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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51화 (952/1,027)

< 951화 5. 정령의 신 네트라 (3) >

‘아쿠스……? 아쿠스라고?’

의문의 목소리를 들은 이안은 순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쿠스 일족의 잔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화살을 쏘아 보낸 녀석이 무척이나 위험할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아쿠스는 이안이 찾고 있던 물의 부족들 중 한 곳의 이름이었는데, 녀석은 그 아쿠스와 분명한 적대 관계처럼 보였으니까.

‘잔당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보면…… 아쿠스가 패주(敗走)했다는 말인 것 같은데?’

사대 속성의 부족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지의 부족들을 직접 경험해 본 이안이야말로, 그 강함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유저라고 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모르지만 그락투스나 셀라무스…… 그들과 비슷한 힘을 가진 부족일 텐데…….’

그 때문에 그런 사대 속성의 부족을 패주시킬 정도라면, 적어도 그들 이상의 힘을 가진 세력일 터.

이안이 긴장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기계문명일까? 아니야. 목소리에 기계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

이안은 침착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자신을 향해 다시 활을 겨냥하고 있는 의문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피핑- 핑-!

“주인, 위험하다뿍!”

뿍뿍이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이안을 향해 또다시 쇄도하는 날카로운 얼음 화살.

하지만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서도 공격을 피해 낸 이안이 같은 공격에 당해 줄 리는 만무하였다.

타탓-!

화살은 그 투사체의 속도가 무척이나 빠른 편이었지만, 타격 범위가 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간결한 움직임으로도 피해낼 수 있었으니까.

쉬익- 퍽-!

이어서 바닥에 틀어박히는 화살을 슬쩍 확인한 이안은, 조금 여유를 찾았는지 눈빛을 반짝였다.

‘타격 지점을 중심으로 냉기가 퍼지는 화살이라…… 마법사들의 아이스 애로랑은 또 좀 다른 느낌인데.’

미지의 적에 대한 정리가 머릿속에 어느 정도 완료되자, 그들이 사용하는 새로운 종류의 고유 능력에 흥미가 동하는 이안.

그런 그의 주변으로, 또 다른 그림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다행인 부분은 이안의 위치가 협곡의 초입부였고, 덕분에 적들에게 포위되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녀석들과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지자, 이안은 그들의 구체적인 인상착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뭐지? 수인에 가까운 녀석들이잖아?’

적들의 생김새를 확인하자, 이안은 더욱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녀석들의 외모는 지금껏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물론, 이안조차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인(漁人)이라고 해야 하나? 흠, 저건 갈퀴라기보단 돌기나 뿔 같기도 하고.’

이어서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의문의 종족과의 거리는 더욱 좁혀졌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듯 보이는 녀석이 천천히 이안의 앞으로 다가왔다.

-정령술사가 아니었나? 생각보다 민첩하군.

“흠, 정령술사는 민첩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정령술사들은 하나같이 마법사 놈들처럼 느려 터졌었거든.

“뭐, 그럴 수도 있겠군.”

우두머리와 거의 3미터 정도의 간격만을 두고 마주한 이안은 생각보다 커다란 녀석의 덩치에 살짝 놀랐다.

‘멀리서 봤을 땐 인간이랑 비슷한 줄 알았는데…….’

녀석은 키만 하더라도 이안보다 두 배 정도 거대했으니 말이었다.

다만 전체적인 비율은 인간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피부의 일부분이 비늘로 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녀석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데이터 박스는 이안을 한 번 더 놀라게 만들었다.

-드라토쿠스(천룡)/Lv.135(초월)

그 안에는 이안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천룡? 천룡이라고……?’

무척이나 오랜만에 이안의 눈앞에 나타난 천룡이라는 단어.

이것은 이안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 *

‘천룡’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천신의 인정을 받아 갇혀 있던 영혼의 제약이 풀려, 진정한 용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드래곤, 혹은 용족.

그리고 이 천룡이라는 한 단어로 인해 이안이 가장 먼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이 의문의 녀석들이 ‘정령계’가 아닌 ‘용천’의 존재들이라는 것이었다.

그에 더해 ‘수인’인 줄 알았던 이들의 종족이 ‘용족’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용족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물론 이안이 놀란 것은 천룡이라는 존재가 위협적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 이안이 천룡을 만났을 때와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랐으니 말이다.

처음 천룡 드라코우를 만났을 때의 이안은 중간자의 위격조차 얻지 못했던 새내기 초월자였지만, 지금은 무려 초월 90레벨 후반의 강력한 중간자였고, 반대로 초월 150레벨 이상의 NPC들도 여럿 격파해 보았으니까.

다만 이 정령계의 에피소드가 용천과도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묻겠다. 네놈은 뭔가?

낮고 칼칼한 드라토쿠스의 목소리에 이안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건 왜 묻지?”

-그대가 만일 아쿠스 일족의 소속이라면,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하니까.

“……!”

-대답하라.

이안의 머리는 또다시 빠르게 회전하였다.

‘일단 지금의 상황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만약 녀석들이 다짜고짜 싸움을 걸었다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구도로 흘러가는 것이 이안으로서는 여러모로 더 좋았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에픽 퀘스트를 진행하는 유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정보’였으니 말이다.

‘일단 용족이 왜 여기에 있는지부터가 궁금한데…….’

하여 이안은 슬슬 밑밥을 깔기 시작하였다.

녀석들의 정보를 빼 내기 위한 밑밥 말이다.

“일단 난 아쿠스 일족이 아니다.”

-흠, 역시 그런가?

“다만 그들을 찾아왔을 뿐이지.”

상대의 궁금증을 유발시켜 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정보의 거래를 유도해 보려는 것.

하지만 이안의 의도는 처음부터 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군.

“……?”

아쿠스 일족을 찾아왔다는 떡밥을 던지면 당연히 녀석들이 궁금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반응이 밋밋하다 못해 완전히 무관심한 수준이었으니 말이었다.

“안 궁금해?”

-뭐가 말이냐.

“너네 아쿠스 부족이랑 싸운 거 아니야?”

-그렇다.

완전히 의외의 반응에, 순간 벙한 표정이 되어 버린 이안.

“그런데 아쿠스를 찾아온 내가 안 궁금할 수가 있어?”

-그럴 수 있다.

“헐……?”

하지만 잠시 후, 이안은 이들의 반응이 어째서 이런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드라토쿠스’의 대답이 거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단지 ‘의뢰’를 받고 움직였을 뿐.

“의뢰?”

-아쿠스 부족의 구성원이 아닌 자는 의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아……?”

-네가 그들을 찾으러 왔든, 이 빙판에서 얼음낚시를 하러 왔든. 우리랑은 관계없는 얘기라는 말이지.

그리고 그제야 이들의 반응이 이해된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투덜거렸다.

“야 씨, 그러면 타깃 확인도 안 하고 활질 하면 어떡해? 내가 못 피해서 죽어 버렸으면 너무 억울할 뻔했잖아.”

-그 또한 우리랑은 관계없는 이야기다.

“……인정머리 없는 놈들.”

이안을 향해 말을 마친 드라토쿠스는 고개를 돌리며 다른 용족들을 향해 손짓하였다.

-의뢰는 전부 완수한 것 같군. 모두 철수한다.

-알겠습니다, 대장.

-존명!

그러자 이안을 둘러싸고 있던 용족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협곡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모양새를 본 이안은 또다시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잠깐 이러면 안 되는데?’

이들이 그냥 가 버리면, 힘들게 찾아낸 아쿠스 일족에 대한 첫 단서가, 그대로 사라져 버리게 되니 말이다.

‘적어도 전멸을 했는지. 뭐 어떻게 됐는지 정도는, 알아내고 보내 줘야지.’

그래서 이안은 다급하게 다시 드라토쿠스를 불렀다.

“야, 용 친구.”

-……설마, 나를 부른 것인가?

“그래.”

-인간. 겁을 상실했군.

이안의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분노한 드라토쿠스가 기습적으로 그를 공격하였다.

쐐애액-!

들고 있던 창검을 그대로 휘두르며, 이안의 흉부를 향해 내리찍은 것.

하지만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스스슥-!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그것을 피해 낸 이안이 역으로 그의 목에 검을 들이 밀었다.

촤락-!

훨씬 더 강력했던 피켄로도 박살 낸 이안에게, 초월 135레벨의 드라토쿠스 정도가 무서울 리 없었다.

“겁을 상실한 건 너 같은데.”

-……?

“너희. 여기서 다 죽여 버릴 수도 있어.”

-건방진……!

“요즘 천룡의 비늘이 엄청 비싸게 팔리던데…… 싹 다 발라다가 팔면 돈 좀 되겠는걸?”

이안의 협박은 사실 과장이 많이 섞인 것이었다.

드라토쿠스를 처치하는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가능한 것이 사실이었지만, 여기 있는 모든 용족을 상대하는 것은 그로써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다른 요소들은 다 차치하고라도, 이안은 아직 이들의 전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이안이 이렇게 강하게 나가는 이유는 당연히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 내기 위함이었다.

-놈……! 정체가 뭐냐.

“이제 좀 궁금해지셨나?”

까앙-!

이안의 심판 검을 쳐 낸 뒤 몇 발짝 뒤로 물러난 드라토쿠스가 낮게 침음을 흘렸다.

이어서 그런 그를 향해 이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네놈들의 정체를 먼저 알려 준다면, 나 또한 말해 주도록 하지.”

-……!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것도 있는 법 아니겠어?”

이안의 말을 들은 드라토쿠스는 뭔가를 고민하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이어진 그의 대답은, 이안에게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 대답 안에, 이안의 머릿속에 있던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말해 준다고 알지 모르겠으나…….

“음?”

-우리는 빙해의 가문 소속의 전사들이다.

“……!”

-빙혼대의 대원들이지.

‘빙해의 가문이면…… 용천의 5대 가문 중 한 곳이잖아?’

이안이 용천의 퀘스트를 진행할 때 속해 있던 암천의 가문처럼, 빙해의 가문도 그 5대 가문 중 한 곳이었던 것이다.

물론 빙해의 가문에 속해 본 적은 없었기에 빙혼대가 뭐 하는 곳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용천 5대 가문 소속인 것을 알아낸 것만 해도 무척이나 유용한 정보인 것.

“아니, 용천의 5대 가문에서 대체 정령계에 있는 물의 부족은 왜 공격한 건데?”

-5대 가문에 대해 알다니……! 이럴 수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봐.”

-그것은 의뢰…… 아니, 잠깐. 이번에는 네놈이 답할 차례인 것 같은데?

이안의 화술에 말려들 뻔한 드라토쿠스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고, 이안은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살짝 입맛을 다셨다.

‘쩝, 이 정도까지 단순한 AI는 아니란 말이지?’

하여 이안은 약속했던 대로 자신의 정체(?)를 이야기해 주기로 했다.

어차피 수많은 이안의 정체(?)들 중 하나 정도를 얘기해 주는 것은, 별로 손해도 아니었으니 말이었다.

“나는 로터스 천룡기사단의 단장.”

-……?

“그것이 내 정체다.”

천룡기사단은 특정 조건 달성 시 중간계의 길드에서 설립할 수 있는 기사단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용천의 다섯 가문들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단이기도 한 것이 바로 천룡기사단이었고.

그래서 이안의 이 대답은, 무척이나 의도적인 것이었다.

‘채찍을 줬으니 이제 당근도 한번 던져 줘야지.’

용족 NPC들과의 친밀도를 높여 정보를 뜯어내기 위한, 설계의 밑그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의 그러한 설계가 유효했던 것인지, 드라토쿠스와의 대화가 드디어 그의 의도대로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처, 천룡기사단의 단장이라니……! 이럴 수가!

이안이 앞에 띄운 천룡기사단의 인장을 보자마자, 그가 필요했던 정보를 술술 풀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 빙혼대가 아쿠스 일족을 공격한 이유는…….

그리고 그 정보는 놀랍게도, 이안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내용을 가득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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