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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25화 (927/1,027)

< 925화 4. 마법 대결 (3) >

* * *

‘해제’ 고유 능력은 랭커라면 대부분 하나씩 구비하고 다니는 고유 능력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사제 클래스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었으나, 고급 액세서리에 간혹 장비 고유 능력으로 붙어 있는 경우가 있었으니 말이다.

해제가 붙어 있는 액세서리는 다른 옵션이 아무리 나빠도 기본 2~3천만 골드부터 시작하는 초고가 아이템이었지만, 랭커들에게 가격이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안이 해제를 사용했다는 자체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사용했느냐가, 모두를 경악하게 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었다.

-해, 해제가 터졌습니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분명, 영혼잠식이 먼저 발동했던 것 같은데요!

‘영혼잠식’ 상태는 캐릭터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잃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스턴이나 빙결, 공포 등의 군중제어기 보다도, 한 등급 높은 최상급의 상태 이상 효과인 것.

그 때문에 당연히 영혼이 잠식된 상태에선 해제를 발동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이안은 어떻게, 해제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완벽한 ‘타이밍’에 있었다.

-예측한 거죠!

-예측요?

-발록이 영혼잠식을 발동시킬 타이밍을…… 아마도 예측해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아……!

모든 스킬은 발동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딜레이(delay)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스킬의 모션 때문일 수도 있고 이펙트 때문일 수도 있었는데, 마법사나 사제들이 사용하는 마법 계열의 스킬들이 보통 그 딜레이가 가장 긴 편이었다.

방금 이안이 사용한 해제 스킬의 경우, 대략 0.7~1초 정도의 딜레이를 가지고 있는 것.

그래서 간혹 랭커들의 매드무비를 보면, 스턴류의 행동 불능 스킬을 예측하며 미리 해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존재했다.

행동 불능 상태가 걸리면 해제 스킬의 발동이 불가능하니, 반 박자 빠르게 예측하여 해제를 먼저 발동시켜 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매드무비일 뿐.

실전에서 이 구조를 활용하여 예측 해제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컨트롤이라 할 수 있었다.

상태 이상이 들어오는 타이밍을 0.7~1초 사이에 정확히 집어넣지 못하면, 역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리스크가 높은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게임 이해도가 높은 해설진들조차도, 곧바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설마 실전에서, 그것도 이런 세계 무대의 준결승급 전장에서, 그 미친 짓(?)을 하는 유저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었다.

-해제 스킬은 모든 ‘해로운’ 효과만 해제하는 스킬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영혼잠식은 해제되고, ‘무적’상태만 남아 버렸네요.

-하…… 뭐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 버렸어요.

-설마, 여기까지 계산하고 설계한 건…….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저 발록이 영혼잠식 스킬을 들고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거기까진 아닐 것 같습니다.

-대체 저 마법사는 누굴까요? 경기가 끝나고 나면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까지 비밀 병기로 숨겨 뒀던 걸 보면, 로터스에서 쉽게 오픈해 줄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리고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무적’상태가 된 이안이 공격적으로 마법을 퍼부으며 류첸을 압박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류첸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으드득……!”

30분이라는 지속 시간 동안 이안의 공격을 버티면서 계속 시간을 끌 것이냐.

아니면 발록을 소환 해제 하여 이안의 무적을 풀고, 발록 없이 다시 승부를 펼쳐 볼 것이냐.

그리고 이 두 가지 선택지 중 전자의 경우는 사실 선택이 불가능한 선택지라 할 수 있었다.

무적 상태인 이안을 상대로 30분 동안 시간을 끄는 것은, 류첸이 아니라 류첸 할아비가 와도 불가능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어쩔 수 없이 발록을 소환 해제 하는 류첸.

우우웅-!

-아, 역시 발록을 소환 해제 하는군요!

-류첸으로서는 저 방법 말곤 다른 수가 없죠.

-이제 전투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발록까지 소환하면서, 이제 류첸의 마력이 고갈 상태일 텐데 말이죠.

류첸은 이를 악문 채, 남은 모든 마력을 동원하여 최후의 공격을 이안에게 퍼붓기 시작하였고.

콰쾅-콰콰쾅-!

이안은 그에 전력으로 대응하였다.

“마이티 프로즌!”

“어스 파이크!”

퍼퍼펑-!

그리고 그 결과.

띠링-!

-천웅 길드에서 ‘교체권’을 사용하였습니다!

-천웅 길드의 ‘정예 검투사’가 다른 인원으로 교체됩니다.

-로터스 길드에서 ‘교체권’을 사용하였습니다!

-로터스 길드의 ‘정예 검투사’가 다른 인원으로 교체됩니다.

거의 동귀어진 상태가 되도록 마법을 주고받던 두 랭커는 결국 각 길드의 교체권을 소모하여 교체되고 말았다.

-아, 결국……! 두 랭커 모두 교체되고 마는군요!

-류첸을 상대로 결국 동률을 만들어 내다니! 로터스의 정령 마법사, 정말 엄청납니다.

-사실 정령 마법사의 승리로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런가요?

-몇 초 정도의 차이긴 해도 먼저 교체된 쪽은 류첸이었고……. 정령 마법사가 교체된 이유는 류첸 때문이 아니라 다른 길드 검투사들 때문이니까요.

-일리 있는 말씀이시네요.

그리고 이렇게 되자, 천웅 길드를 응원하던 중국 팬들의 좌석은 초상집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류첸이 등장하면서 킬 포인트를 두 개 먹긴 했지만, 로터스의 마법사와 싸우는 사이 발러 길드가 치고 올라왔으니 말이다.

“이, 이러다가 떨어지는 것 아닐까?”

“말도 안 돼……! 조 1위도 아니도 2위조차 밀린다고?”

물론 승점상으로는 아직도 천웅 길드가 미세하게 우위였으나, 발러 길드는 아직 아르케인도, 마크올리버도 등장하지 않은 상황.

류첸이 전장 후반부에 다시 재입장할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최악의 전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천웅 길드의 진영과는 완전히 반대로, 축제 분위기인 응원단들이 있었으니.

“크으……! 역시 로터스!”

“사실상 운명의 언덕 진출 확정이죠?”

“이미 조 1위 확정이죠?”

“류첸까지 잡았는데 노데스라니. 갓갓……!”

“이러다가 이안 없이도 우승하는 거 아님?”

“그나저나 저 마법사 대체 누구야?”

“우리 러블리안들도 모르는 카드가 로터스에 있었을 줄이야…….”

그들은 당연히, 이안과 로터스를 응원하던 한국 서버의 응원단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건, 미국 서버 응원단들의 반응.

“역시 한국은 형제의 나라였어.”

“크……! 믿었다고, 브로들!”

로터스 덕에 발러 길드가 어부지리를 얻었으니, 미국 서버의 응원단으로서는 신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아르케인……! 아르케인의 등장입니다!

발러 길드의 수뇌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에이스들을 투입하여 승점을 쓸어 담기 시작하였다.

먼저 마스터인 아르케인이 등장하여 깔끔하게 2킬을 올렸으며.

-류첸이 빠진 틈을 타, 아르케인이 나타났습니다!

-순식간에 킬 포인트 2포인트를 추가로 쓸어 가는 발러!

-간지훈이와 아르케인이 팽팽한 구도에서 맞서 싸웁니다!

-훈이가 아르케인을 제압했습니다!

-역시 훈이……! 아르케인이 불리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단하군요!

아르케인이 아웃되자마자 곧바로 마크올리버를 투입하여, 조 2위를 확정 지은 것이다.

-마크 올리버! 올리버가 나타났습니다!

-훈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웃됩니다!

-아, 여기서 킬이 하나 더 나는군요!

-5데스입니다……! 호왕 길드가 가장 먼저 아웃됩니다!

-이어서 스콜피온! 스콜피온도 아웃이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게 흘러간 A조의 리그 경기.

하지만 경기의 중반 이후부터, 더 이상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류첸, 류첸도 결국 아웃되고 맙니다!

-이미 멘탈이 완전히 흔들린 거죠.

-실수도 엄청 많았고, 이런 컨디션으로는 레미르를 절대로 이길 수 없죠.

-레미르가 소환한 지옥불이, 모든 경기를 종결짓습니다!

로터스는 훈이를 넘어 레미르의 선에서.

발러 길드는 아르케인과 마크 올리버를 넘어, 광전사 ‘세르난도’ 선에서.

모든 경기를 마무리 하고, 각각 조 1, 2위를 확정 지었으니 말이었다.

-자, 이렇게 리그전 A조의 경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제 운명의 언덕에 진출하는 로터스와 발러는 기사 대전 4위까진 확보한 셈이 되겠네요.

-오늘의 경기를 기대하신 분들이 많으셨을 텐데, 모두의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명 경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 저희는 잠시 후, B조의 경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비의 정령 마법사’를 탄생시킨 리그전 A조의 경기가 전부 마무리되었다.

* * *

A조의 경기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정령 마법사’라는 새로운 스타를 배출했다면, B조의 경기는 기존 스타들의 독무대에 가까운 전개로 흘러갔다.

칼데라스 길드의 마스터이자 미국 서버의 최강자, 대전사 카이를 시작으로, 세인트라이언 길드의 에이스인 요나스와 타이탄 길드의 마스터 샤크란까지.

각 길드의 최고 에이스들이 자웅을 겨루며, 팬들이 기대하고 예상했던 경기를 펼쳐 주었던 것이다.

물론 B조에도 예상치 못했던 전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칼데라스와 함께 가장 강력한 결승 진출 후보로 꼽혔던 다크블러드 길드가 맥없이 탈락해 버렸으니 말이었다.

B조의 다섯 길드 중, 순위로 치자면 4위까지 추락해 버린 것.

이것은 팬들은 물론, 해설진들까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요르간드, 루칼이 왜 저렇게 맥을 못 추죠?

-그러게 말입니다. 두 랭커들뿐만이 아니에요. 전반적으로 출전 인원 대다수가 기대에 못 미치는 전투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컨디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군요.

-유럽 서버의 팬들이 실망이 크겠어요. 특히 요르간드에 대한 기대가 어마어마했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이러한 결과는 사실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이안에 의해 길드 에이스들의 전부 다 데스 페널티를 먹은 상태였으니, 본래 가지고 있던 전력의 5~10% 정도는 소실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여하튼 이러한 상황들이 맞물려, B조의 경기 결과는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다.

1위 – 칼데라스

2위 – 타이탄

3위 – 세인트라이언

4위 – 다크블러드

5위 – 카이로스

혼자서 무쌍에 가까운 전투력을 보여 준 카이의 활약에 힘입어 칼데라스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였으며, 그 아래서 마지막까지 혈전을 벌이던 타이탄과 세인트 라이언 중, 결국 타이탄이 결승 진출을 확정 지은 것이다.

하여 한국 서버와 미국 서버의 공식 커뮤니티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결승 리그의 네 팀이, 각각 한국과 미국의 두 팀이 되었으니 말이었다.

-로터스, 타이탄, 가즈아……!

-이대로 한국 서버에서 1, 2위 먹으면 되는 건가요?

-님, 진정하셈. 아무리 흥분했어도 칼데라스는 생각해야죠.

-하긴…… 아무리 행복회로 굴려 봐도, 타이탄이 칼데라스까지 잡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네요.

-크, 이제 결승에서 이안만 볼 수 있으면 완벽해!

-결승엔 어떻게든 나오겠죠. 사실 콜로세움에도 엔트리에는 들어가 있었잖아요?

-맞음. 이안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던 것일 뿐.

-키야……!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카일란의 전 세계 모든 공식 커뮤니티에 ‘운명의 언덕’ 전장에 대한 공지가 일괄 오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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