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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17화 (920/1,027)

< 917화 2. 콜로세움의 마법사 (1) >

한눈에 보아도 어마어마한 마력이 휘감겨 있는 에메랄드빛깔의 화려한 나무 지팡이.

처음 보는 비주얼의 마법사가 등장하자, 모든 관중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기 시작하였다.

기사 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인 데다, 무척이나 튀는 비주얼이였기 때문이었다.

“저 마법사는 대체 뭐야?”

“그러게. 완전히 처음 보는 랭커 같은데.”

“어느 진영이야?”

“깃발 보니 로터스야.”

“로터스에 저런 마법사가 있었다고?”

“아니, 복장은 왜 저 모양임.”

에메랄드 빛 지팡이에 황금빛 로브. 거기에 새빨간 신발과 벨트, 머리 장식까지.

크리스마스트리에나 어울릴 법한(?) 화려한 색 배합은 모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혹시, 관종인가.”

“그래도 능력은 있겠지? 로터스 선발인 거 보면?”

“궁금하다. 대체 어떤 랭커일까?”

하지만 관중들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마법사는 그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지팡이를 쥐고 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타는 듯이 붉은 머리 장식을 한 차례 고쳐 쓸 뿐이었다.

화염의 문양으로 장식된 머리 장식은 남자의 눈과 코까지 가리는 디자인이었기에,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미적 감각은 꽝이라는 거야.”

“장비 대충 봐도 전설급 이상 도배인 것 같은데……. 어떻게 저 장비들로 저런 룩이 나오지?”

“염색이라도 발라서 깔 맞춤 좀 하지.”

“그러니까.”

콜로세움에 직관하러 온 카일란의 팬들은, 궁금한 반, 기대감 반으로 전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전투가 시작되면 출전자들의 머리 위에 시스템 박스가 뜰 테고, 그러면 남자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10분이 지나 전투가 시작됐을 때.

“……?”

“뭐야, 유저 네임 안 뜨잖아?”

콜로세움의 랭커들 머리 위에 뜬 시스템 박스를 확인한 팬들은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보통 유저 네임과 레벨 정보, 클래스 등이 떠야 하는 머리 위의 시스템 박스에, 간결한 한 줄의 메시지만 떠 있었으니 말이었다.

-로터스 길드, 정예 검투사

열 명의 전체 라인업은 공개되어 있지만, 출전자의 정보는 전부 비공개가 룰이었던 것이다.

“출전 순서를 전략적으로 운용해야 해서 그런 것 같은데.”

“이거 안 알려 주니까 더 궁금해지네, 진짜.”

출전 길드들은 보통 선발로 에이스 랭커를 내놓지 않기 때문에, 유저들의 관심은 온통 녹색 마법사(?)에게로 쏠려 있었다.

그렇다고 선발로 나온 랭커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탑 티어 에이스가 등장한 것이 아닌 이상, 첫 등장이 분명한 뉴페이스가 더 궁금했으니 말이다.

“쳇, 그래도 뭐, 싸우는 거 보다 보면 결국 알게 되겠지.”

“하긴 클래스랑 주력 마법만 드러나도, 금방 누군지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전투가 시작된 뒤, 유저들은 더욱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클래스가 대체 뭐지?”

녹색 마법사가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하자, 그의 정체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 들어갔으니 말이었다.

* * *

처음 보는 녹색 마법사의 등장으로, 콜로세움이 혼란에 빠지던 그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4시간 전.

이미 그 이상의 혼란을 한 차례 겪은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로터스의 기사단원들이었다.

기사 대전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극적으로 나타난 이안이, 모두가 생각지도 못했던 기가 막힌 이야기들을 꺼냈으니 말이었다.

“그러니까 이안, 네가 진짜 선발로 나가겠다고?”

“응. 그렇다니까?”

이안의 출전 순서는 당연히 열 번째 순서로 배정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선발을 하겠다고 우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에 원래 선발로 이름을 올려 두고 있던 훈이부터가 강력히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아, 안 돼. 형.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안 되는데?”

“형이 1타로 나가면 다른 사람은 출전도 못 할 거 아냐.”

“음?”

“형은 무조건 마지막에 나가야 된다고.”

그리고 반발하는 인원은 당연히 훈이 뿐만이 아니었다.

평소에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던 레비아부터 시작해서.

“맞아요, 이안 님. 만에 하나의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이안님이 열 번째로 들어가야 해요.”

오랜만에 회의에 참석한 클로반까지.

“물론 열 번째로 들어가면 차례가 오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물론 그들이 반발한다 하여, 이안이 자신의 주장을 굽힐 리는 없었지만 말이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내가 무슨 보험이냐?”

“보험 맞는데.”

“선발로 나 안 내보내 주면 출전 안 한다?”

“……!”

“그런!”

선발 보장을 안 해 줄 시 출전을 안 해 버린다는 강력한 협박을 시전한 것이다.

“어차피 나 없어도 다 이기던데, 뭐. 난 다시 퀘스트나 깨러 가야지.”

“하아…….”

이안의 고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는 헤르스.

마스터인 헤르스로서는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다른 랭커가 했다면 공갈에 가까운 협박이었지만, 이안의 입에서 나온 이상 결코 위협용 협박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헤르스가 생각하기에 모든 카일란 유저들 중, 기사 대전에 가장 관심이 없는 인물이 바로 그일 것이었을 테니까.

“후우, 꼭 그래야겠냐.”

헤르스는 이마에 주름이 하나 늘어나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가 이안을 마지막으로 빼고 싶은 이유는 다른 랭커들과 조금 달랐다.

그는 어차피 이안이 선발로 들어가든 후발로 들어가든 대기 멤버로 빠지든.

1차 전장인 콜로세움에서는 무조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정확히는 아무리 죽을 쒀도 2위 이상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

그래서 헤르스는 이안을 한 번 더 숨기고 싶었다.

그가 열 번째 멤버로 들어가면, 높은 확률로 그가 출전하기 전에 콜로세움의 승자들이 결정 날 테니 말이었다.

‘운명의 언덕에 들어가기 전까지 진성이의 전력을 숨길 수만 있다면, 우승 확률은 더욱 높아질 거야.’

자신의 기회가 오지 않을까 봐 불안에 떠는 훈이나 레미르 등과 달리.

길드 마스터인 헤르스의 생각은 좀 더 깊었던 것이다.

하지만 헤르스의 주름이 늘어나는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선발로 나서겠다던 이안이 갑자기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발언을 꺼내 들었으니 말이다.

“대신 재밌는 조건을 하나 걸어 볼게.”

“무슨 조건인데?”

“이번 검투장 전투에선, 소환수 한 마리도 안 쓸 거야.”

“에?”

“뭐라고?”

“거기에 심판 검도 안 들고, 지팡이 들고 싸울게.”

헤르스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원들조차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귀를 의심할 수준.

“……?”

“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길드 회의실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고,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리 ‘이안갓’이라 하더라도, 거의 맨손으로 싸우겠다는 수준의 발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정적도 잠시.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훈이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정도 페널티면 뭐. 난 찬성!”

“뭐?”

“설마, 저 형 없다고, 우리 길드가 검투장에서 미끄러지겠음?”

훈이의 발언에, 또다시 정적이 흐르는 회의실.

그리고 이번에 정적을 깨고 입을 연 것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레미르였다.

“하긴, 그것도 그런가?”

이어서 레미르가 맞장구를 쳐 주자, 훈이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형, 아마 저렇게 말하는 것 보면 지팡이 들고도 꽤 버텨 줄 거임.”

“뭐, 이안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이어서 하나둘 동조하기 시작하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길드 마스터인 헤르스를 제외하고는 다들 어차피 콜로세움은 패스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오직 이안이 다 해 먹는(?) 상황만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 거의 국가 대항전 수준 게임에서 이게 무슨…….”

헤르스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지만, 이미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어 보였다.

다들 신이 나서 이안을 선발로 올려 놓고, 나머지 순서를 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길드 마스터의 직권으로 정해 버리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 헤르스였다.

‘후, 이러면 방법은 하나뿐인데.’

그 때문에 한 가지 절충안을 찾은 헤르스가, 이안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네 말대로 해, 이안.”

“굳. 역시 헤르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위험한 상황이 나오면, 무조건 스왑 카드를 너한테 쓸 거야.”

“스왑 카드?”

“그래. 오늘 뜬 세부 룰 봤는지 모르겠는데, 경기 진행되는 동안 총 세 장의 스왑 카드를 쓸 수 있거든.”

“아하?”

헤르스가 찾은 절충안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일단 이안이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지팡이를 휘두르다가, 결정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오면 다음 출전자로 스왑하는 것이다.

경기 동안 세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카드였지만, 그래도 이안이라는 카드를 잃어버리는 것보단 나은 선택이었다.

‘이안의 전력을 숨기는 효과도 있을 테니,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일지도.’

잠시 뜸을 들인 헤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스왑되서 대기실로 들어온 뒤에, 넌 무조건 마지막 순서야.”

“다시 차례가 오면 그땐, 당연히 내 전력 그대로 싸워야겠지?”

“맞아. 그게 내 조건이지.”

헤르스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가 첫 번째 순서로 나가고 싶었던 것은 부담 없이 정령 마법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이유 하나였으니 말이다.

애초에 전력을 다해 랭커들을 쓸어 버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등의 명예욕은 전혀 없었던 이안이었다.

“좋아, 헤르스. 그럼 그렇게 하자고.”

“콜!”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해.”

“뭘?”

“내가 스왑을 받아들이는 건, ‘정말로’ 위험할 때뿐일 거야.”

이안의 이야기에 헤르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이안이 말한 마지막 이야기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스왑 카드가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위험하기 직전까지는 최대한 전장에서 활약하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자, 이안이 순서는 정했으니, 이제 나머지 빨리 정해 보자고.”

“그래.”

“좋아요.”

“어차피 상황 봐서 조금씩 순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싹 다 정해 놔야 혼란이 적을 거야.”

하지만 이때만 해도 길드원들은 알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흠, 내가 정령 마법으로 몇 명이나 잡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지금 그들이 짜기 시작한 전략들이, 모두 의미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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