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0화 7. 반격의 시작 (3) >
* * *
키메라.
정확히는 ‘키메라’화 된 전설 등급의 소환수 트리오르.
결론부터 말하자면 키메라화되었다는 것은 포획 가능 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고, 때문에 김의환의 질문에 대한 나지찬의 대답은 당연히 ‘오케이’였다.
시스템상으로 이안이 트리오르 키메라를 포획한 것은 하등 문제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게, 되긴 되는데…….”
다만 나지찬이 당황한 포인트는 트리오르가 포획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잡혔다는 건, 거의 바로 잡았단 건데…… 대체 어떻게?’
나지찬이 기억하기로 이안이 잡았을 트리오르는 초월 140레벨이 넘는 괴물일 것이었다.
평범한 랭커였다면 포획은커녕, 싸워 이기지도 못했을 수준의 강력한 녀석인 것.
물론 이안에게 대지의 성물이 있고 강력한 셀라무스 전사들이 있기 때문에 처치한 것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포획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포획을 위해서는 빈사 상태에서 죽이지 않은 채, 녀석을 완전히 제압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넝쿨을 뻗어 피를 가득 채워 버릴 녀석이었으니.
대체 어떻게 포획했다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안이…… 트리오르를 잡은 거죠?”
-역시, 지찬이. 예상하고 있었군.
“예상했다고 하기보단 키메라가 잡혔다면 그 경우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
김의환에게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나지찬의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어차피 트리오르가 신화 등급의 소환수들에 비해 오버 벨런스를 가진 녀석도 아니니 당장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앞으로의 업데이트 콘텐츠들이었다.
‘이안이 키메라를 포획했으니, 관련 퀘스트가 조만간 생성될 테고…… 이러면 시간이 너무 부족한데.’
지금 나지찬과 3팀이 기획 중인 신규 콘텐츠 중에 바로 이 키메라와 관련된 업데이트가 존재했으니.
쉽게 말해 이안이 퀘스트를 진행하기 전에 업데이트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기획이 끝났다고 끝이 아니다.
나지찬이 기획서를 넘기면 개발팀에서 작업을 진행해야 하고, 그럼 못해도 다음 달은 돼야 할 테니 말이다.
‘아무리 빨리 작업해도, 도저히 각이 안 보이는데…….’
그 때문에 나지찬의 표정은 저도 모르게 표정이 확 구겨져 버렸고, 이어진 김의환과의 대화는 그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여튼 지찬이, 그럼 일단 문제없는 거지?
“적어도 시스템상으로는 문제없습니다, 선배님.”
-그럼 됐다.
“된 거 맞습니까?”
-적어도 우리 팀 입장에선 문제없지.
“……?”
-고생해라 지찬이.
“예? 선배님?”
뚜- 뚜- 뚜-.
노련하게 상황을 파악한 김의환이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다.
정령계의 관리가 1팀의 소관이라 한들 이 부분만큼은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기에, 김의환으로서는 마음이 편해질 수밖에 없던 것.
그 때문에 행복하게 퇴근을 준비하던 나지찬이 때아닌 날벼락을 맞은 것이고 말이다.
“젠장…….”
그리고 나지찬과 함께 퇴근을 준비 중이던 3팀의 팀원들은 어느새 주섬주섬 다시 자리에 앉고 있었다.
“팀장님, 일단 퀘스트 연계부터 막아 놓고 생각해야겠죠?”
“완전히 막을 방법이 있냐?”
“그런 방법은 없죠.”
“그럼 어떡하게?”
“이안이 눈을 돌릴 수 있도록…… 다른 미끼를 던져 둬야죠.”
“후우…….”
모니터에 비친 나지찬의 미간이 점점 더 좁아지기 시작하였다.
* * *
띠링-!
-‘트리오르(키메라 1단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트리오르(키메라 1단계)’의 저항력이 감소합니다.
-‘트리오르(키메라 1단계)’가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트리오르(키메라 1단계)’에게 추가 피해를 입혔습니다.
……중략…….
-‘트리오르(키메라 1단계)’를 성공적으로 포획하셨습니다!
전투가 시작된 지 4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이안은 결국 트리오르를 포획해 내었다.
기존에 생각했던 20분보다 무려 두 배에 가까운 시간을 소모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안은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크……!”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트리오르라는 전설 등급의 소환수가 가진 가치 때문만이 아니었다.
물론 140레벨이나 되는 녀석은 대단한 스펙을 가지고 있었지만, 레벨만큼이나 어마어마한 통솔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당장 실전에서 기용하는 것은 효율이 나빴으니 말이다.
‘이거 재밌잖아?’
다만 이안이 흡족해한 이유는 역시 ‘키메라’라는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 때문.
-‘키메라’화된 소환수를 포획하였습니다.
-‘키메라 소환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금단의 비술(히든)(연계)’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금단의 비술(히든)(연계)>
-고대의 마수 소환술사들은 마족들을 분해하고 합성할 수 있는 마계의 비술을 발전시켜 왔다. 마수들을 연성하여 더욱 강력한 마수를 만들어 내며,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온 것이다.
하지만 마수들을 연성하는 데 만족하지 못한 그들은 결국 정령계의 정령들과 인간계의 소환수들에게까지 그 마수를 뻗치기 시작하였다.
마수와 달리 연성이 불가능한 평범한 소환수들. 그리고 정령들을 그들의 방식대로 연구하여 변형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말해 변이체들이 만들어진 것.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로 태어난 소환수들을 키메라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계속해서 금단의 연구를 강행하였다. ……중략……. 만약 그들의 탐욕을 막을 수 없다면, 수많은 소환수들이 희생되어 키메라가 되어 버릴 것이고. 이 변이체들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다면, 소환수들이 가지고 있는 종(種)의 근본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의 연구가 더 진행되기 전에, 근원을 찾아 저지하도록 하자. 당신이 포획한 키메라를 ‘고대의 존재’들에게 보여 준다면 실마리를 조금씩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알 수 없음
-퀘스트 조건 : ‘키메라’화된 소환수를 포획에 성공
-제한 시간 : 없음
*‘고대의 존재’란, 고대의 지식들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를 의미합니다.
*키메라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셋 이상의 존재를 찾아낸다면,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상 : 명성(초월) 7만, 영혼정화수(전설)(초월), 고대의 연구일지(신화)(초월)
퀘스트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이안이 주목한 포인트는 하나였다.
‘이거, 정령 연성술 콘텐츠랑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퀘스트의 전반적인 뉘앙스를 보았을 때, 마수연성술사들의 연구와 고대의 정령연성술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정령계의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며 알게 되었던, 파프마 일족과 ‘정령연성술’의 존재.
‘지난번에 얻었던 정보들에 의하면, 정령연성술은 정령과 소환수 간의 융합도 가능했었어. 분명히 이 퀘스트에서 말하는 금단의 연구라는 게, 정령연성술과도 관련이 있을 거야.’
이안이 싱글벙글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파프마 일족의 스토리.
그리고 ‘미루’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그 이후로 정령연성술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뜻밖의 상황에서 실마리를 찾으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트로웰의 퀘스트만 끝나고 나면, 고대의 존재에 속하는 NPC들을 찾아봐야겠어. 대충 짐작되는 NPC들도 이미 있고…….’
하여 싱글벙글한 표정이 된 이안은 트리오르의 정보 창을 한 번 더 살펴본 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군요. 어서 움직이도록 하지요.”
아이언의 등에 다시 올라타는 이안을 보며, 크로네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대전사님. 트리오르를 그렇게 쉽게 포획하시다니요.”
“별로 쉽진 않았습니다만…….”
“하하, 이정도면 쉽게 잡으신 게지요. 욕심도 많으십니다.”
“후후, 출발이나 하시지요.”
“예, 대전사님.”
이안이 오더를 내리며 이동하기 시작하자, 전투로 인해 흐트러졌던 대열은 귀신같이 깔끔하게 정렬되었다.
애초에 전체 일행의 숫자가 스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지휘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후우, 1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이젠 정말 앞만 보고 달려야겠군.’
멀찍이 보이는 마타야 봉우리의 윤곽을 슬쩍 응시한 이안은 더욱 이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 * *
띠링-!
-강철의 군단장 ‘끌레르’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강철의 기계 장갑(전설)(초월)’ 장비를 획득하셨습니다!
……중략…….
-전투 병기 ‘P-105’를 성공적으로 파괴하셨습니다!
-‘최고급 마력석(전설)(초월)’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후략…….
“후욱…….”
이안의 이마를 타고 한 줄기 구슬땀이 흘러내린다.
주륵-.
마타야 산맥의 능선을 따라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이어진 전투는 이안조차도 진이 빠지게 만들 정도로 하드코어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뭐 이런 무식한 퀘스트가 다 있어?’
쿼드라S라는 난이도는 역시 그냥 책정된 것이 아니었다.
전투력 자체만 놓고 봤을 땐 피켄로보다 강력한 적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으나, 거의 그에 준할 정도로 위협적인 녀석들이 연달아 길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시간제한이라도 없었으면 최대한 여유를 가지고 공략했을 테지만, 지금 이안은 갈 길이 급한 상황.
무리해서라도 녀석들을 뚫어 내야 했기에, 난이도만 놓고 보면 피켄로 이상이라고 할 만하였다.
쩌정-!
-전투 병기 ‘P-399’를 성공적으로 파괴하셨습니다!
-‘날카로운 기계 조각’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후략…….
그리고 그렇게 요람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이안은 드디어 입구를 지키고 있던 마지막 괴수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놈이 마지막이겠죠?”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안 못지않게 진이 빠진 것인지, 연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크로네.
하지만 힘든 기색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크로네는 침착히 이안을 보조하고 있었다.
“어서 안쪽으로 드시지요. 정령왕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크로네 님.”
“별말씀을요.”
이제까지 이안에게 가려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하였으나, 셀라무스 부족을 지도하는 지도자답게 크로네 또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NPC였던 것이다.
아마 크로네가 아니었더라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정도.
쿠구궁-!
기계 문명의 패잔병들까지 완벽히 정리한 이안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대지의 요람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저벅- 저벅-.
그리고 그렇게 이안의 신형이 완전히 요람의 안쪽으로 들어선 순간.
띠링-!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반격의 시작 (에픽)(히든)(연계)’퀘스트가 완수되었습니다.
-클리어 등급 : B+
-‘명성(초월)’을 20만만큼 획득하였습니다.
-‘트로웰’과의 친밀도가 20만큼 상승하였습니다.
-‘정령왕의 상자(대지)’를 획득하였습니다.
-‘태고의 땅 (신화)(초월)’ 장비를 획득하셨습니다.
정확히는 퀘스트 클리어로 획득한 보상들 중 ‘태고의 땅’을 확인하고는 당황한 것.
‘어? 이거 잡화 아이템 아니었어?’
이름만 보고 잡화 아이템이라 짐작하고 있던 보상이, 신화 등급의 지팡이였던 것이다.
피켄로를 처치하고 얻은 세트 장비들도 신화 등급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책정될 만한 보상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의외의 보상인 것만큼은 사실.
“크……!”
게다가 신화 등급의 초월 장비로는 처음 얻어 보는 ‘지팡이’ 분류의 장비였으니,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옵션만 괜찮으면, 정령 마법 쓸 때 딱이겠는데.’
그 때문에 아이템의 정보 창을 확인하는 이안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