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4화 5. 대지의 심장 (4) >
찰리스 학파의 수석 기계공학자이자, 전투 기계 연구원이기도 한 남자 피켄로.
뛰어난 기계공학 기술력과 학파에 대한 충성심 덕에, 찰리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는, 이번 임무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과거 라카토리움에서 있었던 기계공학 학파들의 내전인 ‘십년전쟁’ 때 이후로, 찰리스가 이렇게까지 분노한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파괴의 군단까지 내주시다니, 이건 어떻게든 그를 저지하라는 뜻이야.’
여기서 ‘그’란, 당연히 기계 문명과의 전쟁 중인 숲의 대전사 이안을 말하는 것.
‘대지의 정령왕이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학파의 일정에 크게 차질이 생기겠지.’
하여 피켄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고 꼼꼼하게 준비를 하였다.
무작정 숲의 대전사를 찾아가 그에게 싸움을 거는 것은, 그리 좋지 못한 선택이라고 판단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보로만 보더라도, 놈은 대단한 강자가 분명해. 그리고 지금 득달같이 쫓아가 봐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겠지.’
지금쯤 숲의 대전사는 아마 그락투스 일족의 전사들과 함께 비자르 협곡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켄로는 숲의 대전사를 그 전투에서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지 않았다.
자력으로 기계 군단을 뚫고 그락투스의 부락을 찾아낸 실력자가, 이제 그락투스의 힘까지 업었으니.
같은 비자르 협곡의 기계 군단으로 막아 낼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피켄로의 판단으로는, 지금 파괴의 군단을 이끌고 가 봐야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끝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 것.
뒤늦게 도착해서 대전사와 마주친다 하더라도,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렇게 질질 끌려 다녀서는, 결코 그를 저지할 수 없어. 내가 원하는 판을 깔아야지.’
쿵-.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피켄로는 모든 파괴의 군단 기계 전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역작이자 가장 애지중지하는 전투 병기인 RQ-17호에 탑승하였다.
기잉- 기이잉-!
태생부터 5티어의 전투 병기인 데다 뛰어난 기계공학자인 피켄로가 여러 차례 개조해서 만든, 강력한 전투 로봇인 RQ-17호.
피켄로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17호의 조종석에 가볍게 올라탔고, 이어서 파괴의 군단 기계 전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기이잉- 철컥-!
-제군들, 우리는 곧바로 비터스텔라의 북쪽, 샤이야 산맥으로 향할 것이다.
수백기의 전투 로봇들을 향해,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커다란 기계 음성.
-그곳에 숲의 대전사보다 먼저 도착하여, 그들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준비를 할 것이다!
그리고 말을 마친 피켄로는, 17호를 조종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철컹- 쿵- 쿵-.
이어서 피켄로의 조종에 따라 방향을 틀어 움직이던 17호는 돌연 허공으로 빠르게 날아오르기 시작하였다.
콰아아아-!
마치 로켓이 발사되기라도 하듯, 커다란 크기의 불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17호.
17호를 따라 나머지 파괴의 군단 로봇들도 날아올랐으며.
콰아아-!
우우우웅-!
수백 기가 넘는 로봇이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할 만한 광경이었다.
* * *
커다란 폭음, 파열음과 함께 너덧 기의 기계 로봇들이 동시에 터져 나간다.
콰쾅-.
퍼어엉-!
이어서 그 주변으로 거칠게 피어오르는 짙은 모래바람의 폭풍.
고오오오-!
황금빛의 벽처럼 보일 만큼 짙은 색을 띄고 있던 모래바람은 점점 더 선명하게 모여들더니, 이내 하나의 거대한 형체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장의 모든 거인들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모습이 되어 나타났다.
-그락투스 정예 전사, ‘요르틴’의 고유 능력. ‘사막의 칼날 폭풍’이 발동되었습니다.
-기계 괴수 ‘카카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카루’의 내구도가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기계 괴수 ‘카카루’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기계 괴수 ‘타이타루’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중략……
-모래폭풍의 힘이 대지의 기운을 흡수합니다.
-‘요르틴’의 대지 속성 공격 능력이 일시적으로 7%만큼 증폭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요르틴’의 고유 능력, ‘사막화’패시브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켄델로프’가 유틸형 탱커 역할을 수행한다면, ‘요르틴’은 강력한 광역 딜러 역할의 히든카드였다.
100% 활용하기에는 까다로운 고유 능력들이지만,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면 어마어마한 위력을 뽑아낼 수 있는 광역 메이지.
골렘과 같은 거대한 존재가 ‘메이지’라는 사실이 약간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는 있었으나, 요르틴은 분명 강력한 마법사였다.
지금까지 이안이 만나 본 어떤 대지 속성의 마법사보다도, 강력한 위력의 광역기를 구사하는 파괴의 마법사 말이다.
<사막의 칼날 폭풍(액티브)>
-그락투스의 정예 전사 요르틴은 강력한 대지의 힘을 움직이는 고대의 마법사입니다. 요르틴은 사막의 모래바람을 소환하여 그것을 수백 개의 날카로운 마법 칼날로 만들고, 그것으로 적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깁니다. -모래칼날은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며, 전방 50m 이내의 적들에게 강력한 대지 속성의 마법 피해를 입힙니다. 칼날 한 개당 ‘요르틴’이 가진 마법 공격력의 175%만큼의 위력을 가지며, 세 개 이상의 칼날에 적중된 대상에게는 ‘건조한 상처’ 효과를 부여합니다. ‘건조한 상처’ 상태인 대상은 요르틴의 모든 공격에 추가 물리피해를 입으며, 20초 동안 ‘회복불가’ 상태에 빠집니다. 만약 ‘사막화’ 패시브가 활성화된 상태에서 ‘사막의 칼날 폭풍’을 사용한다면, 요르틴이 모래폭풍 그 자체가 되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모래폭풍과 동화된 요르틴은 일시적으로 전장에서 사라집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5초)
<샌드 홀(액티브)>
-요르틴은 사막의 힘을 이용하여, 대지에 거대한 모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 소용돌이에 갇힌 적은 천천히 소용돌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며, 이동속도가 50%만큼 감소합니다. 샌드 홀의 지속 시간이 끝날 때까지 소용돌이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강력한 마법 피해를 입음과 동시에 2초 동안 ‘공포’ 상태에 빠져듭니다.
*만약 범위 안의 적이 샌드 홀의 중심부까지 끌려 들어간다면, 샌드홀의 지속 시간이 끝날 때까지 모래사막 안에 묻히게 됩니다.
*모래사막 안에 묻힌 대상은, 매초당 최대 생명력의 5%가 감소됩니다. (모래사막에 묻힌 대상은 공격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막화’ 상태에서 샌드 홀을 사용한다면, 샌드 홀의 지속 시간이 더욱 길어집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300초) (지속 시간 : 10초)
<사막화(패시브)>
-모래바람과 사막의 수호자인 요르틴은, 자신이 사막 그 자체로 동화될 수 있습니다. 사막의 힘을 사용하여 적을 처치할 때마다 대지의 기운을 흡수하며, 자신의 생명력을 10%만큼 회복하고 마법 공격력을 7%만큼 증폭시킵니다. 대지의 기운을 5회 흡수한 상태에서 한 번 더 패시브가 발동될 시, 모든 버프 중첩을 소모하여 ‘사막화’ 상태가 됩니다. ‘사막화’ 상태에서 고유 능력을 사용하면 강화된 고유 능력이 발동되며, ‘사막화’ 상태가 해제됩니다. ……후략…….
요르틴은 모든 그락투스의 정예 전사 중에서, 가장 고유 능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전사였다.
다른 전사들은 3~4개 정도의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요르틴만 유일하게 7개나 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고유 능력들 중, 결국 가장 핵심이 되는 능력은 위의 세 가지.
나머지 고유 능력들은 결국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데에 그치는 전형적인 공격 마법이었지만, 위의 세 능력들은 유틸적으로 요르틴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사막의 칼날 폭풍’과 ‘사막화’고유 능력의 시너지는, 이안조차도 군침을 흘리게 만들 정도였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요르틴 만큼은 가신으로 등용하고 싶단 말이지.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요르틴은 메이지답게, 덩치가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탱킹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생명력 자체는 높지만 방어력이 무척이나 낮아서, 캐릭터의 콘셉트(?)에 걸맞게 모래성처럼 부서져 내리니 말이다.
하지만 사막의 칼날 폭풍을 생존기로 사용한다면, 그 단점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는다.
계수가 낮아서 위력 자체는 그리 강력하지 않지만, 재사용 대기 시간이 짧고 회복 효과까지 있으니 말이다.
다른 강력한 위력의 마법을 난사하다가 위급 시에 칼날 폭풍으로 어그로를 빼 주고 회복한다면, 이런 난전 상황에서 이만한 생존 스킬이 없는 것이다.
그르르륵-!
가끔은 킨델로프를 대신하여, 잠깐 동안 어그로를 끌어 주는 역할까지도 수행할 수 있을 정도.
-저 마법사 놈부터 잡아!
-폭격을 퍼부어라……!
여기에 ‘툴란’의 안정적인 서포팅까지 더해지니, 이안이 이끄는 그락투스의 군대는 빠르게 기계 군단을 쓸어 담기 시작하였고.
-기계 병사를 성공적으로 파괴하였습니다!
-기계 괴수 ‘카카루’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기계 군단 처치 달성도 : 67.8%
-……중략……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이안은 퀘스트의 조건을 순식간에 충족할 수 있었다.
-기계 군단 처치 달성도 : 91.25%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비자르 협곡’의 전출로가 개방되었습니다.
-‘비자르 협곡의 전투 (에픽)(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습니다.
-명성(초월)을 15,000만큼 획득하였습니다.
-그락투스 부족과의 친밀도가 25만큼 상승합니다.
-‘숲의 대전사’ 칭호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그리고 보상 목록을 확인한 이안의 두 눈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 칭호가…… 이렇게 변해 준다고?’
퀘스트의 보상을 통해 봉인이 해제된, ‘숲의 대전사’칭호의 부가 옵션.
그것은 무척이나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다른 칭호들에 비해서 더 나을 것이 없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할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숲의 대전사(봉인 해제)>
-숲의 대전사는 ‘대지신’의 인정을 받은 존재입니다. 대전사는 자신의 모든 공격에, 강력한 대지의 힘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숲의 대전사 칭호를 착용할 시, 모든 고유 능력이 ‘대지’ 속성으로 전환됩니다. (원래 부여된 속성이 있었던 고유 능력의 경우, 대지 속성으로 변경됨과 동시에 그 위력이 10%만큼 추가로 증가합니다.)
이 칭호를 통해 이제 이안까지도, 대지의 성물들로 인한 버프 효과를 절반 이상 누릴 수 있게 된 것.
‘이거 대박이잖아……!’
그 덕분에 이안의 입가에는 함지박만 한 웃음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그와 동시에 이안의 눈앞에, 연계 퀘스트의 발생을 알리는 추가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조건이 충족되어, 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셀라무스 일족의 부락을 찾아서 (에픽)(연계)’ 퀘스트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