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3화 3. 불의 근원을 얻다 (1) >
맛있는 요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단지 ‘요리’라는 과정 하나만으로 맛있는 요리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훌륭한 요리가 나오기 위해서는 우선 양질의 신선한 재료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또 어떻게 선가공하느냐에 따라 완성될 요리의 많은 부분들이 달라지는 것.
때문에 사실 이안이 제안한 이 ‘고기 굽기’ 내기는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린의 특제 스테이크 소스를 제하고라도 이안의 손에 들려있던 고기 자체가 특별한 고기였으니 말이다.
-특급 스테이크용 고기
-분류 : 고기
-등급 : S++
-뛰어난 요리사에 의해 숙성된 부드러운 스테이크용 고기입니다.
-북부 대륙의 고급 향신료를 사용하여 고기의 잡내가 99% 제거되었습니다.
-적당한 굽기로 구워진다면, 최상급의 스테이크가 완성될 것입니다.
과장을 살짝 섞어 말하자면 이안이 불판에 지금 올려놓은 고기는 반쯤 태워 먹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고기였던 것.
‘흐흐, 맛있겠다!’
때문에 사실 이안의 마지막 제안은 거의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의 사기극이었다.
다만 이안의 양심에 가책을 조금 덜어 주는(?) 것은, 이안의 목적이 내기에서 이기는 것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결국 진정한 불의 신수를 가리는 대결의 승자는 두 녀석 중 한 놈이 될 것이다.
이안의 목적은 녀석들의 인정을 받는 것뿐이었으니까.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치이이익-!
용암으로 새빨갛게 달궈진 커다란 돌판에 놓인, 먹음직스런 이안의 고깃덩이.
한번 뒤집어 노릇노릇하게 익은 고기의 윗면을 응시하며 이안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상 구워진 고기의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이 첫 번째로 뒤집는 시점이었는데, 노릇하게 익은 스테이크의 표면을 보니 이미 절반 정도는 성공한 듯했으니 말이었다.
-적당한 익힘 수준에서 고기를 뒤집었습니다.
-육즙의 ‘풍미’가 +3만큼 강화됩니다.
-고기의 ‘식감’이 +5만큼 강화됩니다.
……후략…….
뿍뿍이의 등껍질만큼이나 두껍고 커다란 고깃덩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능숙하게 돌판에서 구워 내는 이안!
앞뒤로 고기를 원하는 만큼 익힌 이안은 자연스레 인벤토리에서 요리 칼을 꺼냈다.
‘하린이 없을 때 이걸 꺼낼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그러고는 번개 같은 솜씨로 스테이크를 썰어 내기 시작하였다.
슥- 스슥-!
치이이익-!
이안의 손놀림에 마치 큐브처럼 썰린 스테이크가 돌판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어서 거의 정육면체에 가까울 정도로 균등한 크기로 썰린 고기들이, 이안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기 시작하였다.
‘육즙은 단 한 방울도 흘려보낼 수 없지.’
강력한 화력으로 고기의 표면을 아름답게(?) 코팅하여 그 안에 육즙을 완벽히 가두는 것이야말로 고기 굽기의 정수.
이안은 마치 타이쿤 게임이라도 하듯 그 일련의 과정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이것은 하린이 봤다고 해도 분명 놀랐을 만한 광경이었다.
지금껏 이안은 카일란에서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서 요리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 고기를 구울 때야 하린의 등짝 스매싱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붓지만.
적어도 게임에서 이안이 요리할 일은 쉽게 생기지 않았으니까.
하린 덕분에 각종 호화 요리가 인벤토리에 쌓여 있는데, 굳이 요리라는 것을 해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좋아, 이쯤에서 소스 한 번 더 발라 주고.’
촤락-!
차르토와 유니콘의 눈치를 슬쩍 보던 이안은, 마지막으로 하린의 소스를 고기에 한 번 더 코팅시켰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안의 고기 굽기는 마무리되었다.
아직 고기가 완전하게 바싹 익은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의 취향에 더해 고객(?)의 입맛까지 고려한 완벽한 마무리를 한 것이다.
‘역시 고기는 미디엄 레어지.’
차르토와 유니콘 같은 야생동물들(?)이라면, 분명 웰던 보다는 레어의 식감을 좋아할 터.
완성된 큐브 스테이크를 확인한 이안은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대충 봐도 지금 눈앞에 놓인 이 고기는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비주얼이었으니 말이다.
-‘이안의 큐브 스테이크’가 완성되었습니다.
-요리 등급 : S+
-최초로 S+등급 이상의 요리에 성공하셨습니다!
-‘요리’ 숙련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후략…….
게다가 지금까지 신경 써 본 적도 없던 요리 스킬이 대폭 증가하자 이안은 무척 뿌듯한 기분이 되었다.
‘흐흐, 요리도 은근히 재밌잖아? 나중에 하린이한테 한번 배워 봐야겠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퀘스트의 결과와 관계없이 이 요리를 시식할 차르토와 유니콘의 반응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그전에 이 친구들, 고기를 어떻게 구웠는지나 한번 볼까?’
기분이 좋아진 이안은, 두 녀석을 슬쩍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후후, 다들 다 했나?”
“크, 크릉! 조금만 기다려라 인간, 거의 다 구웠다.”
“푸르릉! 느리긴! 역시 가장 빨리 고기를 구운 건 이 몸이로군.”
“유니콘, 너는 다 구운 거야?”
“푸릉! 당연하다. 이런 고기 따위를 굽는 데엔 10초면 충분하지.”
“……?”
유니콘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이 된 이안은 녀석이 구은 고기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야, 고기 상태가 왜 이래?”
“푸릉! 뭐가 말이냐, 인간?”
“아니, 얼마나 센 불로 구운 거야? 이거 다 타 버렸잖아!”
유니콘의 고기는 ‘구운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태운 것’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아 보였으니 말이었다.
물론 유니콘은 여전히 뻔뻔했지만 말이다.
“내 강력한 화염의 힘을 표현한 것뿐이다.”
“…….”
“진정한 불의 힘을 보여 준 것이지, 푸릉!”
“후우.”
이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속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유니콘의 고기 상태로 미루어 볼 때, 승부를 가르기가 생각보다 쉬울 것 같았으니 말이다.
‘차르토는 적어도 이것보단 잘 구웠겠지.’
하지만 이안이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크르릉! 나도 다 구웠다, 인간.”
“그래? 한번 볼까?”
유니콘의 스테이크가 까맣게 타 버린 숯 같은 비주얼이었다면, 차르토의 고기는 스테이크라기보다는 고기 반죽 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이었다.
‘고기가 이렇게 맛없게 생길 수도 있나?’
불판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거의 떡 반죽 같은 모양새가 되어 있었던 것.
심지어 이 와중에 당황스러운 것은 고기의 크기가 절반 이하로 작아졌다는 사실이었다.
“크기는 또 왜 이래?”
“크릉……! 간을 좀 봤을 뿐이다.”
“뭐라고?”
“맛있게 구워지는지 확인하느라 한입 먹었다.”
“…….”
이안은 또 한 번 고개를 저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맛은 있었고?”
“크, 크릉! 물론이다! 이 차르토 님이 구운 고기가 맛없을 리 없지!”
“후우우…….”
두 녀석에게 제공한 커다란 고깃덩이가 아까워질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어쩐다……. 그래도 발암 물질 같은 새까만 숯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떡의 손을 들어 줘야 하나?’
평소 선택장애와는 거리가 먼 이안임에도 쉽사리 결정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희대의 난제.
일단 선택을 보류한 이안은 두 녀석을 자신의 불판 앞으로 불러들였다.
“자, 친구들.”
“크릉, 표정이 왜 그러냐, 인간.”
“몰라서 묻냐?”
“푸르릉! 내 고기에 감명받은 것이냐?”
“…….”
그리고 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두 녀석에게 자신의 큐브 스테이크를 한 덩이씩 건네주었다.
“일단, 이것부터 한입씩 먹고 다시 얘기해 볼까?”
“……!”
“크, 크릉……! 이건……!”
이안의 스테이크를 건네받은 두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직 맛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코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진한 고기의 향기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참지 못하고 단숨에 고기를 집어삼킨 차르토는, 이윽고 황홀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생고기만 뜯어 먹던 야생의 호랑이(?)가 느끼기에 이안의 큐브 스테이크는 이 세상의 맛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띠링-!
-‘이안의 큐브 스테이크’를 건네주었습니다.
-‘차르토’와의 친밀도가 +10만큼 증가합니다!
“하, 하나만 더……!”
“응?”
“한 조각만 더 먹어도 되겠냐, 인간!”
이미 고기 굽기의 승부에는 관심도 없는 것인지, 아련한 표정으로 이안의 스테이크를 갈구하는 차르토!
그리고 그러한 반응은 유니콘 또한 다를 것이 없었다.
이미 스테이크를 한입 베어 먹은 유니콘의 두 눈이 완전히 풀려 있었으니 말이었다.
“푸, 푸릉……! 아무래도 난 그동안 헛산 것 같다, 친구들.”
“왜?”
“고기란 비리고 질긴, 맛없는 음식인 줄 알았는데…….”
“음……?”
“이런 맛이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그동안 풀만 뜯어 먹었다니…….”
“켁!”
이안의 혼이 담긴 큐브 스테이크는, 유니콘이 채식으로 살아온 과거를 반성하게 만들 정도의(?) 완벽한 맛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은 이 감동의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근원’ 퀘스트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그 타이밍이었으니 말이었다.
“자, 친구들, 이게 바로 불의 힘이라고. 인정하지?”
“크릉! 인정한다, 인간! 불을 이렇게까지 잘 다루다니……!”
“푸르릉! 나도 마찬가지다, 인간. 대단한 실력을 가졌군!”
운을 띄워 놓은 이안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본래 이 대결은 내가 아닌 너희 둘의 대결.”
“……!”
“그래도 먹을 수는 있는 고기를 구워 낸 차르토의 손을 들어 주도록 할게.”
이안은 이미 두 녀석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
때문에 이제 둘 중 누구라도 ‘불의 신수’가 된다면, 그것이 곧 ‘불의 신수’의 인정을 받게 되는 것.
“크릉, 정말이냐, 인간!”
“그래, 하지만 너희 둘 다 거기서 거기야.”
“…….”
“푸르릉……! 아쉽지만 승복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이안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불의 신수 ‘차르토’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불의 근원’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의 두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불과 바람의 근원을 찾아서(에픽)(연계)(히든)’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명성(초월)을 20만 만큼 획득하였습니다.
-‘불의 대리인’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바람의 대리인’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신족, ‘천상호리(天常狐狸)’종족과의 친밀도가 +3만큼 증가하였습니다.
……후략……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안의 시선을 사로잡는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눈앞에 떠올랐다.
-조건이 충족되어 숨겨져 있던 연계 퀘스트가 드러납니다.
-‘화염의 제왕(히든)(연계)’퀘스트를 수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의 양쪽 입꼬리가 스르륵 말려 올라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