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54화 (955/1,027)

< 954화 6. 뜻밖의 전개 (3) >

* * *

카일란의 모든 필드는 필드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민감한 문제인 PVP에 관해서는 제법 복잡한 케이스가 필드마다 적용되어 있고, 그 대표적인 조건들은 다음과 같았다.

1. 어떤 경우에도 PVP가 허용되지 않는 필드.

2. 어떤 경우에도 PVP가 가능한 필드.

3. 같은 진영의 유저끼리가 아니라면 PVP가 가능한 필드.

4. 명성 감소와 같은 특정 페널티를 감수할 시 PVP가 가능한 필드.

5. 레벨 차이가 일정 이상 될 시, PVP가 불가능한 필드.

……후략…….

하지만 이 PVP와 관련된 조건들은 대부분 하위권 유저들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의 조건들이었고, 때문에 중간계 이상의 상위 차원계에서는 보통 3번 이상의 조건은 걸려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마을에서조차 진영이 다르면 PVP가 되는 곳이 대부분인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안이 위치한 곳인 라카토리움의 루탄.

이곳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기계문명의 대도시인 이 루탄에서도, 진영이 다르다면 언제든 PVP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안은 오랜만에 PVP라는 선택지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어둠의 공학자 지르딘’을 찾기 위해서는 어둠의 요새에 진입해야 했고, 그곳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저 검은 두건을 뒤집어 쓴 유저가 손에 쥐고 있는 ‘비밀 지도’가 필요했으니 말이었다.

‘물론 지도를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존재하긴 하겠지만…… 지금 시간도 없고, 무엇보다 귀찮잖아?’

하지만 이안이 한 가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으니…….

“뭐 하는 놈인지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넘치는군.”

“응?”

“지금 일대일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일대일이면 네가 아니라 누가 와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

“어쨌든 그럼, 일단 맞고 주겠다는 거지?”

“건방진……!”

그것은 바로, 당연히 마족 진영의 유저일 것이라 생각했던 두건 사내가 같은 인간 진영의 유저였다는 사실이었다.

띠링-!

-타깃 설정이 불가능한 대상입니다.

-대상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같은 진영의 유저끼리 PVP가 금지되어 있는 필드입니다.

“응……?”

“어엇?”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공격을 시도한 것인지, 당황한 표정이 되어 서로를 향해 눈을 끔뻑이는 이안과 조나단.

두 사람이 당황한 이유는 당연했다.

지금 이 시점에, 기계문명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라카토리움의 대도시에, 자신 말고도 인간 진영의 유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뭐야, 너?”

“그러는 너는 뭔데?”

“미친 거 아냐? 인간 진영 유저가 여기 왜 있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건데……?”

그리고 그 덕분에 이안은 순간 벙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로 인해, 계획이 꼬여 버렸으니 말이다.

‘이러면 곤란한데…… 힘으로 뺐을 수 없으면, 저 친구를 설득해야 하나?’

물론 힘으로 해결이 안 되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어떤 아이템이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만 지불한다면, ‘거래’는 언제나 가능할 테니 말이다.

다만 문제는 상대가 이안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고레벨의 랭커일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레벨이 높고 상위권의 랭커일수록, 히든 퀘스트 아이템을 골드나 장비에 넘길 확률이 적었으니까.

‘흐으음…….’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이안을 향해, 조나단이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아쉽게 되었군.”

“뭐가?”

“건방진 네놈에게 참교육을 해 줬어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말이다.”

조나단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직 상대의 정확한 정체까진 알 수 없었지만, 사실 일대일이라면 누가 와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안뿐만 아니라 그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PVP라는 영역에 한정해서 만큼은 설령 상대가 이안이라 하더라도 쉽게 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도발 섞인 조나단의 대사에도, 이안은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았다.

이안을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조나단과 달리, 이안은 그가 건방지건 어땠건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흠, 그것 참 아쉽겠네.”

“……?”

“그것보단, 친구.”

“내가 왜 네놈 친구냐.”

“그 어둠의 요새 비밀 지도, 나한테 팔면 안 될까?”

“뭐?”

“한 1억 골드 정돈 바로 줄 수 있는데. 아니다. 한 2억 5천 골드까지 바로 빼줄 수 있겠다.”

“이, 이억?”

“그 이상은 곤란해. 맘대로 그 이상 썼다간, 누구한테 혼날 수도 있거든.”

“이거 건방진 놈이 아니라 미친놈이었잖아?”

조나단은 당혹함을 넘어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물론 그가 1억 골드를 진짜 준다고 해도 지도를 팔 생각이 없었지만, 억 단위의 골드를 이렇게 쉽게 말하는 놈은 처음 봤으니 말이었다.

1억이 넘는 골드를 마치 몇천 원짜리 커피값 이야기하듯 하는 것은 최상위 랭커인 그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안의 대사는 갈수록 더 가관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고작 1~2억 골드에 그걸 팔진 않겠네.”

“……뭐 하는 놈이야?”

“좋아, 그럼 이건 어때?”

“뭐?”

“네가 무슨 퀘스트를 진행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히든 퀘스트 때문에 그 지도가 필요할 거 아냐?”

“그렇……지.”

“최소 난이도 트리플S 이상의 퀘일 텐데. 그거 쉽게 깰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게. 퀘스트 공유해 줘.”

“뭐라고?”

“대신 그 지도를 나한테도 공유해 주는 거야. 이 정도면 수지맞는 장사 아닐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조나단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점입가경’이라 할 수 있는 이안의 이야기들.

‘대체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듣던 조나단은 아예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 원한다면 지도를 사용해야 하는 내 퀘스트까지도 공유해 줄게. 내 퀘스트도 같이 클리어하든가.”

“…….”

“이러면 너한테도 손해는 아닐 거야. 내가 도와주면, 퀘스트 난이도가 세 배 정돈 쉬워질 테니까.”

“후우…….”

“좋아. 그럼 콜?”

지금껏 수 년 동안 카일란을 플레이하면서, 이런 신선한(?) 경험은 단연코 처음이었으니 말이었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고, 오히려 헛웃음이 새어 나올 지경.

하여 조나단은 저도 모르게 이안을 향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너, 뭐하는 놈이냐?”

그의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미친놈(?)이 이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진심으로 자신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이라면 정말로 지도가 필요하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조나단의 생각에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고.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조나단의 두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띠링-!

-‘알 수 없는 유저’로부터 ‘어둠의 기계공학자 지르딘(에픽)(연계)(히든)’ 퀘스트를 공유 받았습니다.

-퀘스트 공유를 받으시겠습니까? (Y/N)

이안이 대답 대신 자신의 퀘스트를 먼저 공유해 주었고, 그것을 확인한 순간 경악했으니 말이었다.

정확히는 이안이 공유해 준 퀘스트의 난이도가 문제였다.

그것은 카일란 게임 인생을 통틀어, 처음 보는 난이도의 퀘스트였으니 말이었다.

-퀘스트 난이도 : 측정 불가(Unknown)

*측정 불가 난이도의 퀘스트는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

조나단은 퀘스트의 난이도가 수령한 유저를 기준으로 각각 다르게 설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이것을 본 순간 머리에 부하가 올 정도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난이도의 퀘스트를 어떻게 받은 거지? 저 미친놈은 대체 정체가 뭐야?’

게다가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니, 이 퀘스트를 위해서 ‘비밀 지도’가 필요하다는 이안의 이야기 또한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때문에 조나단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똥 밟았다는 생각으로 이안을 무시하고 이동할 생각이었는데, 측정 불가 난이도의 퀘스트를 확인하니 오랜만에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일단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 한번 데리고 다녀 볼까?’

어차피 허세만 가득한 사기꾼이었다면 자신의 퀘스트를 함께 하다가 죽어 버릴 것이고.

반대로 이 터무니없는 제안들이 전부 사실이라면 그의 말처럼 퀘스트 클리어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으니.

적어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크흠……!”

구겨졌던 인상을 편 뒤, 한차례 헛기침을 한 조나단이 다시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물론 이안과 대화를 지속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말이었다.

“후…… 좋다.”

“비싸게 굴기는. 어차피 수락할 거였으면서.”

“……!”

“그럼 빨리 네 퀘스트나 공유해 보라고. 그거 빨리 깨고 내 거 하러 가야 하니 말이야.”

“하…… 알겠다.”

한숨을 푹 내쉰 조나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안에게 퀘스트를 공유하였다.

-‘고대 연성술의 비밀(히든)(에픽)(연계)’ 퀘스트를 ‘알 수 없는 유저’에게 공유합니다.

그리고 퀘스트를 수령한 이안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이안의 반응은 그의 예상을 한 차원 뛰어넘는 것이었지만 말이었다.

“어, 연성술 퀘……?”

“시작부터 아는 척이군. 허세는 타고난 건가?”

“이거 이러면 개꿀이잖아?”

“음……?”

“좋았어. 이거부터 빠르게 하러 가자고. 이 정도면 3시간 컷이겠어.”

“뭐라고?”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퀘스트를 공유 받은 이안이 너무 진심으로(?) 기뻐한 것.

“자, 그럼 앞장서 친구.”

“어, 어딜?”

“어둠의 요새로 가야 할 것 아냐.”

“…….”

“지도는 너한테 있으니까, 네가 앞장서야지.”

“좋……아. 그럼 곧바로 이동해 보자고.”

그리고 그렇게 두 랭커는 서로의 이름조차 공유하지 않은 채 어둠의 요새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이쯤 되니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혹시 이 미친놈, 운영자는 아닐까?’

아직까지도 별별 생각이 다 드는 조나단과 별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안의 동행.

“내 퀘스트. 난이도 무슨 등급으로 뜨지?”

“흠, 확인 안 해 봤는데…… 잠깐. S- 등급이네.”

“뭐……?”

“물어봐서 알려 준 것뿐인데, 왜?”

“이, 이번에도 역시…… 허세인 건가.”

하지만 그렇게 30여 분 정도가 지나 요새에 도착하고 나자.

두 사람 간의 대화의 양상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띠링-!

-어둠의 요새, ‘D구역 지하 통로’에 입장하셨습니다.

퀘스트 장소인 요새에 입성하자, 이안의 표정에 어려 있던 장난기는 싹 사라졌으니 말이었다.

“이제부터 길은 내가 뚫을게. 뒤에서 실시간으로 좌표를 찍어.”

“뭐……?”

“시간 없으니까, 빨리.”

그리고 본격적으로 퀘스트가 시작된 이 시점부터, 조나단은 이안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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