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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52화 (953/1,027)

< 952화 6. 뜻밖의 전개 >

“그러니까. 빙해의 가문 소속의 어떤 ‘용병’이…… 빙혼대에 ‘의뢰’했다는 말이네.”

-그런 셈이다.

“거참, 대체 어떤 놈이 공헌도를 그렇게 써먹은 거지? 이거 참 신박한데?”

드라토쿠스로부터 들은 사건의 내막은 정말 참신한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용천에서 플레이 중인 마계의 유저가, 자신의 공헌도를 탈탈 털어서 빙혼대를 움직인 것이었으니 말이다.

‘뜬금없이 정령계와 기계문명의 싸움에 용천이 어째서 끼어들었나 궁금했는데…… 마계 진영 유저의 짓이었군.’

용천의 공헌도를 사용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공헌도를 사용하여 아티펙트를 구입할 수도 있으며, 용족 가신을 고용하거나 소환수의 부화석을 구매하는 것도 가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헌도를 사용해 용천의 병력을 움직여서, 타 차원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이안조차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어이, 드라토쿠스.”

-말하라, 인간.

“그럼 너희가 받은 의뢰는 어디까지인 거야?”

이안의 질문에 드라토쿠스는 잠시 고민한 뒤 대답하였다.

-우리의 임무는 이곳에 존재했던 아쿠스 일족. 그들을 격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협곡 안에 아쿠스 소속인 존재가 아무도 남지 않았으니, 이제 우리의 의뢰는 끝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군…….”

이안이 방금의 질문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만약 빙혼대가 받은 임무가 단순히 ‘격파’가 아닌 아쿠스 일족의 ‘섬멸’이었더라면,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이 될 뻔했으니 말이다.

‘물의 부족 세 곳을 전부 소집해야 하는데…… 한 곳이 아예 전멸했다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섬멸 임무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다면 격파당한 아쿠스 일족은 어디론가 피신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설령 거의 대부분의 부족원이 전멸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또다시 찾으려면 골치가 아프긴 하겠지만…….’

그런데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드라토쿠스가 다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것을 하나 물어도 되겠는가?

“물어봐.”

-천룡기사단의 단장인 그대는 무슨 일로 정령계에 있는 것인가? 기사단원도 없이 홀로 말이지.

그의 질문에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듯, 이안은 전부 다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물론 ‘거짓’을 말할 생각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 또한 의뢰를 받았거든.”

-오호?

“이 샤이야 산맥에 은둔해 있는 물의 부족들을 찾아서, 명령을 하달해야 하는 의뢰.”

물론 드라토쿠스가 오해할 소지는 충분히 있는 대답이었지만, 어쨌든 이안의 답변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가 받은 정령왕의 퀘스트도, 어쨌든 정령왕의 ‘의뢰’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다음 순간, 이안은 살짝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군.

대답하는 드라쿠스의 목소리가 어쩐지 떨떠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살짝 그의 표정을 살핀 이안이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뭐야, 드라토쿠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드라토쿠스가 머뭇거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그대가 우리와 비슷한 입장인 것 같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음……?”

-어떤 대가가 걸려 있는 의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의뢰…… 지금 바로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이어서 또다시 의외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의 동공이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 * *

드라토쿠스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이안이 받은 그 의뢰가 달성 불가능한 의뢰라는 것이다.

-샤이야 산맥에 거주하는 모든 물의 일족들은 지금 만년빙 아래에 봉인되어 있다.

“만년빙이라고?”

-어지간한 열기로는 쉽게 녹일 수 없는 절대의 얼음.

“……?”

-너, 그건 알고 있었나?

“뭐?”

-아쿠스 일족 외에 다른 물의 일족들이 어인족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게 뭐 어쨌는데?”

-그것이 바로 그대가 의뢰를 달성할 수 없는 이유.

“……?”

-그대가 이곳에 오기 이전에 이미 기계문명의 습격이 있었고,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 뒤로 인해 이곳 샤이야 봉우리는 전부 예전처럼 다시 얼어붙었으니까.

“……!”

-어인족들은 보통…… 물 안에 부락을 짓고 산다.

사실 드라토쿠스의 이야기는 비터스텔라의 세계관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어인족이 물속에 산다는 정도야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기계문명의 침공과 산맥이 얼어붙은 것이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얼어붙은 비터스텔라를 최초에 깨워 냈던 장본인인 이안은 그의 이야기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하였다.

‘아니, 뭐 이렇게 퀘스트가 복잡하게 흘러가?’

물론 지금 이 드라토쿠스와 빙혼대가 퀘스트에 끼어든 것은 알 수 없는 다른 유저로 인한 ‘변수’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다른 두 개 부족이 만년빙 아래 봉인됐다는 것은 메인 에피소드로 인해 벌어진 일일 터.

물론 그조차 마계의 유저들이 진행한 퀘스트 때문일 확률이 높긴 했지만, 퀘스트가 갈수록 꼬이고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인 것이다.

-우리도 그 때문에 두 개의 의뢰를 포기해야만 했다.

“두 개의 의뢰라면…… 나머지 두 부족을 격파하는 의뢰도 받았었나 보네.”

-그렇다.

“갑자기 생성된 만년빙 때문에, 그들의 부락을 공격할 수 없게 되었고?”

-이해가 빨라서 좋군.

드라토쿠스와의 대화가 끝나자, 절로 한숨부터 새어 나오는 이안.

“하아…….”

‘골치 아프네. 미루를 구했을 때처럼 얼음을 녹이면서 어인족들을 찾을 수도 없고…….’

이렇게 되면 이안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얼음이 녹고 있던 샤이야 봉우리가 어째서 다시 얼어붙어 버린 것인지.

그 이유부터 확실하게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럼 드라토쿠스. 나도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말하라, 인간.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샤이야 봉우리가 얼어붙은 이유. 그 정확한 이유를 알아낼 방법이 없을까?”

이안의 물음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가 단순히 ‘기계문명의 침공 때문’이라는 두루뭉술한 이유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드라토쿠스 또한 생각에 잠긴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방법은 아마…… 하나뿐일 것이다.

“하나?”

-샤이야 봉우리를 공격했던 ‘어둠의 군단’ 수뇌부에서, 정보를 빼내는 것이겠지.

“……!”

어둠의 군단은 이안 또한 처음 듣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정황상 그것이 어떤 이름인지 추측할 수는 있었다.

‘피켄로가 이끌었던 파괴의 군단. 그곳이랑 비슷한 군대인 것 같은데…….’

그리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이안은 더욱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이안이라 하더라도 혼자 거대 군단에 잠입하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커다란 일이었으니 말이다.

‘피켄로를 상대할 때처럼, 대지의 성물 버프라도 받으면 모를까…….’

성물 버프에 못지않은 신의 축복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은 너무 정령술에 특화된 버프였고.

그 때문에 지금 이안의 전투력은 피켄로와 싸울 때보단 확실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이안.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바로 그때.

이안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드라토쿠스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드라토쿠스.”

-말하라.

“네게 의뢰를 줬다는 그 마족이 어둠의 군단 소속인 거야?”

그리고 이안의 그 물음에 드라토쿠스의 두 눈이 살짝 확대되었다.

-……괜찮은 통찰력이군. 그대의 말이 맞다. 그렇기에 이만큼 정보를 알 수 있었던 것이지.

이어서 자신의 짐작이 맞음을 확인한 이안은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럼 어차피 의뢰의 보수를 수령하기 위해서, 어둠의 군단으로 복귀해야겠네?”

-뭐, 그런 셈이다.

드라토쿠스의 대답을 들은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좋아. 그럼 방법이 생겼네.”

-설마……!

그리고 이안의 말을 들은 드라토쿠스는, 어이없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의 요구가 상상 이상으로(?) 뻔뻔했으니 말이었다.

“네가 그 이유를 좀 알아봐 줘. 슬쩍 물어보면 되잖아?”

-내가? 내가 대체 왜 그래야 하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면 되는데?”

-뭐라?

“너희에게 의뢰를 하겠단 말이야. 드라토쿠스.”

드라토쿠스의 표정에 어린, 어이없는 감정은 곧 놀람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천룡기사단장이라 하더라도 너무 예의가 없군.

“뭐가?”

-우리 빙혼대를, 평범한 용병단 취급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음? 그게 무슨 말이지?”

-우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가문에 대한 공헌도일 뿐. 아무나 우리에게 의뢰를 맡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알고 있는데?”

-뭐?

이안의 제안이 드라토쿠스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용천. 정확히는 ‘중천’에서 쌓아 둔 공헌도가 필요한 것 아냐?”

-그, 그렇다.

“그러니까 그 공헌도라는 거. 얼마면 되냐고.”

-……?

이안이 제안한 것은 그 또한 공헌도를 소모해 빙혼대에 의뢰를 맡기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드라토쿠스로선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

이안이 오대가문의 ‘조력자’ 출신이라는 것을 모르는 드라토쿠스로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희들에게 의뢰를 맡긴 게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 친구보다 내가 공헌도 열 배는 더 많이 갖고 있을걸?”

-대,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오대가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각 가문의 보유 공헌도이다.

공헌도의 보유량에 따라 중천에서 가문의 입지가, 완전히 달라지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는 이안은 이 순간 자신이 ‘갑’이 되었음을 확신하였다.

“혹시 너, 암천에 아는 사람. 아니, 드래곤 있어?”

-물론 있다.

“그럼 그 친구한테 한번 물어봐.”

-뭘 말이냐.

“혹시 암천의 ‘조력자’ 중에 ‘이안’이라고 아는지 말이야.”

-이안……? 설마, 네가 이안이라는 말인가?

“오, 나를 알아?”

이안의 말을 듣던 드라토쿠스의 두 동공이 가늘게 진동하기 시작하였다.

이안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오대가문 소속의 수뇌부 중에 ‘이안’이라는 조력자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한때 중천의 균형을 무너뜨려 버릴 정도로, ‘암천’의 세력을 어마어마하게 키워 놨던 비현실적인 조력자 이안이라는 존재.

그 이안이라는 이름에 치를 떨었던(?) 드라토쿠스로서는 그 이름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 어쨌든 나를 알고 있다면 얘기하기 좀 편하겠네.”

-…….

“의뢰는 그럼 성립이지?”

이안의 물음에, 드라토쿠스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의 의뢰 따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이안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이안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고 말았다.

-공헌도는…… 얼마나 줄 수 있지?

“흠, 내가 제시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

“그럼…… 한 130만 공헌 정도. 이 정도면 어때?”

애초에 이안은 녀석에게 제시할 공헌도 수치까지도, 머릿속으로 생각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헉……! 배, 백삼십만이라고 했나?

“그래. 130만이야.”

드라토쿠스가 헛바람을 집어삼킬 정도로 130만이라는 수치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지만, 초창기에 거의 모든 콘텐츠를 선점하고 씹어 먹었던 이안에게, 그 정도는 새 발의 피에 가까웠던 것.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빨리 결정해.”

-……!

“안 그러면 암천에 가서 의뢰 때려 버릴 거니까.”

그리고 그렇게 드라토쿠스는 이안의 의뢰를 수령할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한다! 하겠다! 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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