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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24화 (926/1,027)

< 924화 4. 마법 대결 (2) >

* * *

우람하게 솟아오른 두 개의 거대한 뿔.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시뻘건 지옥의 연기.

온몸에 휘감긴 마염(魔炎)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나타난 거대한 마수의 등장에, 또다시 콜로세움이 터져 나갈 듯 함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와……!”

“대박이야!”

“미친! 수업 째고 여기 오길 잘했어!”

“크으으……! 발록이라니! 여기서 발록을 보게 되다니!”

마수에 대해 잘 모르는 유저라도, 한 번쯤은 무조건 봤을 수밖에 없는 마수들의 제왕, 발록의 자태.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시뻘건 마염을 더욱 격렬히 뿜어내는 발록을 보며, 유저들은 저마다 감탄을 터뜨리기 바빴다.

“시네마틱 영상에서나 보던 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캬, 발록은 역시 오랜만에 봐도 간지가 철철 흘러넘치네.”

“네가 발록을 언제 봤다고 아는 척이야?”

“날 설마 너랑 같은 뉴비라고 생각하는 거냐?”

“……?”

“난 마계 전쟁 에피 때도 참전했던 ‘랭커’라 이거야.”

“아, 맞다. 너 그때 참전했었지.”

“훗.”

“랭커는 무슨, 짐꾼으로 참전했으면서.”

“시끄러…….”

하지만 이렇게 환호성으로 가득한 군중 사이에도, 의아한 표정인 유저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실제로 발록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위 랭커들이었다.

평범한 유저들이야 마수의 생김새를 확인한 순간, 그저 발록 이라고 확신해 버렸지만, 상위 랭커들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저거, 발록 맞아?”

“발록이 저렇게 커?”

“그럴 리가. 내가 발록만 수백 마리는 잡았을 텐데.”

“그렇지? 내 눈이 틀린 게 아니지?”

“저거 절대로 평범한 발록이 아냐.”

“그럼……?”

“나도 아직 본 적은 없는데…… 발록의 상위 개체가 아닐까 추측하는 중이야.”

“상위 개체라면, 전에 이안이 소환하던 파괴의 발록?”

“놉. 파괴의 발록은 아냐. 그건 일반 발록과 비교했을 때 저렇게 월등히 거대하지 않아.”

“그렇군.”

류첸이 소환해 낸 거대한 발록은 평범한 발록 두셋을 합쳐 놓은 것만큼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덩치 덕에, 전장에는 더욱 극적인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다.

쿵-쿵-쿵-.

대전장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거대한 발소리를 내며, 서서히 이안에게 다가가는 발록.

발록의 크기는 이안이 소환해 둔 정령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거대한 거구였으며, 때문에 유저들은 더욱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전장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과연 저 작은 정령들을 데리고, 정령 마법사가 발록을 어떻게 상대할지 몹시 궁금해졌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그 뜨거운 관심 속에서, 이안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발록이,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크롸아아아……!

“…….”

-하찮은 인간. 소멸시켜 주겠노라!

* * *

자신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를 보며, 이안은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과연 류첸…… 신화 등급 발록을 소환하는 데 성공한 모양이로군.’

사실 류첸을 상대로 소환술과 심판 검을 꺼내 들지 않은 채.

지금까지 버텨 낸 것만 해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안의 한계를 초월한 피지컬과 게임 전반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류첸의 고유 능력들에 대한 정보가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퍼포먼스였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이 거대한 발록의 등장은 사실상 외통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녀석의 전투력은 지금껏 류첸이 운용하던 마수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것이었으며, 이 녀석의 등장은 겨우 유지하고 있던 승부의 균형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이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 와중에도 이안은 침착하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으까.

‘후후, 이거 더 재밌어지는데?’

심지어 이렇게 극한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싱글싱글 웃고 있는 이안!

그런 그를 향해, 류첸이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웃는 거지?”

“맘대로 웃지도 못하냐?”

“이제 체념한 건가……?”

“그럴 리가.”

“그럼 설마…… 아직도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

“후후, 끝까지 재밌는 친구로군그래.”

자신이 숨겨 왔던 ‘최종 병기’의 등장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이안을 보며, 류첸 또한 더욱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었다.

‘대체 이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조금 자존심 상하기는 했지만, 눈앞에 있는 정령 마법사의 피지컬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고, 이안이나 카이를 제외하고도 이런 랭커가 존재할 것이라고는 지금껏 상상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류첸은 지금 승패와 무관하게, 이 PVP 자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경험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친구.”

“그래?”

“이 녀석이 가진 힘은…… 정말 상상 이상이니까 말이야.”

류첸의 자신감 넘치는 대사에, 이안은 다시 발록의 전신을 훑으며 감탄하였다.

‘크, 확실히 신화 등급이라 그런가. 멋지긴 하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이 그저 감탄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류첸의 이야기에 맞장구쳐 주며,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뭔가 기습적인 공격을 하기 위해 마법을 캐스팅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안이 시간을 버는 이유는 발록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큰소리 뻥뻥 쳤으니. 한 방 제대로 먹여 줘야지.’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발록은, 어지간한 마수들을 싹 다 꿰고 있는 이안으로서도 완전히 처음 보는 종(種)의 마수였다.

하지만 한때 신화 등급의 발록을 연성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퍼부으며 연구했던 이안이었기에, 발록의 외형에 드러나 있는 단서들로 녀석이 어떻게 만들어진 마수인지 짐작이 가능하였다.

‘최소 3단. 아니 4단 연성으로 만들어진 녀석이야.’

마수 연성술은 기본적으로 두 마리의 마수를 연성하여 새로운 마수를 탄생시키는 능력이다.

하지만 두 마리라는 숫자는 최소 단위일 뿐이었으며, 상위 등급의 더 뛰어난 개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못해도 세 마리 이상의 마수들을 조합하여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경험해 보아야만 한다.

이안이 크르르를 탄생시킬 때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안은 알 수 있었다.

‘역시 데빌드래곤이 핵심이었어. 발록에 데빌드래곤, 그리고 베히모스까지…… 이 셋은 확실하게 연성에 사용되었군.’

그때 탄생했던 다양한 실패작(?)들에 대한 데이터는 이안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으며, 눈앞의 발록과 과거의 기억들을 대조시켜 보는 것으로, 녀석의 재료로 쓰인 마수들의 정보를 8할 이상 유추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수 연성술’의 메커니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이안은, 그 데이터들만으로 놀라운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어떤 재료가 어떻게 연성에 쓰였는지 추측하는 것으로, 눈앞의 발록이 어떤 수준의 스텟을 어떻게 분배 받았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고유 능력들을 가지고 있을지까지 유추해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이안이 알아낸 마수 연성술의 ‘3원칙’에 의거한 귀납적 추론이라 할 수 있었다.

1. 연성된 마수의 전투 능력 총합은 베이스가 되는 마수의 능력치를 기준으로 설정된다.

2. 연성된 마수의 전투 능력 분배는 첫 번째 재료로 들어가는 마수의 능력치 분배 비율에 따라 설정된다.

3. 연성된 마수의 고유 능력은 재료로 들어간 모든 마수들의 고유 능력 중에 상위 티어의 고유 능력부터 랜덤으로 승계되며, 재료로 ‘능력석’을 사용하였을 시 능력석에 담긴 고유 능력이 우선적으로 습득된다.

‘그래 이거라면……! 충분히 판을 뒤집어 볼 수 있겠어.’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분석을 마친 이안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타탓-!

이안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콜로세움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앗! 정령 마법사가 기습적으로 반격을 시작합니다!

-대체 저 무시무시한 발록을 상대로 어쩌려는 것일까요?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도 맞는 말씀이네요. 어차피 류첸에게 모아 둔 승점을 헌납하지 않기 위해선…… 그를 잡는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이안과 류첸을 제외하고도 다른 세 검투사들이 혈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이미 해설진들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관중들의 시선은 두 마법사의 대결에 집중되어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전투가 시작된 뒤.

-미친……!

-저럴 수가!

콜로세움은 또다시 관중들의 경악 어린 탄성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 * *

만약 이안의 계획을 누군가 알았더라면, 말도 안 되는 도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이안이 추측해 낸 데이터가 그대로 들어맞았을 때에만 승산이 있는, 그야말로 리스크 덩어리의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놀랍도록 이 계획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일란의 그 누구보다도 마수 연성을 많이 해 본 그였기에 가능한 확신이라 할 수 있었다.

‘영혼잠식…… 분명 그걸 쓸 거야. 그 타이밍을 노려야 해.’

이안이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생각해 낸 계획. 그 열쇠가 될 하나의 고유 능력.

그것은 바로 저 발록이 가지고 있을 ‘영혼잠식’이라는 고유 능력이었다.

<영혼잠식>

-발록이 강력한 마력을 뿜어내어, 일시적으로 범위 내에 있는 허약한 대상의 영혼을 잠식시킨다. 피아 구분 없이 생명력이 5% 이하로 떨어진 대상에게 시전할 수 있으며, 잠식에 성공할 확률은 대상과 발록의 ‘지능’ 능력치에 따라 결정된다.(발록의 지능/대상의 지능 * 100)%

지속 시간 동안 대상은 발록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게 되며, 모든 공격 능력이 30%만큼 강화된다. 또, 발록이 사망할 때 까지 ‘무적’ 상태가 지속된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20분

-지속 시간 : 30분

아직 발록과 싸워 보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안이 이 영혼잠식을 단서로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였다.

이안은 저 거대한 발록을 연성해 내기 위해 들어간 재료를 8할 이상 짐작하고 있었고, 그 재료들의 고유 능력들까지도 전부 다 꿰고 있었기 때문에.

저 발록의 첫 번째 고유 능력 슬롯에 ‘영혼잠식’이 들어갔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영혼잠식보다 높은 티어의 고유 능력이 없으니, 능력석을 사용해 다른 능력을 삽입했다 해도, 영혼잠식은 무조건 남아있겠지.’

그리고 이 영혼잠식이라는 고유 능력은 이안이 누구보다도 빠삭하게 꿰고 있는 고유 능력이었다.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소환 마수인 ‘크르르’의 첫 번째 고유 능력도, 바로 영혼잠식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이안은 이 영혼잠식의 치명적인 약점을,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 약점만 확실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기울어진 이 판을 반대로 뒤집어 놓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변수는 단 하나…… 류첸이 영혼잠식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경우인데…….’

이안의 이 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류첸이 무조건 이안에게 ‘영혼잠식’을 발동시켜야만 한다.

하지만 스킬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 사실 영혼잠식은 이렇게 일대일의 상황에서 유용한 스킬은 아니었다.

영혼잠식을 상대에게 쓸 수 있다는 말은 이미 상대를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였으니, 보통 일대일에서는 쓸 상황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조금 특별하다.

일대일의 상황이면서도, 이 대결이 끝이 아닌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류첸이 이안에게 영혼잠식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안을 하수인으로 부려 가며 전장을 더욱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을 테니까.

‘눈치채지 못하게, 의도적으로 각을 줘야겠어. 기회가 왔는데도 영혼잠식을 쓰지 않을 리는 없을 테니까.’

해서 이안은 전력을 다해 싸우면서도, 슬금슬금 자신의 생명력이 깎여 나가는 것을 용인하였다.

콰쾅-!

캬아아오오!

그리고 지금까지와 달리 이안의 생명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해설진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격양되기 시작하였다.

-아, 로터스의 마법사도 결국, 류첸을 넘지는 못하는군요!

-발록의 강력한 파괴력 앞에서, 점점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깎여 나가는 이안의 생명력을 보며, 류첸은 점점 더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크흐흣! 아까의 패기는 어디로 간 것이냐!”

그의 눈에는 이안이 정말, 안간 힘을 쓰며 조금씩 무너지는 듯 보였으니 말이었다.

하여 그렇게,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더 지났을까?

류첸의 두 눈동자가, 붉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흐흐, 좋아. 조금만 더……!’

이안의 생명력이 10% 밑으로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영혼잠식을 발동시킬 타이밍을 재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발록의 입김이, 이안의 한쪽 어깨를 관통한 순간.

“영혼잠식……!”

류첸의 입에서 칼 같은 오더가 떨어졌고.

크워어어-!

명령을 받은 발록의 양손에서, 시커먼 어둠의 사슬이 이안을 향해 뻗어 나갔다.

-저, 저게 뭔가요?

-발록의 상징인 영혼잠식입니다!

-역시 류첸……! 승리를 넘어 그 다음 수까지 내다보고 있었군요!

그리고 뻗어 나가는 그 어둠의 사슬을 보며, 류첸은 득의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완벽한 타이밍에 영혼잠식을 사용하였으니, 모든 것이 그의 계획대로 흘러갔다고 확신한 것이다.

하여 이안을 휘감기 시작한 어둠을 보며, 광소를 터뜨리는 류첸!

“크하하핫!”

하지만 류첸의 그 웃음은 결코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

어둠이 휘감기는 순간, 이안의 몸에서 새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왔으니 말이었다.

-‘로터스’길드의 ‘정예 검투사’가, 고유 능력 ‘해제’를 발동시킵니다.

-‘인페르널 발록’의 고유 능력, 영혼잠식이 발동합니다.

-인페르널 발록이, 로터스 길드 ‘정예 검투사’의 영혼을 잠식합니다.

-로터스 길드 ‘정예 검투사’가 ‘무적’상태가 되었습니다.

-해제 효과로 인해, 로터스 길드 ‘정예 검투사’의 모든 상태 이상이 해제됩니다.

-로터스 길드 ‘정예 검투사’의 ‘영혼잠식’ 상태가 해제됩니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확인한 순간, 류첸은 어이없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

발록의 기운을 받아 ‘무적’상태가 된 이안이, 어느새 씨익 웃으며 지팡이를 치켜들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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