그가 플레이한 모든 연계 퀘스트들의 최종 퀘스트였으니.

마지막 보스의 처치 기여도를 그에게 최대한 몰아주겠다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배려인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조나단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눈앞의 보스가 너무 강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력을 다 해도 모자를 것 같은 상황에서 기여도 몰아주기까지 언급하는 이안의 여유가, 도무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뭐야, 감동했냐?”

“…….”

“감격할 거 없어. 고마우면 지도만 확실하게 넘겨주면 돼.”

“후우…… 네놈…….”

“어차피 막타는 내가 칠 테니까.”

“…….”

조나단은 어이가 없었지만, 더 이상 이안과 대화를 이어 갈 수는 없었다.

캬아아오오-!

어느새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기계 괴수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쐐애액-!

콰앙-!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자, 한 가지 사실을 또 한 번 확신할 수 있었다.

‘저놈, 확실하게 미친놈이야. 분명해.’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여도를 몰아주려는 것인지.

이안이 구석에서 놀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너무 굼뜬 거 아냐? 한 대만 맞아도 엄청 아플 것 같은데.”

“미친……!”

“혹시 힘들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나도 그냥 내가 빨리 잡아 버리는게 속편하니까 말이야.”

“시끄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나단은 이안에게 참전하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초월 138레벨의 보스 기여도를 독식할 수만 있다면……!’

이 난관(?)을 극복했을 때의 보상이 너무도 매력적이었으니 말이었다.

‘젠장……! 어떻게든 해내고 만다.’

그리고 그런 조나단을 구경하며, 이안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여. 방금은 좋았다고. 분신 타이밍 깔끔하네.”

“조용히 해, 이 미친놈아.”

“알고 있지? 방금 분신으로 물리 대미지 흡수 못 했으면, 너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거.”

“닥쳐!”

조나단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전투에 집중했지만, 그래도 이안의 얄미운 목소리가 또랑또랑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감을 수는 있어도, 듣기 싫다고 귀를 닫을 방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젠장, 어떻게 저렇게 얄미울 수가 있지?’

심지어 이 와중에 어이없는 것은 꼭 도움이 필요한 타이밍에는 어김없이 이안이 개입해 준다는 것.

“아씨, 잘 좀 해 봐. 방금은 위험했잖아!”

“…….”

“이러다가 하루 종일 얘만 잡고 있겠어.”

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른 조나단은 정말 오롯이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래. 저 녀석은 없다고 생각하고 한번 싸워 보자. 젠장, 어떻게든 되겠지, 뭐.’

온 정신을 기계 표범의 움직임에 집중시켜,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까강- 깡- 까가강-!

그리고 그렇게 전투에 집중한 녀석을 힐끔 확인한 이안은, 흡족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조금만 더 도와주면, 저 녀석 혼자 충분히 문지기를 처치하겠어.’

이어서 갖은 버프 스킬들과 디버프 효과들로 조나단을 서포팅한 이안은 살금살금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대체 이 상황에서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이안의 입꼬리는 이미 양쪽 귀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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