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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903화 (906/1,027)

< 903화 4. 파괴의 군단 (3) >

* * *

피켄로의 기계 드래곤은 이안이 오랜만에 상대하는 레이드 보스급의 NPC였다.

단순히 ‘잘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공략법이 필요한 상대인 것이다.

그 확실한 예로 지금.

쿵-!

기계 드래곤이 진각을 밟으며 터져 나간 거대한 에너지파에 이안을 비롯한 모든 소환수의 생명력이 주르륵 깎여 나가고 있었다.

쿠콰콰쾅-!

폭발점에서부터 소용돌이치듯 퍼져 나가는 모래바람과 함께 전장을 뒤덮는 강력한 기의 파동.

“크어억!”

“뒤로 물러서!”

그나마 후방에 있던 셀라무스의 전사들은 크게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피켄로에게 인접해 있던 이안과 소환수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성물 버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생명력이 절반도 넘게 깎여 나간 것이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군, 역시.’

하지만 쭉 떨어져 나간 생명력을 보면서도 이안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위력은 예측 범위 안이었으니까.

“엘, 드라고닉 베리어!”

“네, 아빠!”

“뿍뿍이, 심연의 축복!”

캬아아오-!

전방위로 퍼져 나가는 방사형 광역 기술의 경우, 알고 있어도 피하기 힘든 기술이 대부분이다.

전조 현상이라도 있으면 어찌하겠지만, 이렇게 즉발형인 경우에는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피격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한 번 겪고 난 뒤에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것.

대신 이런 유의 스킬들은 피해량이 버틸 만한 수준이기 때문에, 처음에 피해 내는 것보단 빠르게 대처하는 게 관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뿍뿍이랑 엘 제외하고는 한발 뒤로 빠져!”

“루가릭스는 다크 스톰 캐스팅해!”

크롸아아-!

막대한 피해량에도 침착히 오더를 내린 이안이 빠르게 무기를 스와프하였다.

-‘심연의 심판 검’을 착용 해제 하였습니다.

-‘성령의 심판 검’을 착용하였습니다.

기계 드래곤은 기계 괴수답게 시온 속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심연의 심판 검을 계속 고집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생명력을 회복한 후 다시 무기를 스와프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성령의 심판 검’의 고유 능력, ‘성령 흡수’를 발동합니다.

-적에게 ‘시온(Zion)’ 속성의 피해를 입힐 때마다, 현재 생명력의 5%만큼이 회복됩니다.

-남은 지속 시간 : 59초

팟-!

성령의 심판 검은 모든 고유 능력이 생존에 특화되어 있었다.

거기에 지금 이안이 착용하고 있는 망토인 ‘성령의 망토’까지 시너지가 나면, 잃어버린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령의 망토’의 고유 능력, ‘성령의 보호’가 발동됩니다.

-‘시온(Zion)’ 속성의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피해량만큼 성령의 실드가 누적됩니다.

……중략…….

아이언의 가속도를 이용해 순식간에 기계 드래곤의 지척까지 접근한 이안이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르며 쇄도하였다.

까가강-!

단단한 철갑으로 만들어진 외피 탓인지 기대만큼 딜이 박히지는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성령의 심판 검을 들고 접근한 이안의 의도는 끈질긴 생존력으로 버텨 내면서 기계 드래곤의 숨겨진 패를 하나씩 까 내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무모하군!”

“글쎄.”

콰앙-!

지척까지 접근한 이안을 발견하고는 드래곤의 두 눈이 붉게 번쩍이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양팔을 교차한 녀석이 나직한 기계음을 내뱉었다.

“아이언 피어스……!”

콰르르릉-!

교차된 드래곤의 양 팔뚝에서 날카로운 파이크가 길게 솟아났다.

이어서 드래곤은 이안을 향해 그 파이크를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까강- 펑-!

콰콰쾅!

그리고 그 공격을 재빨리 받아 낸 이안은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무기 막기’에 성공하여, 피해를 89%만큼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69,820만큼 감소하였습니다.

-‘무기 막기’에 성공하여, 피해를 93%만큼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52,982만큼 감소하였습니다.

……중략…….

깔끔하게 무기 막기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만 단위가 넘는 데미지가 들어왔으니 말이다.

‘반응도 못 하고 두어 대 정도 맞으면, 그대로 끔살이잖아?’

레벨 160대의 초월 보스답게, 고유 능력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능력을 보여 주는 기계 드래곤.

그러나 이안보다 더욱 당황한 것은 기계 드래곤을 조종하던 피켄로였다.

강력한 피어스 공격을 연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생명력이 오히려 차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노옴……!”

하지만 곧 피켄로는 이안에게서 뭔가를 발견했는지 눈을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오호라, 네놈, 성령의 유물도 가지고 있었구나!”

“응? 뭐야, 유물도 알아본다고?”

“크흐흐, 어쩐지 바퀴벌레처럼 잘 버텨 낸다 했더니, 이유가 있었어.”

그긍- 그그긍-!

이어서 광소를 터뜨리며, 기계 드래곤의 날개를 다시 쫙 펼치기 시작하는 피켄로.

“성령의 힘을 믿고 여유로웠던 것 같은데…….”

기기기깅!

“그렇다면 오늘, 아주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야.”

피켄로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기계 드래곤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이안은 그것을 반사적으로 피하며 허공으로 날아올랐지만, 피켄로의 공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

다만 드래곤의 입에서 새하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그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하였다.

-피켄로의 ‘기계 드래곤’이 고유 능력 ‘성령의 분노’를 사용하였습니다.

-강렬한 ‘성령의 힘’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기계 드래곤이 입는 모든 ‘성령’속성의 피해량을 70%만큼 흡수합니다.

-지금부터 기계 드래곤이 입히는 모든 ‘성령’속성의 피해가 50%만큼 저장됩니다.

-흡수, 저장된 피해량이 일정 수준 이상 중첩되면 ‘성령의 구슬’이 생성되며, 생성된 구슬을 소모하면 강화된 고유 능력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중략…….

-기계 드래곤은 ‘성령(Zion)’ 속성과 상성이 나쁘지 않은 모든 피해량의 20%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이안의 두 눈이 살짝 확대되었다.

‘뭐, 이런 사기 스킬이 다 있어?’

만약 이안에게 공격 수단이 ‘성령’ 속성밖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잡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의 괴물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심지어 다른 속성의 피해도 흡수하네?’

하지만 이안은 놀란 것과 별개로,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후후.”

피켄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역이용하여 카운터를 칠 수 있는 계획이 머릿속에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이것도, 기계 공학 기술인가?”

짐짓 놀란 표정으로 묻는 이안의 말에 피켄로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물론이다, 하찮은 인간. 네놈들이 그토록 무시하는 기계 공학의 정수를 지금부터 제대로 보여 주도록 하지.”

번쩍-!

마치 천둥이라도 치듯 새하얀 섬전이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더니, 이안의 주변을 강타하기 시작하였다.

콰르르르릉-!

그에 이안은 곧바로 반응하며, 아이언을 컨트롤하여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쐐애액-!

이어서 다시 피켄로와 눈이 마주친 이안이 슬슬 연기를 시작하였다.

“젠장, 이거 귀찮게 되었군.”

곤란함이 역력히 들어난 표정으로, 생각해 두었던 대사를 내뱉는 이안.

그런 그를 포며 피켄로는 광소를 터뜨리기 시작하였다.

“크하핫, 크하하하핫!”

“잠시 후에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지켜보도록 하겠다, 피켄로.”

“후후, 두고 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하나 없었지.”

“이런 조잡한 잡기 정도는 이겨 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도록 하겠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이이잉-!

연말 시상식 남우주연상의 배우도 울고 갈 만큼, 자연스럽고 몰입도 높은 이안의 연기!

그에 완벽히 속아 버린 피켄로는 이미 전쟁에 승리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크윽……!”

그에 추임새를 넣기라도 하듯 인상을 팍 찡그린 이안이, 아이언의 날개를 잡아당기며 허공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쐐애애액-!

그리고 그런 그를 기계 드래곤이 기다렸다는 듯 쫓아 날아올랐다.

“놈! 설마 줄행랑을 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콰앙-!

이어서 이안과 드래곤의 본격적인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 * *

점점 더 급박하게 진행되는 전장.

그리고 더욱 강력한 고유 능력들을 쏟아 내기 시작하는 피켄로.

하지만 이 와중에도 여유 넘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이안의 소환수, 뿍뿍이었다.

‘크뿍, 드디어 이 몸의 힘을 보여 줄 차례인가.’

뿍뿍이는 여유로웠다.

그리고 그것은 전장이 시작되기 전, 이안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뿍뿍아, 내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 넌 잠깐 뒤로 빠져 있어.”

“왜 그러냐, 주인.”

“이번 전투, 네가 히든카드거든.”

“뿍?”

“피켄로의 기계 괴수. 아마 시온 속성일거야.”

“뿌뿍!”

이안은 이미 전장이 열리기 전부터, 그러니까 피켄로의 기계 드래곤을 확인하기 이전부터, 피켄로가 가진 기계 괴수가 시온 속성일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100% 확신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안은 자신의 소환수들 중 유일하게 ‘어비스’속성을 가진 뿍뿍이야 말로, 녀석을 상대하는 데 필수적인 카드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말이다.

“시온이라면, 그 하얗게 부서지는 하찮은 힘 말이냐뿍.”

“그래. 너 많이 상대해 봤잖아.”

“뿌뿍! 그렇다뿍!”

“자신 있지?”

“당연하다뿍! 누워서 미트볼 열 개 먹기보다 쉽겠뿍.”

“그건…… 좀 어려워 보이는데?”

하여 이안의 비밀 임무(?)를 받은 뿍뿍이는 드래곤으로 현신한 상태에서 뒤로 살짝 빠져 있었다.

다른 소환수들이 이안을 서포팅하는 동안, 뿍뿍이는 기계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롸아아! 다 날려 주마!”

콰쾅-!

마법을 쓰고 브레스를 내뿜는 다른 드래곤들과 다르게 거대한 꼬리를 휘두르며 육탄전을 벌이는 뿍뿍이.

이안의 명령 때문에 브레스는 아껴 둬야 했으니, 몸으로 때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지컬이 남다른(?) 뿍뿍이의 육탄전은 기계 병사들에게 생각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무, 무식한 드래곤이다!”

“저놈부터 잡아!”

초월 90레벨임에도 불구하고 스텟 수준은 120레벨 이상인 탓에 기계 병사들의 집중 공격에도 크게 위축되지 않는 뿍뿍이.

뿍뿍이는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상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잔챙이들 말고, 빨리 대장과 싸우고 싶뿍.’

하늘을 슬쩍 올려다본 뿍뿍이는 허공에 떠 있는 기계 드래곤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하늘로 날아올라 저 거대한 기계 드래곤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파괴의 군단장을 내 손으로 처치하고, 찰리스를 찾으러 가야 한다뿍. 예뿍이를 위해서, 납치된 거북을 구해야 한다뿍.’

찰리스를 물리치고 예뿍이의 마음을 얻을 생각을 하자, 뿍뿍이는 더욱 불끈불끈 힘이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크롸아앙! 다 덤벼라, 고철 덩이들!”

콰직-!

이어서 미트볼을 앞에 두고 있을 때만큼 의욕적인 뿍뿍이 앞에 기계 병사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기 시작하였다.

“크윽! 분하다!”

“못생긴 드래곤 따위에게 당하다니…….”

“닥쳐라뿍!”

그리고 그렇게 20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

한참을 피켄로와 사투를 벌이던 이안이 드디어 뿍뿍이에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뿍뿍아.”

“뿍?”

“지금이야.”

“……!”

이어지는 이안의 그 한마디에 날개를 활짝 펼친 뿍뿍이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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