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7화 6. 직위 승계 (2) >
* * *
거대한 냉기의 폭풍이 전장을 휘감으며 퍼지기 시작한다.
폭풍에 수반된 눈보라는 순식간에 대지의 모든 것을 잠식해 버렸으며, 혹한의 한기는 기계 괴수들의 동력 장치까지도 깡그리 얼려 버렸다.
쩌적- 쩌저저정-!
끄드드득!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던 전장을 단숨에 차가운 얼음장으로 만들어 버린 강력한 빙한 마법.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대의 정령술 ‘마이티 프로즌(Mighty Frozen)’이었다.
<마이티 프로즌(Mighty Frozen)>
-분류 : 고대의 정령 마법
-등급 : 영웅(초월)
-티어 : 3티어
-속성 : 물, 얼음
-캐스팅 시간 : 15초
-재사용 대기시간 : 200초
-시전자 주변으로, 반경 50M 이내의 모든 적들을 얼려 버립니다. 범위 내의 모든 적들에게 마법 공격력의 375% *정령 마력의 250% 만큼의 피해를 입히며, 90%의 확률로 ‘빙결’상태에 빠뜨립니다. ‘빙결’상태가 된 대상은 10초 동안 ‘행동 불능’에 빠지며, 물리 방어력이 500%만큼 증가하고 마법 방어력이 50%만큼 감소합니다. 또 ‘빙결’상태일 때는 모든 저항력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물’속성이나 ‘얼음’속성의 정령을 소환한 상태에서만 발동시킬 수 있는 마법입니다.
*정령의 등급과 레벨, 고유 능력에 따라 마법의 위력 계수가 변동됩니다.
‘크, 법사들이 이 맛에 광역 마법 쓰는 거군.’
이안은 광대를 씰룩거리며, 순식간에 얼어붙는 기계들을 둘러보았다.
위력 자체야 심판의 번개와 비교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확실한 매력과 장점이 있는 마법이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범위에 빙결 효과라니……. 연계할 수 있는 다른 광역 마법이 또 있으면 좋겠는데.’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단순히 DPS만이 마법의 가치를 결정하진 않는다.
카일란에는 수많은 상태 이상, 버프, 디버프가 있었으며, 이안조차도 다 알지 못하는 많은 종류의 유틸성 효과들이 존재했으니 말이다.
하여 이안이 생각하기에 이 마이티 프로즌의 가치는 유물의 고유 능력들과 비견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장비들을 저항관통으로 풀 세팅하면 유저 대전에서도 충분히 먹힐 마법이야.’
이안이 얼려 버린 수많은 기계 괴수들의 위로 강력한 광역 마법이 떨어져 내렸다.
콰쾅- 콰아앙-!
물론 이안이 발동한 마법은 아니었다.
이것은 이안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광역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던, 샤트라 일족의 지도자 솔루미엘의 광역 마법이었으니까.
키에에엑-!
“이럴수가!”
모래폭풍과 함께 떨어져 내리는 강렬한 불꽃의 향연.
화륵- 치이익-!
끄, 끄아아아악!
이안의 마이티 프로즌에 의해 꽁꽁 얼어붙은 탓에, 마법 방어력과 저항력이 뚝 떨어진 기계 괴수들은, 솔루미엘의 강력한 광역 마법에 그대로 녹아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안이 등장하지 않았다 해도 어중간한 기계 병사들은 싹 쓸려 나갔을 위력의 마법이었는데, 마이티 프로즌으로 예쁘게 밥상까지 차려 주었으니, 기계 병력은 순식간에 전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였다.
“깔끔하고.”
새카만 연기를 뿜어내며 재가 되어 사라지는 기계 병사들을 보며, 이안은 만족스런 표정이 되었다.
아이언을 타고 최고 속력으로 날아온 보람이 있는 예쁜(?) 비주얼이었으니 말이었다.
‘고대의 정령술…… 이거 보면 볼수록 물건이란 말이지.’
척-!
초토화된 주변을 스윽 둘러본 이안은 아이언의 위에서 사뿐히 내려섰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 뒤늦게 나타난 두 구의 커다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이안의 소환수인 핀과 까망이.
그리고 그들의 위에 올라타고 있던 헬라임과 카이자르였다.
“마법은 언제 배웠냐, 주군.”
“폐하, 대단합니다!”
“이런 마법이 있었으면, 마타야 협곡에서도 좀 쓰지 그랬냐, 주군아.”
카이자르와 헬라임의 말에, 이안은 피식 웃으며 대꾸하였다.
“쓸데없는 소리들 말고, 남은 놈들이나 정리하도록. 난 볼일 좀 보고 있을 테니까.”
“명을 받듭니다, 폐하!”
“흠, 그러지 뭐.”
이안은 피식 웃고 말았지만, 카이자르의 의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만약 이안이 마타야 협곡에서 이 정령 마법을 사용했더라면, 파괴력을 떠나서 유틸성 하나만으로도 전황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었을 테니 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안 또한 분명하게 아는 사실.
그렇다면 이안은 왜 마이티 프로즌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일까?
거기에는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일반 정령 마법과 고대의 정령 마법의 차이 때문이었다.
*고대의 정령 마법은 ‘고대의 정령술’을 활성화시킨 상태에서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고대의 정령술은 ‘마법 계열’의 무기를 착용한 상태에서만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고대의 정령술’을 한 번 비활성화한다면, 600초 동안 다시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카일란에서 마법사가 검을 든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검을 들어 물리 공격력을 올리는 것은 마법의 위력에 1%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물리 공격력을 마법 공격력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가진 ‘마검사’류의 특수 클래스라면 모르되, 마법사가 검을 드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인 것.
게다가 3클래스 이상의 마법들 중 대부분은 아예 검을 들고 발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막혀 있었으니, 마법사가 검이나 창 등의 물리 계열 무기를 들 일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환술사들의 전유물인 ‘정령 마법’의 경우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일반적인 정령 마법의 위력은 마법 공격력과 연관이 없었으며, 오직 소환 마력과 정령 마력이라는 특수 스텟에 영향을 받았으니 말이다.
또한 마법사 클래스의 마법들과 달리 무기 제한이 있는 경우도 없었으니, 지금까지 이안은 검이나 활을 든 채로 별 무리 없이 정령 마법들을 사용해 왔다.
‘그래서 고대의 정령술도 당연히 비슷한 개념일 줄 알았지만…….’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고대의 정령술은 정령 마법과 마법사들의 마법을 반반씩 섞어 놓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위력 계수에도 소환 마력, 정령 마력과 함께 ‘마법 공격력’이 혼재되어 있었으며, 마이티 프로즌만 봐도 알 수 있듯 무기 착용 제한까지 걸려 있었으니, 이안의 주 무기인 심판 검을 든 상태로, 고대의 정령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고대의 정령술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기본 마법인 ‘엘리멘탈 스트라이크’와 ‘마이티 프로즌’밖에 없는 지금이야 메인으로 쓰기 힘든 콘텐츠였지만, 더 많은 고대의 마법들을 습득하고 융합하면 충분한 가능성이 보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광역 마법의 매력에 한번 취해 본 뒤로는 어떻게든 실전에 쓰고 싶은 이안이었다.
‘고대의 정령 마법서를 파밍할 수 있는 던전 같은 것도 분명 어딘가 존재할 텐데…….’
정령 마법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천천히 제단 위로 걸음을 옮기는 이안.
저벅- 저벅-.
그런 그를 향해 빠르게 달려 내려온 솔루미엘이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이안에게 인사하였다.
“대전사님, 오셨습니까!”
그리고 이안을 보는 솔루미엘의 표정에는 전보다 더욱 존경심이 가득하였다.
* * *
-‘파괴의 군단 섬멸전’ 전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전장에서 승리하여, 활약 등급이 1랭크 상승합니다.
-활약 등급 : B-
-병력 손실률 : 6.2%
-낮은 병력 손실률을 기록하여, 획득 전공이 상향 조정됩니다.
-획득한 전공(전쟁 공헌도) : 89,125
-8티어 난이도의 전장에서 최초로 승리하셨습니다!
-명성(초월)이 10,000만큼 증가합니다.
……후략…….
전투가 끝난 지는 벌써 30분도 넘게 지났지만, 제니스는 아직도 시스템 메시지들을 뒤적거리며 읽어 보고 있었다.
대열에 맞춰 남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하였지만, 전장에서 얻은 보상들을 곱씹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으니 말이었다.
‘대박! 대박이야!’
물론 이안이 제니스의 메시지들을 봤더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이다.
이안의 기준에서는 하나같이 형편없는 성적이었던 데다, 보상 내용도 의미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안의 기준일 뿐.
제니스에게는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크……!”
생존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던 ‘측정 불가’난이도의 전장에 강제로 끌려온 그녀였기에, B- 등급의 활약 등급으로도 아주 행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살아남았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기쁜데, 평타라고 해 줄 만한 활약 등급까지 달성하였으며, 무려 초월 명성 1만에다가 9만에 가까운 전공까지 획득하였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버스도 이런 급행 버스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이안을 따라온 건 최고의 선택이었어. 이 정도 보상이면…… 솔플 기준 1주일은 넘게 노가다 뛰었어야 할 수준이야.’
제니스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에 초월 레벨도 하나 올랐다는 것은 덤.
부대의 선봉에서 아이언을 타고 이동하는 이안의 뒷모습에서, 후광이라도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흐흐, 이 퀘스트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어떻게든 이안을 따라다녀야겠어. 이따가 로그아웃하면, 이안 팬클럽부터 가입하고 와야 하나.’
버스의 승차감에 연신 감탄을 터뜨리며, 기분 좋게 히죽거리는 제니스.
다만 한 가지.
지금 이 순간 그녀가 가장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도대체 자신에게 떨어진 보상이 이 정도라면 이안은 뭘 얼마나 얻었을 것이냐는 점이었다.
‘이안은 못해도 전설 등급 초월 장비 몇 갠 먹었겠지? 아니면 혹시 신화 등급?’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배 아프다거나 부럽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기준에서 이안은 같은 입장의 유저가 아니었으니 말이었다.
규격 외의 존재. 혹은 버스 기사.
거의 무임승차 수준으로 버스를 타고 있는 주제에 버스기사의 보상들이 배가 아플 만큼, 제니스가 염치없는 유저는 아니었으니까.
‘이제 스토리상 마타야 협곡만큼 어려운 전장은 없을 테고……. 정신만 바짝 차리고 있으면, 퀘스트를 완주할 수 있겠지?’
멀찍이 이안과 솔루미엘이 대화하는 것을 보며, 제니스는 두 눈을 반짝였다.
어쨌든 이안에게 퀘스트를 공유받아 진행 중이었으니, 그녀 또한 내용을 전부 알 수 있었고, 그 스토리 또한 흥미로웠으니 말이었다.
‘그러니까 저 엘프들과 골렘들…… 다 같이 합류해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간다는 거네.’
그리고 그렇게 이안과 솔루미엘이 대화를 시작한 지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
대기하고 있던 제니스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파티원 ‘이안’이 새로운 퀘스트를 수령하였습니다.
-파티원 ‘이안’에게 퀘스트를 공유받았습니다.
-‘반격의 시작(히든)(에픽)’ 퀘스트를 수령하였습니다.
……후략…….
반짝이는 퀘스트 창을 확인한 제니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에는 퀘스트 내용 안에 또 어떤 무지막지한 것들이 들어있을지, 기대보다도 걱정이 앞섰으니 말이었다.
‘이번에도 설마…… 측정 불가 난이도는 아니겠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설마’는 배신하는 법이 없었다.
제니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난이도’ 텝에는 기가 막힌 네 글자의 문구가 박혀 있었으니 말이었다.
-난이도 : 공략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