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85화 (889/1,027)

< 885화 6. 대지의 결의 (1) >

두 번째 대지의 성물인 대지의 심장은, 대지의 눈 때와 마찬가지로 연계 퀘스트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비자르 협곡을 돌파하고 나오자마자, 퀘스트가 활성화됨과 동시에 미니맵에 녹빛 점이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미니맵을 확인한 이안의 표정이, 어쩐지 묘한 느낌으로 변하였다.

‘흠, 세 번째 성물은 비터스텔라의 바깥에 존재하는 건가? 여기는 비터스텔라가 아니라 정령산에서도 최남단인데…….’

이안이 의아한 표정이 된 이유는 간단하였다.

당연히 비터스텔라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대지의 마지막 성물의 위치가,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곳에 찍혀 있었으니 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물의 위치라기보다는 퀘스트 진행을 위한 목적지가 찍혀 있는 것이었지만.

이안이 진행하는 퀘스트의 목적이 ‘대지의 결의’를 찾는 것이었으니, 목적지가 곧 성물의 위치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뭐, 일단 표시된 곳으로 가 봐야겠지. 퀘스트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말이야.’

하여 이안은 의아함을 뒤로한 채, 그락투스의 전사들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비터스텔라의 남부 지역을 지날 무렵.

퀘스트의 진행에, 이안이 생각지 못했던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겨났다.

“숲의 대전사님을 뵙습니다.”

“엇? 여기는 어쩐 일이신지요?”

“대지신께서 저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어요.”

“대지신께서?”

“이곳에서 대전사님을 기다리라고 말이지요.”

비터스텔라를 벗어나기 직전, 숲의 하이엘프 일족인 샤트라 일족의 전사들과 만났으니 말이었다.

그리고 샤트라 일족의 지도자인 솔루미엘로부터, ‘대지신의 신탁’이라는 것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다.

“대지신께서 신탁을 내리셨습니다.”

“어떤 신탁요?”

“곧 기계 문명의 파괴자들이 대지의 신단을 공격할 것이다.”

“……?”

“하니 그락투스 일족의 전사들과 함께, 파괴자들로부터 신단을 지켜 내도록 하라.”

하지만 이안은 솔루미엘의 이야기에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퀘스트의 내용이 바뀐 것도 아니고 대지의 심장은 여전히 남쪽을 가리키고 있는데, 갑자기 신단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퀘스트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기도 하나?’

하지만 솔루미엘의 말이 조금 더 이어지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저희가 그락투스의 대전사들과 함께 대지의 신단을 지켜낼 테니, 대전사께서는 남쪽으로 향하시지요.”

“아…….”

“마지막 성물을 얻으신 뒤, 셀라무스 부족의 전사들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솔루미엘과의 만남은 에픽 퀘스트의 흐름상 필요한 스토리였던 것이고, 퀘스트의 전개 자체는 변한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함께 움직이던 그락투스의 전사들을, 남겨 놓고 움직여야 한다는 점은 달랐지만 말이다.

‘정예 전사 삼인방을 못 쓴다는 점은 아쉽지만, 연계 퀘스트를 깨다 보면 어차피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하여 이안은 그락투스의 전사들을 숲에 남겨 둔 뒤, 비터스텔라를 벗어나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일행의 규모가 다시 줄어든 덕에 이동속도가 더욱 빨라진 것은 장점이었다.

‘움직이는 동안, 생각이나 좀 정리해 두자.’

불용이의 등에서 슬쩍 눈을 감은 이안은, 시간이 생긴 김에 오래 전의 기억들을 끄집어내 보았다.

* * *

이안에게 처음 정령계의 존재를 알려 준 존재.

그리고 처음으로 정령계의 메인 스토리와 관련된 에픽 퀘스트를 부여해 줬던 존재.

이안이 떠올린 것은, 벌써 1년도 더 전의 일인 ‘물의 정령왕 엘리샤’와의 만남이었다.

-셀라무스의 절대자이시여, 부디 우리 정령계에 도래한 어둠을 걷어 주세요. 오래전 과거처럼, 우리 정령들이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게…….

이안이 갑자기 엘리샤와의 만남을 떠올린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지금 진행 중인 퀘스트가 셀라무스 일족의 부락을 찾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정령왕의 성물을 찾는 퀘스트였으니, ‘셀라무스’와 ‘정령왕’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과거의 퀘스트를 떠올려 보게 된 것이었다.

‘엘리샤를 소환했던 정령왕 소환 마법진……. 그걸 얻었던 퀘스트가 바로, 고대 셀라무스 일족의 시험이었지. 정확히는 셀라무스 부족의 절대자 퀘스트였나?’

셀라무스 부족의 절대자 퀘스트는, 사막 부족들의 여덟 절대자와 싸워 강함을 증명하는 퀘스트였다.

그리고 그 퀘스트의 보상으로 받았던 것이 바로, ‘정령왕 소환 마법진’ 아이템이었던 것.

가신들 중 가장 손재주가 뛰어난 ‘한’의 도움을 통해, 이안은 마법진을 활성화시킬 수 있었고, 마법진으로 소환된 엘리샤를 만나 그녀로부터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초월 100레벨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까지도, 클리어하지 못한 그 오래된 퀘스트를 말이다.

-정령왕 엘리샤의 부탁Ⅰ (에픽)(히든)(연계)

-아직 완수하지 못한 퀘스트입니다.

그리고 정령왕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제법 많이 알게 된 지금.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의아했던 부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정령을 소환하는 마법진은, 해당 정령과 계약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아티펙트가 맞아. 당시에 엘리샤와 계약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라카토리움에 갇혀 있기 때문이었겠지.’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안은 몇 가지 추론을 더 해볼 수 있었다.

이안이 엘리샤를 만날 수 있게 징검다리 역할을 해 줬던 셀라무스의 일족.

당시에는 그들이 그저 정령왕 소환 마법진을 제공한 것일 뿐 퀘스트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대지의 성물 퀘스트에도 셀라무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어쩌면 처음부터 엘리샤를 만나게 됐던 것 자체가 셀라무스의 절대자 ‘에오스’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궁금하네. 셀라무스의 부락을 찾아서 도착하면, 셀라무스의 전사 NPC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걸까?’

셀라무스와 관련된 퀘스트들을 여러 번 진행했던 이안은, 셀라무스 일족의 NPC들과 제법 친밀도가 있었다.

셀라무스의 전대 절대자인 ‘에오스’라든가, 셀라무스의 수호자인 ‘이클립스’등의 NPC들.

당시 300레벨 언저리였던 이클립스의 경우 ‘중간자’가 아닐 확률이 높았지만, 전대 절대자인 ‘에오스’라면, 그때 이미 중간자였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여러 의미에서 기대되는군. 이번 퀘스트는 말이야.’

과거의 스토리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다각도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흥미로운 생각들.

그리고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는 사이, 순식간에 정령산을 가로질러 움직인 이안 일행은 곧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띠링-!

-정령산 남부, ‘알 수 없는 유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지들을 확인하던 이안의 두 눈이, 또 한 번 크게 확대되었다.

-서브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휘도르 마을의 흔적(에픽)(선행)(연계)’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퀘스트의 전개가, 계속해서 예상을 깨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선행 퀘스트? 셀라무스 퀘를 진행하기 전에 깨야 하는 퀘스트인가? 그리고 휘도르 마을은 또 뭐지?’

탓-.

가벼운 발놀림으로 불용이의 등에서 내린 이안은 우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 * *

대지의 성물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이안이 도착한 곳은, 사실 무척이나 익숙한 곳이었다.

정령산의 남부, 정령계의 초보자 마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

‘프뉴마’마을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알 수 없는 유적지’라는 필드였으니 말이다.

“와! 저 사람 용을 타고 나타났어.”

“대박, 최소 전설 등급 소환수겠지?”

“크, 부럽다. 장비도 엄청 좋아 보이는데, 못해도 초월 50레벨은 넘어 보여.”

“저런 고레벨이 여긴 왜 왔을까?”

‘알 수 없는 유적지’ 필드는, 정령계에 입문한 대부분의 유저들이 거쳐 가는 사냥터였다.

초월 레벨과 드롭 경험치에 비해 잡기 쉬운 ‘오염된 정령’들이 대거 출몰하는 사냥터이다 보니, 초월 10~15레벨 사이의 유저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냥터였던 것이다.

이안이야 해당 구간을 워낙 빠르게 돌파한 탓에 거쳐 가지 않았던 사냥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드 자체를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몇 번 와 보지 않았던 장소이다 보니, 좌표만 보고 바로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좌표가 여기였다니…… 여기에 무슨 숨겨진 던전이라도 존재하는 건가?’

이안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대지의 마지막 성물을 보관하는 셀라무스 일족의 부락이 초보자 사냥터 근처에 있다는 것은, 뭔가 아이러니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근방의 맵은 수많은 정령계 유저들에 의해 싹 다 밝혀진 상태.

만약 셀라무스의 부락이 이 근방에 있었더라면, 아직까지 커뮤니티에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너무도 이상하였다.

‘일단 퀘스트부터 읽어 봐야겠어. 좌표 근처를 뒤져 본다 해서 뭔가 알아낼 수 있는 건 없을 듯하니…….’

살짝 고개를 갸웃한 이안은, 일단 새로 생성된 퀘스트의 내용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갈수록, 이안의 두 눈에 흥미가 동하기 시작하였다.

<휘도르 마을의 흔적 (에픽)(선행)(연계)>

-두 번째 대지의 성물인 ‘대지의 심장’은 당신을 정령산의 남쪽으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당신은 그곳에서 폐허가 된 고대 ‘휘도르’마을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대지의 심장이 어째서 이곳으로 당신을 인도하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지의 힘이 이유 없이 이곳을 향했을 리는 없을 터. 과거 ‘물의 성소’가 있던 정령 마을인 ‘휘도르 마을’의 유적 속에서, ‘셀라무스’ 일족의 흔적을 찾아보도록 하자.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셀라무스’ 부락의 위치에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B-

-퀘스트 제한 시간 : 없음

-퀘스트 조건 : ‘셀라무스 일족의 부락을 찾아서(에픽)(연계)’ 퀘스트 진행 중

*해당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다음 선행 퀘스트가 연계됩니다.(‘퓌라 마을의 흔적’ 퀘스트)

-보상 : 명성(초월) 18,000, 물의 정령왕 ‘엘리샤’와의 친밀도+3, 정령왕의 머리 장식 조각

‘과거 물의 성소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그럼 프뉴마 마을의 물 속성 버전인가?’

퀘스트 내용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된 이안의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하였고, 그런 그의 눈앞에 돌연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하고 떠올랐다.

띠링-!

-유저 ‘이안’에 의해, ‘알 수 없는 유적 A’의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이제부터 ‘알 수 없는 유적 A’의 명칭이, ‘휘도르 마을의 유적’으로 변경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이안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닌, 정령계에 접속해 있던 모든 유저들의 눈에 보이는 글로벌 월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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