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4화 2. 16강전 그리고 나비효과 (3) >
* * *
거의 1시간에 가깝게 이어진, 정령왕들과 관련된 고대의 정령계 스토리들.
그것들을 전부 감상한 이안의 귓전으로,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띠링-!
-고대 정령계의 역사와 관련된 스토리를 감상하셨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메인 ‘에픽’퀘스트와 연계된 서브 퀘스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다음 중 하나의 퀘스트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의외의 메시지들에, 이안의 동공이 살짝 확대되었다.
‘음? 서브 퀘스트? 이런 방식은 또 처음 보는데?’
메인 연계 퀘스트에서 파생되는 서브 퀘스트야 지금까지도 많이 보아 왔지만, 이렇게 여러 퀘스트 중 선택권을 주는 방식은 이안조차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선한 것과 별개로, 이안은 대충 서브 퀘스트가 어떤 느낌일지 예상할 수 있었다.
‘방금 본 정령왕들의 스토리와 연관된 퀘스트겠지. 이거 재밌겠는데?’
이어서 시스템 메시지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이안의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퀘스트 목록들.
이안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하였다.
-A. 라그나로스의 영혼을 찾아서(화염)
-난이도 : SSS(초월)
-제한 시간 : 없음
-퀘스트 시작 장소 : 명계(에레보스)
-(자세히 보기)
-B. 바람의 하프 회수(바람)
-난이도 : SS(초월)
-제한 시간 : 없음
-퀘스트 시작 장소 : 정령계(비터스텔라)
-(자세히 보기)
-C. 고대의 정령 마법(물)
-난이도 : S(초월)
-제한 시간 : 없음
-퀘스트 시작 장소 : 정령계 (북부 정령 유적)
-(자세히 보기)
-D. 고대 대자연의 갑주 회수(땅)
-난이도 : SSS(초월)
-제한 시간 : 없음
-퀘스트 시작 장소 : 정령계 (비터스텔라)
-(자세히 보기)
-E. ???(화염)
-난이도 : ???
-제한 시간 : ???
-퀘스트 시작 장소 : ???
(A~D 퀘스트 중 하나를 클리어해야, 수령이 가능한 퀘스트입니다.)
……후략……
‘근데 퀘스트 목록이 뭐 이렇게 많아?’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들을 주르륵 훑은 이안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령왕의 스토리와 관련된 퀘스트들이 나타날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종류가 많을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스펠링이 L까지 있으니, 퀘스트가 총 12개인 거네. (E) 퀘스트 부터는 앞단의 네 가지 중 하나를 클리어해야 오픈되는 거고.’
하지만 이안의 생각은 더 이어질 수 없었다.
퀘스트 목록과 별개로, 추가 메시지들이 계속 떠올랐으니 말이었다.
-모든 메인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전에 해당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는다면, 퀘스트는 소멸됩니다.
-모든 메인 연계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전에 선택한 퀘스트를 클리어 한다면, 다른 퀘스트를 추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최대 3개의 서브 퀘스트까지 클리어 가능)
-서브 퀘스트를 하나 클리어할 때 마다, 관련 속성의 속성 스텟(히든)을 획득합니다.
-같은 속성의 퀘스트를 두 개 이상 클리어할 수 없습니다.
“흐음…….”
마지막 메시지까지 모두 읽은 뒤, 저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리는 이안.
어지간해서는 게임과 관련해서 선택 장애에 빠지지 않는 이안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로서도 결정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냥 다 깰 수 있게 해 주지, 이렇게 제한을 걸어 버리냐.’
퀘스트 하나하나도 흥미로웠으나, 이안의 눈에 가장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속성 스텟(히든)’이라는 부분이었다.
지상계에서 플레이할 때 얻었던 ‘항마력’부터 시작하여, 가장 최근까지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차원 마력 저항력’까지.
히든 스텟은 보통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였으니, 이안으로서는 그것부터 기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대 3개까지 깰 수 있고, 그것조차 다 깰 수 있을지 모르니까……. 처음부터 신중하게 퀘스트를 선택해야겠어.’
물론 서브 퀘스트 하나하나에 각각 적지 않은 보상이 책정되어 있을 테지만, 이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히든 스텟이었다.
그 때문에 어떤 속성의 히든 스텟을 손에 넣을 수 있는지가, 이안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현재 내 주력 정령은 마그번과 블래스터……. 그중에서도 추가로 성장 가능한 마그번이 가장 중요한 정령이니, 무조건 불속성의 히든 스텟은 획득해야 해.’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퀘스트 목록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하는 이안.
‘첫 번째 퀘스트가 난이도도 제일 높고, 화염 속성이니까…… 이걸로 한번 시작해 볼까?’
하지만 잠시 후, 이안의 표정은 와락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퀘스트인 ‘라그나로스의 영혼을 찾아서’의 세부정보를 확인한 순간.
깰 수 없는. 아니, 깨서는 안 되는 퀘스트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었다.
-에레보스를 떠돌고 있는 라그나로스의 영혼을 찾아, 그의 부탁을 들어주자. ……중략……. 그의 모든 부탁을 들어주고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정령계에 그를 환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걸 클리어하면, 마그번을 정령왕으로 만들 수 없는 거잖아?’
정령계에는 같은 속성의 정령왕이 둘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즉 라그나로스를 구해 오는 순간 마그번의 진화길(?)이 막힌다는 뜻.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정령왕 라그나로스’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러한 내용은 세부 정보 창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니 이 퀘스트에 도전하여 화염 속성 히든 스텟을 얻는다고 해도, 오히려 이안에겐 좋을 것이 하나 없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넌 명계에 영원히 살아라, 라그나로스.’
하여 이안의 고민은 다시 이어졌다.
선택 가능한 나머지 세 개의 퀘스트들을 더 꼼꼼히 읽어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첫 번째 서브 퀘스트는 다른 속성 퀘스트로 진행하고, 어떻게든 두 번째 퀘스트를 화염으로 선택해서 클리어 해줘야겠네.’
그리하여 거의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퀘스트의 세부 정보까지 꼼꼼히 읽은 이안은, 결국 하나의 퀘스트를 결정할 수 있었다.
띠링-!
-‘C. 고대의 정령 마법(물)’ 퀘스트를 선택하셨습니다.
-‘트로웰의 부탁’과 연계된 모든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전까지, 해당 퀘스트를 클리어 하셔야만 합니다.
‘땅 속성 퀘의 보상이 좀 아쉽긴 한데, 그래도 히든 스텟이 더 중요하니까…….’
보상 자체는 ‘대자연의 갑주’ 퀘스트가 훨씬 좋았지만, 결국 고대의 정령인 블래스터를 생각하여 물 속성의 히든 스텟을 선택한 것이다.
‘보상이 좀 별로일지는 몰라도, 고대 정령 마법과 관련된 단서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말이지.’
사실 ‘고대의 정령 마법’이라는 콘텐츠는, 이안에게 완전히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안이 처음 비터스텔라를 밟았을 당시 클리어했던 퀘스트인, ‘고대의 정령 미루’와 관련된 퀘스트들.
해당 퀘스트들을 클리어하면서, ‘고대의 정령 마법서’라는 아이템을 이미 획득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당시에 얻었던 고대의 정령 마법서에는, 한 가지 함정(?)이 존재했었다.
이안이 처음 정령계에 와서 ‘정령술’을 배웠던 것처럼, 애당초 ‘고대의 정령 마법’이라는 카테고리를 획득해야 습득 가능한 마법서였으니 말이다.
‘이 기회에 그때 얻었던 마법서까지 배울 수 있다면, 충분히 괜찮은 선택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이안의 선택이 끝나자, 선택된 퀘스트의 정보 창이 다시 주르륵 하고 눈앞에 펼쳐졌다.
<고대의 정령 마법-물 (에픽)(서브)>
-물의 정령왕 엘리샤의 행적을 발견한 당신. 그녀의 위대한 행적을 통해 당신은 고대의 강력한 정령 마법들을 확인하였고, 또 그것들을 탐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중략……. 정령의 성소 북쪽, 정령산의 남쪽 진입로 인근에 있는 유적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고대의 정령 마법과 관련된 유물을 찾아내십시오. 그것은 당신을 고대 정령술의 세계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퀘스트 난이도 : S
-퀘스트 조건 : ‘트로웰의 부탁’연계 퀘스트 진행 중.
*흉상의 조각을 잘못 맞춘다면, 조립한(획득한) 모든 파편이 소멸됩니다.
*‘정화의 목걸이’ 아이템 보유 시,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아도 결계를 해체할 수 있습니다.
-보상 : 정령왕 ‘엘리샤’와의 친밀도 10 상승, 정수 목걸이(영웅)(초월), ‘물’속성 스텟(히든)
* * *
기사 대전의 16강 경기는, 32강 때 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기 숫자 자체가 32강의 절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오전부터 시작되어 오후까지.
하루에 걸쳐서 모든 경기가 전부 끝난 것이다.
물론 독일 서버의 파블로프 길드와 맞붙은 로터스는,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머쥐었고 말이다.
-로터스(한국) VS 파블로프(독일)
-10 : 6
-천웅(중국) VS 소브레(스페인)
-10 : 7
-게스토(남미) VS 칼데라스(미국)
-5 : 10
……중략……
-호왕(한국) VS 스키노카케(일본)
-10 : 9
-다크루나(한국) VS 다크블러드(영국)
-6 : 10
-카이로스(영국) VS 스콜피온(중국)
-7 : 10
그리고 모든 경기가 끝난 뒤, 한국 서버의 공식 커뮤니티는 거의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16강 경기에서도 32강 때와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했던 결과들이 속출했으니 말이다.
우선 오전에 열렸던 로터스의 경기부터가, 한국 서버의 카일란 팬들을 흥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와, 이번에도 엔트리에 이안 빠진 거 진짜임?
-그러고도 파블로프 발라 버린 거, 이거 진짜 실화?
-크……! 취한다! 간지훈이!
-우리 훈이가 캐리했습니다, 여러분! 이정도면 훈이도 류첸이랑 동급 ㅇㅈ?
-인정각임. 파블로프 상대로 4연승 따고 캐리했으면, 레미르급 퍼포먼스 보여 준 거임.
-크, 훈이 4연승에 이어서 유신 마무리까지. 완전 깔끔했음.
-마지막에 나온 전사 클래스가 유신이었음?
-거의 확실함. 스킬 셋이 거의 유신이 즐겨 사용하는 구성이었음.
거기에 하나 더.
한국 팬들이 뜨겁게 달아오른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호왕 길드가 일본서버의 최강 길드인 ‘스키노카케’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것이었다.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말이다.
-크, 역시 림롱. 죽지 않았네.
-마틴도 생각보다 선전하긴 했지만, 사실상 림롱 캐리인 듯.
-그러게. 스키노카케가 그래도 일본 섭에선 넘사벽으로 유명한데, 호왕이 이걸 해내다니.
그리고 모든 카일란 팬들이 달아오른 16강전 당일 오후.
LB사는 이 분위기를 그대로 끌고 가기라도 하겠다는 듯, 곧바로 다음 일정까지 발표해 버렸다.
그것은 바로 패자부활전.
어떤 의미에서는 16강전만큼이나 많은 유저들이 기다려 온, 서브 콘텐츠의 일정이 곧바로 이어진 것이다.
탈락한 24개의 팀들 중 단 2개의 팀만을 선별하는 피 터지는 서바이벌 콘텐츠.
속도감 넘치는 전개에 팬들은 환호하였고, 덕분에 커뮤니티의 트래픽은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인 것이다.
-다크루나가 다크블러드에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분전했는데…… 어쩌면 패자부활로 다시 올라올지도 모름. 16강 때 아예 포기한 건지, 이라한도 엔트리에서 빠져 있었고.
-솔직히 다크루나는 좀 무리고. 난 타이탄에 기대를 거는 중.
-맞아요. 타이탄이 대진운이 너무 나빠서 32강 광탈하긴 했지만, 패자부활전에선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죠.
하지만 이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초상집 분위기인 길드가 한 곳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프랑스 서버의 희망(?) 옵스큐르 길드였다.
당장 내일 패자부활전 첫 경기가 잡힌 마당에, 길드의 에이스인 ‘카셀’이 출전 불가 상태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대진운도 괜찮아서, 카셀만 있다면 충분히 이겨 볼 수 있는 상대가 걸린 것.
“미친, 단장님이 게임 아웃 상태라고?”
“아니 이 중요한 때에, 대체 뭘 하다가 죽은 거야?”
“사망 패널티 24시간이잖아. 내일 경기 전에는 접속되지 않을까?”
“놉…… 망했어. 카셀 거의 오후 3시는 돼야 접속 가능한데, 그때면 이미 첫 경기는 끝났다고 봐야지.”
“쓰…… 쓰벌……!”
물론 이 슬픈 나비효과(?)의 원인인 이안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