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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39화 (941/1,027)

< 939화 1. 불과 바람의 권능 (3) >

* * *

기사 대전이 끝난 이후, 한동안 카일란의 팬들은 그 여운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모든 카일란 유저들이 함께 즐긴 첫 번째 콘텐츠였으며, 동시에 전 세계 랭커들의 실력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었던 최고의 볼거리였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기사 대전의 여운이 강렬한 것과 별개로, 중간계에 진입한 중상위권 유저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이슈가 빠르게 커뮤니티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계 대전쟁.

사실상 중간계가 열린 후 처음 발생한, 인간 진영과 마족 진영의 새로운 전쟁 콘텐츠였다.

-정령계와 기계문명의 전쟁이라니…….

-기계 대전쟁이라는 이름만 봐도, 꿀 같은 공헌도 냄새가 진동하는데요?

-이거 아무나 참전할 수 있는 건가요?

-전쟁소집령 메시지 받은 유저만 참전 가능한 듯요.

-소집령이라면…….

-인간 진영이시면 아마 정령계 쪽에서 소집령이 갔을 거고, 마족 진영이시면 라카토리움에서 소집령이 갔겠죠.

-어, 전 마족인데, 그런 메시지 전혀 못 받았는데요?

-중간계 진입은 하신 상태인거죠?

-그거야 당연하죠.

-그럼 아마 기계문명 공헌도가 낮아서 퀘가 안 뜬 듯한데…….

-헉, 저 명계 위주로 콘텐츠 깨고 있었는데, 그럼 어떡하죠? ㅠㅠ

-지금이라도 빨리 라카토리움 쪽 메인퀘 클리어하세요.

-이제 와서 가능할까요?

-네, 아마도요. 저는 인간 진영이라 정령계 쪽으로 플레이했는데…… 퀘스트 수령 컷이 그렇게 높진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현재 중간계에 몸담고 있는 상위권의 유저들은 대부분 지상계 시절의 인간계와 마계 전쟁 에피소드를 경험한 유저들이었다.

그 때문에 전쟁 에피소드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중간계에서 열린 이 전쟁 에피소드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기계 대전쟁’이라는 이름만 봐도 전쟁의 규모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했으며, 통합 서버인 ‘중간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스케일도 글로벌 스케일이었으니.

유저들의 기대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님들, 무턱대고 무조건 참전하는 게 이득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음? 그건 왜죠?

-지난 전쟁 에피소드를 경험해 본 바론, 패전 진영의 경우 그렇게 큰 메리트가 없었거든요.

-아, 그래요?

-그렇게 막 손해 볼 정돈 아니었는데, 그 시간 동안 다른 콘텐츠 하는게 이득인 수준?

-아하……?

-물론 승전 팀에 잘 버스 타면, 보상이 어마어마한 건 맞아요.

-그렇군요.

-그냥 참전 보상만 해도, 공헌도 같은 건 노가다 한 달 치 정도 그냥 들어올 테니까요.

-헉, 엄청나네요.

처음 전쟁과 관련된 글로벌 메시지가 뜬 뒤로 사흘 정도가 지나자, 커뮤니티는 온통 기계 대전쟁에 관련된 글들로 도배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아직 구체적인 보상이나 전쟁 일정 등이 알려진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간계에 진입한 유저 대부분이 정령계와 라카토리움에 구름처럼 몰려들 정도.

-흐흐, 보상이고 나발이고, 얼마 만에 전쟁 콘텐츠인데…… 무조건 참여해야죠.

-맞습니다. 원래 떼 싸움이 재밌는 법 아니겠습니까?

-흐음, 에피소드 스토리상 정령계가 엄청 불리해 보이는데, 그래도 참전하는 게 나으려나요?

-전 그래서 빠지려고요. 괜히 불리한 전쟁 참전했다가 데스 페널티 받으면…… 너무 손해가 막심하잖아요.

-전쟁 콘텐츠 데스 페널티는 기존 데스 페널티 절반 수준이라고 들었어요.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이렇게 몰려드는 유저들과는 별개로, 선두에서 관련 퀘스트를 하나둘 공략하며, 에피소드 자체를 조용히 이끌어 가는 일부 랭커들.

-‘라카토리움의 모병소(에픽)(연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정령 수호자의 부탁(에픽)(히든)’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마계 지원군 요청(에픽)(연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마왕 레카르도의 출정 명령(에픽)(히든)’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달의 수호자 셀릭(에픽)(히든)(연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후략…….

그들의 퀘스트가 하나하나 클리어될 때마다, 점점 개전일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온통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풍성한 털 갈기.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진, 백색의 줄무늬들.

황금빛의 신수를 발견한 이안은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색상도 다르고 외형적인 차이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이안의 눈앞에 등장한 이 ‘바람의 신수’라는 녀석은, 지금 이안이 타고 있던 할리와 너무도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뭐지? 할리칸의 일족인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뭔가 좀 더 덩치도 있고 멋진 느낌인데…….’

하지만 이안은 아직, 녀석의 정체를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녀석은 미친 듯한 속도로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으며, 이안을 태운 할리 또한 그를 쫓기 위해 계속해서 뛰고 있었으니 말이다.

‘와 씨, 뭐 저렇게 빨라? 비행 몬스터가 아닌데, 할리보다 빠를 수가 있다고?’

녀석을 쫓는 이안은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직선으로 달리는 할리와 달리, 녀석은 왜인지 지그재그로 숲을 누비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녀석은 이동 중에 신비로운 고유 능력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것의 비주얼은 정말 압권이라 할 수 있었다.

스하아아-!

마치 바람 속에 스며들어 허공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녀석은 순간적으로 속력을 가속하여, 잔영까지 남기며 움직이고 있었다.

‘바람의 신수라더니, 진짜 바람을 타고 움직이기라도 하는 건가.’

그리고 녀석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자, 이안은 재밌는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황금빛 털갈기 주변으로 맴돌고 있는 익숙한 이펙트.

그것은 지금 할리가 사용하고 있는 ‘바람의 수호자’의 이펙트와 완벽히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역시 할리랑 관련이 있는 녀석이었어.’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이안은 두 눈을 반짝였다.

바람의 권능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별개로 충분히 근거 있는 합리적 기대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할리와 같은 종족의 상위 개체가 존재했다니……! 잘하면 우리 할리도……!’

이안의 소환수 덱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 영웅 등급인 할리.

할리를 진화시킬 수 있는 단서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안은 점점 더 두근두근하기 시작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존재를 만남으로 인해, 온갖 망상(?)이 머릿속에 가득 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안이 기대감에 가득 부풀고 있던 바로 그 때.

“크릉! 거기 너, 인간!”

“응……?”

“크르릉! 나 좀 도와줘! 크허어엉!”

이안은 이번엔,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호랑이가 말을 하잖아?”

미친 듯이 숲을 뛰어다니던 녀석이, 순간 이안의 앞을 스쳐 지나가며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크허어엉-!”

하여 달리는 녀석의 옆에 바짝 붙은 이안은 신기한 표정이 되어 다시 입을 열었다.

말까지 할 줄 아는 녀석이라면, 뭔가 대화로 퀘스트를 풀어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뭘 도와달라는 건데? 아니, 그 전에 좀 멈추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하지만 말을 건 다음 순간, 이안은 묘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크허엉! 멈출 수가 없어!”

“……?”

“저 미친 벌들 좀 쫓아 줘!”

“엥?”

녀석과의 대화가, 이상한 전개로 흘러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크헝! 저것들 때문에 지금 엉덩이가 다 부어 버렸다고!”

그리고 호랑이의 말에 뒤를 슬쩍 돌아본 이안은 조금 더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이제야 이 바람의 신수라는 녀석이 미친 듯이 숲을 뛰어다니고 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뭐야, 신수라는 녀석이…… 벌에 쫓기고 있던 거였어?’

미친 듯이 숲을 달리는 호랑이와, 그 뒤를 맹렬히 쫓고 있는 한 무리의 벌 떼들.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저 벌들을 퇴치해야, 뭔가 퀘스트가 진행될 것 같았으니 말이었다.

“마이티 프로즌(Mighty Frozen)……!”

그리고 이안이 마법을 발동시킨 순간.

쩡-쩌저정-!

사방의 모든 것이 새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하였다.

* * *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바람의 신수 ‘하르가’와의 친밀도가 20만큼 증가합니다.

-바람의 신수 ‘하르가’를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명성(초월)이 5만 만큼 증가합니다!

……후략…….

이안의 눈앞에 떠오르는 일단의 시스템 메시지들.

그리고 메시지의 너머에 헥헥거리며 앉아 있는, ‘바람의 신수’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요상한 호랑이 녀석.

녀석과 눈이 마주친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우스꽝스런 첫인상과 다르게, 녀석의 스펙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바람의 신수 ‘하르가(전설)’/Lv 170(초월)

‘초월 170레벨이라니. 게다가 전설 등급이라…….’

하지만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과 별개로, 이안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생각했던 전개와 많이 다르긴 하지만, 퀘스트가 술술 풀려 가는 기분이었으니 말이었다.

‘친밀도도 20이나 증가했고, 어쨌든 녀석에게 도움을 준 상황이니…… 생각보다 바람의 권능을 쉽게 얻을 수도 있겠어.’

이안이 한 것은 고작(?) 벌을 쫓아낸 것에 불과했지만, 하르가는 그것을 무척이나 고마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릉. 덕분에 살았어, 친구.”

“우리…… 친구 된 거야?”

“크르릉! 당연하지! 저 못된 벌들을 퇴치해 줬으니, 이제부터 넌 내 친구야.”

“…….”

이안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 초월 레벨이나 전투력과는 별개로, 하르가에게 벌을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르가의 커다란 앞발로는 시야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작은 벌들을 공격하고 쫓아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전투 능력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던 것.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것이었으니, 이안은 하르가와의 친밀도를 더 높이기 위해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하르가.”

“크르릉?”

“벌들에겐 대체 왜 쫓기고 있었던 거야?”

“크릉! 아, 그게…….”

“음……?”

녀석과의 대화는 갈수록 산으로 가는 경향이 있었지만 말이었다.

“내가 녀석들의 꿀을 훔쳐 먹었거든.”

“뭐……?”

“다음에 너도 한번 맛볼래? 이 숲에 사는 황금벌들의 꿀은 정말 천상의 맛이거든.”

“그, 그렇구나…….”

“크르릉!”

그리고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이안은 슬슬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하르가의 대사를 놓치지 않고 캐치한 것이다.

“크릉, 그런데 친구. 너는 어쩌다 이 근원의 숲에 오게 된 거야?”

“그러니까 나는…….”

녀석을 쫓는 데만 해도 제법 많은 시간을 소모하였으니, 이제는 바람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청랑의 말에 의하면 신수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설마, 꿀을 찾아서 따오라거나 하는 이상한 걸 시키는 건 아니겠지?’

사차원 호랑이 덕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안.

하지만 그러한 이안의 고민은 결론적으로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서 날 쫓아왔던 거였구나!”

“으응, 그렇지.”

“크르릉! 그런 거라면 빨리 말하지 그랬어.”

“음……?”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바람의 신수 ‘하르가’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어……?’

“덕분에 살았는데, 바람의 근원 정도야 당연히 내줄 수 있지.”

“저, 정말?”

-‘바람의 근원’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불과 바람의 근원을 찾아서(에픽)(연계)(히든)’퀘스트의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치 가지고 있던 사탕을 나눠 주는 초등학생처럼.

하르가는 스스럼없이, 이안에게 바람의 근원을 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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