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86화 (890/1,027)

< 886화 6. 대지의 결의 (2) >

* * *

카일란에서 글로벌 메시지는, 제법 심심치 않게 떠오르는 편이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억 단위가 넘는 인구가 카일란을 플레이하고 있었으니, 카일란 세계의 메인 스토리나 중요 퀘스트와 관련되어 떠오르는 글로벌 메시지가, 하루에 두세 번 이상은 떠올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안이라는 이름이 유저 이름으로 떡 하니 박혀 있는 글로벌 메시지는, 여타 메시지들과 그 무게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안은 누가 뭐래도 지금 카일란의 모든 유저들 중 가장 선두에서 콘텐츠를 진행 중인 인물이었고, 때문에 그로 인해 발생한 월드 메시지는 다른 랭커들에게 경각심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안 이놈은 또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야?

-휘도르 마을? 그게 어디지?

-으, 이 자식은 기사 대전 잠깐 쉬는 타이밍에, 바로 월드 메시지 띄워 버리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정작 이안 당사자는 본인이 띄운 월드 메시지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안은 오히려 월드 메시지 이후에 추가로 떠오른, 다른 메시지들에 흥미를 느끼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대 유적의 정체를 밝혀내었습니다.

-‘고대의 정령 마법-물 (에픽)(서브)’ 퀘스트의 진행도가 15.7%만큼 증가합니다.

-……중략……

-이제부터 지도에 유물의 위치가 표시됩니다.

‘어? 유물의 위치……?’

생각지도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에, 이안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였다.

‘그러니까, 샤트라 일족의 퀘스트를 깬 뒤에 받았던 서브 퀘스트의 유적 필드가……. 지금 여기랑 동일 위치라는 말이지?’

이어서 이안의 양 입꼬리가, 귀에 걸려 올라갔다.

어쨌든 에픽 퀘스트에 귀속되어 있는 서브 퀘스트이다 보니,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기가 막힌 타이밍에 연결되며 진행할 수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유적의 위치를 의도치 않게 쉽게 찾아내었다는 점도 기분이 좋았지만, 가장 기분 좋은 것은 퀘스트 진행 동선이 완벽해졌다는 것이었다.

동선 낭비 없이 서브 퀘스트 먼저 클리어한 뒤, 겸사겸사 셀라무스의 흔적까지 찾아내면 완벽한 일정이 되는 것이다.

‘좋아. 그럼 셀라무스 퀘스트는 잠시 미뤄 두고, 서브 퀘스트부터 먼저 클리어해 볼까?’

어차피 두 퀘스트 모두 시간제한이 없는 퀘스트였기에, 이안은 여유로웠다.

게다가 정령계와 관련해서 이안만큼 진행도를 쌓은 유저도 있을 수 없었기에, 경쟁자도 없는 것이다.

‘퀘스트 진행하기 전에 준비할 게 뭔가 있으려나?’

이안은 퀘스트 창 한 쪽에 밀어 두었던, ‘고대의 정령 마법’ 퀘스트를 열어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퀘스트 창 하단의 문구를 확인한 뒤, 표정이 살짝 찌그러졌다.

*흉상의 조각을 잘못 맞춘다면, 조립한(획득한) 모든 파편이 소멸됩니다.

*‘정화의 목걸이’ 아이템 보유 시,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아도 결계를 해체할 수 있습니다.

‘젠장, 준비물이 확실히 있었네.’

문구를 보자마자 이안의 머릿속에 떠오른 준비물.

그것은 다름 아닌, ‘릴슨’이었다.

* * *

기사 대전의 16강 일정까지 전부 마무리된 뒤, 한동안 로터스 길드의 길드 채팅 창은 잠잠한 상태였다.

길드원들의 사적인 이야기들은 대부분 다른 그룹 채팅 창에서 진행되었고, 공식 길드 채팅 창은 길드 차원에서 어떤 이벤트가 진행될 때에만 활성화되었으니, 기사 대전 휴식기인 지금은 채팅 창이 조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하던 길드 채팅 창에, 불쑥 채팅이 올라왔다.

-이안 : 릴슨 형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길드 채팅 창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길드원.

이안의 채팅이 올라온 것이다.

-레미르 : 릴슨 오빠는 갑자기 왜?

-이안 : 왜긴. 필요하니까 그렇지.

-피올란 : 릴슨 님한테 개인 메시지 보내 보셨어요? 아까 보니까 접속 중이시던데.

-이안 : 네, 피올란 님. 접속해 있길래 메시지 날려 봤는데, 아예 읽지도 않더라고요.

-간지훈이 : 혹시 피하는건…….

-이안 : 그럴 리가. 릴슨갓이 날 피할 리가 없잖아?

-간지훈이 : …….

어쨌든 이안이 채팅 창에 나타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길드 채팅 창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이안은 로터스 길드 안에서도 유니콘(?) 같은 존재였고, 때문에 신입 길드원들일수록 이안을 연예인 대하듯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란 : 우와, 이안님이다……!

-페르시 : 캬, 이안님을 길드 채팅에서 보다니, 신기해……!

-이안 : 신기하실 것까지야…….

-초란 : 이안 님! 리그전에는 꼭 출전하시는 거죠?

-페르시 : 제발요. 리그전엔 꼭 나와 주세요.

-이안 : 어, 어지간하면요…….

어쨌든 오랜만에 등장한 탓에 격렬한 환영 인사를 받은 이안은 채팅 창이 다시 잠잠해지기 시작하자 본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헤르스 : 그래서 릴슨 형은 왜 필요한 건데?

-이안 : 아 그게 사실…….

-헤르스 : ……?

-이안 :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퍼즐 퀘스트를 받았거든.

-간지훈이 : 켁!

-이안 : 그래서 우리 릴슨갓이 간절히 필요하단 말이지.

-레미르 : 아니, 퍼즐 정도는 네가 맞추면 되잖아? 굳이 릴슨 오빠를…….

-이안 : 나 조각 인식 장애가 있나 봐.

-레미르 : 뭐?

-이안 : 퍼즐에 ‘ㅍ’ 자만 봐도 현기증이 날 것 같거든.

-레미르 : 뭐야, 네가 게임 안에서 못 하는 것도 있었어?

하여 길드원들에게 물어 가며, 한참 동안 릴슨의 행방을 찾던 이안.

그런데 바로 그때, 이안에게 구원자와도 같은 인물이 채팅 창에 등장하였다.

-카윈 : 뭐야, 지금 릴슨 형 찾고 있는 거야?

길드 안에서 그 누구보다 릴슨과 친한, ‘카윈’이 등장한 것.

-헤르스 : 오, 카윈이다. 카윈이라면 릴슨 형 찾아 줄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이안 : 오오……!

하지만 카윈을 통해서, 이안은 지금껏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고 말았다.

-카윈 : 그러니까 지금, 그 퍼즐 퀘스트 깨는 것 때문에 릴슨 형을 찾고 있었단 말이지?

-이안 : 그렇다니까?

-카윈 : 하, 어떻게 그런 최악의 선택을…….

-이안 : 응……?

-카윈 : 내가 머리털 나고 릴슨 형처럼 조형 감각 없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그 형이 무슨 퍼즐을 맞춰.

-이안 : 뭐, 뭐라고?

-카윈 : 지난번에 보드게임방 같이 갔었는데, 그 형 퍼즐 맞추는 거 보고 암 걸릴 뻔했단 말이야.

-이안 : 커헉……?

-카윈 : 퍼즐 맞추는 퀘스트를 릴슨 형한테 시키느니, 차라리 우리 집 고양이한테 시키는 게 낫겠다.

-이안 : 그, 그럴 리가……!

카윈의 이야기에, 이안은 적잖이 충격 받고 말았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릴슨보다도 훨씬 더 퍼즐을 맞추지 못하는 자신의 실력에 너무 큰 자괴감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안 : 믿을 수 없어……!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는 이안의 앞에, 또 다른 증언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릴리아 : 카윈 오빠 말이 맞아요, 이안 님. 그때 저도 같이 있었는데, 릴슨 오빠 퍼즐 진짜 더럽게 못 찾던데요?

-이안 : …….

-릴리아 : 퍼즐 때문에 릴슨 오빠를 데려가느니, 저 같으면 차라리 퀘스트 포기할 것 같…….

채팅 창을 보던 이안은,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드래곤으로 변한 뿍뿍이가 처음으로 정상적인 말투를 쓸 때보다도, 몇 배는 커다란 충격이 전신을 엄습했으니 말이었다.

‘릴슨갓의 퍼즐 실력이 허접이었다니……! 이건 말도 안 돼!’

그런데 이안이 멍한 표정으로 말을 잃어버린 바로 그때, 채팅 창에 또다시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레미르 : 그런데 퍼즐 같은 콘텐츠면, 사실 우리 길드에 실력자 하나 있지 않아?

-이안 : 누나, 그게 무슨 말이야?

-레미르 : 훈이한테 한번 부탁해 봐.

-이안 : 후, 훈이?

-레미르 : 내가 알기로 훈이 쟤, 완전 씹덕이야.

-이안 : ……?

-레미르 : 맨날 프라모델 조립하고 3차원 퍼즐 맞추고……. 취미 생활일걸?

이어서 레미르의 채팅에 이어, 의기양양해진 훈이의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간지훈이 : 후후, 퍼즐 때문에 릴슨 형을 찾는 거였다니.

-이안 : 네가 진짜 퍼즐을 그렇게 잘 맞춰?

-간지훈이 : 당연하지. 지난번에 길드 거점에서 릴슨 형 퍼즐 맞출 때, 도와준 것도 난데? 그 천 피스 넘는 새카만 3차원 퍼즐.

-이안 : ……!

그리고 훈이는, 이안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탐스러운 제안을 내어놓았다.

-간지훈이 : 퍼즐 맞춰야 되는 거. 내가 싹 다 맞춰 주도록 하지.

-이안 : 미친! 훈이 갓!

-간지훈이 : 대신 조건이 있어, 형.

-이안 : 뭔데? 말만 해, 갓훈!

-간지훈이 : 다음에 나 퀘스트 할 때, 형이 한 번 도와줘야겠어.

-이안 : 오케이! 한 번. 아니 두 번도 도와준다!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구세주(?)를 만난 이안은, 곧바로 정령 마법 퀘스트를 깨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 * *

고대의 정령 마법 퀘스트는, 생각보다 무척 간단한 것이었다.

과거 ‘휘도르 마을’이었던 유적지를 수색하여, 정령 마법과 관련된 ‘유물’들을 찾아내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유물이라는 것이, 그냥 바닥에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저레벨의 오염된 정령들 사이에서 종종 등장하는 60레벨 정도의 ‘고대의 정령’을 처치하면, 녀석이 가끔 드롭하는 게 바로 유물 조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이 고대의 정령을 찾아서 토벌하고 다니자, 초보자 필드에 있던 유저들은 행복해질 수밖에 없었다.

“캬, 대박! 저것들 때문에 서쪽 사냥터 못 가고 있었는데, 오늘 사냥 완전 개꿀이잖아?”

“와 씨, 고대 정령 60레벨이던데. 저걸 저렇게 쉽게 잡는다고?”

“한 초월 70레벨쯤 되는 고수 아닐까?”

“크으! 역시 랭커는 다르구나!”

그리고 퍼즐에 대한 부담감을 해소한 이안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유물 조각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악령의 유적 때와 마찬가지로 수백 개도 넘는 흉상 조각을 모아야 했지만, 그 정도 노가다쯤은 이안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퍼즐을 대신 맞춰 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 노가다가 가능했으니 말이다.

‘흐흐, 훈이 녀석이 이렇게 쓸모 있는 녀석이었다니. 앞으론 좀 잘해 줘야겠어.’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유물 조각들을 주워 담으며, 두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총 700종류의 조각을 대부분 모아 낸 이안.

그리고 조각이 열 개 정도 남았을 즈음, 드디어 이안의 구세주가 휘도르 마을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여, 이안 형. 갓 훈이 님 오셨다.”

“킹 갓 훈이!”

“퍼즐인지 뭔지, 얼른 줘 봐. 빨리 맞추고 하던 퀘스트 하러 가야 하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훈이 님. 대령하겠나이다.”

이안은 인벤토리에 정리해 두었던 퍼즐 조각을 깡그리 긁어 훈이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훈이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크, 이거 삼차원 변칙 퍼즐이네. 재밌겠다.”

“변칙 퍼즐? 그게 뭔데?”

“맞추기에 따라서 결과물이 두세 가지로 나오는, 자유도 높은 퍼즐이야.”

“뭐라고?”

“아마 퀘스트에서 원하는 모양으로 맞추려면, 세 번 정도는 시도해야 할 듯.”

“뭐 그런 거지같은 퍼즐이 다 있어?”

“나도 카일란에서 처음 본 퍼즐이야.”

훈이의 이야기에 이안은 겁에 질린 표정이 되었다.

만약 퍼즐의 난이도가 높아 훈이가 맞춰 내지 못한다면, 또다시 지옥이 펼쳐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안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휴, 나머지 17조각 다 모아 왔어, 훈아. 이제 퍼즐만 맞추면…….”

“빨리 줘 봐. 그 조각만 끼우면 끝날 것 같으니까.”

“뭐, 뭐라고……?”

이안이 남은 조각을 모아 오는 사이, 훈이가 모든 퍼즐을 전부 다 맞춰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조각이 잘 드롭되지 않은 탓에 거의 한 시간 정도가 걸리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안으로서는 믿기 힘든 속도.

하지만 이안이 경악하든 말든, 나머지 퍼즐 조각을 받아 든 훈이는 순식간에 퍼즐을 완성하기 시작하였다.

척-처척-!

그리고 모든 조각이 완성된 순간.

띠링-!

이안의 눈앞에,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정말 이안으로서는, 믿을 수 없게도 말이다.

띠링-!

-모든 조각이 맞춰졌습니다.

-낡은 조각들이 모여, ‘고대의 정령 마법 유물’이 완성되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유물을 가지고 ‘정령수호자’를 찾아간다면, ‘고대 정령술’을 습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퀘스트를 완수하셨습니다!

-정령왕 ‘엘리샤’와의 친밀도가 +10만큼 상승합니다.

-‘정수목걸이(영웅)(초월)’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히든 스텟, 물 속성 스텟을 +5만큼 획득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물 속성을 가진 모든 고유 능력의 위력이 15%만큼 증가합니다.

-이제부터 물 속성을 가진 모든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5%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이안은 벌어진 입을 채 다물지도 못한 채,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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