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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48화 (950/1,027)

< 948화 4. 전쟁의 시작 (3) >

* * *

카일란의 세계관에는 수많은 차원계가 존재한다.

특히 지상계의 경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원들이 존재하는데, 그 차원 하나하나가 바로 카일란의 서버와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었다.

국가별로 하나 이상 존재하는 그 서버 하나하나가, 각각 카일란의 지상계에 속해 있는 서로 다른 차원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지상계의 차원계들에는 각각 해당 차원계를 관장하는 ‘신’이 존재한다.

카일란 한국 서버로 치자면, 전쟁의 신 마레스와 어둠의 신 카데스. 대지의 신 샌디애나와 바람의 신 미로, 태양의 신 헬레나 등이 바로 그들이라 할 수 있었다.

“재밌는 건, 서버별로 그 신들의 구성이 전부 다 다르다는 점이지.”

“어떻게요?”

“예를 들어 한국 서버를 관장하는 신이 전쟁, 어둠, 대지, 바람, 태양……의 신이라면, 일본 서버를 관장하는 신은 태양, 빛, 바다, 달, 숲의 신이거든.”

“엇, 정말요?”

기획 3팀의 신입 기획자 오주원은 최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다이나믹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꿈의 직장이나 다름없는 LB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는 천국의 구름을 밟는 기분이었지만, 입사 사흘 만에 이곳이 지옥임을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체 이 미친 게임의 기획 초안은 최초에 누구 머리에서 튀어나온 걸까?’

심지어 아직 제대로 된 업무는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출근을 시작한 뒤로 사흘 동안.

그는 아직도 게임의 세계관에 대한 공부(?)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카일란의 모든 세계관에 통달하기 전에는 기획팀의 입사 시험(?)을 결코 통과할 수 없었고.

2주일 안에 입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입사취소를 시켜 버리는 곳이 바로 LB사의 기획 부서였으니 말이다.

‘그냥 일을 시켜 줘…… 난 게임 회사에 공부하러 들어온 게 아니라고……!’

하지만 오주원의 이런 불만은 영원히 옹알이처럼 입안에서만 맴돌 뿐.

결코 입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입사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LB사가 업계 최고의 회사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기획자들이 이만큼이나 대우받는 회사는 업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후우…….’

그리고 그런 이유로, 주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선배 기획자의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카일란 게임 인트로를 자세히 봤다면 기억하겠지만, 카일란에는 총 열일곱 명의 각기 다른 권능을 가진 신들이 존재해.”

“그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중 다섯이, 고대 마계의 침공을 막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되어 있지.”

“그것도 기억나요.”

“그 다섯의 신들이, 서버마다 전부 다 다른 거야.”

“아……?”

“물론 신들의 숫자에 비해 서버의 숫자가 많아서 겹치는 신들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현재 지상계를 관장하고 있는 신들이 완벽히 같은 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서버는 없다는 이야기지.”

“재밌……네요.”

“게다가 같은 태양의 신이라 해도 일본 서버와 한국 서버의 태양신은 다른 존재거든.”

“헉, 그래요?”

“한국 서버를 관장하는 태양의 신은 헬레나. 일본 서버를 관장하는 태양의 신은 솔라리.”

“……!”

“심지어 그냥 이름만 다른 게 아니야.”

“그럼요?”

“NPC 세부 설정이나 각각 가지고 있는 사연도 다르고. 스텟도 하나하나 전부 다 다르거든.”

여기까지 듣던 주원은, 순간 저도 모르게 육성을 내뱉고 말았다.

“미친…….”

다행인 것은, 그의 욕지거리(?)를 들은 선배 기획자의 표정에 별반 변화가 없다는 정도.

그 또한 처음 입사할 때 전부 겪었던 과정이었기에, 주원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물론 아직 그거까지 공부할 필요는 없어. 그 부분은 어차피, 신계가 본격적으로 열려야 유저들에게 공개될 부분이니 말이야.”

“하…… 이 게임 기획자…… 진짜 미쳤네요.”

“이제 너도 이 게임 기획자야, 인마.”

“저도 곧 미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에요, 선배.”

“…….”

서버별로 지상계를 관장하는 신들의 이름과 그들의 능력, 배경 스토리 등을 전부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하는 주원.

‘차라리 세계사 공부가 더 편하겠어…….’

그런 그를 향해, 선배 기획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너무 슬퍼하지 마, 주원.”

“슬픈……거라기보단…….”

“중간계부터는 외울 게 확 줄어드니 말이야.”

“그거야 당연하겠죠. 중간계는 통합 서버니까요.”

“그렇지.”

오랜만에 아는 부분이 나오자, 주원은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그 정도는 입사 전에도 미리 공부해서 알고 있다고요. 후훗.”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의 표정은 다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선배의 다음 질문이, 무척이나 의미심장했으니 말이었다.

“그럼 혹시 그것도 알아?”

“뭐……요?”

불안한 표정의 주원을 향해, 잠시 뜸을 들이는 선배 기획자.

그의 입이 다시,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신들 사이에서도 각각 신격이 다 다르다는 사실 말이야.”

“신격이라면…….”

“계급 같은 거지.”

“설마…….”

좋지 않은 예감에, 말을 잇지 못하는 주원.

그런 그를 향해, 선배가 씨익 웃어 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 외우면 돼.”

“……?”

“격이 완전히 같은 신은 아무도 없어. 왜냐면 해당 신이 관여하는 퀘스트를 유저가 얼마나 많이 클리어했느냐에 따라, 그 신의 신격이 결정되거든.”

“그렇……군요.”

“모든 서버의 성장 정도. 즉, 진행도는 완전히 제각각이니까. 격이 같은 신은 있을 수가 없겠지.”

“하아…… 심지어 순위 변동도 일어나겠네요.”

“빙고.”

선배의 말을 듣던 주원은 이제 완전히 해탈한 표정이 되었다.

대체 이 게임은 어떻게 생겨 먹은 게임인지, 까도 까도 세부 설정이 끝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만을 가질 명분도 없었다.

게임의 모든 설정과 세계관을, 기획자가 전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으니 말이다.

‘젠장, 이번 주말도 날밤 새워야겠네. 기왕 밤새우는 거, 회사에서 새울까? 야근 수당이라도 받아야지.’

그런데 선배의 이야기들을 복기하던 주원은, 문득 의문점 하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뭔가 그의 말에서, 모순점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선배,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후배님.”

“신들의 신격이, 각자 자신이 관여하는 퀘스트들을 유저들이 얼마나 클리어했느냐에 비례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럼 지상계의 신들보다, 중간계에 있는 신들의 신격이 더 낮은 건가요?”

“오호.”

“말씀하신 대로라면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유저 숫자 차이가 최소 100배는 날 테니까요.”

오주원의 이야기를 듣던 선배 기획자는 재밌다는 표정이 되었다.

신입 기획자치고 그의 질문이 무척이나 예리했으니 말이다.

탁자에 놓여 있던 찻잔을 한 차례 홀짝인 그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건 아니야.”

“그……래요?”

“중간계를 관장하는 신들.”

“……?”

“그들은 카일란의 세계관상, 마치 공무원같은 존재들이거든.”

“고, 공무원요……?”

이어서 어이없는 표정을 한 주원을 향해, 선배 기획자가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지상계를 관장하는 신들이 성과제로 선출된다면, 중간계의 신들은 철밥통이거든.”

“켁.”

“걔들은 무슨 짓을 하든, 항상 그 자리에서 같은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특별히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주원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부, 부럽다…….”

* * *

타는 듯이 붉은 빛과 찬란한 금빛이 허공에서 휘감기자, 그것은 화려한 주홍빛의 소용돌이가 되어 제단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빛줄기가 퍼져 나간 바로 그 자리에, 마치 섬전처럼 하얀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우우웅-!

이어서 다음 순간.

그 하얀 빛만큼이나 순백의 색을 띤 한 여인이 두둥실 제단 위에 떠올랐다.

마치 빛의 줄기들을 옷 대신 걸치고 있는 듯, 새하얀 광휘로 휩싸여 있는 여인.

-그대 인가요?

“……?”

-나를 불러낸 이.

마치 반투명한 유령처럼 제단 위를 부유하는 여인은 이안이 지금껏 봐 왔던 그 어떤 존재보다도 훨씬 더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단의 시험이라는 걸…… 이 여자가 주는 건가?’

이안은 반사적으로 그녀의 머리 위를 살폈다.

그녀에 대한 조금의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은 적잖이 놀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령의 신 네트라/Lv.???

눈앞의 여인을 수식하는 수식어에, 무려 ‘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으니 말이었다.

이안은 우선 침착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저는 단지, 불과 바람의 근원을 제단에 바쳤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안은 곧 다시 말문이 막혀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죠?

“…….”

정령의 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반문을 던졌으니 말이다.

‘아니, 퀘스트가 시킨 대로 한 걸,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어떡해?’

하지만 이 또한 퀘스트의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이안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

가까스로 침착함을 유지한 이안이 조심스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정령계가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군요.

“……하여 이 정령계를 위기에서 구해 내려면, 모든 사대 부족의 힘을 규합해야 합니다.”

-사대 부족이라면…… 사대 속성을 섬기는 모든 부족들을 의미함인가요?

“그렇습니다.”

네트라와 대화를 이어 가던 이안은 순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정령의 신이라면 당연히 정령계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네트라의 태도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뭐지? 혹시 이름만 정령의 신인 건가?’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퀘스트는 진행되어야 했기에, 이안은 노련하게 대화를 이어 가기 시작하였다.

“불과 바람의 근원은, 각각 그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여 이 권능으로…… 사대 속성의 부족들에게 소집령을 내리고자 합니다.”

-소집령이라…….

“예, 정령의 신이시여.”

-불과 바람의 힘을 규합해 줄 정령왕이 없으니, 정령왕의 대리인이 대신 그 역할을 수행하려 하는 거로군요.

“맞습니다……!”

네트라에게 마지막 한마디까지 깔끔하게 전달한 이안은 스스로 무척이나 만족스런 표정이 되었다.

이안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군더더기 없이 훌륭하게 목적을 전달한 것 같았으니 말이다.

‘좋아, 좋아!’

그리고 이안의 말이 끝난 순간.

그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정령의 신 네트라’가 당신을 시험합니다.

‘시험……?’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네트라의 입이 다시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대의 뜻을 잘 알았습니다, 이안.

‘뭐지? 신이라 그런가…… 이름도 바로 아네?’

-하지만 정령왕이 아닌 대리인의 자격으로 수행하기에는 ‘권능’이 가진 힘의 무게가 너무도 막중한 터.

“예, 네트라 님.”

-내가 지금 마지막으로, 그대의 자격을 시험토록 하겠습니다.

“……!”

-지금부터 그대는 나의 질문에 답함에 있어 한 치의 거짓도, 오답도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껏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던 네트라의 얼굴에, 진중함이 떠올랐다.

그런 그녀를 응시하던 이안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집어 삼켰고, 이안과 눈이 마주친 그녀의 입이 천천히 떼어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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