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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41화 (943/1,027)

< 941화 2. 불의 신수 (2) >

* * *

퍼펑!

화르륵-!

새까맣게 그을린 대지 곳곳에서, 낮은 폭발음과 함께 새빨간 용암이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그 타오르는 용암 사이로 이안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후우, 침착하자. 상황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해.’

처음 이 ‘근원의 화산’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안은 싱글벙글했다.

하르가 덕분에 너무 쉽게 두 번째 목적지까지 도달하였고, 거기에 차르토라는 녀석은 하르가의 친구라고 했으니.

어떻게 잘 비벼 보면, 퀘스트 완료까지 뚝딱 가능할 것이라 기대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런 이안에게 지금 새로이 등장한 미지의 존재는 퀘스트 순항을 막는 암초 같은 존재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멀리서 대충 봐도 차르토와 비견될 만큼 강력해 보이는 데다, 둘 사이의 분위기까지 심상치 않아 보였으니.

이안이 생각했던 구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퀘스트가 흘러가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사랑의 숲에서 봤던 유니콘이랑 엄청 비슷한 생김새인데…… 등에 갈기가 타오르는 불길처럼 생겼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그래서 이안은 생각했던 계획을 전면 보류하였다.

원래는 차르토에게 다가가, 하르가를 팔며 친밀도를 올려 볼 생각이었는데.

일단 두 몬스터가 대치하는 상황부터 면밀히 파악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둘의 지척까지 이동한 이안.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둘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이안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저건……?’

이안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차르토도 아니고 유니콘도 아닌, 둘의 사이에 있는 반짝이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뭐야, 저게 왜 저기 있어?’

당연히 하르토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불의 근원이, 두 몬스터의 사이에 떡하니 놓여있던 것.

알고 보니 차르토와 유니콘이, 근원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뿍, 저거 주인이 찾던 거 아니냐뿍.”

낮은 목소리로 묻는 뿍뿍이를 향해, 이안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맞아. 저것만 있으면 돼.”

아무 생각 없이 따라다니는 줄 알았던 뿍뿍이가 퀘스트 내용까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안으로선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감격은 1초 만에 파괴되었지만 말이었다.

“그럼 저걸 내가 가져오겠뿍.”

“응?”

“몰래 가서 들고 오면 되는 것 아니냐뿍.”

“네가? 몰래?”

“저거 가져오면 미트볼이랑 바꿔줄 거 아니냐뿍.”

“하…….”

뿍뿍이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은 단지 미트볼과 바꿔먹을 만한 ‘교환물’이었던 것.

역시나 뿍뿍이에겐 별다른 생각이 없었음을 다시 확실하게 확인한 이안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뿍뿍거리면서 저기 가면 쟤들이 모를 것 같아?”

“모를 수도 있뿍.”

“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야?”

“쟤들 지금 싸우느라 정신 없잖뿍.”

“음……? 싸운다고?”

“자세히 봐라뿍. 미트볼도 아닌 저런 쓸모없는 구슬가지고…… 대체 왜 싸우는지 모르겠뿍.”

뿍뿍이와 대화를 나누던 이안은 눈에 이채를 띤 채 다시 차르토와 유니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불의 근원을 사이에 두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정도만 인지했었지, 둘이 싸우는 중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뭐 하는지나 구체적으로 좀 들어 볼까?’

이어서 뿍뿍이를 들쳐 멘 이안은 조금 더 두 몬스터와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였다.

둘의 떠드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좀 더 가깝게 이동할 필요가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일정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안의 귓전에 두 몬스터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 * *

“크릉, 허약한 조랑말 따위가 불의 근원을 탐내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푸릉- 푸르릉! 무식한 호랑말코 같은 녀석. 네놈이야말로 건방지구나!”

“뭣이?”

“나야말로 순결한 불의 힘을 이어받은 진정한 불의 신수! 푸르릉!”

“크르렁!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식하게 힘만 센 네놈보다는 내가 훨씬 더 고귀한 혈통이란 말이다!”

“웃기는 소리! 강력한 힘이야말로 뜨거운 화염의 상징이지. 크르르릉!”

차르토와 유니콘의 대화.

그것은 제법 흥미진진한 것이었다.

대화를 듣기 시작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모든 상황이 파악될 정도로 단순했지만.

그 상황 자체가 무척이나 재밌었으니 말이었다.

‘그러니까…… 저 불의 근원이라는 게, 불의 신수로 인정받기 위한 매개체 역할도 하는 거였네.’

차르토와 유니콘 정확히는 ‘인페르널 유니콘’이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

두 몬스터는 전부, 하르가와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녀석들이었다.

다만 같은 속성 안에 견줄 만한 경쟁자가 없던 하르가와 달리, 차르토와 인페르널 유니콘은 강력한 라이벌(?)이었고.

그 때문에 아직 둘 중 누구도 불의 근원을 손에 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르가에게는 바람의 신수라는 수식어가 확실히 있었는데, 저 둘한테는 없잖아?’

-차르토(전설)/Lv 175(초월)

-인페르널 유니콘(전설)/Lv 180(초월)

초월 레벨 자체는 이 둘이 오히려 하르가보다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르가가 가지고 있던 수식어는 확실히 갖지 못했던 것.

그리고 여기까지 파악한 이안은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하르가가 왜 그렇게 쉽게 바람의 근원을 줬나 했더니, 어차피 한번 신수가 되고 나면 필요 없는 아이템이었나 보네.’

물론 아직까지 전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은 있었다.

신수가 되어도 불의 근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안이 생각할 때 하르토와 유니콘이 싸울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둘이서 한 번씩 근원의 힘을 빌려, 신수의 수식어를 사이좋게 얻으면 될 테니까.

‘뭔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이유는 이안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차르토가 신수가 되든 유니콘이 신수가 되든.

아니면 둘 다 신수가 되지 못하든.

그건 이안이 알 바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금 이안에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잘 활용해서 저 불의 근원을 꿀꺽 하는 것뿐이었다.

‘어쨌든 좋았어. 저 둘만 잘 구슬리면, 큰 출혈 없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겠군.’

물론 지금 바로 모든 소환수를 다 소환하여, 저 두 녀석들과 싸워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었다.

초월 170~180이라는 레벨은 분명 부담스러운 수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켄로의 기계 드래곤보다 더 강력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싸움을 거는 것은 이안이 생각할 때 아무리 봐도 하책(下策)이었다.

피켄로와 싸웠을 때처럼 대지의 성물 버프를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숲지기인 청랑이라는 존재도 무척이나 거슬렸으니 말이다.

그에 더해 결정적으로 무력을 동원하는 것은, 평화적인 해결책에 실패했을 때 꺼내 들어도 늦지 않을 카드라고 할 수 있었다.

‘가능하면 차르토와도 최대한 친밀도를 쌓아야겠어. 퀘스트를 다 클리어한 뒤에 시간이 남는다면, 차르토와 하르가에게 할리를 진화시킬 수 있는 단서를 얻어 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차르토와 유니콘은 계속해서 으르렁거리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크릉! 그런 둔탁하게 생긴 발굽으로 뜨거운 화염을 표현할 수 있겠어?”

“푸르르릉! 바보 같은 소리! 내 등에 타오르는 이 아름다운 화염의 갈기가 안 보이나 보지?”

콰르릉-!

“이 폭발의 발톱 한 방이면, 훨씬 더 강렬한 화염을 피워 낼 수 있다고.”

화르르륵-!

“푸릉, 푸릉! 그래 봐야 이 홍염의 날개보다 아름답진 않은걸?”

두 녀석의 대화를 듣던 이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로 지 잘났다고 떠들고 있기는 하지만, 이안이 볼 때에는 뿍뿍이보다 딱히 나을 것 없는 수준의 대화였으니 말이었다.

그 때문에 이안은 한 번 더 생각을 바꾸었다.

일단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슬쩍 접근하려 했었는데, 이대로라면 도무지 답이 보이질 않았으니 말이다.

‘이건, 끝날 수가 없는 대화야.’

하여 이안은 직접 두 바보들을 중재하기로 하였다.

“흣차-!”

“주인, 어디 가냐뿍.”

“저 바보들이랑 얘기 좀 하러.”

“뿌뿍?”

일단 생각을 정한 이안은 망설임 없이 녀석들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안이 다가오자, 두 녀석의 시선은 자동으로 이안을 향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뿍- 뿌뿍- 뿍-!

뿍뿍이의 발소리에서 들리는 존재감은 둘의 싸움을 멈추게 할 정도였던 것이다.

“크르릉- 네놈은 뭐냐?”

“푸르릉! 처음 보는 인간이다.”

이안은 워낙 당당하게 둘의 앞까지 걸음을 옮겼고, 때문에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작은 인간이 겁도 없이 다가왔으니, 어이없는 게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차르토와 유니콘의 당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 너희 둘. 설마, 이 불의 근원을 놓고 싸우고 있었던 거야?”

“……!”

“인간, 어떻게 불의 근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지?”

갑자기 등장한 작은 인간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 내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딱 보면 알지.”

“크르릉?”

“푸릉? 그게 무슨 말이냐!”

“너희 둘, 불의 신수가 되고 싶은 거잖아.”

“……!”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점점 이안의 화법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는 차르토와 유니콘.

“둘 중에 불의 신수로 누가 더 적합한지. 그걸 가리고 있었던 것 아냐?”

“크릉! 맞다, 인간!”

“푸르릉! 인간 주제에 제법 똑똑하군.”

그리고 이 순간 이안은 확신하였다.

‘후후, 귀여운 녀석들.’

두 녀석 모두 이미 절반 정도는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볼 때 둘 다 강력한 불의 힘을 가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확실히 우열은 가려야겠지?”

“크르르릉! 물론이다! 내 강력한 폭발의 발톱이라면, 저런 허약한 유니콘 정도는 단번에 제압할 수 있으니까.”

“푸릉! 인간이 옳은 말을 하는군. 저런 멍청한 호랑이 따위에게, 불의 신수 자리를 내줄 수는 없지.”

이야기를 들던 이안은 한 차례 씨익 웃으며 둘을 번갈아 응시하였다.

‘이제 판은 깔린 것 같고……?’

이어서 슬슬, 준비해 뒀던 떡밥을 천천히 풀기 시작하였다.

“좋아, 그럼 내가 도와주도록 할게.”

“도와준다고? 크릉?”

“푸릉! 인간 주제에 무슨 수로 우릴 돕겠다는 거냐.”

“내가 둘 중에 더 화염의 신수에 적합한 존재를, 판별해 주면 되는 것 아냐?”

“크르릉!?”

“물론 아주 객관적이고 깔끔한 방법으로 우열을 가려 줄게.”

“푸르릉? 그런 방법이 있다고?”

“크릉! 이거 흥미가 동하는군.”

두 몬스터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확인한 이안은, 히죽 웃으며 잠시 뜸을 들였다.

이미 녀석들은 완벽히 페이스에 말려들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무릇 화염의 신수라면, 뜨거운 화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법.”

“당연하다! 크르릉!”

“맞는 말을 하는군, 인간.”

“그래서 내 첫 번째 시험은 이거야.”

“푸르릉?”

이안은 두 몬스터의 뒤쪽으로 흐르는 용암의 강을 가리키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화염의 신수라면, 저 용암의 열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푸, 푸릉?”

“크르릉! 당연하다!”

이안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둘 다 저 용암 위로 올라가.”

“……?”

“저기에서 더 오래 버티는 친구에게, 우선 10점을 주도록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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