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3화 5. 대지의 심장 (3) >
* * *
‘리그전’이란, 해당 리그에 참가한 모든 팀들이 돌아가면서 한 차례씩 대전하여 순위를 가리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기사 대전의 결승 리그전을 만약 평범한 리그전 방식대로 진행한다면, 총 마흔 다섯 경기가 나오게 된다.
패자부활전으로 부활한 팀들까지, 총 열 팀이 참가하니 말이다.
결승 리그라기에는, 경기 숫자가 너무 많은 것.
물론 팬들의 입장에서는, 경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 카일랑 유저들 중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들만이 모인 리그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팬들의 바람일 뿐, LB사에서는 그렇게까지 일정이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여 기획팀은, 무척이나 독특한 방식으로 결승 리그를 설계하였다.
<포르투나의 제1전장(검투장)>
-기사 대전의 최종 리그에 참전하는 열 개의 팀은, 랜덤하게 두 개의 조에 편성됩니다.(A조 다섯, B조 다섯)
-A조로 편성된 다섯 개의 길드는 오전 10시에 검투장에 입장하게 되며, B조로 편성된 다섯 개의 길드는 오후 3시에 검투장에 입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검투장’에서, 조별로 생존 싸움을 펼치게 됩니다. 각 조별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두 개의 팀만이, 포르투나의 제2전장인 ‘운명의 언덕’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각 길드는 검투장에 입장할 열 명의 ‘정예 검투사’를 먼저 선출해야 합니다.
*검투장이 열리면, 선별된 열 명의 검투사 중 하나를 20초 내로 입장시켜야 합니다.
*입장한 검투사가 사망할 시, 10초 내로 다음 검투사를 투입해야 합니다.(투입하지 못한다면, 해당 길드는 남아 있는 정예 검투사의 숫자에 상관없이 검투장에서 아웃됩니다.)
*다섯 번째 입장한 정예 검투사까지 패배하여 생존에 실패한다면, 해당 길드는 검투장에서 아웃됩니다.
*검투장에서의 모든 경기가 종료되면, 제2의 전장인 ‘운명의 언덕’에 대한 정보가 오픈됩니다.
포르투나의 제1전장은, 말 그대로 검투장의 시스템이었다.
각 길드별로 선정된 한 명의 정예 기사가 검투장 안으로 입장하여, 완전히 자유롭게 싸움을 벌이는 구도였으니 말이다.
또 한 번 전에 없던 콘텐츠가 공개된 것.
물론 기사 개개인의 전투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이제까지의 경기들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다섯 곳의 길드가 동시에 전투를 벌인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변수들이 많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면, 로터스나 칼데라스도 안심할 수 없겠는데?
-왜요?
-나머지 길드들이 작정하고 다굴 놓으면, 아무리 로터스라 해도 방법이 있겠음? 4 : 1인데.
-어, 듣고 보니 그러네요.
-맞음. 나 같아도, 제일 위험한 놈부터 다굴 쳐서 아웃시켜 버리겠다.
-ㄴㄴ 근데 님들, 한 가지 잊은 게 있음.
-그게 뭔데요?
-우리 이안갓 이라면, 4 : 1도 거뜬할 거라는 사실 말이죠.
-여기서 또 이안무새가…….
-아무리 이안이라도 그건 좀…….
거기에 검투장 콘텐츠에서 끝나지 않고, ‘운명의 언덕’이라는 비공개 콘텐츠까지 아직 남아 있었으니.
카일란 팬들은, 더욱 기대에 차 결승 리그를 기다릴 수 있었다.
-하, 1주일 언제 기다리지.
-그동안 퀘스트나 깨고 사냥이나 열심히 합시다들.
-그래야겠음. 물론 관전도 재밌긴 하지만…… 랭커들 경기 보다 보니 게임이 더 격렬히 하고 싶어지네.
-님도 막 카이처럼 무쌍 찍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럼?
-어떻게 알았음? 천재임?
하지만 기사 대전이 시작되고부터 점점 더 강렬하게 타오르던 후끈한 열기는, 패자부활전이 끝난 뒤 조금씩 잠잠해질 수밖에 없었다.
1주일이나 아무 경기 없이 공백이 이어질 예정이다 보니, 흥분이 차차 가라앉은 것이다.
그리고 그 1주일이라는 공백은, 사실 랭커들을 위한 LB사의 배려이기도 하였다.
그간 기사 대전 때문에 미뤄 두었던 퀘스트들과 콘텐츠들을, 한 달음에 쭉 달릴 수 있도록 시간을 준 것이다.
물론 기사 대전에는 관심도 없던 탓에, 밀린 퀘스트 같은 것이 하나 없는.
조금 특이한 랭커도 한 명 있었지만 말이었다.
-간지훈이 : 형, 결승 리그부터는 참전할 거지?
-이안 : 1주일 뒤라고 했나?
-간지훈이 : 응, 맞아.
-이안 : 그때 가서, 생각 좀 해 보고.
-간지훈이 : …….
* * *
모든 준비를 끝마친 이안은, 지원받은 그락투스 일족의 병력과 함께 전장으로 나섰다.
성문을 열고, 거침없이 비자르 협곡을 향해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안이 전투지대로 걸음을 옮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대지의 통찰’ 패시브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대지의 용맹’ 패시브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모든 대지 속성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대지 속성을 가진 모든 아군의 공격력이…….
‘크, 패시브 효과 오졌고!’
대지의 성물들로 인한 패시브 효과를 확인한 이안은, 감탄과 동시에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가 보유한 소환수와 정령들을 통틀어, 대지 속성을 가진 개체가 빡빡이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대지의 신룡이라도 한 마리 있었으면, 진짜 대박이었을 텐데.’
하지만 언제나 최상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고, 때문에 이안은 지금의 상황에도 충분히 만족하였다.
어쨌든 모든 그락투스 일족의 전사들은 전부 대지 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이안이 따로 고를 셋의 정예 전사들은 신화 등급 소환수에 못지않은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전장으로 나서기 전에 이미 어떤 식으로 전투를 굴려 갈지 싹 다 시뮬레이션 해 두었으니.
비자르 협곡을 가득 메우고 있는 기계 괴수들은, 싹 다 먹잇감으로 보일 뿐이었다.
“켄들로프, 선두로……!”
-대전사님의 명을 받듭니다.
그그긍-!
이안의 오더가 떨어지자, 그락투스 일족의 정예 전사 중 하나인 ‘켄들로프’가 빠르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쿵-쿵-쿵-!
그는 세 명의 정예 전사들 중 스텟 상으로는 가장 탱킹 능력이 떨어지는 전사였지만, 이안이 그를 선두로 보낸 데에는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켄들로프는 이안이 머릿속에 그려 놓은 그림의 첫 획을 그어 줄, 특별한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카드였다.
<전장의 광기(패시브)>
-그락투스의 정예 전사 켄들로프는, 난폭한 전장의 학살자입니다. 켄들로프는 적의 공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때마다, ‘전장의 광기’ 중첩을 하나 획득합니다. ‘전장의 광기’ 중첩이 하나 쌓일 때마다, 켄들로프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얻습니다.
*물리공격력+15
*모든 회복 효과 증가+0.7%
*공격 속도+0.1%
*적에게 일반 공격을 명중시킬 시, 최대 생명력의 0.05%만큼 회복
*최대 생명력 –0.2%
-전장의 광기 중첩은 최대 300스텍까지 쌓을 수 있으며, 생명력이 30% 이하일 때는 3배로 빠르게 쌓입니다. 쌓인 스텍은, 켄들로프가 전장에서 벗어난 뒤 10초가 지나면 전부 소멸됩니다.
<전사의 강인함(패시브)>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정예 전사인 켄들로프는,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입어도 정신력으로 버텨 냅니다. 생명력이 10% 이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죽음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을 시, 해당 피해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전사의 강인함’이 발동할 시, 3초 동안 켄들로프의 공격 속도가 2배 만큼 빨라집니다.
<참을 수 없는 도발 (액티브)>
-재사용 대기시간 : 30초
-켄들로프가 적을 도발하여, ‘참을 수 없는 도발’ 상태에 빠뜨립니다. ‘참을 수 없는 도발’ 상태가 된 대상은 흥분하여 켄들로프를 공격하게 됩니다. ‘참을 수 없는 도발’ 상태가 된 대상은, 다음의 효과를 받습니다.
*물리, 마법 공격력+20%
*물리, 마법 방어력-20%
*공격 속도+30%
*모든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시간 x2
*켄들로프를 제외한 어떤 대상도 공격할 수 없습니다. ‘참을 수 없는 도발’ 상태는, 켄들로프가 사망하거나 전장에서 이탈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켄들로프의 고유 능력들은, 이안이 지금껏 본 적 없는 특별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스킬 구성보다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지향하는 스킬 구조였기에, 이안의 마음에 쏙 들 수밖에 없었다.
‘전장의 광기 200스텍 이상을 얼마나 빨리 쌓느냐가 관건이겠어,’
전장의 광기 패시브는, 콘셉트 그대로 켄들로프를 광전사로 만들어 준다.
스텍이 쌓이면 쌓일수록 켄들로프의 공격력이 강해지고 공격 속도가 빨라지는 대신, 최대 생명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시스템이었으니 말이다.
광기가 쌓일수록 적의 공격에 취약해지지만, 반대로 공격능력이 늘어나는 메커니즘인 것.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폭발적인 파괴력을 얻을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 켄들로프라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여기서, 완벽히 기획 의도대로 이 캐릭터를 사용할 생각이 아니었다.
이안은 기획팀의 의도를 한 번 더 비틀어서, 이 녀석을 오히려 ‘탱커’로 사용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툴란! 켄들로프에게 강철의 맹약!”
-명을 받듭니다!
쿠구궁-!
이안의 두 번째 오더가 떨어지자, 두 번째 정예 전사인 ‘툴란’이 방패를 번쩍 치켜올린다.
그리고 이안의 오더대로, ‘강철의 맹약’ 고유 능력을 발동시켰다.
띠링-!
-정예 전사 ‘툴란’의 고유 능력, ‘강철의 맹약’이 발동합니다.
-정예 전사 ‘툴란’이, 정예 전사 ‘켄들로프’와 강철의 맹약을 맺었습니다.
-‘켄들로프’의 공격력이 40%만큼 감소합니다.
-‘켄들로프’의 물리, 마법 방어력이, 감소한 공격력만큼 증가합니다.
-‘툴란’의 물리, 마법 방어력이, ‘켄들로프’의 공격력이 감소한 만큼 증가합니다.
-‘강철의 맹약’은 5분 뒤에 해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켄들로프와 툴란의 고유 능력 정보를 전부 아는 유저가 이안의 이 오더를 지켜보았더라면, 의아함에 두 눈을 부릅떴을 것이다.
완전히 공격형으로 고유 능력들이 세팅된 ‘광전사’ 콘셉트의 켄들로프에게, 일견 이 ‘강철의 맹약’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의 그림 속에 있는 켄들로프에겐, 이 강철의 맹약 효과가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전장의 광기로 뻥튀기된 공격력이 방어력으로 싹 다 몰빵되니, 이만한 효과가 없지.’
그렇다면 이안은 대체 왜.
빠른 공격 속도로 적을 삭제시켜야 하는 광전사에게, 공격력이 40%나 감소되는 강철의 맹약을 적용시킨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켄들로프의 두 번째 고유 능력.
‘전사의 강인함’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어떤 피해를 입어도 한 번에 20% 이상의 생명력이 깎이지 않게 하려면, 방어력을 극대화시켜야 해.’
전사의 강인함 패시브를 가진 켄들로프는, 생명력이 10%이상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한 번에 그 두 배 이상의 피해를 입지 않는 한 사망하지 않는다.
물론 연속해서 그 정도의 피해를 입는다면 패시브가 벗겨지면서 사망하겠지만, 여기에 ‘전사의 광기’ 패시브를 곁들인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전사의 광기 스텍이 200스텍을 넘기면, 평타 한 방에 생명력이 10% 이상 회복되겠지. 이러면 이론상으로, 켄들로프는 거의 무적이 되는 거야.’
애초에 이안은, 켄들로프의 공격 능력 때문에 이 녀석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방어력과 공격 속도, 그리고 회복 능력을 극대화시켜, 적들의 어그로를 전부 끌어모으며, 좀비같이 살아남는 역할이 바로 켄들로프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임무를 수행하기에 최적이라 할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도발’ 액티브 스킬도 있었으니.
이안이 생각하는 완벽한 그림에서, 켄들로프는 무척이나 중요한 카드라고 할 수 있었다.
“자, 다음은 요르틴! 켄들로프의 후방으로 따라붙어!”
-예, 대전사님.
쿠쿠쿵-!
그리고 켄들로프가 방어 카드였다면, 이안의 세 번째 픽인 요르틴이야말로 핵폭탄과 같은 공격 카드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