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913화 (916/1,027)

< 913화 8. 트로웰을 깨우다 (3) >

* * *

그린 드레이크들은 강력했다.

초월 120레벨대의 몬스터들이니 강력한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물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강력하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키야아오오-!

120레벨대는 커녕 130~140레벨대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스텟과 고유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안과 셀라무스의 전사들은, 적잖이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드레이크가 휘둘러 치는 꼬리에 잘못 맞기라도 하면, 생명력이 절반 가까이 깎여 나가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후, 이 정도면……. 스텟이 거의 트리오르랑 맞먹는 것 같은데…….’

이안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가정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드레이크의 등에 꽂혀 있는 칠흙빛의 사슬.

‘저게 어떤 버프를 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드레이크들의 이름 옆에 붙어 있는 ‘키메라 3단계’라는 수식어.

‘어쩌면 이 두 가지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하여 지금 이안이 하려는 것은, 어둠 속으로 이어진 사슬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이대로 그린 드레이크들과 대치하다가는, 상황만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았으니 말이다.

타탓-!

드레이크의 발톱을 깔끔하게 피해 낸 이안이, 그대로 몸을 빙그르 회전시켰다.

이어서 순식간에 녀석의 뒤를 잡은 이안은, 역수로 쥐고 있던 대검을 대각선으로 있는 힘껏 그어 올렸다.

쐐애액-!

이어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쇳소리.

까강-!

이안이 노린 것은 드레이크의 약점이 아닌, 녀석의 등에 이어진 어둠의 사슬이었다.

-‘어둠의 사슬’을 가격하였습니다.

-‘어둠의 사슬’의 내구도가 950만큼 감소합니다.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거 왜 이렇게 튼튼해?’

950이라는 낮은 대미지도 대미지였지만, 사슬의 내구도 게이지가 흠집조차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구도가 수백만 정도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십만 단위는 넘어 보였던 것.

‘이래서는 답이 없는데.’

계속해서 두들기다 보면 언젠가는 끊어지겠지만, 그 전에 셀라무스 전사들이 전멸할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하여 이안의 시선은, 더 깊숙한 어둠 속으로 이어졌다.

‘이걸 끊어 낼 수 없다면, 저 어둠 속으로 결국 들어가야 하나.’

사슬 자체를 끊어 내는 게 힘들다면, 사슬이 이어진 끝자락에 있을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안의 생각은, 실행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대전사님……!”

그가 움직이기 전에, 크로네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으니 말이었다.

“방금 그 소리…….”

“쇳소리 말입니까?”

“예.”

“음……?”

“혹시, 어둠의 사슬입니까?”

“그걸 어떻게……!”

“역시 그랬군요.”

이안에게 이야기하던 크로네의 표정이, 순간 심각해졌다.

이어서 그것을 발견한 이안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뭔가 아나 본데?’

그리고 이안의 기대처럼, 크로네는 이 사슬들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

“어떻게든 최대한 빠르게, 이 사슬들을 끊어 내야 합니다.”

“최소한의 이유라도 알아야…….”

“키메라들은 어둠의 사슬을 통해 힘을 전달 받습니다.”

“아……!”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들은 점점 더 강해질 거란 이야깁니다.”

크로네의 말에, 이안은 침음성을 흘렸다.

‘사슬이 열 개도 넘는데……. 이걸 다 끊어야 된다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이안이,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사슬이 이어진 저 어둠 안쪽에는 대체 어떤 존재가 있는 겁니까?”

“그건…….”

잠시 말끝을 흐리던 크로네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고.

“아마 어둠의 사슬들은, 트로웰 님께…… 이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안의 두 동공은, 다시 커다랗게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예……?”

* * *

상황이 상황인 만큼, 크로네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안은, 가장 중요한 정보들은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그린 드레이크들이……. 정령왕 트로웰한테 빨대를 꽂고 있었다는 거네.’

이안이 예상했던 대로 드레이크들의 강력함은, 어둠의 사슬과 ‘키메라’의 특성에 있었다.

정확히는 ‘키메라 3단계’가 되면 쓸 수 있는 고유능력인, ‘어둠의 사슬’이 핵심이었던 것.

어둠의 사슬은 ‘행동불능’ 상태인 대상에게만 발동시킬 수 있는 고유 능력으로, 대상의 생기를 흡수하여 자신의 전투능력을 강화하는 스킬이었다.

때문에 당연히 강력한 대상에게 사용할수록 더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었고.

그 대상이 정령왕 트로웰이었기 때문에, 고작(?) 유일 등급의 드레이크들이 어마어마하게 강력해진 것이다.

‘트로웰은 잠들어 있는 상태였으니 당연히 행동불능이겠고. 그래서 이런 특이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었던 거네.’

본래 어둠의 사슬은, 사슬을 연결한 대상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면 사라지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대지의 요람 안에 잠든 트로웰의 생명력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웠고.

때문에 드레이크들은 이안이 나타난 시점부터 계속해서 무한정 강해지고 있었던 것.

때문에 시간을 끌수록 드레이크들을 처치하는 일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슬은 무작정 끊으면 됩니까?”

“그렇기는 한데……. 쉽게 부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요?”

하지만 이 예상치 못했던 난관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강렬한 어둠의 힘으로 만들어진 사슬은……. 빛, 혹은 성령의 힘이 아니면 끊어 내기 힘드니까요.”

“아하. 쉽네요.”

“네……?”

비터스텔라의 모든 유적을 털어먹은 이안에게는, 거의 모든 속성의 유물이 있었으니 말이다.

“어그로, 아니. 녀석들 관심 좀 끌어 주세요, 크로네 님.”

“……?”

“제게 방법이 있을 것 같으니까요.”

스르릉-!

순식간에 무기를 스왑하여 성령의 심판 검으로 바꿔 든 이안이, 다시 빛살 같은 속도로 드레이크들의 사이를 휘젓고 들어갔다.

스릉- 콰앙-!

악령의 심판 검이나 심연의 심판 검보다 DPS가 떨어지는 편이기는 하지만, 대신에 강력한 탱킹력과 좀비 같은 유지력을 만들어 주는 성령의 심판 검.

무기를 바꾸자 이안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은 오히려 더 넓어졌고, 덕분에 더 쉽게 드레이크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크르르륵!

이안의 기습적인 난입에 당황한 드레이크 하나가 서둘러 발톱을 휘둘렀지만, 이미 이안의 검은 녀석의 등 뒤를 향하고 있었다.

콰득-!

-‘어둠의 사슬’을 가격하였습니다.

-‘시온(Xion)’ 속성의 공격으로, 어둠의 힘에 균열이 생깁니다.

-‘어둠의 사슬’의 내구도가 2,789만큼 감소합니다.

키에엑-?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히 깎여 나간 내구도를 보며,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음, 역시 방법이 생긴 것 같은데.’

가격할 때 사슬에서 떨어져 나간 검은 기운을 확인한 이안은, 연달아 검을 휘둘러 보았다.

쾅- 콰쾅-!

-‘어둠의 사슬’을 가격하였습니다.

-‘시온(Xion)’ 속성의 공격으로, 어둠의 힘에 균열이 생깁니다.

-‘어둠의 사슬’의 내구도가 3,259만큼 감소합니다.

-‘어둠의 사슬’의 내구도가 3,670만큼 감소합니다.

-‘어둠의 사슬’의 내구도가 4,532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이어서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이안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시온 속성으로 타격하면 어둠속성 실드가 벗겨지는 구조였네. 이러면 다른 속성 공격도 들어가겠는데?’

쉬익-!

날아드는 드레이크의 꼬리를 빠르게 피해 낸 이안은.

다시 녀석의 뒤를 잡으며, 원래 착용했던 무기인 악령의 심판 검으로 교체하였다.

스릉-!

이어서 어둠의 기운이 벗겨진 사슬을 향해, 심판 검을 그대로 꽂아 넣었다.

콰쾅-!

-‘어둠의 사슬’을 가격하였습니다.

-‘어둠의 사슬’의 내구도가 5,280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흡족한 표정이 될 수 있었다.

“역시!”

아직까지 사슬의 내구도를 10%도 채 깎지 못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으니 말이다.

‘일단 어둠만 벗겨 내면 다른 타입의 공격도 제대로 들어가네. 이러면 답은……!’

머리를 빠르게 굴린 이안이, 다시 몸을 날려 전장을 휘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크로네, 이쪽으로!”

“예, 대전사님!”

전장에 흩어져 있던 셀라무스의 전사들에게, 분주히 오더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 * *

“오호, 마침 재밌는 타이밍이네.”

“하하, 그러게요. 어제부터 웬 종일 이안만 모니터링 중인데, 가장 고전하고 있는 타이밍에 팀장님이 오신 겁니다.”

“오, 그래?”

서버 당직실에서 로그를 전부 검토한 뒤.

나지찬이 향한 곳은 바로, 기획팀의 메인 모니터링실이었다.

이안에게 줄 만한 떡밥은 찾았으니, 그것을 던져 줄 타이밍을 살펴야 했던 것이다.

‘어디보자……. 트로웰 퀘 마지막 페이즈잖아?’

대충 화면에 떠 있는 몬스터의 생김새만 보고, 구체적인 퀘스트의 페이즈까지 알아차린 나지찬은.

히죽 웃으며 의자에 눌러 앉았다.

원래는 이안의 현재 퀘스트 상황만 살피고 곧바로 기획실로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상황을 보니 마음이 조금 바뀐 것이다.

“이안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

“한 이십 분 됐을 겁니다.”

“어, 정말?”

“왜 그러십니까?”

“상황이 재밌어서 그러지.”

본인의 기획서뿐 아니라 타 팀의 기획 문서까지도 빠짐없이 챙겨 보는 나지찬은, 지금 이안이 공략중인 페이즈가 정확히 어떤 구조인지 완벽히 꿰고 있었다.

‘이미 20분이나 지났으면, 드레이크들 벌써 답 없이 세졌을 텐데.’

물론 사슬을 끊을 수만 있다면 누적된 버프는 사라질 테지만, 20분이나 지날 동안 끊어 내지 못했다는 것은 고전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초월 90레벨대로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기적이긴 한데……. 그래도 이안이 막히는 장면을 보게 되는 건가?’

나지찬은 은근히 기대하며, 이안의 상황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이안이 한번 막혀 주면, 우리 팀 입장에선 좀 편해지는데…….’

이안이라면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끄러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모니터링실에 있던 직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팀장님…….”

“응?”

“이안 저 친구, 아까부터 딜은 안 넣고 계속 왔다 갔다 하기만 하던데요.”

“그래?”

“네. 물론 드레이크들이 세긴 한데, 제가 볼 땐 충분히 딜 넣을 각도 많이 나왔거든요.”

“음…….”

“근데 공격은 안 하고 계속 빙글빙글 돌기만 하고 있어요.”

“그러네.”

“끌고 온 셀라무스 전사들까지도, 전부 다 그렇게 컨트롤하고 있고요.”

직원의 말을 들은 나지찬의 두 눈에, 다시 이채가 어렸다.

그의 말을 듣고 난 뒤 화면을 살펴보니, 이안이 뭘 하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운데 사슬을 엉겨 놓고 있잖아? 대체 뭐 하는 거지?’

나지찬은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안이 지금 하고 있는 게 드레이크들의 사슬을 엉켜 놓는 것이라는 정도는 인지했는데, 그 이유를 깨닫지 못했으니 말이었다.

‘어둠의 사슬은 길이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 저런다고 드레이크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안의 의중을 모르니, 반대로 흥미는 더욱 동할 수밖에 없는 것.

‘대체 뭘까? 어쩌려고 저러는 거지?’

대체로 극단적인 플레이를 즐겨하는 이안이었기에, 이 상황도 뭔가를 위한 설계라고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엘, 빛의 섬전!

-네, 아빠!

콰쾅- 콰콰쾅-!

엘카릭스의 손에서 터져 나오는 마법을 확인한 나지찬은, 이안이 뭘 하려는지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저걸 한 번에 터뜨리려고……!”

연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새하얀 섬전들이 터질 때마다, 엉겨 붙은 사슬의 어둠이 한 번에 씻겨 나갔으니 말이었다.

‘빛의 섬전’은 기본적으로 회복 스킬이었기에 DPS 자체는 높지 않았으나.

다단히트로 구성된 광역 마법이라는 장점을, 이안이 최대한 활용한 것.

‘사슬을 보호하는 어둠을 벗겨 내는 방법을, 정확히 꿰뚫었네.’

대미지와 상관없이 타격 횟수만큼 어둠이 벗겨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안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나지찬의 감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토르, 파괴의 망치!

크워어어-!

깔끔하게 어둠이 벗겨진 사슬들의 위로, 토르의 거대한 망치가 떨어져 내렸고.

그것으로 십수 마리 드레이크의 등에 꽂혀 있던 사슬들이, 뭉텅이로 끊겨 버렸으니 말이었다.

콰아앙-!

그리고 거기까지 확인한 나지찬은, 그대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벌써 가시게요, 팀장님?”

“그래.”

“이제야 이안의 반격이 시작된 것 같은데…….”

사슬 버프가 소멸된 드레이크들은 이안의 밥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반격은 무슨. 게임은 방금 끝났어.”

“넵?”

“나 간다. 특이사항 있으면 전화로 보고하고.”

그리고 모니터링실을 나서던 나지찬은, 저도 모르게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쳇, 그러면 그렇지.”

역시 요행(?)은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꼈으니 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