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9화 2. 콜로세움의 마법사 (3) >
* * *
남자가 휘두른 지팡이 주변으로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후우우웅-!
그리고 그 휘몰아치는 폭풍의 바람결을 타고, 새하얀 빛줄기들이 전장을 가르기 시작하였다.
“크헉……!”
“이게 무슨……!”
그를 제외한 나머지 랭커들은 황급히 정령 마법에 대응하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빛줄기들이 퍼지는 속도가 그렇게까지 빠르진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미 ‘마이티 프로즌’으로 인해 발이 묶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만 저항 포션이나 고유 능력을 사용하여 ‘행동 불능’만큼은 해제한 뒤, 수비 계열의 고유 능력을 발동시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따름이었다.
만약 행동 불능을 해제할 수단조차 없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말이다.
쿠콰콰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점점 다가오는 빛줄기들을 보며 마틴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떤 마법사를 만날지 모르는 전장이었기에, 해동 포션을 챙겨 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띠링-!
-‘해동 포션’ 아이템을 사용하였습니다.
-‘빙결’상태가 해제됩니다.
-‘행동 불능’ 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둔화’효과가 천천히 감소합니다.
‘무슨 광역 마법이, 캐스팅 시간이 이렇게 짧아?’
지금껏 수년 동안 최상위 랭커로서 카일란을 플레이해 온 마틴이지만 그조차도 정령 마법사는 오늘 처음 보았다.
물론 ‘정령 마법을 쓰는 마법사’ 자체를 완전히 처음 봤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랭커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의 진짜배기 정령 마법사가 처음이라는 말이었다.
게다가 녀석은 무슨 깡인지, 눈치 하나 보지 않고 곧바로 선방을 날려 버렸다.
심지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랭커 전부를 향해 말이다.
개인 대전의 특성상, 오만하다 못해 미친 짓에 가까운 선택을 한 것.
이 모든 상황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의외성 덩어리였고.
조금 구차하게 변명하자면, 그것이 ‘마이티 프로즌’을 아무도 피하지 못했던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젠장……!’
빠르게 쌍검을 뽑아 든 마틴이 현란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얇고 투명한 검막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스르르릉-!
어지간한 손재간이 아니고서는 발동시키기조차 어렵다는 검막.
“오오……!”
“검막이다!”
“역시, 마틴!”
그리고 그의 검막을 향해, 하얀 빛줄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로터스의 정예 검투사’의 정령 마법, ‘프로즌 블래스트’가 발동합니다.
-고유 능력, ‘검막’을 발동하였습니다.
-검막에 닿는 모든 물리, 마법 피해를 70~99%만큼 무효화합니다.
검막은 모든 투사체 방식의 공격을 가장 높은 효율로 방어해낼 수 있는 검사들의 최상급 수비 능력이었다.
스킬 궤적을 따라 깔끔하게 검을 움직여야만 발동되는 고유 능력이었기에, 발동 난이도는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그 궤적을 정확히 투사체에 맞춰 내기만 하면, 방패 막기 이상의 방어 효율을 보여 주는 고유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투사체의 개수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탄 속이 느린 공격이라면, 이 검막을 활용하기 가장 좋은 상황이라고 마틴은 판단하였고.
팅- 티팅-!
그의 판단은 확실히 맞아떨어졌다.
-‘검막’으로 투사체를 방어하였습니다!
-해당 공격의 위력을 82%만큼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2,870만큼 감소합니다.
-‘검막’으로 투사체를 방어하였습니다!
-해당 공격의 위력을 91.5%만큼 흡수합니다.
……중략…….
회오리치듯 쇄도하는 얼음 조각들을 연속해서 쳐 내며, 마틴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좋았어!’
시전자로부터 멀어질수록 얼음 조각들의 탄속이 더 느려진 탓에, 생각보다 더 쉽게 투사체들을 쳐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조금씩 피해를 입긴 하지만, 이 정도는 생명력 게이지에 기스 정도 나는 수준.
거기에 해동 포션의 효과로 이제 둔화까지 거의 다 풀렸으니.
그 덕분에 잔뜩 긴장했던 마틴의 표정은 슬슬 풀어지는 중이었다.
‘이거 이렇게 되면, 오히려 저 마법사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마틴은 날아드는 투사체들에 더욱 집중하며, 계속해서 마법을 채널링 중인 남자를 슬쩍 응시하였다.
이어서 그의 입에 걸린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그의 화려한 투사체 마법 덕분에 마틴의 검막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으니.
어쩌면 오늘, 매드 무비를 한번 찍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 것이다.
인지도에 무척이나 집착하는 마틴에게는 전투에서의 승리만큼이나 중요한 요소.
하지만 잠시 후, 오랜만에 풀가동 중이던 그의 행복 회로는 순식간에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03,982만큼 감소합니다.
날아들던 십수 발의 얼음 파편을 쳐 내던 와중에 실수로 두발 정도를 허용하고 말았고.
-냉기 저항력이 5%만큼 감소합니다.
-마법 방어력이 3%만큼 감소합니다.
-움직임이 7%만큼 둔화됩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24,541만큼 감소합니다.
-냉기 저항력이…….
……후략…….
그것을 시작으로, 검막의 운용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커, 커헉!”
최대한 검을 빠르게 움직여야 완벽한 방어가 가능한 상황에서, 움직임이 조금씩 둔화되기 시작하니.
한번 틈을 비집고 얼음 파편이 유입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73,124만큼 감소합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252,240만큼 감소합니다.
게다가 저항력과 마법 방어력까지 야금야금 깎아 버리니, 템 세팅으로 수백만 단위까지 맞춰 놓은 마틴의 생명력 게이지는 살살 녹아내리기 시작하였다.
‘제, 젠장! 이 미친 마법은 지속 시간이 왜 이렇게 길어!’
그 때문에 줄어드는 생명력을 보며, 마법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한 마틴.
“흐으읍!”
다행인 것은 마틴의 생명력이 30% 정도 남았을 시점에, 남자의 빙결 마법이 끝났다는 점이었다.
누군가의 반격에 의해서 말이다.
펑-!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륵 하고 사라진 얼음 폭풍.
콰콰쾅-!
그리고 그 폭음과 함께, 관중들의 열기는 더욱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 * *
아무렇지 않은 듯 마법을 발동시켰지만, 이 배경에는 사실 이안의 치밀한 설계가 깔려 있었다.
검투장의 전장 특성을 십분 활용한, 이안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역시, 생각대로야.’
모두가 적인 개인 대전의 특성상, 전투 시작 직후 탐색전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하였고, 그 시간을 활용하여 ‘마이티 프로즌’ 마법을 빠르게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몇 초 지난 시점에 대사를 치며 시선을 끌어모은 것까지도, 눈속임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잔뜩 긴장한 첫 라운드에서 이안의 잔기술(?)을 눈치채지 못한 것일 뿐이고 말이다.
‘이 정도면 아주 깔끔했어.’
물론 이로 인해 나머지 네 검투사들에게 집중적으로 포커싱당하겠지만, 그런 정도의 리스크는 당연히 염두해 두고 있었다.
어차피 이 한 번의 공격으로, 한두 개 이상의 킬 포인트는 따고 시작할 것임을 확신했으니 말이다.
‘마이티 프로즌에 프로즌 블래스트의 시너지라면…… 어쩌면 전멸시킬지도 모르지.’
이안이 최초로 얻었던 정령 마법인 ‘마이티 프로즌’과, 삼단 융합으로 만들어 낸 마법인 ‘프로즌 블래스트’.
이안이 믿었던 두 마법의 시너지는 다음과 같았다.
<마이티 프로즌(Mighty Frozen)>
-분류 : 고대의 정령 마법
……중략…….
-시전자 주변으로, 반경 50M 이내의 모든 적들을 얼려 버립니다.
……중략…….
‘빙결’상태가 된 대상은 10초 동안 ‘행동 불능’에 빠지며, 물리 방어력이 500%만큼 증가하고 마법 방어력이 50%만큼 감소합니다. 또 ‘빙결’, 혹은 ‘둔화’ 상태일 때는 모든 저항력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프로즌 블래스트(Frozen Blast)>
-분류 : 고대의 정령 마법
……중략…….
-시전자를 중심으로 강력한 냉기의 바람과 수없이 많은 얼음의 빛줄기를 방출합니다. 방출된 빛줄기는 냉기의 바람을 타고 나선형으로 퍼져 나가며…….
……중략…….
‘둔화’상태인 대상에게 얼음 조각이 적중될 시, 대상의 저항력과 방어력을 소폭 감소시킵니다.
일단 한번 냉기의 소용돌이 안에 발을 들여 놓기만 하면, 그 지옥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
프로즌 블래스트의 지속 시간은 1분 정도였고, 그 정도면 탱커가 아닌 이상 버텨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안은 확신하였다.
‘누군가 내 캐스팅을 끊을 수 있다면 얘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콰아아아-!
상황은 이안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
얼음의 폭풍이 이어지는 동안, 순식간에 두 개의 킬 포인트를 획득한 것이다.
-‘천웅’길드의 ‘정예 검투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천웅’길드 ‘정예 검투사’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로터스’길드의 ‘정예 검투사’가 킬 포인트를 1Point 획득하였습니다.
-‘스콜피온’길드 ‘정예 검투사’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로터스’길드의 ‘정예 검투사’가 킬 포인트를 1Point 획득하였습니다.
로터스를 제외하면 A조의 최강이라 평가받던 천웅 길드의 선발 랭커와 함께, 스콜피온 길드의 선발 랭커가 동시에 아웃되어 버린 것.
그리고 두 개의 킬 포인트를 확인한 이안은 히죽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턴 어떤 미친 짓을 한다 해도, 길드원들로부터 까일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 말이었다.
‘일단 교체 티켓 하나 값은 이미 한 것 같고…….’
이어서 이안은 아직까지 얼음 폭풍 속에서 버티고 있는 두 랭커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웃된 두 길드에서 다음 선발을 내보내기 전까지, 어떻게든 나머지 둘 다 처리하고 싶었으니 말이었다.
‘오호, 저기 버티고 있는 놈은 발러 길드인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기사 클래스로군…… 가만, 쟤는 마틴이잖아?’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이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생각지도 못 했던 방향에서, 커다란 화염의 구체가 쏘아져 왔기 때문이었다.
화르륵-!
천웅 길드에서 첫 번째 선발이 아웃되자마자, 단 1초의 대기시간도 없이 곧바로 두 번째 선발을 투입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이안은 어쩔 수 없이 캐스팅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대충 봐도 그것은 강력한 화염 마법이었고, 일단 방어해 내는 것이 먼저였으니 말이다.
“리플렉션 실드(Reflection Shield).”
퍼펑-!
‘태고의 땅’이 가진 마지막 고유 능력인 리플렉션 실드를 발동하여, 기습 공격을 깔끔하게 막아 낸 이안.
심지어 이안은 화염의 구체를 막아 내는 것으로 모자라, 그것을 정확한 위치로 튕겨 보내었다.
전장에 얼어 있던 발러 길드의 기사를 향해, 정확하게 쏘아 보낸 것이다.
쾅-!
-‘발러’길드 ‘정예 검투사’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로터스’길드의 ‘정예 검투사’가 킬 포인트를 1Point 획득하였습니다.
당한 사람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킬 포인트를 악착같이 하나 더 따낸 이다.
‘밥상 다 차려 놓고 뺏길 순 없지.’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튕겨 낸 투사체를 적에게 적중하여, ‘리플렉션 실드(Reflection Shield)’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회복되었습니다.
아쉽게(?) 마틴까지 잡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흡족한 표정이 된 이안.
‘저놈이야 언제든 잡으면 그만이니까.’
그런 그의 시선이 이번에는 새로 등장한 두 랭커들을 향했다.
이어서 이안의 얼굴에 재밌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오호.”
대충 봐도 새로 등장한 천웅 길드와 스콜피온 길드의 선발랭커들이, 자신을 저격했음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크흐흐…….”
그들을 확인한 뒤, 마치 훈이가 빙의한 듯이 요상한 웃음을 터뜨리는 이안.
‘바보들…….’
이안이 웃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얼음 계열 마법사인 줄 알았나 보네.’
그를 저격한답시고 새로 등장한 두 랭커가, 다름 아닌 화염법사였기 때문이었다.
빙한 계열 마법사로 추측되는 이안을 카운터 치기 위하여, 극상성의 마법사를 출전시킨 것.
“쯧.”
그런 마법사들을 보며, 이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새로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는 어느새, 폭풍의 정령 ‘블래스터’가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