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2화 2. 불의 신수 (3) >
* * *
차르토와 유니콘.
완전히 다른 외모를 가진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자존심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안은 그 ‘자존심’을 아주 교묘히 잘 건드렸다.
“왜 미적거리는 거야?”
“크, 크릉.”
“푸르릉!”
“설마, 용암 따위가 무서운 건 아니겠지?”
“크릉! 그럴 리가!”
“푸르릉……!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건 사실 불의 신수로서 기본적인 ‘소양’같은 거라고.”
“기본…… 소양?”
“그래. 아주 기본적인 소양.”
이안의 계획은 간단했다.
두 녀석의 자존심 대결을 이용해, 어부지리를 취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흐흐, 그림은 아주 완벽해. 저 바보들만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준다면……!’
그리고 이미 이안의 제안에 충분히 솔깃해 있던 두 녀석들은 엉거주춤 용암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크릉! 내가 저 허약한 말대가리보다야 용암 위에서 오래 버티겠지.’
‘푸릉! 내 홍염의 날개를 잘 이용하면, 멍청한 호랑이 녀석쯤은 이길 수 있을 거야.’
이안이 예상했던 대로, 상황이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좋았어. 그럼 이제 슬슬 선수를 대기시켜 보실까.’
녀석들의 뒷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실룩거리던 이안은 슬쩍 어딘가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안이 손짓한 방향으로부터,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었다.
“불용이, 아니, 라카도르……! 잘할 수 있겠지?”
“후후, 물론이다, 주인.”
소환수와 소환술사.
주종(主從)사기단이 선량한 몬스터들을 상대로 판을 깔기 시작하였다.
* * *
부글부글- 부글부글-.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아니, 사실 절대적인 시간 자체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제야 대결(?)이 시작된 지 정확히 5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용암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차르토와 유니콘에게 이 5분은 거의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불 내성이 없는 생명체라면 단숨에 녹아 없어질 근원의 용암.
이 시뻘건 용암이 가진 열기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성의 몬스터라 하더라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크,크릉……! 나에게 열기 따위는…….”
물에 빠진 것처럼 용암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는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와.
“……푸르……릉.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 네가 아무리 오래 버텨 봐야, 어차피 승리는 나의 것이니.”
끝까지 허세를 부리며 쉬지 않고 떠드는 한 마리의 유니콘.
이미 차르토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뻘뻘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능으로 꼼수(?)를 부리던 유니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고유 능력을 이용해 용암에 발굽만 닿을 듯 말듯 한 거리를 유지했으나, 일시적 마력 고갈로 더 이상 홍염의 날개를 펼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둘 모두 아직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이제 누가 봐도 입을 놀리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상황.
그런 그들을 보며, 이안은 슬슬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흐음, 좋아. 지금이야.’
탁-!
이안이 손가락을 퉁기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두 몬스터들이 아웅다웅하는 용암의 강 위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까맣게 드리워졌다.
그리고 갑작스런 거구의 등장에, 차르토와 유니콘은 잠시 말싸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크릉! 저놈은 또 뭐냐!”
“푸르릉! 나도 처음 보는 놈이다.”
용암에 반사된 붉은 빛깔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는 선홍빛의 비늘들.
흉악스런(?) 외모를 가진 드래곤의 등장은 차르토와 유니콘도 긴장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크릉……!”
“푸릉?”
긴장한 눈빛으로 드래곤을 응시하던 차르토와 유니콘은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드래곤 녀석이, 처음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행동을 보여 줬으니 말이었다.
풍덩-!
허공에서 커다란 날개를 쫙 펼치더니, 그대로 차르토와 유니콘의 옆에 입수(?)해 버린 것.
콰아아아아-!
부글부글!
심지어 이어진 녀석의 대사는 더욱더 가관이라 할 수 있었다.
“어, 시원……하다!”
마치 사우나의 온탕에 몸을 담그는 동네 아저씨처럼, 아예 용암 안에 거구를 푹 담가 버리는 녀석.
녀석을 본 차르토와 유니콘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불의 신수 후보(?)인 그들조차 견디기 힘든 이 열기를,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존재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 말이었다.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고 있었지만, 사실 차르토든 유니콘이든 저렇게 몸을 푹 담글 자신은 없었던 것.
“크, 크르릉!”
“푸르르릉!”
당황한 두 몬스터는 용암 위에서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였다.
이대로 대결이 더 이어진다면, 둘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테니 말이었다.
‘크릉! 일단 이건 아니다.’
‘우선 휴전이다. 푸릉!’
만약 이안이 뜬금없이 저 녀석의 손을 들어 준다면, 차르토와 유니콘은 두 눈 시퍼렇게 뜬 채로 코 베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크릉, 등이 가려워서 잠깐.”
“푸르릉! 나도 발굽에 뭐가 낀 것 같은데…….”
녀석들은 동시에 어이없는 핑계를 대며 용암의 강에서 빠져나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안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강한 녀석들이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대는 이 상황 자체가, 무척이나 재밌었던 것이다.
물론 재밌는 것과 별개로,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어쨌든 두 녀석이 이안이 설계해 놓은 첫 번째 덫은 피해간 것이었으니까.
‘흐흐, 그래도 완전 바보들은 아니라는 말이지?’
하지만 그 아쉬움도 잠시뿐, 이안의 표정은 더욱 음흉해졌다.
어차피 첫 번째로 깔아 놓은 덫에 바로 걸려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직까지 차르토와 유니콘은 이안의 손바닥에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러면 승부를 가를 수가 없잖아?”
짐짓 너스레를 떨며, 두 몬스터를 향해 다가가는 이안.
그런 그를 보며 조금 찔린 표정이 된 둘은, 우물거리며 궁색한 변명을 시작하였다.
“그, 그래? 우리가 동시에 나왔나?”
“푸릉. 그렇지만 절대로 뜨거워서 나온 건 아니다. 푸릉!”
“이 녀석 말이 맞다. 크릉. 단지 등이 가려웠던 것일 뿐이야.”
그리고 둘의 이야기를 듣던 이안이 슬쩍 용암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불용이를 응시하였다.
물론 불용이와는 초면인 것처럼 연기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흐음, 너희 설마. 저 친구보다 화염의 힘이 부족한 것은 아니겠지?”
“크릉! 그, 그럴 리가!”
“푸르릉!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무리 봐도 저 친구가, 너희들보다 훨씬 더 열기에 강한 것 같은데…….”
“아니다! 등이 가려워서 어쩔 수 없었다! 억울하다, 크릉!”
“나, 나도 발굽이……! 푸르릉!”
이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둘을 번갈아 응시하였다.
그러자 양심에 찔린 차르토와 유니콘은 이안의 눈빛을 슬금슬금 피할 수밖에 없었고, 이안은 두 녀석과의 대화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좋아. 그럼 그 거짓말…… 이번 한 번만 믿어 주도록 하지.”
“크르릉!”
물론 약간의 반발도 있긴 하였지만.
“푸릉! 거짓말을 믿어 주다니! 거짓이 아니라 진짜다, 인간!”
이안의 한마디에 그대로 제압되었고 말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다시 용암에 한번 들어가 볼까?”
“푸, 푸릉! 그게 아니고……!”
이어서 불용이를 향해 슬쩍 눈을 찡긋한 이안은 슬슬 다음 계획을 위한 떡밥을 깔기 시작하였다.
“어쨌든 첫 번째 대결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으니, 다음 대결을 해야겠지.”
“크릉, 그렇다!”
“이번에야말로……! 푸르릉!”
“이번엔 정말 정당한 승부를 해야 할 거야.”
“무, 물론이다!”
“크르릉! 당연하다, 인간!”
둘 앞에서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하였고, 차르토와 유니콘은 가만히 이안을 기다렸다.
약점을 잡혀서인지, 처음과 달리 순한 양이 된 두 몬스터들.
그런 그들 앞에 이안이 꺼내 든 것은 또 한 번 둘의 예상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자, 이번에는 승부를 가려 보자고, 친구들.”
척-!
뿍뿍이 등껍질만큼 거대한 생고기를, 한 덩이씩 꺼내어 둘의 앞에 투척한 것이다.
“이, 이건 웬 고기냐, 인간……!”
“푸릉……!”
그리고 당황하는 두 몬스터들을 향해, 이안이 씨익 웃으며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불의 신수라면, 그 누구보다 불을 잘 다뤄야겠지.”
“푸릉! 당연한 말씀!”
“이번 대결은 바로 그거야.”
“크릉! 그게 무슨 말이냐, 인간!”
“지금 내가 한 덩이씩 건네준 이 고기.”
“……!”
“이 고기를 가장 맛있게 굽는 이가, 이 대결에서 승리하는 거다.”
“크르릉……?”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에, 잠시 당황한 두 몬스터들.
하지만 머뭇거림도 잠시 뿐, 두 녀석들은 질세라 투레질을 하며 이안의 제안에 동의하였다.
이안의 말이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했거니와, 적어도 용암에서 버티는 것보다 훨씬 더 쉬워 보이는 내기였으니 말이다.
“좋다……! 이 차르토 님의 실력을 보여 주도록 하지.”
“푸릉! 나야말로!”
이어서 그런 그들을 향해, 이안이 기다렸다는 듯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이번 대결엔, 나도 함께하겠어.”
“……!”
“그게 무슨……!”
“설마, 불의 신수가 될 친구들이 나보다 불을 못 다루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렇게, 시뻘건 용암이 끓어오르는 근원의 화산 한복판에서, 진정한 불의 근원의 주인을 가릴, 최후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 * *
치이익- 부글부글-!
화르륵-!
근원의 화산 한복판의 작은 공터.
온통 시뻘건 불길로 가득한 이 흉악스런 대지에서, 웃지 못 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덩치가 산만 한 호랑이 한 마리와 유니콘 한 마리가, 각각 쪼그려 앉은 채 진지한 표정으로 고깃덩이를 굽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앉아, 그에 못지않게 열심히 고기를 굽는 중인 이안!
‘후후, 그동안 등짝 스매싱을 맞아 가며 갈고닦은 실력을…… 드디어 뽐낼 때가 왔군.’
물론 이안은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유일하게 자신 있어 하는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고기 굽기였다.
하린의 까탈스러운 입맛에 맞추기 위해, 오랜 시간 강제로 갈고 닦인(?) 것이 바로 이안의 고기 굽는 실력이었으니 말이다.
‘짜식들,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가 뭔지 보여 주도록 하지.’
사실 이안이 고기 굽기 대결을 시작한 데에는 제법 고차원적인 설계가 들어가 있었다.
단순히 두 몬스터들을 상대로 대결에서 이겨, 불의 근원을 꿀꺽할 생각으로 접근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녀석들의 AI가 바보 같다고 해도, 이 고기 굽기 대결에 승복해서 순순히 ‘불의 근원’을 넘겨줄 리는 없었으니까.
다만 이안이 착안한 것은 아주 원론적인 퀘스트의 내용이었다.
‘어쨌든 불의 신수의 인정을 받으면 되는 거잖아?’
이안의 입장에선 사실, 차르토와 유니콘 중 누가 대결에서 이겨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근원을 얻고 불의 신수가 결정된다고 해도, 아이템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하르가의 케이스를 통해 확인했으니 말이다.
해서 이안이 처음부터 노렸던 것은, 두 몬스터의 인정을 미리 전부 얻어 내는 것.
이 고기 굽기 대결의 목적은 처음부터 그것이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대결에서 이겼다고 근원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두 놈 모두 반발하겠지. 하지만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주면서 내 고기의 맛을 보여 준다면…… 얘기는 다를 수밖에 없을 거야.’
일단 카일란의 시스템상, 맛있는 음식을 먹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NPC와의 친밀도를 올리는 데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거기에 이안의 이런 교묘한 설계가 들어간다면, 충분히 평화적인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두 놈 모두 감복할 만한 최고의 고기를 구워내야겠지만…….’
화르륵-!
빨갛게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올린 이안이, 두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맛있는 고기를 구워 내기 위해선, 두툼한 고깃살 안에 육즙을 가둬 놓는 것이 생명!
치이이익-!
깔끔하게 고기를 뒤집은 이안은 두 녀석 몰래 인벤토리를 슬쩍 열었다.
이어서 이안이 꺼내 든 것은…….
띠링-!
-‘요리사 하린의 특제 스테이크 소스’ 아이템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대결에 종지부를 찍어 줄, 비장의 한 수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