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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99화 (902/1,027)

< 899화 3. 암살자 요르간드 (2) >

* * *

카일란에서 암살자의 물리 공격력은 생각보다 무척 낮은 편이다.

전사 클래스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은 물론, 탱커 포지션인 기사 클래스와 비교해도 크게 뛰어나지 않으니 말이다.

물리 공격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힘’스텟이 떨어지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암살자들의 단일 타겟 대상 순간 공격력은 카일란 전체를 통틀어서 최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정 조건만 갖춰지면,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스텟을 가진 탱커조차도 한 방에 지워 버릴 수 있는 클래스가 암살자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수치상 낮은 물리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파괴력이 가능한 데에는,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암살자의 진정한 파괴력은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와 정확한 약점 포착에서 나오니 말이다.

정확히는 히든 클래스를 막론하고, 3티어 이상의 모든 암살자 계열의 클래스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패시브 스킬.

암살자의 상징과도 같은 이 스킬들이 암살자가 가진 파괴력의 근간이라 할 수 있었다.

<암살>

-적의 시야에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성공시킬 시, 더욱 강력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암살’ 효과는 패시브가 활성화 된 이후 첫 번째 타격에만 발동됩니다.

*조건 충족 시

방어력 관통+35%

치명타 확률+50%

치명타 피해량+150%

*약점을 공격했을 시, 모든 효과가 최대 2배까지 증폭됩니다. (공격의 정확도에 따라 계수가 변동됩니다.)

<쾌검>

-암살자의 검은 빠를수록 강력한 위력을 만들어 냅니다. 대상에게 입히는 첫 번째 타격이(일반 공격, 스킬 공격 포함), 접근하는 속도와 공격 속도에 비례하여 증폭됩니다. ‘은신’ 중에는 ‘쾌검’ 효과가 2배로 증폭됩니다.

적의 시야에 노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한 번의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는가.

이것이 암살자 유저들이 가진 궁극의 과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스펙의 암살자라 하더라도, 실력에 따라 보여 주는 퍼포먼스의 수준이 배 이상 차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

그리고 이안은 이러한 암살자의 메커니즘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PVP에서 소환술사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암살자 클래스였으니,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해 두었던 것이다.

소환술사만 잘 알아서는 결코 랭커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오랜 지론이었으니까.

하여 이안은 암살자를 상대하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었다.

정확히는 암살자의 실력을 파악해 내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실력자는 오랜만인데.’

이안이 요르간드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던 단서는 사실 간단한 것이었다.

위에 언급된 두 가지 패시브 중, ‘쾌검’ 패시브를 얼마나 완벽하게 활용하는가.

그것을 순간적으로 캐치한 것이다.

쾌검 패시브의 데미지 증폭률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대상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방향 전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히 거리를 계산해서, 발동시킬 수 있는 최고의 가속력으로 접근하여, 대상의 정확한 약점에 검을 꽂아 넣어야 하니 말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중간에 방향 전환이 한 번이라도 생긴다면, 가속도는 절반 이하로 급감할 수밖에 없다.

보통의 암살자들이야 쾌속 패시브를 대충 사용하지만, 톱 티어의 암살자들은 이런 패시브의 계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니 말이었다.

암살자 클래스의 특성상, 이 작은 차이가 어마어마한 파괴력 차이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순간 가속도가 가장 빠른 시점에, 정확히 적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

요르간드는 이 한 줄의 명제를 이안이 보아 온 어떤 암살자보다도 완벽하게 보여 주었다.

‘그냥 맞아 줬으면, 생각보다 위험했겠어.’

그리고 암살자의 속성을 잘 아는 이안은 암살자의 약점 또한 가장 잘 알고 있다.

혼신의 힘을 다 한 첫 번째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그 순간.

바로 그 직후.

암살 패시브도 쾌검 패시브도 발동시킬 수 없는 이 시점이 바로, 암살자가 가장 취약한 타이밍인 것이다.

‘일격필살에 실패했으면, 죽어야지, 뭐.’

이안이 요르간드의 암살을 깔끔히 피해 낸 것은 공간 왜곡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몸을 움직여 피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공간 왜곡까지 사용한 이유는 암살자가 가진 이 약점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안이 인지하고 피하려 한다는 사실을 암살자가 알아챈다면, 순간적으로 반응하여 다시 은신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 순간에 공간 왜곡을 사용하면 아무리 뛰어난 암살자라 해도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고 마니 말이다.

스릉-.

순식간에 요르간드의 검을 피해 뒤에 나타난 이안이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잘 가라.”

쐐애액-!

이어서 심판 검의 검날에 그대로 등을 내준 요르간드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콰콰쾅-!

* * *

요르간드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최대한 공을 들여 설계한 암격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부터 시작해서,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두들겨 맞고 있는 지금의 상황까지.

이 모든 것들이 말이다.

“커헉……!”

-숲의 대전사 ‘???’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498,091만큼 감소하였습니다.

-생명력이 10% 미만으로 떨어졌습니다.

-고유 능력, ‘밀월의 방호’가 발동합니다.

-숲의 대전사 ‘???’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0만큼 감소하였습니다.

-618,279만큼의 피해가 밀월의 방호에 누적됩니다.

-629,810만큼의 피해가 밀월의 방호에 누적됩니다.

……후략…….

사실 요르간드는 이안이 그어 내린 첫 한 방에 이미 사망했어야 했다.

‘밀월의 방호’라는 암살자 최강의 생존 기술이 아니었더라면, 이미 까만 화면을 보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빈사 상태에 발동되는 패시브인 밀월의 방호는 지속되는 시간 동안 입는 모든 피해를 일시적으로 막아 주는 스킬이었고, 그 덕에 이안의 검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아직까지 요르간드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밀월의 방호(패시브)>

-생명력이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공격을 입으면, 어둠 속에 숨겨진 달빛이 유저를 보호합니다. 지속 시간 동안 입는 모든 피해와 회복 효과가 지속적으로 방호에 누적됩니다. 시전자는 방호의 지속 시간이 끝나는 시점에 ‘누적된 피해량-회복량’만큼의 피해를 한 번에 입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300초

-지속 시간 : 10초

하지만 스킬 설명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밀월의 방호는 피해를 완벽히 막아 주는 스킬이 아니었다.

그저 지속 시간 동안, 그것을 유예시켜 주는 스킬이었을 뿐.

퍽- 퍼퍽-!

-생명력이 0만큼 감소하였습니다.

-588,123만큼의 피해가 밀월의 방호에 누적됩니다.

-생명력이 0만큼 감소하였습니다.

-961,152만큼의 피해가 밀월의 방호에 누적됩니다.

하여 요르간드는 어떻게든 이안의 손아귀에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방호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그에게서 벗어나, 힐을 받든 포션을 먹든 해서 누적 피해를 줄여야 했으니 말이다.

물론 이안이 한 번 잡은 물고기를 쉽게 놓아줄 리 없었지만 말이었다.

“끄아아아!”

“뭐야, 왜 안 죽어?”

“자, 잠깐만!”

밀월의 방호가 지속되는 시간은 10초.

그중에 이미 5초가 넘는 시간 동안 무자비하게 난타를 당하고 있는 요르간드.

“이렇게 질긴 암살자는 또 처음이네.”

“크하아악!”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그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공간이격’을 사용하여 이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 공간격……!”

스스슥-!

이안의 공격을 겨우 한 번 피한 타이밍에, 순간 이동 계열의 고유 능력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빠져나갔다고 해도, 그것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지금 요르간드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하기도 애매하였으니까.

<밀월의 방호, 누적량>

-회복 효과 : 539,802

-피해량 : 6,927,109

-남은 지속 시간 : 2.8초

“히, 힐! 빨리 힐 좀 줘!”

이미 지속 시간이 2초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거의 6백만에 가까운 피해가 누적된 요르간드.

“포, 포션!”

-‘어둠사제의 비약’ 아이템을 사용하였습니다.

-생명력이 135,000만큼 회복됩니다.

-‘어둠사제의 비약’ 아이템을 사용하였습니다.

-생명력이 135,000만큼 회복됩니다.

……후략…….

황급히 인벤토리에 있던 즉시 회복 포션들을 닥치는 대로 삼켜 보았지만, 그것으로 누적 피해가 해소될 리 만무하였고.

-‘밀월의 방호’ 고유 능력의 지속 시간이 종료됩니다.

-누적된 피해가 적용됩니다.

-생명력이 5,978,250만큼 감소합니다.

요르간드의 시야는 그대로 까맣게 변하기 시작하였다.

‘아, 안 돼!’

중간계에 진입한 이후 단 한 번도 사망한 적이 없었던 그였건만, 암살 대상을 잘못 골랐다는 작은 실수(?)로 인해 허무하게 죽어 버린 것이다.

-모든 생명력이 소진되었습니다.

-사망하셨습니다.

심지어는 가치 있는 죽음도 아니었다.

뭔가 얻은 것도 없이.

복날에 개 맞듯 맞다가 사망해 버렸으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요르간드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패시브가 없는 게 나앗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길드원들 앞에서 이렇게까지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인 것부터가 수치스러웠던 데다, 그가 단숨에 들이켠 포션들의 값만 해도, 1천만 골드가 넘는 값어치였으니 말이다.

‘저런 괴물일 줄은…… 그냥 런했어야 됐어…….’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도 늦어 버린 상황.

-잠시 후 접속이 종료됩니다.

요르간드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떠오른 회색 빛깔의 슬픈 메시지를 읽는 것뿐이었다.

‘제기랄, 결승 리그가 코앞인데 레벨 다운이라니.’

그나마 요르간드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아직 결승 리그까지 이틀 이상 남아 있다는 사실 정도였다.

어쨌든 사망 페널티로 인해 결승 리그에 참전조차 못하는 불상사는 피한 것이었으니까.

‘숲의 대전사라고 했나? 조금만 기다려라. 너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을 따 줄 테니까.’

캡슐에서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요르간드는 이를 바득 바득 갈았다.

지금이야 저 괴물을 상대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지만, 나중에 레벨을 올린 뒤에는 이야기가 달라질 테니 말이다.

녀석은 NPC(?)고 요르간드는 유저였으니, 언젠가는 전투력이 역전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후우…….”

하지만 요르간드가 꿈에도 알 수 없는 사실이 두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로, 그가 이안의 레벨을 역전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둘째로는 생각보다 머지않은 날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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