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3화 1. 절대자 시험 (2) >
* * *
셀라무스 부락의 광장은 커다란 반원 형태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이 서 있는 위치는 공교롭게도 그 원의 중심부.
그 때문에 이안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이안을 중심으로 황금빛 갑주를 입은 모든 셀라무스의 전사들이 부복하여 고개를 숙였고, 그 황금빛 물결 아래 서 있는 이는 오직 이안 한 사람뿐이었으니 말이었다.
‘비록 NPC들이긴 하지만, 역시 기분은 좋은데?’
그런데 그 순간, 이안은 한 가지 의아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그러고 보니 쟤도……?’
이안을 향해 부복해 있는 이들 중에는 이안의 파티원인 제니스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이안의 두 눈에, 살짝 이채가 어렸다.
그녀가 다른 셀라무스의 일원들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 전직서 때문이겠지.’
이안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제니스는 무척이나 당황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아마 퀘스트의 진행에 의해, 캐릭터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상태일 것이었으니 말이다.
‘드디어 에오스에게 들었던 콘텐츠를 알 수 있게 되는 건가?’
이안은 반짝이는 눈으로,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한눈에 봐도 특수한 상황인 만큼, 시스템 메시지 안에도 분명 흥미로운 내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띠링-!
-셀라무스 부족의 지도자, ‘폴 크로네’와 조우하였습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셀라무스 일족의 부락을 찾아서 (에픽)(연계)’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명성(초월)이 57,000만큼 증가합니다.
……중략…….
-‘트로웰의 부탁 Ⅰ’과 연계된 모든 연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트로웰의 부탁 Ⅱ(에픽)(연계)’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중략…….
-조건이 충족되어, ‘셀라무스의 절대자’ 칭호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셀라무스 부족의, 숨겨진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특수한 조건에 의해, ‘트로웰의 부탁 Ⅱ(에픽)(연계)’ 퀘스트의 내용이 변경됩니다.
-‘트로웰의 부탁 Ⅱ(에픽)(연계)’퀘스트의 난이도가 상향 조정됩니다.
-‘트로웰의 부탁 Ⅱ(에픽)(연계)’퀘스트의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린 탓인지, 이안의 눈에 펼쳐진 시스템 메시지는 무척이나 방대한 분량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그 안에서도, 금방 핵심만 뽑아내어 이해하였다.
‘오호, 셀라무스스의 절대자 칭호가, 에픽 퀘스트랑도 연관이 있는 거였나?’
그리고 이안이 그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그의 앞에 부복해 있던 셀라무스의 지도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절대자를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당신이 셀라무스 부족의 지도자인지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대자이시여.”
“그렇다면 혹시, 제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도 알고 계신가요?”
“당연합니다. 정령수호자들로부터 숲의 대전사께서 오신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군요.”
“물론 그 숲의 대전사께서, 저희 셀라무스 일족의 절대자이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그건 그렇고 이제 일어나시지요. 이 상황, 길어지니 조금 부담스럽네요.”
이안과 잠시 대화를 나눈 셀라무스의 지도자 ‘폴 크로네’는 감격스런 표정이 되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인 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잠시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대지의 성물을 인계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이어서 폴 크로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이안 또한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안이 자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부복해 있던 셀라무스의 전사들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 *
다크 블러드 길드의 기사단장이자, 떠오르는 신성 요르간드.
최근 그의 상승세는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원래부터 영국 서버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던 그였지만, 이번 기사 대전을 통해 한 계단 더 높이 도약한 것이다.
유럽 서버의 마족 유저들 사이에서는 이미 카이나 이안과 동급으로 비교될 정도.
-캬……! 리그전 시작되면 진짜 볼만하겠네.
-그러게. 이번에야말로 북미 쪽이랑 한국 랭커들 발라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로터스나 칼데라스 빼고는, 다크블러드에 싹 다 발릴 듯.
-님. 그 말은 로터스랑 칼데라스는 힘들 거라는 뜻인가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음?
-하, 우리 갓 요르간드 님 영상 한번 정주행하고 오셈. 솔직히 대진 꼬이지만 않으면, 요르간드한테도 충분히 승산이 있음.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유럽 서버의 유저들뿐이었지만, 어쨌든 요르간드가 대단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님…… 이쯤 되면 팔이 안으로 굽어지다 못해 꺾인 거 아님?
-놉. 생각해 보셈. 레벨이야 요르간드가 조금 딸릴 수 있겠지만, 피지컬 떨어질 것 없는 데다 클래스가 PK 상성 우위에 있잖음.
-그런가?
-솔직히 카이는 몰라도 이안은…… 비슷한 클래스일 때, 소환술사로 암살자 어떻게 이김?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네.
그리고 그런 분위기 탓인지, 요르간드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인 요르간드까지도 정말 이안이나 카이를,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후후, 그래. 이번 기회에 내가 이안까지 잡아 버린다면……!’
그 때문에 요르간드는 기사 대전의 휴식 기간에도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두 톱랭커에 비해 부족한 레벨을 따라잡기 위해 밤낮없이 사냥하는 한편, 길드원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치밀하게 분석한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안의 경우, 최근 영상을 구할 수 없다는 정도.
이안은 기사 대전에조차, 코빼기를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안이 지금쯤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보다 5레벨 이상은 높겠지.’
그리고 그 결과, 요르간드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휴식 기간 동안 어떻게든 2레벨 정도를 올려야 해. 녀석들과 스펙 차이만 최대한 좁혀 놓으면, 내게도 승산이 분명히 있어.’
요르간드는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최대한 활약하여, 이안, 카이와 동일 선상에 이름이 거론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승부욕과 명예욕이 강한 그였기에, 기사 대전이라는 쉽게 오지 않는 기회를 꽉 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귀가 솔깃해질 만한 고급 정보가 들어왔다.
-루칼 : 요르간드, 지금 뭐 하고 있었어?
-요르간드 : 루칼 형, 무슨 일이야?
-루칼 : 아 다른 건 아니고, 지금 내가 엄청난 정보를 하나 얻었거든.
-요르간드 : 엄청난…… 정보?
-루칼 : 그래.
-요르간드 : 그게 뭔데?
다크블러드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그와 가장 친한 유저인 루칼로부터, 에픽 퀘스트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 것이다.
-루칼 : 대규모 전쟁 퀘스트야.
-요르간드 : ……!
-루칼 : 심지어 라카토리움과 정령계 간의, 차원 전쟁이라고.
-요르간드 : 미친……! 에픽이겠네?
-루칼 : 당연하지! 지금 너한테 필요한 게 이런 퀘스트 아니었어?
-요르간드 : 크……! 역시 형밖에 없어. 전쟁 퀘라니……! 잘하면 빠르게 3랩 정도는 당길 수 있겠는데?
요르간드는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차원 전쟁과 관련된 에픽 퀘스트에서 제대로 활약한다면, 평범한 사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경험치를 가져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루칼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너무도 달콤해 보이는 사과에는 역시 독이 발려져 있었으니 말이었다.
-루칼 : 그런데 이거, 조금 도박이긴 해.
-요르간드 : 도박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루칼 : 퀘스트 난이도가…… 초월 난이도로 무려 펜타 S등급이거든.
-요르간드 : 쿼드라도 아니고, 펜타?
-루칼 : 그래. 만약 퀘스트에 잘못 말려서 네가 죽기라도 하면, 리그전 앞두고 너무 큰 손실이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먹음직스런 퀘스트를 포기할 요르간드는 아니었고, 루칼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요르간드 : 그런데 말이야, 형.
-루칼 : 응?
-요르간드 :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데?
-루칼 : 후후, 너라면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요르간드 : 난이도가 높다는 건, 그만큼 보상도 더 달콤하다는 얘기잖아?
-루칼 : 물론.
-요르간드 :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어. 빨리 퀘스트나 공유해 달라고.
-루칼 : 길드 거점으로 와.
그렇게 길드 거점에 도착한 요르간드는 곧바로 루칼에게 퀘스트를 공유받았다.
띠링-!
-길드 마스터 ‘루칼’로부터, 퀘스트를 공유받았습니다.
-‘파괴의 군단(에픽)(히든)’ 퀘스트를 수령하였습니다!
이어서 반짝거리는 퀘스트 창과 함께, 요르간드의 눈앞에 추가적인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찰리스 학파의 수석 마도공학자, ‘피켄로’가 당신을 호출합니다.
-‘파괴의 군단(에픽)(히든)’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한 선행 퀘스트, ‘지휘관의 자질’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후략…….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는 요르간드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말려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 * *
셀라무스 부락의 가장 깊숙한 곳, 부족장의 거처.
그곳에 도착한 이안은 곧바로 ‘대지의 결의’를 인계받을 수 있었다.
띠링-!
-‘대지의 결의’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대지의 결의(봉인 해제)>
-분류 : 잡화(퀘스트 아이템)
-등급 : 신화(초월)
-트로웰이 남긴, 강력한 대지의 힘이 담겨있는 성물(聖物)입니다. 능력이 개방된 ‘대지의 결의’를 지니고 있으면, ‘대지’속성을 지닌 모든 아군들의 ‘강인함’이 깨어납니다.
*고유 능력
-대지의 수호(패시브) : 반경 200M 이내의 대지 속성을 가진 모든 아군의 물리, 마법 방어력이 30%만큼 증가하며, 동시에 ‘행동 불능’효과에 대한 저항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또 대지 속성을 가진 모든 실드의 내구도가 두 배로 증가합니다.
*능력이 개방된 ‘대지의 결의’를 지니고 있으면, 통솔력이 20%만큼 증가합니다.
*‘트로웰의 부탁’과 연계된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만 사용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모든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실패로 인해 중단될 시, 아이템은 소멸합니다.
그리고 이 ‘대지의 세 번째 성물’ 또한, 이안을 실망시키지 않는 강력한 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크…… 퀘스트 한정 사용 가능한 템이라 그런지, 역시 어마어마하네.’
강력한 광역 버프 효과를 확인한 이안은 더욱 기분 좋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어려운 퀘스트를 주려고, 이런 사기 템까지 줘 가면서 연계 퀘스트가 진행되는 걸까?’
분명 받게 될 퀘스트의 난이도는 이 성물들의 효과까지 전부 반영되어 책정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성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리플S 이상의 난이도가 뜬다면, 어떤 적들을 상대해야 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뭐, 못 깰 퀘스트는 아니겠지. 내가 못 깨면 누가 깨겠어.’
하지만 마음 편히 생각한 이안은 폴 크로네와의 대화를 기분 좋게 이어 가기 시작하였다.
일단 스토리를 진행하여 퀘스트를 획득한 뒤, 그때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은 고민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이것을 가지고, ‘대지의 요람’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겠군요.”
이안의 이야기에 크로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절대자시여. 세 가지 성물을 전부 회수하셨으니, 이제 요람에 잠들어 계신 트로웰 님을 깨워 드려야 하겠지요.”
“그 절대자라는 호칭은 뭔가 부담스러우니, 다른 걸로 바꿔 주시면 안될까요?”
“그럼 대전사님이라 칭하겠습니다.”
“차라리 그게 좋네요.”
그리고 크로네와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안은 머릿속에 윤곽이 잡혀 가기 시작하였다.
대충 퀘스트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대지의 요람으로 가는 길에, 분명 또 기계 군단과 싸워야겠지. 난이도는 지속적으로 더 어려워질 테고.’
두 번째 성물을 획득했을 때에는 그락투스의 전사들과 함께 싸웠으니, 이번에는 분명 셀라무스의 전사들과 함께 움직여야 할 터.
아마 비터스텔라의 남쪽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두 부족들의 병력과 합류하는 것이 일차적인 연계 퀘스트의 목표이리라.
“그럼 더 지체할 것 없겠군요. 기계문명 놈들이 지금도 호시탐탐 성물을 노리고 있을 테니, 곧바로 움직이도록 하죠.”
“맞는 말씀이십니다, 대전사님.”
“셀라무스 전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모든 퀘스트의 진행이 완벽히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연계 퀘스트의 안에는 이안이 생각지 못했던 콘텐츠가 끼어 있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대전사님.”
“네?”
“그 전에 한 가지,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잠시 뜸을 들인 크로네가,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기계문명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 먼저 절대자의 직위를 정식으로 계승해 주십시오.”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셀라무스의 절대자 계승(히든)’ 퀘스트를 수령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