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0화 5. 정령의 신 네트라 (2) >
* * *
이안이 네트라의 시험을 통과함으로서 얻은 것.
그것은 한마디로 ‘자격’이었다.
불의 근원과 바람의 근원을 사용하여, 각 속성의 ‘권능’을 발현할 수 있는 자격.
그 때문에 제단에 올려져 있던 두 속성의 근원은, 이안의 의지에 의해 그 권능이 발현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불의 권능’이 발현됩니다.
-‘불’속성을 근간으로 하는 모든 정령계의 종족들에게 ‘소집령’을 발동합니다.
-근원의 권능으로 발현된 소집령은 거역할 수 없습니다.
-모든 불의 종족들이 소집령에 응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바람의 권능’이 발현됩니다.
-‘바람’속성을 근간으로 하는 모든 정령계의 종족들에게 ‘소집령’을 발동합니다.
-근원의 권능으로 발현된 소집령은 거역할 수 없습니다.
-모든 바람의 종족들이 소집령에 응합니다.
……후략…….
이안은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기분 좋은 표정이 되었다.
조금 색다른(?) 방식의 퀘스트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시간을 많이 아낀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제단의 시험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으니, 물의 부족들을 찾으러 다니는 데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줄겠어.’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이안의 귀에, 네트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안, 정령왕의 대리인이여.
“말씀하세요, 네트라 님.”
-올곧은 영격(靈格)을 가진 그대라면, 분명 이 정령계를 위기에서 구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종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호의적인 네트라의 목소리를 들은 이안이 씨익 웃으며 답하였다.
“네트라 님께서도 좀 도와주시죠.”
-그것은 초과근무…….
“에이, 아니죠.”
-음?
“제가 정령계의 위기를 해결한다면, 정령계의 민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지 않을까요?”
-앗……!
“이건 초과근무라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 같은 겁니다.”
-으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이어서 둘의 대화가 잠시 이어진 사이, 퀘스트의 종료와 연계 퀘스트의 발생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트로웰의 지원 요청(에픽)(연계)’퀘스트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명성(초월)이 10만 만큼 증가합니다!
-‘물의 부족을 찾아서(에픽)(연계)’ 퀘스트가 발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이 재빨리 네트라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네트라 님께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제가 ‘물의 부족’들을 찾는 것 정도는 조금 도움을 주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 퀘스트의 전개가 어찌 흘러갈지 알고 있었던 이안은, 네트라에게 뭔가 더 뽑아먹을 게 없을지 처음부터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이안은 살짝 고민에 빠진 네트라를 야금야금 구슬리기 시작하였다.
“부족들의 위치 정도만 알려 주신다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이 정도면 미래의 쾌적한 업무 환경을 위해, 투자해 보실 만하지 않겠습니까?”
연계 퀘스트 하나를 거의 날로 먹겠다는 도둑놈 심보를,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제안하는 이안!
그리고 그러한 이안의 제안은 절반 정도만 먹혀 들어갔다.
-좋습니다, 이안.
“……!”
-그럼 제가 한 가지 도움을 드리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단, 부족들의 위치를 알려 드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 네트라 님도 모르시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이 정령계 안에 제가 모르는 것은 거의 존재치 않지요.
“그렇다면……?”
-다만 아무리 신이라 해도, 그들의 개인 정보를 동의 없이 유출할 수는 없을 뿐입니다.
“…….”
살짝 당황한 표정의 이안을 잠시 응시한 네트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대신, 제가 가지고 있던 작은 나침반 하나를 드리지요.
“나침반요……?”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물의 나침반(전설)(초월)’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이안의 눈앞에 작고 낡은 나침반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안이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 들자, 네트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단지 제게 필요 없는 물건을 하나 선물로 드렸을 뿐입니다.
“……!”
-그것을 이용해 물의 부족들을 찾는 것은 그대의 자유겠지요.
네트라의 말을 들은 이안은 재빨리 나침반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물의 나침반>
-분류 : 잡화
-등급 : 전설(초월)
-순수한 물의 힘이 담겨 있는 낡은 나침반입니다. 가장 순수한 물의 힘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물건이라고 전해지지만, 그 정확한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정령의 힘’을 가지지 못한 자는 나침반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특정 퀘스트-물의 부족을 찾아서(에픽)(연계)가 진행 중일 때만 사용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퀘스트가 종료될 시 아이템의 능력이 사라집니다.
이어서 이안은 두 눈을 반짝이며, 네트라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네트라 님! 이것이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아예 부족들의 좌표를 찍어 주는 것보다야 아쉬울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이 나침반의 존재는 퀘스트에 필요한 시간을 절반 이하로 단축시켜 줄 테니 말이었다.
하지만 네트라의 가장 큰 선물은 이 나침반이 아니었다.
-별말씀을요. 이안, 그대의 앞길에 축복이 깃들기를…….
띠링-!
작별 인사를 하는 네트라의 주변으로, 새하얀 광휘가 뿜어 나와 이안을 감싸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정령의 신 ‘네트라’와의 친밀도를 일정 이상 달성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정령의 신 ‘네트라’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신의 축복 효과, ‘네트라의 축복’이 10일 동안 지속됩니다.
-이제부터 ‘축복’의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소환한 모든 정령의 정령력이 모든 종류의 전투에서 2배만큼 획득됩니다.(잡화 아이템을 통한 정령력 상승은 제외)
-이제부터 ‘축복’의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정령과 정령술로 인한 마력 소모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이제부터 ‘축복’의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정령술’의 숙련도가 1.5배 만큼 빠르게 증가합니다.
……후략…….
마계대전쟁 이후 이안조차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신의 축복.
네트라가 그것을 이안에게 선물해 준 것이다.
심지어 마그리파를 정령왕으로 진화시켜야 하는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버프로 말이었다.
‘크……! 미친!’
네트라의 선물에 감동한 이안은 다시 감사 인사를 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미 네트라의 신형은 하얀 빛무리 속으로 사라진 뒤였고, 때문에 인사는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과로의 여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녀석이었잖아?’
더 없이 만족스런 기분이 된 이안은 곧바로 나침판을 꺼내 들었다.
이어서 이안의 손에 닿은 나침반은 어딘가를 가리키기 시작하였고.
우우웅-!
이안은 지체 없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 * *
이안이 새로이 얻은 연계 퀘스트는 결국 트로웰이 준 ‘지원 요청’ 퀘스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불과 바람의 부족들에게는 권능을 이용해 소집령을 내렸다면, 물의 부족들에게는 직접 찾아가는 방식으로 소집령을 내리는 것이니 말이다.
하여 퀘스트의 내용은 무척이나 간단하였다.
비터스텔라의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세 곳의 ‘물의 부족’들.
그들을 찾아 트로웰의 뜻을 전하고, 소집령에 대한 수락을 받아 내면 끝나는 것이니 말이다.
다만 그 내용이 간단한 것과, 퀘스트의 난이도, 그리고 클리어에 걸리는 시간.
이 세 가지의 요소는 항상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안이 첫 번째 물의 부족을 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6시간이 넘는 긴 시간이었으니 말이었다.
“와, 진짜…… 나침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뿍, 저기가 확실하냐뿍.”
옆에 있던 뿍뿍이의 물음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이번엔 확실해. 여기가 아니라면, 이 근방에서는 이제 뒤져 볼 곳도 더 없으니 말이야.”
이안 일행이 도착한 곳은 비터스텔라의 최북단에 있는 샤이야 산맥이었다.
그리고 그 북방의 산맥 안에서도 최북단의, 이안조차도 와본 적 없는 미개척 지역이었다.
‘저 계곡 안쪽일 거야. 이 바위 협곡만 지나면……!’
네트라에게 받은 물의 나침반은 항상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서 나침반이 만능은 아니었다.
결국 물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은 가장 강력한 물의 힘이 느껴지는 위치였는데, 그것이 꼭 ‘물의 부족’이라는 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물 속성을 가진 강력한 몬스터라든가, 혹은 물의 원석이 많이 매립되어 있는 광맥이라든가.
‘물의 힘’이라는 목적물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도 방향 자체가 틀렸을 리는 없어. 결국 물의 힘이 강한 존재들은 비슷한 위치에 모여 있을 테니까.’
이안은 지금껏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지의 요람부터 시작해서 모든 대지의 부족이 대지의 요람을 중심으로 모여 있던 것처럼, 다른 속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추측한 것이다.
거기에 네트라가 이안을 돕기 위해 준 아이템이 바로 이 물의 나침반이라는 사실까지 엮어서 생각해 본다면, 이안은 자신의 추측이 틀릴 리 없다고 생각하였다.
‘네트라가 일부러 날 엿 먹이려 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
하지만 그 이안의 확신은 잠시 후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
모든 변수를 제거하고 도착했다 생각했던 최종 위치에, 기대했던 ‘물의 부족’은커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었다.
“뿍! 이게 뭐냐, 주인아! 여긴 그냥 빙판밖에 없는 것 같뿍!”
협곡을 돌아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널따란 얼음의 대지에는, 뿍뿍이의 말처럼 얼음으로 꽁꽁 얼어 버린 호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 뭐지? 나침반이 오작동이라도 한 건가?’
당황한 이안의 동공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나침반을 따라갈 때마다 뭐라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눈앞에 펼쳐진 공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더 황당한 것은 물의 나침반의 바늘이 정처 없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는 점.
“고, 고장인가?”
당황하여 나침반을 이리저리 살피는 이안과, 그 옆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저앉은 뿍뿍이.
“춥다뿍. 그냥 돌아가면 안 되냐뿍.”
“시끄러, 인마. 형 지금 진지한 거 안 보이냐?”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안과 뿍뿍이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바로 그때.
뭔가 서늘하고 사나운 기운이, 이안의 기감에 느껴졌으니 말이었다.
“……!”
하여 이안은 거의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춰 빙판에 주저앉고, 이어서 주저앉은 이안의 머리 위로, 시퍼런 한기를 품은 화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쐐애액-!
화살이라기에는 조금 더 굵직하고 커다란, 얼음으로 만들어진 의문의 투사체.
“……!”
하지만 기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표정은 오히려 밝아졌다.
‘역시, 맞았어!’
지금 그에게 화살을 쏘아 보낸 의문의 존재가, 분명 물의 부족일 것이라고 직감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안의 추측은 절반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재밌는 녀석이군. 너도 아쿠스 일족의 잔당인가.
“……?”
이안에게 활을 쏘아 보낸 그 존재는, 물의 부족과 ‘연관’은 있을지언정, 물의 부족은 아니었으니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