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4화 3. 불의 근원을 얻다 (2) >
* * *
이 ‘근원의 숲’은, 여러 모로 이안에게 중요한 컨텐츠였다.
일단 두 가지 속성의 근원을 얻어야 정령계의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가 최상급의 중요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외에도 달콤한 콩고물(?)들을 더 내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카일란을 플레이 하면서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던\ 소환수 ‘할리’의 상위 등급 개체들.
이것이 바로 그 첫 번째 달콤한 콩고물이었다.
물론 그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진화 불가’상태의 할리를 곧바로 진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금의 단서라도 얻어 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생긴 것이다.
다만 이안이 하르가에게 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근원의 화산으로 먼저 온 이유는 당연히 퀘스트의 제한 시간 때문이었다.
일단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난 뒤 할리가 진화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것이 옳은 순서라고 생각했으니까.
‘청랑이 내게 준 시간이 아직 세 시간도 넘게 남아 있으니, 그것까지 충분히 알아보고 나갈 수 있겠지.’
그리고 두 번째.
사실상 할리의 진화와 관련된 단서가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얻어걸린 요소라면, 이것은 처음 이 퀘스트를 수령할 때부터 이안이 기대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쩌면 할리의 진화보다도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 모를 불의 정령 마그번의 진화.
만약 마그번이 단지 최상급으로 진화하게 되는 것뿐이었다면, 할리의 전설 진화보다 더 가치 있다고 말하기에 애매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안의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에서 알 수 있듯, 그리고 이안이 처음부터 예상했듯, ‘불의 근원’은 불의 정령을 ‘정령왕’으로 진화시키기 위한, 히든 피스이자 단서였다.
-화염의 제왕(히든)(연계)
과거 정령계의 왕들 중 하나였던, 불의 정령왕 라그나로스.
기계문명과의 전쟁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부은 그는 불의 권능이 담긴 ‘근원’만을 남기고 소멸하였다.
정령왕의 상징이자 사대 속성의 근원 중 하나인 ‘불의 근원’이, 주인을 잃고 ‘근원의 숲’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중략……
물론 ‘불의 근원’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불의 정령이 ‘정령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령왕’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강력한 정령력을 보유해야 하며, 또 ‘화염의 제왕’이 될 자격을 ‘정령의 제단’ 앞에서 증명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불의 신수’가 인정한 정령술사인 당신이라면, 당신의 친구인 불의 정령으로 하여금 정령왕의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정령 ‘마그번’이 ‘화염의 제왕’이 될 수 있도록 제왕의 시험에 도전해 보도록 하자.
만약 이 시험에 통과한다면 당신은 ‘정령왕’의 계약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면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A. 최상급 불의 결정 흡수.
-B. ‘최상급 불의 정령’으로 진화.
-C. 화염 속성을 가진, 초월 레벨100 이상의 몬스터 1,000마리 이상 처치.
-D. 불의 신 ‘이그라트’의 가호 획득.
-E. ‘불의 근원’ 흡수.
*모든 조건은, 시험에 참여할 ‘불의 정령’의 힘만을 이용하여 달성해야 합니다.
*모든 조건은, 명시된 순서대로 달성되어야 합니다.
-퀘스트 난이도 : SSSSS
-퀘스트 발생 조건
‘불의 근원’을 가진 정령술사.
‘상급’이상의 ‘불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술사.
-제한 시간 : 없음
*모든 유저 중 단 한 명만 클리어할 수 있는 퀘스트입니다. (다른 누군가가 해당 퀘스트를 먼저 클리어할 시, 퀘스트는 자동으로 소멸됩니다.)
*퀘스트를 ‘포기’하거나 퀘스트가 ‘소멸’되기 전까지, 제한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입니다.
-보상
-명성(초월) 20만
-‘정령왕의 계약자(불)’칭호 획득
퀘스트 창을 전부 확인한 이안은 설렘으로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하였다.
트로웰과의 기간제 계약(?)으로 인해 이미 정령왕의 강력함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이안으로선, 마그번이 정령왕이 됐을 때 어떤 능력을 보여 줄지, 벌써부터 설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퀘스트 창의 마지막에 명시된, 이안조차도 처음 본 강렬한 한 줄의 문구.
‘캬, 모든 유저들 중 단 한 명만 클리어할 수 있는 퀘스트라니……!’
전 서버에 정령왕이 단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이안에겐 이 문구가 더욱 강렬하게 와 닿은 것이다.
물론 퀘스트 난이도가 펜타 S급의 난이도이며, 클리어까지는 얼마나 요원할지는 모르지만, 언제나 그랬듯 그런 것은 이안에게 있어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시스템적으로 아예 막아 놓은 것이 아니라면 이안에게 불가능한 퀘스트는 없을 테니까.
‘달성해야 할 조건이 총 다섯 개…….’
이안의 시선이 퀘스트 달성 조건 탭을 향해 고정되었다.
이어서 A항목을 확인한 이안은 살짝 눈을 빛내기 시작하였다.
‘오호, 이게 설마 최상급 진화의 단서였나?’
사실 불의 상급 정령인 마그번은, 이미 상급 정령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정령력을 달성한 지 좀 되었다.
하지만 이전까지와 달리 정령력이 가득 찼음에도 진화를 하지 않자 이안은 몇 가지 가정을 세워 놓고 있었다.
첫째, 정령왕으로 진화 가능한 사대 속성의 정령은 최상급의 정령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둘째, 모든 정령은 상급 정령보다 상위로 진화할 때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퀘스트의 내용으로 인해 이안은 두 번째 가정이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최상급 정령이 되기 위해선 최상급 원소의 결정을 흡수해야 한다고……? 어떻게 생각하면 엄청 단순하기는 한데…….’
이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말이 단순하지, 최상급 속성의 결정을 정령에게 먹인다는 행위 자체는 결코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최상급의 결정은 지금껏 기계 공장과 광산을 이용해 누구보다 많은 정수와 결정을 파밍한 이안에게도 무척이나 귀한 물건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이안이 모아 둔 최상급 속성의 결정은 모든 속성을 합하여 겨우 세 개.
상급 결정도 충분히 귀하다고 하지만 그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희귀도를 가진 것이 최상급의 결정이었던 것이다.
‘최상급 결정을 누가 정령에게 먹일 생각을 하겠어? 차라리 정령 수호자에게 팔거나 아티펙트 제작에 사용하겠지.’
물론 최상급의 결정을 정령에게 먹이면 평범한 상급 정령을 기준으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정령력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전투로 차곡차곡 채울 수 있는 것이 정령력이었다.
당연히 환산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 최상급의 정수를 정령에게 먹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안 팔고 모아 두길 잘 했네.’
그렇다면 지금껏 이안이 이 최상급의 원소 결정을 모아 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언젠가 연성할 ‘태초의 마룡’ 연성에 필요한 주재료 중 하나가 최상급의 속성 결정 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기약도 없는 마룡 연성보단, 정령왕 퀘스트가 우선이겠지.’
일단 결정을 사용하면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화염의 제왕’ 퀘스트와 달리 마룡 연성에 필요한 재료는 산 넘어 산이었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도 알 수 없는 ‘마신의 혈옥(血玉)’같은 것에 비교하면 오히려 최상급의 결정은 양반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은 망설임 없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곧바로 ‘최상급 불의 결정’을 사용하여 A조건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말이다.
띠링-!
-‘최상급 불의 결정’을 사용하였습니다.
-고대 불의 정령 ‘마그번’이, ‘최상급 불의 결정’을 흡수합니다.
결정을 흡수하는 과정 자체는 간단하였다.
어차피 중급이나 하급의 결정들을 정령에게 흡수시킬 때와 방법 자체는 차이가 없었으니 말이다.
‘초과될 정령력이 좀 아깝긴 하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결정이 아깝긴 한지 슬쩍 입맛을 다시는 이안.
-‘화염의 제왕(히든)(연계)’퀘스트의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정령 ‘마그번’이 가진 화염의 힘이 더욱 강력해집니다.
이어서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이안은 눈을 빛냈다.
지금 이 순간 이안이 기대하는 것은 하나였다.
‘자, 이대로 진화까지 가자……!’
별달리 필요한 다른 조건 없이, 그대로 마그번이 최상급 정령으로 진화해 줬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안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마그번의 시뻘건 몸체가 더욱 강렬히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고대 불의 정령 ‘마그번’의 정령력이 한 단계 격상됩니다.
-‘마그번’의 정령력이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불의 상급 정령 ‘마그번’이, 불의 최상급 정령으로 진화합니다.
이어서 모든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표정은, 더욱 환해질 수밖에 없었다.
* * *
크릉- 크르릉-!
근원의 숲 북쪽의 널따란 초원.
숲의 지배자이자 바람의 신수인 하르가는 오늘도 한가로운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역시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최고야.”
좀전까지만 해도 사나운 벌들에게 쫓기는 긴박한 하루였지만, 그를 도와준 착한(?) 인간 덕에 다시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크우웅-!
초원 한가운데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에 누워,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노라면, 하르가에게는 이곳이 바로 지상 최고의 낙원인 것!
하여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 하르가는 두 눈을 슬며시 감고 낮잠을 청하기 시작하였다.
온몸에 퍼지는 이 달콤한 나른함은 게으른 하르가에겐 축복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흐아암……! 딱 세 시간만 자고 일어나야지. 아니, 어차피 조금 더 있으면 해가 질 테니 그냥 내일까지 쭉 자 버릴까?”
한쪽 앞발로 턱을 괸 채, 행복한 고민을 하며 잠에 빠져드는 하르가.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크헝-!
하르가는 감기던 두 눈을 다시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크릉, 이게 무슨 소리지?”
왠지 모르게 낯익은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그의 귓전을 두들겼으니 말이었다.
‘혹시 귀찮은 세카토르 녀석……?’
친구인 세카토르의 얼굴을 떠올린 하르가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확 찌푸렸다.
녀석은 게으름뱅이인 그와 완전히 상극에 가까운 호랑이였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숲지기 ‘청랑’의 심복이나 다름없는 친구였으니, 하르가로서는 녀석의 등장이 경계될 수밖에 없는 것.
‘설마 청랑 님이 또 뭘 시키신 건 아니겠지……?’
불안한 표정이 된 하르가는 고개를 휙 돌려 소리가 난 곳을 응시하였다.
제발 자신이 생각한 그 최악의 상황(?)은 아니기를 속으로 열심히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울음소리의 주인을 발견한 하르가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크릉……?”
고개를 돌린 하르가의 시야에 세카토르가 아닌 전혀 생각지 못한 존재가 들어왔으니 말이었다.
“크릉, 크르릉-!”
나무 아래서 하르가를 올려다보며 연신 ‘크릉’대는 한 마리의 호랑이.
‘뭐지? 처음 보는 녀석인데……. 왜 낯이 익은 거지?’
녀석을 보고 잠시 갸웃했던 하르가는 곧 그가 누군지 깨달을 수 있었다.
“크릉! 아, 넌 아까 그 인간과 함께 왔던 할리칸!”
“크릉, 크릉, 크르릉!”
녀석은 다름 아닌 이안의 소환수 할리였으니 말이었다.
하여 반가운 표정이 된 하르가는 풀쩍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착한 인간의 소환수라면 그에게도 친구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여긴 어쩐 일이야. 이안은 어디 갔어?”
그리고 그런 하르가에게 할리는 연신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크르릉- 크릉- 크허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