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1화 8. 트로웰을 깨우다 >
우우웅-!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에메랄드빛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이안이 인벤토리를 열어 ‘태고의 땅’을 꺼내 든 순간, 거대한 대지의 기운이 요람 안에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고오오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크로네의 주름진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이, 이건……!”
대지의 성물에게서나 느껴질 법한 어마어마한 대지의 기운과, 그것을 빨아들이며 영롱하게 빛나는 기다란 나무 지팡이.
인위적이지 않은 고급스런 새하얀 빛깔을 띤 나무 지팡이를 보며, 크로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태고의 땅……! 이것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그것은 고대 정령계의 고서(古書)에서나 가끔 묘사되던, 전설적인 지팡이와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이 지팡이를 아시나 보군요, 크로네.”
“정말, 태고의 땅이 맞습니까?”
“그런 듯합니다.”
“아아…… 정말 엄청나군요.”
크로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탄성을 토해 내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신물의 모습을 실제로 확인하니, 감탄을 금할 길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안의 손에 어째서 이 지팡이가 들어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처음 지팡이를 보았을 때 이미,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트로웰 님과 대지 신께서…… 대전사님을 대자연의 대리인으로 인정하신 것일 테지.’
‘태고의 땅’은 과거 정령계의 대마법사였던 ‘에르가’가의 무기였다.
대지의 정령왕 트로웰과 함께 끝까지 대지의 요람을 지켜내었던, 정령계의 영웅이자 전설적인 정령 마법사.
에르가는 이 태고의 땅을 들고 수많은 기계 군단을 저지하였으며, 그렇기에 정령계의 수많은 역사서에도 등장하는 무기가 바로 이 태고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에르가 또한 대지 신으로부터 처음 이 무기를 얻었다 전해지니, 이안에게 어째서 태고의 땅이 생겼는지 크로네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절대자님이라면 확실히, 대마법사 에르가 님 만큼이나 뛰어나신 분이지.’
하지만 크로네는 이렇게 상황을 이해하는 한편, 걱정되는 부분도 한 가지 있었다.
‘그나저나 절대자님께선 검술의 대가…… 과연 태고의 땅이 가진 힘을 제대로 사용하실 수 있을는지…….’
이안이 정령 마법을 쓰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로네가 보기에 이안의 주력 무기는 ‘검’이었으니 말이다.
한편 크로네가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사이.
이안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지팡이의 정보 창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태고의 땅>
-분류 : 지팡이
-등급 : 신화(초월)
-착용 제한 : 알 수 없음
-마법 공격력 : 3,312~4,687
-내구도 : 12,500/12,500
-옵션 : 모든 전투 능력 +10%, 마법 캐스팅 속도 +30%, 치명타 확률 +35%, 마력 흡수 +3%, ‘대지’속성의 모든 고유 능력 재사용 대기시간 –35%, ‘대지’속성의 모든 공격 마법 위력 +25%
-‘태고의 땅’을 사용하는 모든 공격에 마법 공격력의 125%만큼의 ‘땅’속성 피해가 추가됩니다. ……중략……. 고대의 정령 마법사 ‘에르가’가 사용하던, 대지의 힘이 담긴 지팡이입니다. ‘태고의 땅’이 가진 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면, 강력한 대지의 정령 마법들을 구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고의 땅은 신화 등급의 무기답게, 어마어마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심판 검 세트처럼 에고 웨폰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제하더라도 충분히 비슷한 급의 무기로 취급받을 만한 고유 능력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와, 역시 신화 등급이라는 건가.’
이안의 마음에 가장 드는 부분은 대부분의 고유 능력이 ‘조건부 부가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
카일란의 모든 고유 능력들은 ‘조건부’의 난이도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리턴을 되돌려 주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 난이도 높은 전투를 좋아하는 이안에게 조건부 스킬들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고유 능력 탭의 가장 상단에 위치한 첫 번째 고유 능력부터가 이안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대지의 지배자 (패시브)
-재사용 대기시간 : 없음
-대지 속성을 가진 공격 마법을 사용할 시, 소모값(마나, 기력, 정령 마력 등)을 89%만큼 증가시키며, 그만큼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킵니다.
- ‘대지의 지배자’가 활성화된 마법으로 적을 처치할 시, 해당 마법으로 사용한 소모값의 절반만큼을 다시 회복합니다.
- ‘대지의 지배자’가 활성화된 마법으로 적을 처치할 때 마다 ‘대지의 축복’효과가 무기에 부여됩니다.
- ‘대지의 축복’효과가 부여될 때마다 모든 마법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1초만큼 감소하며, 10스텍 이상 중첩될 시 사용한 모든 마법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옵니다.
‘이거 정령 마력 리젠 옵션 몇 개만 달면…… 정말 마법 난사도 가능하겠는데?’
마법을 끊임없이 난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로는 마법을 ‘발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캐스팅’시간의 단축.
둘째로는 한 번 사용한 마법을 다시 ‘준비’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는 ‘재사용 대기시간’의 단축.
마지막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데 소모되는 마나 혹은 정령 마력 등의 소모값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넉넉히 준비되어야만 한다.
그 때문에 마법을 난사하듯 뿌리는 것은 다른 일반적인 고유 능력들을 계속 사용하는 것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려운 난이도였다.
여러 가지 조건들을 동시에 충족시키려면, 어마어마하게 고스펙의 옵션들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이안은 이 ‘대지의 지배자’ 패시브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 패시브 하나가 존재함으로 인해, 그러한 요구 조건들의 많은 부분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기본 옵션으로 달려 있는 마력 흡수 3퍼센트도 꿀이긴 하지만…… 이거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겠지.’
마력 소모를 더욱 증가시키는 대신, 그만큼 위력을 증폭시키고 재사용 대기시간을 감소시켜 주는 고유 능력인 대지의 지배자.
이안의 머릿속에선 어느새, 이 고유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아이템 세팅이 순식간에 그려지고 있었다.
‘빨리 실전에서 쓸 만한 정령 마법들을 이것저것 공수해야겠는데.’
그리고 대지의 지배자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한 이안의 눈에, 이제 공격 마법 종류인 액티브 고유 능력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머쉬 퀘이크(Marsh Quake)
-재사용 대기시간 : 300초
-캐스팅 시간 : 8초
-지속 시간 : 10초
-반경 50m이내의 모든 대지를 빠져나올 수 없는 늪지대로 만들어 버립니다. 범위 내의 모든 적들에게 매 초당 마법 공격력의 250%*소환 마력의 0.2%만큼의 땅 속성 피해를 입히며, 이동속도를 70%만큼 감소시킵니다. (공중에 떠 있는 적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마법이 지속되는 동안, 초당 250만큼의 정령 마력을 소모합니다.
*마법이 지속되는 동안 다른 행동을 할 수 없는 채널링 타입의 마법입니다.
*어스 파이크(Earth Pike)
-재사용 대기시간 : 10초
-캐스팅 시간 : 1초
-시전자의 위치로부터 전방 5m를 향해, 강력한 대지의 창을 뻗어 냅니다. 피격당한 대상은 시전자 마법 공격력의 450%만큼의 피해를 입은 뒤, 3초 동안 ‘기절’상태에 빠집니다. 한 번에 셋 이상의 대상을 적중시킨다면, 재사용 대기시간이 4초만큼 감소합니다.
‘머쉬 퀘이크……? 이건 계수가 미쳤잖아?’
광역 공격 마법인 머쉬 퀘이크를 확인한 순간, 이안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법 공격력의 250%에 소환 마력의 0.2%만큼이 곱해지는 머쉬 퀘이크의 공격 계수가,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으니 말이다.
‘내 소환 마력이 지금 4천쯤 되니까…… 250%에 8 정도 곱하면…….’
0.2라는 숫자만 보면 별것 아닌 계수처럼 보이지만, 곱연산으로 적용되다 보니 사실상 2,000%에 가까운 마법 계수나 다름없는 것.
하지만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채널링 스킬의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의 피해를 받아 집중이 흐트러지거나 상태 이상에 걸리면, 발동되는 마법도 중단되어 버리니 말이었다.
‘제대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쉽게 나지는 않겠지만……. 한번 각만 잘 잡으면 진짜 지옥같이 강력한 광역기를 보여 줄 수 있겠군.’
그리고 논 타깃 관통 마법인 어스 파이크 또한, 이안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마법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엔 소환 마력 계수가 안 붙은 게 아쉽지만, 그래도 충분히 쓸 만하네.’
아무리 강력한 지팡이를 들었다 하더라도, 이안은 소환술사이다.
마법사나 사제만큼 높은 수준의 마법 공격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단 이야기다.
그 때문에 소환 마력 계수가 없는 마법을 사용했을 경우 일반적인 마법사들보다 훨씬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450%라는 계수가 결코 적지 않은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이안이 아쉬워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어디 보자…… 다른 고유 능력들은 이제 좀 평범한 것 같고…….’
신화 등급의 지팡이답게 거의 열 개에 가까운 고유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태고의 땅.
이안은 모든 능력들을 꼼꼼히 정독하며 살펴보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전반적인 지팡이의 성능이, 기대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리플렉션 실드…… 이게 진짜 재밌네.’
그리고 그런 이안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하나의 고유 능력.
*리플렉션 실드(Reflection Shield)
-재사용 대기시간 : 5초
-캐스팅 시간 : 1.5초
-투사체에 피격당하는 순간 발동시킬 시(피격당하는 시점 기준 0.2초 이내), 해당 공격을 튕겨 냅니다. 튕겨 낸 공격으로 적을 적중시킬 시, 해당 투사체가 가지고 있던 위력의 70%만큼의 효과를 대상에게 적용하며,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옵니다.
*근거리 판정의 모든 공격은 리플렉션 실드로 튕겨 낼 수 없습니다.
공격 마법이라기보단 유틸 마법에 가까운 이 고유 능력을 확인한 이안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건 진짜 연습만 많이 하면, 최고의 방어 수단이겠는걸?’
‘피격 순간’이라는 조건이 방패 막기나 무기 막기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완전히 반사해 준다는 점에서 엄청난 매력을 느낀 것이다.
‘투사체를 튕겨 내서 오히려 적을 맞춘다라. 이게 실전에서 써먹을 순 있는 옵션이려나?’
오랜만에 승부욕(?)을 자극하는 발동 조건에, 더욱 의욕이 넘치는 이안.
한층 강력한 동기부여가 생긴 이안은 지팡이를 인벤토리에 다시 집어넣고 크로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지팡이…… 정말 엄청난 물건이네요.”
“역시, 절대자님이라면 알아보실 줄 알았습니다.”
“당장 제가 이 능력들을 완벽히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조만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기대하지요.”
이안의 장담에 크로네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자루의 심판 검을 휘두르며 전장을 누비는 이안의 모습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태고의 땅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도 기대되었으니 말이다.
‘과연 절대자께서, 마법 쪽에도 재능이 있으실지…….’
하지만 기대되는 것과 별개로.
크로네는 이안이 제대로 된 정령 마법을 보여 주기 위해선, 적어도 몇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물론 그의 예상은 완전히 틀린 것이었지만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