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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40화 (942/1,027)

< 940화 2. 불의 신수 >

일이 너무 쉽게 풀리면, 오히려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 이안의 상황이 딱 그런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야 신수의 인정을 받기 위한 퀘스트가 시작될 것이라 여겼는데, 본론을 꺼내는 순간 곧바로 퀘스트가 완료되어 버렸으니 말이었다.

‘정말 이렇게 바람의 근원을 준다고?’

물론 미친 듯이 달리는 하르가를 쫓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난이도는 아니었다.

아무리 이안이라 하더라도, 할리의 고유 능력 ‘바람의 수호자’가 없었더라면, 훨씬 더 어려움을 겪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척이나 수월하게 클리어된 것 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지만 두 번, 세 번, 퀘스트 창을 확인해 봐도,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 란의 ‘바람의 근원’이라는 텍스트는, 확실히 초록빛으로 반짝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거 벌들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이안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인벤토리까지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의 최상단에는 ‘바람의 근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황금빛 구슬이 떡하니 반짝이고 있었다.

<바람의 근원>

-등급 : 알 수 없음

-분류 : 잡화

-‘바람’ 속성의 근원이 담긴, 속성의 결정체입니다.

완전무결하며 가장 순수한 바람의 힘을 가진, 바람의 근원입니다.

*‘바람의 권능’을 담고 있는 아이템입니다.

‘바람’속성 안에서 태어난 모든 존재들에게, ‘권능의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봉인)

아이템 창까지 확인한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르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더 이상 의심하는 건, 친구(?)인 하르가에게 실례되는 일이었으니 말이었다.

“고마워 하르가, 덕분에 한시름 덜었어.”

“크릉! 이 정도쯤이야.”

그리고 목적을 달성한 이안은 곧바로 ‘시간’부터 확인하였다.

바람의 근원을 쉽게 얻었다 해서 아직 퀘스트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만약 불의 근원을 찾는 것이 예상보다 훨씬 어렵다면 여기서 아낀 시간을 전부 다 까먹을 가능성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남은 제한 시간 : 225분 52초

‘거의 4시간이 통으로 남긴 했네.’

시간을 확인한 이안이 다음으로 한 것은 미니 맵상 불의 근원이 위치한 좌표.

이동 시간을 고려하여 실제 퀘스트 수행이 가능한 시간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려는 것이었다.

다행히 불의 근원은 하르가처럼 좌표 변동이 심하지 않았고, 때문에 이동 시간을 고려하는 것은 충분히 유의미한 계산이었다.

‘무슨 기상천외한 요구 조건이 튀어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간은 넉넉해 보이고…….’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안은 하르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불의 근원에 대해 혹시 아는 것이 있는지, 정보 수집을 위해서 말이다.

작은 정보 하나라도 제대로 활용한다면, 퀘스트 시간 단축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었다.

“난 이제 불의 근원을 찾아야 해, 하르가.”

“크르릉! 내 친구라면 그 정돈 어렵지 않을 거다. 크릉!”

“그래서 말인데…….”

“크릉?”

“혹시 불의 신수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 하르가?”

“크르릉…….”

이안의 말을 들은 하르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크르렁거렸다.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별다른 정보를 알지 못하는 듯 하였다.

‘흠, 신수끼리 어떤 연관성이 있진 않은 건가?’

하지만 이안은 실망하지 않고, 곧바로 다음 질문을 건네었다.

미리 두 번째 질문까지 생각해 뒀던 것이다.

신수에 대해 직접적인 정보를 줄 수 없다면, 알고 있는 좌표 정보를 이용해서 다른 방향으로 정보를 얻어 내려는 것.

“혹시 그럼 하르가.”

“크르릉?”

물론 NPC나 다름없는 하르가에게 좌표를 직접적으로 이해시킬 수는 없었지만, 맵의 지형과 지명을 통해 설명할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저쪽에 흐르는 근원의 강을 따라서, 숲 남서쪽 끝까지 가 본 적 있어?”

그리고 이러한 이안의 시도는 정확히 먹혀 들어갔다.

이안의 말이 떨어진 순간, 하르가의 자랑 아닌 자랑이 줄줄이 이어진 것이다.

“크릉! 당연히 가 본 적 있다.”

“그래?”

“근원의 숲에서 이 하르가 님의 발이 닿지 못한 곳은 없으니까. 크릉!”

마치 무용담을 늘어놓듯, 자신의 경험담을 아낌없이 털어놓는 하르가!

“그래서 저쪽 능선을 넘어가면…… 크릉!”

“오호……?”

“그렇게 근원의 강 남쪽은, ‘끓어오르는 강’으로 이어져 있지.”

“끓어오르는 강?”

“크르릉! 동남쪽 용암지대와 이어진 강이야.”

NPC에게 리액션과 추임새를 넣어 주는 것은 또 이안의 전문 분야였기 때문에, 하르가는 더욱 신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엄청 뜨거운가 봐?”

“당연하지. 근처에만 가도 살갗이 전부 다 익어 버릴걸?”

“거길 대체 어떻게 넘은 거야?”

“크릉……! 강가에는 발도 대지 않았어, 나는.”

“그럼?”

“불어오는 바람을 밟고, 한 번에 뛰어 넘어 버렸지.”

“오오……!”

“아마 나 말고는 누구도 그런 식으로 넘을 수 없을 거야. 끓어오르는 강은 엄청 넓은 강이거든.”

“역시, 넌 엄청난 친구야!”

단점이라면 과도한(?) 리액션 덕분에, 하르가의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까지 강제로 듣게 되었다는 정도.

그 때문에 이안은 신나서 이야기하는 하르가의 말을 결국 끊을 수밖에 없었다.

“여튼, 그러니까…… 내가 말한 위치로 가면 ‘근원의 화산’이라는 곳이 나온다는 말이지?”

“크르릉! 그렇지.”

“그곳에는 네 친구, ‘차르토’가 살고 있고?”

“크르르릉! 맞아.”

물론 하르가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추켜세워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마워, 하르가. 덕분에 또 엄청난 정보를 얻었어.”

“크릉, 크릉!”

“네 친구를 찾으면, 꼭 네 얘기를 전해 줄게.”

“크르릉! 나랑 달리 성질 더러운 놈이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겨우(?) 하르가와의 대화를 마무리한 이안은 빠르게 ‘불의 근원’을 찾아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하르가와의 대화로 또 20~30분이나 날려먹었으니,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안은 무척이나 흡족하였다.

‘흐흐, 그래도 괜찮은 정보를 많이 얻었네.’

불의 신수로 가장 유력한, ‘차르토’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차르토라는 녀석만 잘 구슬리면, 퀘스트를 엄청 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겠어.’

순식간에 불의 근원까지 손에 넣고, 깔끔하게 퀘스트를 클리어 할 생각에 부푼 이안!

하지만 이 순간까지만 해도, 이안은 알 수 없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불의 근원을 얻기 위한 첫 단추가, 어쩌면 잘못 끼워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었다.

* * *

근원의 숲은 무척이나 넓고 복잡했다.

하지만 하르가에게 얻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아둔 이안은 그리 어렵지 않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띠링-!

-근원의 숲, ‘용암지대’에 도착하였습니다.

-숨 막히는 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화염 속성의 저항력이 –20만큼 감소합니다.

-지금부터 매 초당, 0만큼의 화염 속성 피해를 입습니다.

‘끓어오르는 강’을 지나 용암지대까지 도달하는 데, 이안이 소요한 시간은 고작 30여 분 정도.

이것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빠른 진척이었던 것이다.

‘저항력 감소라…… 뭐, 이 정도는 예상했던 수준이고.’

사실 여기까지 내려오는 데에, 아무런 난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강’을 뛰어넘는 것은 하르가의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었다.

할리의 도약력으로도 한 번에 넘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 광활한 넓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게다가 남부 협곡부터는 아예 맵 자체에 ‘비행 금지’ 옵션까지 걸려 있었으니, 충분히 난감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용암셋이 없었더라면, 다시 하르가를 찾아가야 할 뻔했지.’

그 때문에 이안은 끓어오르는 강을 뛰어넘는 대신, 강을 따라 더 남쪽까지 이동하였다.

아예 끓어오르는 강이 ‘용암의 강’으로 바뀔 때까지 이동하여, 할리를 소환 해제한 뒤 용암을 밟고 강을 건너 버린 것이다.

용암의 장화가 아니었더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법.

뭔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게임이기에 가능한 공략법이라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차르토라는 녀석을…… 한번 찾아볼까?”

여하튼 원하는 위치까지 도착한 이안은 다시 미니 맵을 열어 붉은 점의 위치를 확인해 보았다.

하르가 때만큼은 아니지만 좌표는 조금씩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었고, 때문에 지속적으로 미니 맵을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띠링-!

-‘근원의 화산’에 도달하였습니다.

-용암의 열기가 더욱 강해집니다.

-화염 속성의 저항력이 –15 만큼 추가로 감소합니다.

-지금부터 매 초당, 0만큼의 화염 속성 피해를 입습니다.

맵의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면서 열기는 더욱 강해졌지만, 이안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어지간한 화염 속성 공격 마법까지도 다 씹어 먹을 수 있는 저항력의 소유자인 이안에게, 이 정도 열기는 간지러운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용암 세트 이거, 엄청 유용하게 잘 써먹네, 정말.’

그리고 그렇게 근원의 화산에 도착한 뒤, 15분 정도를 더 움직였을까?

이안은 곧, 미니 맵상에 표기된 ‘불의 근원’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온통 시뻘건 열기와 불길로 도배된 맵을 지나, 용암이 펄펄 끓어오르는 화산의 ‘분화구’에까지 도착한 것이다.

‘자, 지도상으론 이 근방이 분명한데……!’

이어서 분화구의 가장 높은 지대로 올라간 이안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차르토’를 찾기 시작하였다.

미니 맵상에서 붉은 점이 표기되기는 하였지만 완전히 정확한 좌표까지 명시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맵 상에 붉은 점으로 표기된 범위 속에서, 차르토를 찾아내는 것은 이안의 몫인 것.

이안은 용암으로 인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뚫고, 붉은 털갈기의 호랑이를 열심히 찾기 시작하였다.

‘아오, 눈알 빠지겠네. 대체 이 호랭이는 어디 있는 거야?’

몬스터 탐색 스킬까지 동원해 가며, 차르토의 위치를 찾는 이안.

그리고 잠시 후, 이안의 시야에, 드디어 원하던 실루엣을 가진 몬스터가 포착되었다.

‘……!’

연붉은 빛깔의 털갈기에 핏빛 줄무늬가 그려진 거대한 호랑이.

‘차르토’임이 분명한 존재가, 이안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찾았다!”

이제 고지가 다왔다는 생각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는 이안.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내달리려던 이안은, 순간 다시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발견함과 동시에, 이안의 시야에 하나의 존재가 더 포착되었으니 말이다.

‘저……놈은 또 뭐지?’

정확히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차르토를 마주보며 대치 중인 또 하나의 실루엣.

마치 ‘유니콘’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미지의 존재를 발견한 이안은 긴장한 채로 천천히 그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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