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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32화 (934/1,027)

< 932화 7. 다시 만난 카이 (1) >

‘차원력 제어기’ 건물은 단기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물이 아니었다.

3티어의 건물들 중에서 건설에 필요한 자원도 저렴한 편이었으며, 이 건물이 없다 해서 4티어나 5티어에서 짓지 못하게 되는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차원력 제어기의 역할은, 단 한 가지뿐.

*전장에서 사용되는 모든 차원력의 효율을 증가시킵니다. ‘차원력 제어기’의 건물 레벨에 비례하여, 유닛을 생산하거나 건물을 건설할 때 소모되는 모든 차원력이 감소됩니다.(차원력 제어기 레벨 1당 5%)

사실상 이제 1레벨의 차원력 제어기가 건설된 로터스와 칼데라스의 생산 효율 차이는 고작 ‘5%’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칼데라스가 전투에서 5% 이상의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차원력 제어기의 차이를 우선은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기적인 계산일 뿐.

정말 극후반까지 간다면 로터스의 차원력 제어기는 최고 레벨인 10레벨까지 올라갈 것이고, 그때는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잔머리를 아주 잘 굴렸단 말이지.’

그래서 지금 칼데라스는 전투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불리가 적은 시점에 전투를 벌여서, 로터스에게 뺏긴 제어기 건설 부지를 확보해야 했으니 말이다.

만약 로터스의 이 전략에 당하지 않았더라면, 칼데라스는 수성에만 신경 쓰며 한동안 테크를 올렸을 것이었다.

첫 전투에서 로터스에 비해 1.5~2배 수준의 자원을 확보하였으니.

로터스의 성채 발전 속도를 충분히 따라잡고도 남는다는 계산에서 말이다.

이렇게 되면 반대로 로터스가 공격을 강요당하는 상황이었을 것이었고, 이것이 바로 알파인이 원했던 이상적인 그림.

그러나 로터스의 기막힌 한 수로 인해, 상황이 또 뒤집어져 버렸다.

“일부러 걸어 잠근 성문을 직접 열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펄럭-!

전설 등급의 마룡, ‘카툴라’에 올라탄 카이가 성 밖으로 날아올랐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알파인도 날 막을 명분은 없어졌겠지.”

칼데라스를 키워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카이는 충분히 영리하고 똑똑한 유저였다.

다만 성향상 머리 굴리며 계산기를 두들기는 것보다는 힘으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패도적인 유저일 뿐이었다.

그래서 카이에게는 알파인이 필요했다.

자기 대신에 머리를 굴려 줄, 그리고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줄.

일종의 ‘제어 장치’같은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파인의 지략이 아무리 뛰어난들 완벽한 것은 아니었고, 때문에 간혹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변수가 생긴 모든 경우에서, 카이는 그것을 힘으로 해결해 왔었다.

‘그것이 오늘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은 없겠지.’

펄럭-!

마룡의 거대한 날갯짓과 함께, 카이를 위시한 칼데라스의 용기사단이 로터스의 기사단을 향해 쇄도하였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끼이익-! 쿵-!

칼데라스의 성문이 열리며, 모든 병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카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총력전을 걸어 버린 것이다.

기사단을 제외한 모든 병력의 티어 차이가 1티어 이상 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과감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승부사 카이!

-전략적 불리를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 망설임 없이 선공을 감행하는군요!

자신들이 깔아 놓은 판에서 칼데라스의 공격을 여유롭게 기다리는 로터스와, 그런 로터스를 향해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드는 대전사 카이의 기사단.

그 두 전력의 2차 격돌이 눈앞에 다가오자, 살짝 가라앉는 듯했던 전장의 분위기 또한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하였다.

“카이랑 이안이, 이전에 만난 적이 있었나?”

“있었지.”

“오, 정말? 언제?”

“딱 한 번 있었던 걸로 알아. 신의 말판 전장 마지막 전투에서 말이지.”

“아, 맞다……!”

“그때는 이안의 승리였던 걸로 아는데, 이번엔 어떻게 될까?”

“흐흐, 그걸 알면 내가 오늘 아침에 전 재산 털어서 베팅부터 했겠지.”

“하긴…….”

그리고 이렇게 끓어오른 분위기에 더욱 커다란 불을 지펴버린 것은 카이의 거침없는 행보였다.

-아, 카이가……! 카이가 그대로 이안을 향해 쇄도합니다!

-이번 전투에서 드디어……! 카이와 이안의 진검 승부를 볼 수 있겠어요!

내성의 성벽을 넘어 하강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방향을 틀어 이안을 향해 직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쐐애애액-!

지금까지 알파인의 전략에 따라 보수적으로 움직였던 그 인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카이의 행보는 놀랍다 못해 파격적인 것이었다.

-전략이고 나발이고, 이안만 잡을 수 있으면 우승이거든요!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카이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패기겠지요!

-이안의 비룡과 카이의 마룡이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이제 이안과 로터스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카이를 위시한 칼데라스의 기사단은 정말 뒤가 없다는 듯 로터스의 기사들을 향해 저돌적으로 비행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마주한 로터스의 기사단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기 시작하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빠른데?”

헤르스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한다.

“그러게. 조금은 더 고민하고 움직일 줄 알았는데 말이지.”

그리고 모두가 긴장한 이 상황 속에서도, 이안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쳤다.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 그였으며, 이 상황 또한 이안의 예상 범주 안에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안의 입장에서는 그저, 의도했던 대로 된 것뿐이었다.

‘뭐, 카이가 생각보다 현명하네. 기왕 싸울 거면 조금이라도 빨리 튀어나오는 게 맞지.’

스릉-!

심판 검을 뽑아 든 이안이 마주 다가오는 카이를 응시하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펄럭-!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안과 로터스의 기사단이 칼데라스의 기사단들과 뒤섞이기 시작하였다.

* * *

이안이 아웃되면 로터스가 패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카이가 아웃되면 칼데라스 또한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관중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본다면, 분명 카이의 선택을 무모하고 성급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이안은 오히려 카이의 선택을 높게 평가하였다.

“협공은 오히려 비효율적이야.”

“응?”

“카이는 내가 맡을게.”

“……!”

이안은 카이가 뭘 믿고 있는지조차, 이미 꿰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후.’

카이를 PVP로 쓰러뜨려 본 유일한 유저가 바로 이안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안만이 알 수 있는 카이의 고유 능력이 하나 있었다.

‘대전사의 용맹…… 역시 그걸 믿고 있는 것 같은데…….’

카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특별한 고유 능력이자, 어쩌면 지금의 카이가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고유 능력일 대전사의 용맹.

대전사의 용맹은 다수의 인원에게 공격당할수록 모든 전투능력이 증폭되는 패시브 능력이었고, 그 상대의 실력이 떨어질수록 그 증폭량이 더 커지는 고유 능력이었다.

다만 그 버프량이 강력한 만큼, 그에 비례하는 페널티가 있었는데, 그 페널티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만약 대전사의 용맹이 켜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처치당한다면, 전장에서 쌓은 모든 강화 효과를 상대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처음 이 버프가 들어왔을 땐…… 진짜 당황스러울 정도였지.’

이안이 카이의 이 능력을 알게 된 것은 당연히, 신의 말판 전장의 마지막 전투에서였다.

그 마지막 전투에서 카이를 벤 것이 바로 이안이었으니, 의도치 않게 고유 능력의 효과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확한 메커니즘까지는 이안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카이가 지금껏 일인 군단에 가까운 전투력을 보여 준 것이 이 능력 때문이라는 정도는,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이 재밌는 것은, 이안이 ‘대전사의 용맹’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카이 또한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카이로서는 이안을 향해 깔끔하게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내가 이렇게 대응할 것까지도, 카이는 아마 예상하고 있겠지.’

그리고 이안의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간 사이.

어느덧 카이와 이안의 검이, 허공에서 맞부딪치기 시작하였다.

까강-!

이안과 한 차례 검을 맞부딪힌 카이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전에도 느낀 거지만……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굴리는군.”

이 한 번의 전투로 모든 것이 결정될지도 모르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었지만, 카이는 이 상황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긴장감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즐거운 것은 이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도 역시 지금껏 만나 본 모든 유저들 중 가장 강력했던 실력자가 카이였고, 때문에 전장의 결과를 떠나 카이와 진검 승부를 펼친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잔머리라……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조잡한 전략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까강-!

카이의 검을 한 차례 더 받아 낸 이안이 한쪽 입꼬리를 히죽 말아 올렸다.

‘여기서 한 번 더 이 녀석을 잡아낸다면, 이제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

까가강-!

‘카일란의 최강자는 소환술사 이안이라고 말이야.’

어쩌면 ‘대전사의 용맹’을 가진 카이는 소환술사들에게 최악의 적수라 할 수 있었다.

전투의 절반 이상을 소환수들의 전력에 의존해야 하는 소환술사에게, 대전사의 용맹은 상성이 치명적일 정도로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안이 아니었더라면, 전투 메커니즘상 그 어떤 소환술사도 카이를 상대할 수 없었을 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 전장에서 카이는 결코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음을 말이다.

“전날의 패배는 오늘 갚아 주도록 하지.”

“할 수 있으면, 한번 해 보든가.”

콰콰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전장의 한복판에 또 하나의 작은 전장이 열렸다.

카이와 이안이 대결하는 위치를 주변으로,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장을 지켜보는 팬들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더욱 흥미진진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카이가 가진 고유 능력의 구조적인 메커니즘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지만, 팬들의 입장에서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니 말이다.

“카이……! 이번에야 말로 이안을 밟아 버려! 이번에는 다른 어떤 변수도 없다고!”

“이안갓! 믿습니다……!”

“어딜 카이 따위가 이안느님에게……!”

기사 대전이라는 최대 규모의 글로벌 PVP 결승전답게, 마지막까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로터스와 칼데라스!

그 중심에 있는 이안과 카이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상대에게 쏟아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둘이 보여 주는 전투는 과거 신의 말판 때와는 또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때의 두 사람은 중간계에 처음 발을 들였던 새내기 초월자였다면, 지금의 두 사람은 완성형에 가까운 초월자였으니 말이다.

콰쾅-콰아앙-!

평범한 유저들로서는 머릿속으로 상상조차 불가능할 만큼.

현란하고 무지막지한 두 사람의 치열한 대결.

하여 모든 유저들은 숨죽인 채 이 대결을 지켜보기 시작하였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유저들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으니 말이었다.

이 전투의 결과가 곧, 기사 대전의 결과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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