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8화 4. 이라한의 설계 (1) >
이안과 카이자르, 그리고 헬라임.
허공을 가르며 질주하는 셋의 위용은, 호루스 수비대의 입장에서 무척이나 위협적인 것이었다.
최초 발견 시에야 워낙 먼 거리였기 때문에 그 실루엣만이 어렴풋이 보이는 수준이었으나, 점점 더 가까워져 구체적인 외관이 확인될수록, 위압감이 드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위압감을 주는 것은 셋이 타고 있는 소환수들이었다.
우선 비룡의 진화 형태인 철갑신룡 아이언부터 어지간한 보스급 몬스터의 위용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전설 등급 몬스터로 잘 알려진 그리핀과, 칠흑의 페가수스 같은 외형을 가진 까망이까지.
뭐 하나 만만해 보이는 비주얼이 없었으니 말이다.
“막아! 방공포대 뭐 해!”
자신이 준비한 회심의 공격이 막히자, 다급한 표정이 된 올리비아가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발사!”
그러자 성곽에 준비되어 있던 기계 대공포들이 연신 불을 뿜었고, 강력한 탄환들이 일제히 목표를 향해 쏘아졌다.
펑-퍼펑-!
그리고 다음 순간, 올리비아는 또 한 번 기겁해야만 했다.
요새를 향해 날아오던 세 그림자들이, 그녀를 놀리기라도 하듯 모든 탄환들을 피해 버렸으니 말이다.
마치 서커스단의 곡예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기가 막히도록 정교한 움직임.
‘미친! 대체 NPC AI를 어떻게 만들어 놓았기에, 저걸 다 피하는데?’
그녀는 지금 요새를 향해 날아드는 세 그림자들이, 유저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들을 다 떠나서.
미치지 않고서야 유저 셋이(?) 초월 100레벨대가 득실거리는 호루스 요새에 뛰어들 리 없었으니 말이었다.
게다가 유저였다면, 자신이 쏘아 보낸 썬더 스피어를 그리 쉽게 막아 낼 수는 없었을 터.
‘젠장, 퀘스트 난이도가 더블에스이긴 했어도, 처음부터 이런 괴물들이 튀어나올 줄이야.’
올리비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침착하게 다른 마법들을 캐스팅하기 시작하였다.
정확한 레벨 대는 확인이 불가능했으나, 세 놈 모두 최소 120레벨은 될 것임이 분명한 상황.
이제 잠시 후면 저 괴물들이 요새 안으로 뛰어들 것이었고, 그 전에 버프 마법과 같이 유틸성 좋은 마법들을 준비하여 기계 로봇들을 강화시켜야 했으니 말이다.
우우웅-!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서도, 랭커답게 침착함을 유지하는 올리비아.
그녀는 자신과 함께 퀘스트를 받은 길드원들에게도, 꼼꼼히 오더를 내리며 움직였다.
“마티아스! 어그로 받을 준비해! 카밀라가 뒤에서 실드로 보조해 줄 거야!”
“예, 마스터!”
“안토넬라는 어그로 빠지는 순간, 곧바로 암살 시도하고.”
“알겠어요, 마스터.”
“최대한 기계 병사들을 이용해야 해. 얘들 레벨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는 거, 잊지 말란 말이야.”
“오케이! 걱정 마시죠.”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 온 길드원들은, 그녀의 오더에 신속하게 반응하였다.
그리고 바쁘게 입을 놀리는 와중에도, 올리비아는 전방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다행인 건, 저 셋 말고 아직 후속 병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데…….’
이제는 거의 코앞까지 다가온 시커먼 그림자들을 보며, 전의를 불태우는 올리비아!
하지만 이 순간까지도 그녀가 알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서걱-!
“……?”
안타깝게도 그런 준비들이, 별로 의미 없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 * *
쉬익- 쐐애액-!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나운 포탄 소리를 들으며, 이안은 더욱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다른 건 몰라도 대공포에는 맞아 줄 수 없지.’
카일란에서는 ‘대공포’ 종류의 방어 시설의 경우, 아무리 초월 레벨이 높고 장비가 좋아도 강력한 데미지가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피격자의 레벨과 스텟에 비례한, 추가 피해가 들어오니 말이다.
공성전에서 공중 병력의 전략적 활용도가 너무 높은 탓에,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인 것.
그 때문에 이안은 아이언을 컨트롤하는 데 모든 정신을 집중하였다.
대공포는 강력한 대신 탄속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컨트롤만 잘하면 충분히 피해 낼 수 있다는 계산으로 말이다.
캬아아오오-!
이안이 고삐를 잡아당기자, 고개를 치켜 든 아이언이 순식간에 수직으로 솟아올랐다.
카이자르를 태운 핀과 헬라임을 태운 까망이가 그 뒤를 바짝 쫓았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 포탄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콰쾅- 콰콰쾅-!
그리고 이안이 노린 것이 바로, 한 차례 포탄 세례가 떨어진 직후였다.
‘다음 탄환이 장전되기 전까지, 거리를 최대한 좁혀야 돼……!’
대공포의 재장전 시간을 이용해서 요새의 공중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이안이 처음부터 노리고 있던 노림수였던 것이다.
드르륵- 철컥-!
포탄들이 발밑으로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이안은 귀신같이 하강비행을 시작하였다.
쐐애애액-!
대공포들이 재장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초 정도.
그 안에 요새의 코앞까지 접근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 시간 안에 요새 안쪽까지 도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원거리의 비행 물체를 공격하는 데 특화된 대공포들에게는 최소 사거리가 존재했고, 그 레인지 안쪽으로만 들어가면 대공 방어선은 무력화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됐다!’
충분히 거리를 좁힌 이안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고, 그와 동시에 다시 대공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날아드는 포탄들을 보면서도, 이안은 여유로웠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저 대공포들은, 절대 그를 맞출 수 없었으니까.
슈슉- 슈슈슉-!
이어서 이안이 예상했던 것처럼, 목표물을 잃은 대공포들이 허공에 비산하였다.
대공포의 메커니즘을 모른다면,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좋아!’
그리고 그사이 성공적으로 성벽에 접근한 이안은, 그대로 아이언의 위에서 뛰어내렸다.
타탓-!
마치 짜인 각본처럼,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이안의 움직임.
이어서 이안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악령의 심판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그리고 바닥에 내려섬과 동시에, 자신을 막아서는 창기사를 향해 그것을 그대로 그어 내렸다.
서걱-!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대사를 던지면서 말이다.
“왠 쪼랩이 여기 있는 거야?”
* * *
소브레 길드의 기사단원 마티아스는, 스페인 서버에서도 알아주는 창기사였다.
기사 클래스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전사 클래스 이상의 DPS를 뽑아내는, 강력한 근접 공격형 창기사 랭커.
그의 히든 클래스는 ‘매드 나이트(Mad Knight)’였고, 이 히든 클래스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방패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방패를 착용하지 않은 채 양손 무기를 사용할 때, 모든 공격 기술의 위력이 뻥튀기되는 것이 바로 이 매드 나이트의 특징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마티아스의 전투 장비들은, 탱킹보다 공격력 위주로 세팅되어 있었다.
공격력 위주로 옵션을 세팅해도 기사 클래스의 높은 생명력과 ‘중갑’의 기본 방어력 덕분에 제법 단단하였고, 여기에 ‘흡혈’ 옵션들을 최대한 도배하여 다른 기사들보다 부족한 탱킹 능력을 메우는 것이, 마티아스의 전투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오늘, 마티아스는 처음으로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양손 창의 데미지 뻥튀기를 위해, 방패를 들지 않은 것을 말이다.
“어, 어어……?”
일단 첫 번째 공격부터 ‘무기 막기’는커녕,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조차 실패해 버렸으며.
서걱-!
-‘숲의 대전사’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65,820만큼 감소합니다.
-‘악마의 낙인’이 각인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데미지야?’
연달아 쭉쭉 빠져나가는 생명력은,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낙인에 의해 피해량이 증폭됩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465,980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451,224만큼 감소합니다!
“커허억……!”
200만이 넘는 빵빵한 생명력 게이지가, 순식간에 절반까지 떨어져 내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뻘건 기운을 머금은 정체불명의 대검이, 그대로 마티아스의 가슴을 갈라 버렸으니 말이다.
-악마의 낙인이 풀 스텍되어, 조건부 ‘무장해제’ 상태에 빠져듭니다.
-모든 방어력을 무시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498,029만큼 감소합니다!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비명을 내지른 마티아스.
‘뭐라고?’
하지만 그의 비명은 육성이 되어 울려 퍼질 수 없었다.
-모든 생명력이 소진되었습니다.
-사망하셨습니다.
-잠시 후, 게임에서 자동으로 아웃됩니다.
-29…… 28…… 27…….
‘……?’
비명을 지른 그 순간, 그는 이미 죽어 있었으니까.
‘미, 미친…….’
마티아스는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철컹-!
이어서 묵직한 철갑옷이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와 함께, 마티아스의 시야가 점점 회색빛으로 변하였다.
하지만 명백히 사망한 이 순간까지도, 마티아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건 사기야! 뭔가 잘못됐잖아?’
그리고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사 대전까지 포기하고 온 마티아스의 입장에서.
이안이라는 존재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건 함정이야!’
그러나 마티아스의 경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실 부정 중인 그는 사망했음에도 곧바로 로그아웃하지 않았고, 덕분에 이어진 이안의 활약을 회색 화면으로 감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 하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퀘스트인가?’
세 자루의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러 대며, 100레벨대의 기계들을 순식간에 묵사발 내는 ‘숲의 대전사’라는 녀석.
나머지 두 대검전사들도 경악스러운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숲의 대전사’라는 녀석에 비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적어도 다른 두 놈은, 어떻게든 대항해 볼 엄두 정도는 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카밀라, 보, 보호막!”
“이미 걸었잖아!”
“그, 근데 어디 갔어! 으아악!”
마티아스는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기사단장인 올리비아를 제외한 다른 모든 길드원들이, 녀석의 공격에 대항조차 못한 채 전부 녹아 버렸으니 말이었다.
그의 강제 로그아웃 대기 시간인 30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말이다.
‘못해도 150레벨은 되는 것 같은데…… 저런 녀석이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 거야?’
물론 이안은 아직 90레벨 초반밖에 안 되는 정상적인(?) 소환술사 유저였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 사실을 마티아스가 알았더라면, 무기력감에 게임 자체를 접고 싶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대기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게임에서 로그아웃됩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하며, 마티아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캡슐에서 나가면 컴퓨터를 켜고, 오랜만에 버그 리포트라도 한번 써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