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34화 (936/1,027)

< 934화 7. 거병(擧兵)의 시작 >

총 한 달도 넘는 제법 긴 기간 동안.

카일란의 기사 대전은 전 세계를 달궈 놓았다.

기존의 PVP 대전 대부분이 각 서버 안에서만 진행되었던 때와 비교하면, 사실상 기사 대전은 국가 대항전 같은 느낌이었으니, 판 자체가 완전히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화려했던 기사 대전의 마지막을 장식한 주인공은 결국 이안이었다.

결국 최후의 전투에서 이안은 그 어떤 근거를 들어도 폄하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실력으로 카이를 제압하였고.

그것으로 자신이 카일란 최고의 유저임을 완벽하게 증명한 것이다.

그에 더해 기사 대전의 우승 길드가 된 로터스 또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MVP인 이안을 논외로 치더라도, 로터스가 보여 준 저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니.

기존의 로터스가, 카일란을 플레이하는 모든 한국 서버 유저의 워너비였다면.

이제는 전 세계 모든 카일란 유저들이 로터스라는 이름을 선망하게 된 것이었다.

“크……! 대박!”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칼데라스도 역시, 로터스의 상대는 아니었네.”

이안의 심판 검에 무릎 꿇은 카이.

카이가 쓰러짐과 동시에, 새하얀 재가 되어 무너져 내린 칼데라스의 성채와 기사단들.

포르투나에서 그 광경을 직관하던 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고.

로터스의 승리가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은 기사 대전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유저들 사이에 회자되었다.

“비록 이안에게 지기는 했지만, 카이도 정말 대단하긴 대단했지.”

“카이랑 이안의 전투 영상은…… 슬로로 돌려 봐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라니까?”

“둘이 보여 줬던 그 마지막 전투는 앞으로도 다시 보기 힘들 수준일 거야.”

“하아, 로터스 길드원들 부럽다. 사실상 세계 랭킹 1위 길드네, 이제.”

우승으로 인해 로터스가 얻은 것은 게임 내적인 보상보다도 외적인 명성이 훨씬 더 컸던 것이다.

그 때문에 로터스의 모든 길드원들은 근래 들어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2프로 아쉬움이 남아 있는 훈이 같은 길드원도 없진 않았지만 말이다.

“쳇, MVP만 내가 먹었어도, 지금보다 최소 두 배는 더 행복했을 텐데.”

기사 대전의 시상식.

MVP의 화관을 머리에 쓰는 이안을 보며, 훈이가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레미르와 카윈이 끌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바랄 걸 바라라.”

“길드 콘텐츠에서 MVP해 보려면, 다른 길드 가는 게 어때, 훈이.”

“응?”

“이안 형이 길드 탈퇴하기 전까지, 네가 로터스에서 MVP를 꿈꾸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카윈의 날카로운 팩트 폭력에, 삐죽 튀어나왔던 훈이의 입술이 더 불만스럽게 꿈틀거렸다.

“칫! 나 진짜로 다른 길드 간다?”

훈이가 씩씩거리며 길드원들을 협박(?)했지만, 그런 것이 통할 리는 만무한 상황.

이번에는 헤르스가 훈이 놀리기에 한마디 거들었다.

“흐음, 새로 창설할 기사단의 단장 자리를 훈이한테 주려 했는데…… 이렇게 되면 다른 길드원을 알아봐야 하나?”

그리고 헤르스의 한마디는 굉장한(?) 효과를 발휘했다.

“하, 하하. 그게 무슨 말이야, 헤르스 형. 당연히 농담이지, 농담.”

“농담 아닌 것 같던데…….”

“농담이라고, 농담! 여기 로터스 길드가 아니면, 이 훈이가 어딜 가겠어. 흐흐흐.”

훈이는 언제 입술을 삐죽였냐는 듯 헤르스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헤실헤실 웃었고,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훈이의 반응에 모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훈이 저건, 어린놈이 왜 저렇게 감투를 좋아하는지 몰라.”

“콘셉트만 중2병이고, 혹시 본질은 아재 아닐까?”

“아냐. 원래 저런 콘셉트 유지하려면, 감투가 중요하거든.”

“음, 그것도 일리는 있는 말이네.”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화목한 로터스의 길드원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들이 알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시상대에 서 있는 이안의 머릿속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삭막했던 폐허 속에서 다시 청록의 빛을 찾은 대지의 요람.

쿠궁- 쿠구궁-.

커다란 진동음과 함께 푸른 대지의 기운이 요람 주변으로 넘실거리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마치 지진이 나기라도 한 듯, 지축을 흔들며 강렬히 진동하는 대지.

하지만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정령들과 동물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요람 주변에 들어차는 푸른 불빛을, 멍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왕께서 돌아오셨어!

-이 기쁜 소식을 수호자께 알려야 해!

-드디어……!

요람에서 뻗어 나온 빛이, 갈라진 대지 사이로 퍼져 나가 새하얀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길게 이어진 그 하얀 길을 따라, 멀리서부터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다가왔다.

화려한 갑주에 세 자루의 대검을 등에 멘.

황금빛 비룡을 탄 남자.

그가 다가오자 하얀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이내 허공을 가득 채운 그 빛은 남자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어서 다음 순간, 화려한 공명과 함께 남자의 그림자가 요람 안으로 스며들었다.

우웅-!

그리고 그와 동시에.

쿵-!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지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든 빛을 집어삼킨 대지의 요람이, 다시 조용히 잠들었다.

다시 본래의 고요를 찾은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전과 전혀 다를 것 없이 느껴질 정도로, 다시 침묵하기 시작한 대지의 요람.

하지만 주변에 있던 대지의 정령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대지의 요람은 품고 있던 거대한 힘을 뿜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들 준비하자.

-그래, 약속의 날이 왔어.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띠링-!

정령계에 있던 모든 유저들의 눈앞에, 새로운 월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대지의 요람’이 깨어납니다.

-‘대지의 정령왕 트로웰’이 거병(擧兵)을 시작합니다.

-다음의 조건을 충족한 모든 유저들은 트로웰의 군대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정령계’의 메인 에피소드 진행도 30% 이상.

-초월 레벨 30레벨 이상.

……후략……

* * *

기사 대전이 끝난 직후.

오히려 로터스 길드는 기사 대전을 치르는 기간보다 훨씬 더 분주하고 바빠졌다.

우승 길드 특전으로 얻게 된 신규 기사단을 편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사 대전 결과로 인해 파생된 각종 이슈들이 길드에 쏟아졌으니 말이다.

특히나 기사 대전에 직접적으로 활약했던 랭커들의 경우, 세계 각지에서 쏟아지는 인터뷰에 치여 아무것도 못 할 정도.

물론 훈이처럼 이 모든 상황을 즐기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케이스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레비아 같은 길드원들은 길드 전체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가장 극단적인 인물은 역시 이안이었다.

“이안, 이안이 어디 갔어?”

“어, 시상식 끝날 때만 해도 있었잖아?”

“헤르스 형, 따로 들은 얘기 없어?”

시상식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길드 인터뷰조차 제쳐 두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인물이 바로 그였으니까.

“와 씨, 길드 인터뷰에 MVP가 없는 게 말이 돼?”

“하, 이 형은 진짜 또 어딜 간 거야.”

“후, 이럴 거면 MVP는 그냥 날 주지.”

딱히 이안이 사라진 것이 길드에 피해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길드원들의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길드원들의 당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사 대전의 우승으로 인해 생긴 일들이 정리되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길드 메시지를 받아야 했으니 말이었다.

띠링-!

-길드원 ‘이안’이 새로운 길드 퀘스트를 수령하였습니다.

“뭐? 길드퀘?”

“미친?”

-‘트로웰의 선봉대(에픽)(히든)’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이 상황에서?”

“아니,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길드원들이 혼란에 빠진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길드 퀘스트의 경우 일반 퀘스트보다 훨씬 더 수령 난이도가 어려웠으며, 때문에 같은 등급의 퀘스트라 해도 희귀도나 중요도가 훨씬 높은 게 길드 퀘스트였으니 말이다.

사실상 세계 랭킹 1위나 다름없는 로터스조차도, 진행해 본 에픽 히든 수식어가 붙은 길드 퀘스트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그 때문에 헤르스는 빠르게 이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안이 어디 갔어? 좀 찾아봐. 하린이한테도 연락 넣어놓고.”

길드 마스터로서 미리 정보를 얻어야, 어떤 식으로 퀘스트 플랜을 짤지 생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리저리 수소문해 보아도, 길드원들은 쉽게 이안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모든 일들의 원흉(?)인 이안이 지금 있는 곳은 현 시점에서 이안을 제외한 그 어떤 유저도 출입이 불가능한 곳.

‘대지의 요람’이었으니 말이었다.

정확히는 모든 힘을 회복한 대지의 정령왕, 트로웰의 앞에 선 이안.

이안이 이렇게까지 모든 걸 팽개치고 요람으로 달려온 이유는 간단했다.

트로웰이 깨어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그 시간이 시상식 일정과 교묘하게 겹친 것뿐이었으니까.

-왔는가, 나의 계약자여.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강렬한 존재감과 위엄을 뿜어내는 트로웰.

그의 앞에 선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힘은 전부 회복하신 겁니까?”

-전부……라면 거짓이겠지만, 충분히 회복하였다.

“그럼 이제 일전에 말씀하신대로…… 기계문명과의 전쟁을 시작할 수 있겠군요.”

이안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인 트로웰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해야지. 그것은 선택적인 문제가 아닌 필연일지니.

이어서 트로웰과 마주한 이안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다시 확인한 정령왕의 힘은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엄청난 것이었고.

비록 한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이 트로웰과 함께 전장을 누빈다면.

그동안 어마어마한 경험치와 이득들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으니 말이다.

-거병을 선언하였으니, 이제 모든 대지의 군단들이 균열로 모일 걸세.

“대지의 군단이라면, 저와 함께 왔던…… 그락투스나, 셀라무스의 전사 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물론 그들 또한 포함이지.

“그렇군요.”

-아마 지금쯤 찰리스의 군대도, 낌새를 알아챘을 터. 나의 군대에 대응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였겠군.

찰리스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이안의 두 눈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 전쟁의 판이 더욱 커질수록,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었다.

‘흐흐.’

이어서 기분 좋은 표정이 된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트로웰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찰리스의 군대는 얼마나 강력한가요?”

-자네가 상대했던 피켄로의 기계 군단. 그런 군단들을 수 없이 거느린 존재가, 찰리스라 생각하면 될 테지.

“……!”

-아마 나로서도……. 분명 쉽지 않은 상대일 게야.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트로웰을 보며, 이안은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찰리스가 강력할 것이라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트로웰의 설명은 예상을 살짝 상회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었다.

‘정령계 뉴비 시절에 처음 만난 찰리스가 이렇게까지 거물이었을 줄이야…….’

놀람과 동시에 흥미로움을 느낀 것인지, 점점 더 표정이 상기되기 시작하는 이안.

하지만 이안의 그러한 놀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기계문명과의 전쟁 에피소드의 전개가 이안이 생각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으니 말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계약자여.

“예, 트로웰 님.”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대가 해 줘야 할 것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이안과 눈이 마주친 트로웰이 묵직한 목소리로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찰리스의 군대를 상대하는 동안, 그대가 남은 모든 정령계의 힘을 모아 주시게.

“그걸 어떻게……?”

-과거 나의 벗들이 남기고 떠난 정령왕의 권능.

“……!”

-찰리스의 눈을 피해 그것들을 숨겨 놓은 곳을 자네에게 알려 주겠네.

이어서 트로웰의 이야기를 듣는 이안의 두 눈이 점점 더 크게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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