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3화 7. 다시 만난 카이 (2) >
* * *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마저 적나라하게 들리는 조용하고 어두운 사무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기획 3팀의 모든 인원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커다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제, 제발…….”
“힘을 내라고……!”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건지, 두 손을 꼭 모은 채로 스크린을 응시하는 3팀의 직원들.
그런 그들의 귓전으로, 스크린 안에서 흘러나온 흥분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안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이며 카이의 모든 공격을 막아 냅니다!
-이럴 수가 있나요? 순식간에 연타로 들어오는 기술들을 무기 막기로 전부 완벽하게 흘려 버렸습니다!
-역시 이안! 소환술사라는 클래스가 무색한 검술 실력입니다……!
지금 할 일도 많은 기획 3팀 직원들의 모든 업무가 스톱된 것은 이 기사 대전의 마지막 경기 때문이었다.
기사 대전의 결승전이라는 상징성 때문에라도 기획팀의 입장에서 시청해야만 하는 경기였지만.
특히 기획 3팀의 경우에는 이 경기를 봐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었다.
“제발, 넌 할 수 있어, 카이.”
“네가 못 잡으면 끝이야…….”
“와 씨, 저걸 막는다고?”
어쩐 일인지 한국 서버의 랭커인 이안이 아니라, 미국 서버의 랭커인 카이를 응원 중인 기획 3팀의 직원들!
“이러지 마, 카이야…….”
“신화 장비 둘둘 했으면 돈값 해야지…….”
그리고 직원들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당연히 그만한 계기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여 분 전.
나지찬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잠깐.
-왜요, 팀장님?
-그러고 보니 이거…… 문제가 심각한데?
-불안하게 갑자기 왜 그러세요……?
다 같이 한마음으로 이안과 로터스를 응원하던 도중, 나지찬이 문득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시작하였고.
-만약, 만약에 말이야.
-……?
-로터스가 여기서 칼데라스를 잡고 우승하면…….
-우승하면요?
-우승 길드 특전 싹 다 가져갈 거 아냐.
-그거야 당연하죠.
-뭐 딱히 좋은 장비를 주거나 특별한 스킬이 보상으로 걸려 있는 것도 아닌데…… 문제 있나요?
이안이 진행 중인 퀘스트와 우승 보상으로 걸린 특전의 연관성이, 나지찬의 이야기 덕에 생각나 버린 것이다.
우선 기사 대전의 우승 길드가 가져갈 수 있는 특전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기사 대전에서 10위 이상의 성적을 기록한 길드의 모든 길드원들은 다음 기사 대전이 열릴 때까지 ‘기사도의 축복’ 효과를 받습니다. (모든 전투 능력 +5%, 모든 획득 경험치 +5%, 사망 페널티 감소 –50%)
*기사 대전에서 우승한 길드는, 다음 기사 대전이 열릴 때까지 기사단을 추가로 하나 더 운영할 수 있습니다.
*기사 대전 전체 MVP로 선정된 유저에게는 ‘천공의 기사’ 칭호와 이펙트가 부여됩니다.(천공의 기사 : 모든 초월명성 +30% 중간계 모든 NPC와의 친밀도 +20 상승)
사실 이 특전은 어찌 보면 기사 대전이라는 카일란 최대 규모의 PVP 콘텐츠 우승 보상치고는 작아 보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획 3팀도, 이에 대해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특전을 가져가는 이가 ‘이안’이 될 경우에 생겨나는 것이었고.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문제는 두 가지 정도겠네.
-두 가지요?
-일단 로터스에 기사단이 하나 더 추가된다는 거랑…….
-음, 그건 확실히 이안에게 날개를 달아 주긴 하겠네요.
-하지만 이건 그렇게 치명적인 건 아니고, 사실 제일 큰 문제는 두 번째야.
-두 번째가…… 뭔데요?
-‘천공의 기사’ 칭호.
-……?
-분명 오늘 우승하는 팀에서 MVP가 나올 거고, 그건 당연히 카이 아니면 이안이겠지.
-그, 그렇겠죠?
-초월 명성 더 얻는 건 사실 큰 의미 없는데, 문제는 친밀도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팀장님?
-지금 이안이 진행 중인 퀘스트 생각해 봐.
-그야 정령왕 퀘스트……!
-커헉……?
-이제 슬슬 이해되지? 내가 왜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는지 말이야.
지금 이안은 사실상 홀로 정령계의 콘텐츠들을 독식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미 정령 수호자, 정령왕 등의 핵심 NPC들과의 친밀도가 최상이었는데, 여기에 20이라는 친밀도가 더 추가되는 게 문제였다.
카일란의 시스템상 퀘스트나 보상으로 획득하는 친밀도는 맥스 수치 이상으로 쌓이게 되어 있는데.
이안의 경우 이 보상을 받는 순간, 정령왕 트로웰과의 친밀도가 맥스를 뚫고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문제는 간단했다.
-이안이 트로웰을 쓸 수 있는 범주가…… 더 넓어지겠네요.
-그렇지.
-여기에 기사단 두 개씩 굴릴 시너지까지 같이 들어가면…….
-지옥이군.
그렇지 않아도 이안의 콘텐츠 진행도에 맞추기 위해 철야 중이던 3팀의 입장에선, ‘콘텐츠 파괴 부스터’나 다름없는 이 ‘천공의 기사’칭호가 어떻게든 이안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길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카이가 천공의 기사 칭호를 가져간다 해도, 명계 쪽의 콘텐츠가 파괴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획 3팀의 입장에서,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쪽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야근 보존의 법칙(?)에 의해 누군가는 야근을 하게 되겠지만, 누가 야근을 하든 본인들만 아니면 상관없는 것.
“잘한다, 카이……!”
“와, 카이가 갑자기 멋있어 보이네.”
“크, 저기서 이안의 공격을 저렇게 또 예측한다고?”
“제발 이기자. 여기서 이기면, 오늘부터 카이 팬클럽 가입한다.”
하지만 기획 3팀 팀원들의 이 간절한 염원은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었다.
-아, 카이의 공격이 닿는 바로 그 순간……!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이안의 몸이 잔영을 남기고 사라집니다!
3팀의 염원이 이뤄지기 위해 필요한 필수 불가결한 한 가지의 조건.
-버, 번개가!
-심판의 번개가 내리칩니다!
이안이 패해야 한다는 그 조건은 이안이라는 유저가 랭커로 알려진 이후 단 한 번도 충족되지 못했던 조건이었으니 말이었다.
* * *
랭커들의 PVP는 투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PVP들과 완전히 양상이 다르다.
서로 지속적으로 딜을 쑤셔 넣으며, 먼저 생명력이 다 닳은 유저가 패배하는 평범한 PVP와 달리.
기사 클래스를 제외한다면, 랭커들의 싸움은 거의 한 방 싸움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글로벌 기준 최정상에 있는 두 사람 사이의 PVP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였다.
둘 모두 탱킹보다는 파괴력 쪽으로 세팅이 극대화된 유저들이었고, 때문에 무기 막기나 회피 등에 실패할 시, 서로 상대의 공격력을 버텨 낼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이안이건 카이건, 서로의 검에 제대로 된 치명타를 입는 순간, 그대로 빈사 상태가 될 것이 자명한 것.
그 때문에 둘의 전투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누가 먼저 실수를 하여 상대에게 공격을 허용하느냐.
그 한 번이 이 모든 싸움의 결과를, 결정지을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실수 없이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반대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 내는 것.
이것이 지금 승리를 위해, 이안이 해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변수를 만들어 내야 실수를 유도할 수 있을 테고……. 그러기 위해선 설계가 필요하겠지.’
이안과 카이는 기사 대전 이전에 단 한 번 맞부딪쳤을 뿐이었지만, 적어도 PVP 스타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서로가 가진 고유 능력들과 피지컬.
그에 더해 전투를 운영하는 스타일까지도.
PVE가 아니라면, 서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와도 이렇게까지 전력을 다해 싸워 본 적이 없었을 테니.
어쩌면 너무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안은, 카이가 모르는 부분을 최대한 숨기는 것이었다.
신의 말판 전장에서는 보여 주지 않았던.
최근의 콘텐츠 진행으로 얻게 된, 심판 검의 고유 능력들과 같은 히든카드들.
그것들이 이안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안의 설계를, 카이 또한 본능적으로 느끼는 듯하였다.
“좀 더 시원하게 싸울 순 없나?”
“흠……?”
“그런 샌님 같은 전투 스타일. 맘에 들지 않으니까.”
사실 이안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유리한 것은 로터스였다.
로터스는 전진기지를 지키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고, 칼데라스는 그곳을 탈환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데다, 상위 테크를 먼저 달성한 로터스의 병력이 전력 자체도 좀 더 우위에 있었으니 말이다.
해서 지금의 상황 자체가 이안은 느긋하고 카이는 조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하였다.
그래서 이안이 본능적으로, 더 보수적인 플레이를 보여 준 것이고 말이다.
‘뭐, 더 이상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카이의 붉은 검에서 피어오른 검풍이 더욱 난폭하고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슬슬 마침표를 찍을 준비를 하였다.
지금껏 그 어떤 PVP에서도 볼 수 없었을 만큼, 팽팽하고 치열했던 두 랭커의 일기토.
하지만 그 팽팽함 속에서도 분명한 차이는 존재했고, 그 작은 차이는 오직 이안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무려 20여 분이 넘게 이어진 전투 시간 동안, 이안은 카이의 거의 모든 것을 파악했으니 말이었다.
‘파멸의 회오리라…… 이렇게 되면 분명, 폭풍난입을 이어서 발동시키겠지.’
카이의 공격 패턴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다만 그 단순하지 않은 모든 경우의수 조차, 이안의 분석을 피해 갈 수 없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카이.”
“……?”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지.”
“그게 무슨……!”
카이의 검이 이안의 심장을 관통하려던 순간, 이안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여러 갈래로 분리되었다.
‘서먼 인카네이션(Summon Incarnation)’을 사용하여 카이의 근접 공격을 찰나에 흡수하는 고난도의 컨트롤을 보여 준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카이 또한 예상하고 있었던 전개.
이어진 카이의 고유 능력 ‘파멸의 회오리’가 뿜어 나오며, 이안의 분신들이 전부 그 회오리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이어서 한 줄기 폭풍으로 변한 카이의 신형이, 회오리를 타고 이안의 본신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다.
“이것으로, 끝이다, 이안.”
카이의 묵직한 목소리를 들은 이안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의 말처럼, 이것으로 끝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끝이긴 하지. 그게 너의 끝일 테지만 말이야.’
카이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고유 능력인 폭풍난입은, 순간적으로 바람 속에 스며들어 적을 기습하는 최고의 암살 기술이었다.
어지간한 암살자 클래스의 고유 능력 이상으로 대응하기 까다로운 최강의 고유 능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술이 까다로운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폭풍난입의 공격에 피격당하기 전까지, 시전자를 타깃팅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의도해 낸 이안에게 그러한 페널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바람에 녹아든 카이의 신형이 이안에게 도달하기 직전.
콰쾅-콰콰쾅-!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광역 스킬, ‘심판의 번개’가 떨어져 내렸으니 말이었다.
깡-촤아악-!
물론 다수를 상대로 충전된 번개는 아니었기에, 이 한 방으로 카이를 처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이안이 노린 것은 한 가지.
이 충격으로 인해 카이의 폭풍난입이 빗나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쐐애액-!
폭풍난입이 빗나가는 순간, 카이의 신형은 다시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카이라 하더라도 예측된 이안의 공격에 대응해 낼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었다.
“커헉-!”
낙뢰의 충격으로 중심을 잃은 카이의 등짝을 향해, 이안의 팔꿈치가 그대로 작렬한다.
퍼억-!
이어서 카이가 튕겨 나간 방향을 향해, 세 자루의 심판 검이 차례대로 내리꽂혔다.
콰쾅-콰아앙-!
그리고 그것으로.
-‘칼데라스’기사단의 기사단장, ‘카이’가 사망하였습니다.
기사 대전 최후의 전투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