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76화 (880/1,027)

< 876화 3. 대지의 힘을 찾아서 (2) >

그락투스 일족의 부락이 있을 것이라는, 거대한 바위협곡 비자르.

이 비자르(bizarre)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이곳은 험준하다 못해 기괴한 수준의 지형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기계 문명의 연합군이라 할 수 있는 ‘호루스’의 작전기지들이 자리 잡은 곳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비터 스텔라에서도 가장 난이도 높은 필드라고 할 수 있었다.

비터스텔라의 다른 필드들보다 몬스터 레벨대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훨씬 까다롭고 다양한 종류의 기계 괴수들이 등장하니 말이다.

‘여긴 별로 가고 싶지 않았었는데…….’

지금껏 이안이 비자르를 건드리지 않은 것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레벨 대는 비슷한데, 사냥 난이도는 더 높으니.

사냥 시간 대비 경험치 효율이 잘 나올 수 없는 구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일단 퀘스트는 깨야 하니까.’

하여 이안은, 빠르게 비자르를 향해 이동하였다.

애초에 거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산줄기를 따라 시계 방향으로 쭉 이동하면 돼, 불용아.”

“그렇게 이동하면 제법 돌아가는 건데…….”

“가로질러 움직이다가 호루스 기지에 발견되면, 괜히 번거로워지니까.”

“뭐, 알겠다, 주인.”

이안과 아렌을 태운 불용이를 선두로, 카이자르를 태운 핀과 헬라임을 태운 까망이가 허공을 날기 시작하였다.

일행은 이안의 오더대로 산줄기를 빙 둘러 이동하였고, 불용이의 등에 걸터앉은 이안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퀘스트 패턴을 보면, 이번에도 분명히 라카토리움에서 지원군이 올 것 같은데…….’

이안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퀘스트 창에 명시되어 있는 정보들만 가지고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특히 이런 연계 퀘스트를 진행할 때에는, 가지고 있는 정보를 활용하여 한발 앞선 판단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니 말이다.

‘퀘스트 내용에는 단순히 그락투스 일족의 부락을 찾으라고만 되어 있지만, 이번에도 분명히 기계 군단이 대지의 심장을 노리고 있을 거고.’

생각이 깊어진 이안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첫 번째 퀘스트가 수성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이번엔 조금 다른 패턴일 것 같은데…….’

이어서 이런저런 생각과 가정들을 떠올리던 이안은, 한 가지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퀘스트에선 기계 문명이 샤트라 일족의 부락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이번 퀘스트에서는 기계 문명도 그락투스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상태인 거야. 그래서 퀘스트 제한 시간이 뜨지 않았던 거고.’

기계 문명은 분명 트로웰의 힘들을 노리고 있다.

첫 번째 힘인 ‘대지의 눈’을 찾는 데 실패했으니, 분명히 대지의 심장과 대지의 결의를 손에 넣으려 할 터.

그리고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지의 눈’ 때와는 달리 나머지 두 힘들의 위치는 찾아내지 못하였다.

위치를 알고 있다면 해당 지역으로 군대를 보낼 것이고, 그랬다면 이안에게 시간제한 퀘스트가 떠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안은 이러한 추측들을 바탕으로, 한 가지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어쩌면 두 번째 연계 퀘스트부터는, 다른 두 성물의 위치가 아니라 내가 기계 군단의 목표일지도 모르겠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이안은, 다시 한번 퀘스트 창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이 정리된 상태에서 퀘스트 내용을 다시 읽자,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전략……. 무사히 그락투스 일족의 흔적을 찾아 그들의 부락에 도착한다면, 그들은 기꺼이 ‘대지의 심장’을 내줄 것이다. 대지의 힘을 노리는 기계 문명 침략자들의 눈을 피해, 빠르고 은밀하게 찾아내야 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

-퀘스트 조건 : 파티원 중 하나가 ‘대지의 눈’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파티에 80레벨(초월) 이상의, 정령술을 배운…….

-……중략……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명성(초월) 2만

‘그락투스’부족과의 친밀도 +20

퀘스트 내용에서 이안의 눈에 들어온 부분은, 바로 마지막 두 줄이었다.

‘무사히 도착할 것. 그리고 기계 문명 침략자들의 눈을 피해 찾아낼 것.’

추론을 끝내고 이 부분을 읽자, 기계 문명이 그를 노리고 있다는 짐작에 더욱 확신이 생긴 것이다.

‘한 번 더 균열을 이용해서, 기계 군단 경험치를 빨아먹을 각이 나오는 건가?’

떠올린 가정들을 바탕으로, 이안은 다시 한번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녀석들의 선행 목표가 대지의 심장이 아닌 이안 자신이라면, 균열로 녀석들을 유인하여 한 번 더 전투를 벌일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잠시 후, 이안은 계획을 다시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자르 협곡에 가까워졌을 무렵, 그의 눈앞에 예상치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으니 말이다.

띠링-!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대지의 힘이 감응하기 시작합니다.

-‘대지의 눈’ 아이템의 봉인된 능력이 개방됩니다.

‘뭐……?’

생각지 못했던 메시지의 내용에, 곧바로 대지의 눈을 꺼내어 정보 창을 확인하는 이안.

이안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머릿속에 완벽한 그림을 그려 낼 수 있었다.

<대지의 눈(봉인 해제)>

-분류 : 잡화(퀘스트 아이템)

-등급 : 신화(초월)

-트로웰이 남긴, 강력한 대지의 힘이 담겨 있는 성물(聖物)입니다. 능력이 개방된 대지의 눈을 지니고 있으면, ‘대지’속성을 지닌 모든 아군들의 지혜가 깨어납니다.

*고유 능력

-대지의 통찰(패시브)

-반경 200M 이내의 아군이 가진 모든 대지 속성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또 대지 속성을 가진 모든 버프와 치유 능력의 효과가 두 배로 증가합니다.

*능력이 개방된 대지의 눈을 지니고 있으면, ‘대지의 심장’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트로웰의 부탁’과 연계된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만 사용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모든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거나 실패로 인해 중단될 시, 아이템은 소멸합니다.

* * *

16강 경기까지 모두 끝나고, 이제 패자부활전과 리그전만을 남겨 놓은 기사 대전.

이 기사 대전의 재밌는 점은, 각종 룰이 적용되어 콘텐츠의 진행이 단조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10 vs 10의 일기토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32, 16강전과 달리, 패자부활전은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경기가 구성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패자부활전이 3판 2선승 구조라는 얘기지?

-맞아. 2경기만 먼저 따내면, 바로 경기 종료가 되는 거지.

-그럼 너무 짧게 끝나는 거 아니야?

-그래도 경기 자체는 훨씬 재밌을걸? 아무래도 3 v s3 경기가 일기토보다는 다양한 변수가 만들어질 테니 말이야.

-크, 그건 그래. 개인 실력이 좀 떨어져도 손발이 잘 맞으면, 충분히 역전각도 볼 수 있겠어.

-클래스 조합도 중요할 테고 말이지.

인간 진영의 열두 팀 중 한 팀과, 마족 진영의 열두 팀 중 한 팀.

이렇게 두 팀을 뽑아 리그전으로 올리는 시스템인 패자부활전.

게다가 준결승 이후 세 팀이 남는 상황 때문에, 패자부활전에는 부전승 시스템까지 존재한다.

대진운에 따라 세 경기만 승리하면 리그전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에, 하위 전력의 길드들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세 팀 남았을 때 제비뽑기 한다는데, 이것도 꿀 잼이겠어.

-그러니까 ㅋㅋ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사 대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최종 리그전 경기.

패자부활전이 끝나고 시작되는, 열 팀의 리그전이야말로, 수많은 팬들이 기대하는 콘텐츠였다.

이 경기들의 경우에는 아직 어떠한 룰도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유저들의 기대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종 리그전은 더 신박했으면 좋겠는데. 룰이 뭔지 진짜 궁금하네.

-그러게. 패자부활전에서 파티 대전이 나왔으니, 리그전은 더 신박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뭐가 됐든 LB사에서 유저들을 실망시키진 않을 듯.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관심사들 중에서도, 한국 서버 유저들의 최대 관심거리는 한국팀의 대진표일 수밖에 없었다.

각 진영 패자부활전에 참가하는, 타이탄 길드와 다크루나 길드의 대진표 말이다.

(타이탄 vs 아타르)-(체이서 vs 카이로스)

(다크루나 vs 그라탄)-(소브레 vs 스키노카게)

-타이탄이 아타르는 이길 것 같고, 체이서나 카이로스는 어디가 올라와도 쉽지 않겠네.

-다크루나는 그라탄 이기고 나면, 아마 스키노카게를 만나겠지?

-아마도 그럴 듯……?

-스키노카게 불쌍하네. 호왕한테 털리고 다크루나한테 또 털리면, 자국 팬들한테 욕 오지게 먹을 듯.

-ㅋㅋㅋ 맞네. 사실상 한일전에서 연패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3경기부터는 추첨 전에 상대를 알 수 없지만, 2경기까지는 대진표가 이미 있었으니.

유저들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가며 경기 결과를 추측하였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팬들에게는 또 하나의 콘텐츠나 다름없었으니,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쳤다.

-타이탄이랑 다크루나가 양 진영에서 나란히 부활하면 대박이겠다.

-그럼 그날 한국 커뮤니티 폭발할 듯ㅋㅋ

자국 서버의 네 팀이 나란히 리그전에 출전하는, 최상의 그림을 상상하는 한국 팬들.

하지만 그 상상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팬들은, 사실 별로 없었다.

32, 16강전에서 이미 드러난 전력을 봤을 때, 둘 중 한 팀만 올라와도 기적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 팬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기사 대전이라는 콘텐츠에, 외부적인 요인이 아주 강력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 * *

그라탄 길드의 길드 마스터이자 기사단장인 쿠커.

베트남 서버의 최강자이자 동남아 서버 전체에서 압도적인 팬을 보유 중인 그는, 랭커답게 무척이나 욕심이 많은 유저였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이번 기사 대전의 성적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16강도 아니고 32강에서.

그것도 개막전에 광탈을 했다는 결과는, 처음 기사 대전에 참전할 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결과였으니 말이다.

하여 쿠커는, 전력을 다해 패자부활전을 준비 중이었다.

다른 길드들의 모든 경기를 분석하며 전략을 짜고, 특히 패자부활전의 첫 번째 상대인 ‘다크루나’길드를 조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쿠커가 아무리 욕심이 많다고 해도, 우승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카일란 3대 서버의 1위 길드인 로터스나 칼데라스, 그리고 천웅 길드 같은 곳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비벼 볼 각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쿠커는, 리그전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였다.

즉, 패자부활전에서 부활하는 것 말이다.

‘리그전에 들어가면 거의 스무 경기는 더 할 수 있을 테니,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아쉽지 않겠지.’

하지만 패자부활전 첫 경기를 하루 앞둔 오늘.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길드의 정보원이자 그의 심복인 ‘바오’로부터, 생각조차 못 했던 정보를 얻었으니 말이다.

“마스터! 차원 전쟁과 관련된 에픽 퀘스트를 발견했습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바오?”

“찰리스 학파에서 내일 대대적인 정령계 침공을 한답니다.”

“그, 그게 무슨……!”

“마탑에서 저희 길드에, 지원 병력을 요청한답니다.”

“우리 길드에? 대체 왜?”

“운이 좋았습니다, 마스터. 제가 길드 퀘스트 보상 수령하러 갔을 때, 기가 막히게 수비대장을 만났거든요.”

“……!”

“참전만 해도 공헌도가 10만이랍니다. 저희 길드에서 최대 다섯까지 참전 가능하고요.”

“조, 조건은?”

“참전 조건은…… 초월 레벨 80레벨 이상이어야 한답니다.”

“큭……!”

찰리스 학파가 진행하는, 최상위 티어 에픽 퀘스트에 참전할 수 있는 기회.

그 어마어마한 기회가 운 좋게도(?), 쿠커와 그라탄 길드에 찾아오고 말았으니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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