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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90화 (31/1,027)

< 890화 8. 셀라무스 부족의 부락 >

셀라무스 부족의 부락에 도착한 이안과 제니스는 일단 퀘스트를 일단락 지었다.

너무 오랜 시간 연속으로 게임을 플레이한 이안이, 먼저 게임에서 나갔기 때문이었다.

“휴우, 저는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네요.”

“아, 그……럴까요?”

“뭐 이제부터는 각자 퀘스트 목적도 다르니, 따로 플레이해도 무관하니까요.”

“그, 그렇긴 하지만…….”

“만약 저랑 계속 퀘스트 같이하고 싶으시면, 내일 새벽 6시쯤 접속해 주시면 됩니다.”

“새벽 6시요?”

“제가 아마 그쯤 접속할 것 같거든요.”

“아…….”

“뭐,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까지 안 오시면 혼자 진행하고 있을게요.”

“넵, 알겠습니닷.”

띠링-!

-파티원 ‘???’유저가 게임을 종료하였습니다.

-파티가 해체됩니다.

-공유되었던 모든 퀘스트가 소멸됩니다.

그리고 이안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보던 제니스는 살짝 상기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아직까지 이안이 자신의 정보를 파티원 비공개로 돌려 둔 탓에 정확히 그의 유저 네임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그가 진짜 이안임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NPC가 별명을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 그는 내가 아는 소환술사 랭킹 1위 이안이 분명해!’

평소 내성적인 성향에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내가 이안과 같이 에픽퀘를 하게 되다니……!’

그리고 이것은 제니스가 아니라 그 어떤 유저였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안이라는 최고의 네임드 유저와 파티 퀘스트를 진행할 기회는 사실 복권에 당첨되는 것 이상으로 희귀한 것이었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같은 소환술사 클래스이기까지 했으니, 제니스의 흥분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아자잣……!”

그런데 잠시 후,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자 제니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무심결에 현재 시간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일렀던 탓이었다.

-현재 시각 : 18시 53분

일상의 대부분이 카일란인 제니스와 같은 랭커에게, 7시라는 시간은 무척이나 이르게 느껴졌던 것.

‘이렇게 이른 시간에 로그아웃을 하시다니. 이안 정도 되는 랭커라면 밤샘 플레이를 밥 먹는 것처럼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하지만 제니스는 곧 고개를 주억거렸다.

새벽 6시라는 꼭두새벽에 접속하겠다는 그의 이야기가 떠올랐으니, 이안을 아침형 인간이라고 지레짐작해 버린 것이다.

‘게임을 엄청 규칙적으로 하시나 보다. 그게 어쩌면 톱 랭커의 비결일 수도 있겠어.’

물론 이안을 잘 아는 로터스의 길드원들이 제니스의 생각을 알았더라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것이었다.

이안이 먼저 접속 종료를 선언하는 일부터가 무척이나 희귀한 일이었던 데다, 제니스는 지금 딱 봐도 이안의 마수(?)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진실을 알 리 없는 제니스는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내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찍 일어나서, 이안의 접속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기로 말이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여기서 끝날 수는 없지. 따라갈 수 있는 데까지는 무조건 따라가야만 해……!’

하여 제니스는 당장에라도 셀라무스의 부락을 돌아다니며 콘텐츠들을 확인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은 마음가짐으로 게임을 종료하였다.

-카일란을 종료합니다.

-잠시 후, 접속이 종료됩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접속을 종료하여 잠자리에 누워야, 내일 새벽같이 카일란에 접속할 수 있을 테니 말이었다.

물론 시차 적응(?)이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그날 제니스가 새벽까지 불면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조금 슬픈 일이었다.

* * *

진성이 이례적으로 카일란에서 일찍 접속 종료한 이유는 사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하린과 외식을 하기로 한 날이었으니 말이다.

‘휴, 겨우 시간 맞춰서 로그아웃했네.’

7시에 집에서 출발하기로 하였으니, 조금만 더 늦게 로그아웃했더라면 하린에게 적잖이 핀잔을 들었을 터.

물론 약속 시간을 7분 남겨 둔 상태에서 로그아웃한 것 자체가 이미 늦은 감이 있기는 하였지만, 진성은 빠르게 외출 준비를 시작하였다.

후다닥-.

‘아침에 샤워는 했으니, 머리만 빠르게 감으면……!’

쏴아아-!

쏜살같이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진성은 곧바로 머리를 감기 시작하였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5분여 정도.

스슥-.

이어서 침대에 놓여 있던 외출복을 빠르게 입은 진성은 방문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시선은 자동으로 거실에 걸려 있는 시계를 향했고.

-06 : 59

시간을 확인한 진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세이프!”

그러자 거실 소파에 앉아 이미 기다리고 있던 하린이 피식 웃으며 대꾸하였다.

“오, 웬일로 시간을 정확히 맞췄네?”

“이 정도야 기본이지!”

“됐고, 빨리 나가기나 하자. 배고파 죽겠단 말이야.”

“알겠어.”

하린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진성은 벽걸이 수납장에 걸려 있던 차 키를 집어 든 뒤 현관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게임하기 바쁜 진성에게 운전면허 같은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왜, 운전이라도 해 보려고?”

“그럴 리가.”

때깔 좋게 번쩍이는 고급스런 차 키의 주인은 사실 진성이 아니라 하린이었던 것이다.

“자, 이거 챙기시고요, 사모님.”

“엘베나 부르시죠, 아저씨.”

하린에게 차 키를 건넨 진성은 현관 옆의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터치하였다.

그러자 진성과 하린의 집이 있는 고층까지, 순식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였다.

최근 지어진 신축 아파트에만 있는 편리하기 그지없는 신문물이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쩐 일로 외식을 하자는 거야?”

진성의 물음에, 하린이 입을 삐죽 내밀며 대답하였다.

“오랜만에 나도, 남이 해 주는 밥 좀 먹어 보고 싶어서.”

“아하.”

그 대답에 진성은 잠시 멋쩍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 좋았어. 그럼 오늘은 내가 거하게 한번 산다!”

“히히, 그럴 줄 알고 이미 예약해 놨지.”

“어딜?”

“지난번에 가자고 했던 거기.”

“……?”

하린의 말을 들은 진성은, 잠시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헉, 설마……!”

“그 설마가 맞지롱.”

하린이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고기 녹는 마을인지 뭔지. 거길 가려는 건가 본데…….’

진성의 안색이 살짝 핼쑥해졌고,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고기 녹는 마을’이라는 이름의 고깃집은 동네에서도 악명 높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고기가 녹는 것이 아니라, 돈이 녹는 곳이라고 말이다.

“하, 한우를 먹고 싶으면 그냥 정육 식당 가면 안 돼?”

“싫은데.”

“거기 지난번에 클로반 형이 갔다가, 혼자서 거의 100만 원어치 먹고 나왔다던 그곳 아냐.”

“그 오빠야 정상이 아니니까 그렇지.”

“그건 그렇지만…….”

“우리 둘이 아무리 먹어도 그 오빠 혼자 먹는 것만큼 못 먹을 테니 걱정 말라고.”

하린은 요리가 전공인 만큼 먹는 것을 좋아하였고, 그중에서도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물론 진성 또한 하린만큼이나 고기를 좋아했지만, 둘의 취향은 약간 결이 다른 것이었다.

하린은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급지고 비싼 고기를 즐긴다면, 진성은 적당히 맛있는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좋았으니 말이다.

사실 외식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어느 정도 고기를 예상하긴 했었다.

집에서 고기를 구우면 집 안 곳곳에 냄새가 배기 때문에, 하린은 고기를 먹고 싶을 때면 거의 외식을 선택했으니 말이었다.

‘으, 클로반 형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 둘이 먹어도 50~60은 그냥 나올 것 같은데…….’

한 끼에 50만 원이 넘는 돈이 아깝긴 했지만, 진성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진성의 금전 개념이 떨어져서 그렇지, 그의 벌이를 생각하면 사실 부담될 만한 가격도 아니었다.

당장 몇 분 사냥해서 초월 장비 하나 주워다 팔면, 몇십만 원 정도는 바로 메꿀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런 방면으로 별로 생각이 없는 진성이였기에, 바로바로 계산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부르릉-!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운전석에 앉은 하린이 익숙하게 시동을 걸고 안전벨트를 맸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면, 거의 배태랑 운전사급의 포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옆에 앉은 진성은 불안 가득한 표정이었다.

“안전 운전 부탁드립니다, 사모님.”

“내 차는 항상 안전하다고.”

“거짓말…….”

“운전 시작하고 아직 세 번밖에 사고 안 냈으면, 엄청 안전한 거 아냐?”

“운전 시작한 지가 세 달이 안 된 게 문제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진성은 창문 위쪽에 달린 손잡이를 조용히 움켜쥐었다.

이거라도 쥐고 있지 않으면, 심신이 안정되지 않는 탓이다.

“자, 그럼 출발한다?”

“규정 속도 준수. 알지?”

“한 번만 더 잔소리하면 버리고 갈 거야.”

“계산을 내가 해야 하는데?”

“네 카드는 이미 내 가방에 들어 있지롱.”

“후우…….”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린 진성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였다.

‘오늘도 제발 무사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진성의 그 기도가 먹힌 것인지.

두 사람은 그날, 데이트를 무사히 마치고 귀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길을 잃어서 고속도로를 탈 뻔했던 아찔한 순간만 뺀다면 말이다.

* * *

띠링-!

-홍채 인식 완료.

-‘이안’ 님 카일란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까만 시야 속에 하얗게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이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의 하늘이 천천히 그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휘유, 생각보다 조금 일찍 들어왔네.”

이안이 카일란에 접속한 시간은 정확히 5시 15분.

한우를 빵빵하게 먹은 탓인지 전날 거의 10시쯤에 곯아떨어졌고, 덕분에 처음 계획보다 더 빨리 기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제 조금만 방심했으면, 아직까지 도로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귀갓길에 발견했던 경부고속도로의 표지판을 떠올린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 거기서 그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들었더라면, 지금쯤 부산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한우는 정말 맛있었지. 초월 장비 괜찮은 거 하나 주우면, 한 번 더 가자고 해야겠어.’

자신의 기준에서 ‘괜찮은’ 초월 장비가 얼마인지 인지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엉뚱한 생각을 떠올린 이안은 히죽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잡다한 생각들을 하는 것도 잠시뿐.

이안의 머릿속은 다시 게임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였다.

‘어제 그 친구는 아마 6시 전에 들어오겠지. 에픽 퀘스트라는 떡밥을 덥석 문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야.’

정확히는 이안이라는 떡밥을 문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확신하였다.

제니스가 자신과 함께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시간 맞춰 접속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여 이안은 그녀가 올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물론 정말 기다림만을 위한 기다림은 아니었지만 말이었다.

‘제니스가 올 때까지 고대의 정령 마법이나 한번 연구해 봐야겠어.’

셀라무스의 부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이안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정령술 탭을 오픈하였다.

그러자 그 하위 카테고리에서 반짝거리는 ‘고대의 정령술’이라는 문구에, 이안의 시선이 그대로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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