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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69화 (873/1,027)

< 869화 8. 대격변의 시작 (2) >

* * *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균열이라는 시스템은 이제 많은 유저들 사이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장 균열이 크게 활성화되어 있는 용천과 엘라시움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을 제외하고는 그저 ‘정보’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특히 명계에는 아직 균열 자체가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에, 명계에서만 쭉 활동해 온 유저들은 균열에 발을 들여 본 적 조차 없었다.

그냥 균열이라는 것이 있고, 그곳을 통해 상대 진영의 중간계로 넘어갈 수 있으며, 균열 안에선 강력한 디버프가 걸린다는 정도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류첸과 카셀 또한, 그런 유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균열의 존재만 알고 있었을 뿐, 이렇게 들어와 본 것이 완전히 처음인 것이다.

‘으, 차원 마력 디버프가 강력하다더니, 이건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묵직하군.’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은 강력한 무게감에 류첸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작은 감도 하나하나에도 민감한 랭커인 그로서는 이러한 환경이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이 균열이 무척이나 중요한 전장이 될 텐데, 그 전에 연구 좀 해 둬야겠어.’

류첸을 톱 티어의 랭커답게, 기계 문명의 군대들을 통솔하면서도 균열의 정보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이번에야 단지 스쳐 지나가는(?) 통로에 불과할 뿐이었지만, 앞으로는 무척이나 중요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이 저항력이라는 것을 미리 올려 놔야, 균열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겠군.’

디버프 목록까지 하나하나 분석하며, 두 눈을 반짝이는 류첸.

그런데 그렇게 깊숙한 균열까지 들어왔을 무렵.

고요하기만 했던 균열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선두에서 길을 열고 있던 선발 분대가 갑자기 멈춰 서 보고를 올렸으니 말이다.

“지휘관님!”

“무슨 일인가.”

“전방에 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적이라니?”

류첸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퀘스트의 내용상 이 공격은 분명 기습이었고, 공격 대상인 숲의 엘프들은 아직 공격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선발 분대가 없는 이야기를 할 리도 없었으니 류첸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어떤 변수가 생긴 건가? 하긴, 정령계의 다른 유저나 에피소드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거니까.’

어쨌든 기계 문명의 입장에서 정령계 진영의 모든 존재는 적으로 인식된다.

때문에 굳이 이 퀘스트의 주적인 숲의 하이 엘프가 아니라 하더라도, 균열 안에 싸워야 할 대상이 있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적들의 레벨은?”

“전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90레벨이 조금 넘는 것 같습니다.”

“정령들인가?”

“전부 정령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적들 중 용족도 있다고 합니다.”

“용족이라…….”

류첸은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었다.

생각지 못했던 적과의 만남이지만, 오히려 의외의 소득을 올릴 수도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90레벨이 넘는 용족이라면, 드래곤일 수도 있겠는데.’

드래곤을 포함한 대부분의 용족들은, 비싸고 희귀한 부산물들을 드롭한다.

게다가 초월 90레벨이 넘는 고위 용족이라면, 평소에는 아무리 류첸이라도 까다롭게 느낄 수밖에 없는 상대.

하지만 지금 류첸에게는 수백이 넘는 100레벨대의 기계 군단이 있었다.

전방의 지형을 빠르게 살핀 류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다섯 갈래의 통로를 적들이 막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렇습니다, 마스터.”

한차례 눈을 깜빡인 류첸이 퀘스트 정보 창을 한번 확인해 보았다.

-1차 제한 시간 : 00:22:45

‘남은 시간이 22분 정도……. 그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빠듯하긴 해.’

류첸의 퀘스트에 명시되어 있는 제한 시간은 일반적인 퀘스트의 제한 시간과 조금 다른 것이었다.

보통 제한 시간이란 그 안에 달성하지 못하면 퀘스트에 실패하는 개념이지만, 이 제한 시간은 약간 보너스의 개념이었다.

빠듯한 제한 시간 안에 도착하면 퀘스트의 난이도가 더 내려가는 특이한 구조의 개념이었던 것.

‘이 변수 때문에 제한시간은 못 맞출 수도 있겠지만, 얻는 게 더 많은 싸움이겠군. 결과적으로 이득이야.’

기계들은 이 차원 마력 디버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에 정령계의 NPC나 몬스터들이라면, 디버프로 인해 전투력이 많이 떨어질 것이다.

판단을 마친 류첸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빠르게 돌파하고 이동해야겠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류첸이 다시 NPC에게 명을 내렸다.

“한 곳에 병력을 집중하기엔 너무 통로가 좁다.”

“그렇습니다.”

“동시에 다섯 통로를 모조리 격파한다.”

류첸의 간결한 말에, ‘기계파수병’ NPC가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이 균열 안에서 류첸이 한 가장 큰 실수라고 할 수 있었다.

* * *

활활 끓어오르는 용암으로 휘감겨 있는 거대한 라바 드래곤.

그 위압감에 위축된 카셀은 순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퀘, 퀘스트에 이런 내용은 없었는데…….’

확인한 라바 드래곤의 레벨은 무려 초월 99레벨.

이제 갓 80레벨인 카셀의 입장에서는 레이드 보스나 다름없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라 할 수 있었다.

‘젠장. 이거 잘 사려야겠는데?’

후방에서 류첸의 명령이 내려왔고, 카셀이 속한 분대는 이 라바 드래곤을 뚫어야 한다.

물론 뚫을 수 없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카셀의 분대는 그를 제외하고 전부 100레벨이 넘었으니 말이다.

다만 문제는, 카셀도 무작정 도망만 다닐 수 없다는 점.

분대원들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동시에 친밀도가 내려가고, 버스에서 중도 하차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파티 공헌도는 챙겨야 하는데…….’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전장을 살피는 카셀.

그런 그의 시야에, 가장 만만해(?) 보이는 한 인물이 발견되었다.

‘저기 저 녀석, 저 대검을 든 녀석을 선공해야겠어.’

카셀이 발견한 인물은 커다란 대검을 등에 멘 전사 NPC였다.

새하얀 백발에 묵빛 갑주를 걸친, 눈에 띄는 외모의 전사 NPC.

녀석의 초월 레벨은 87레벨이었고, 이 정도라면 비벼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판단한 것.

사실 용암에 휩싸인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적들의 레벨이 다 엇비슷했지만, 카셀이 상대를 선택한 기준은 간단하였다.

변수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같은 전사 클래스에 같은 대검유저를 선택한 것이다.

적어도 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카셀의 가장 큰 목적은 ‘안전하게’ 움직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쿠쿠쿵-!

기계 괴수들이 달려들자, 라바 드래곤이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불을 내뿜었다.

-크롸아아아-! 드디어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겠구나!

라바 드래곤의 대사가 뭔가 좀 이상하긴 하였지만, 카셀은 개의치 않았다.

녀석을 향해 이미 다섯이나 되는 기계 괴수들이 달려들었으니, 금방 처치될 터였다.

‘브레스 타이밍만 피해서, 곧바로 저 전사 녀석을 노린다!’

날카롭게 전황을 판단하며, 적으로 점지해 놓은 전사 NPC를 향해 내달리는 카셀!

타탓.

그리고 그런 카셀의 움직임을 발견한 것인지, 상대도 마주 검을 겨누며 응수하였다.

“뭘 좀 아는 친구로군.”

“……?”

“남자는 역시 대검이지.”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뭔가 좀 특이한 대사와 함께 검을 내뻗는 NPC.

까아앙-!

하지만 녀석과 맞붙은 순간, 카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검을 타고 전해져 들어오는 파괴력이, 상상조차 못했던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까강- 콰아앙-!

-‘카이자르’에게 강력한 일격을 허용하였습니다!

-‘무기 막기’에 성공하여, 피해량을 75퍼센트만큼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22,098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대검은 전사의 무기들 중에서도 공격력 기준 최상위 티어의 장비이다.

공격 속도가 느린 대신 한 방 한 방의 파괴력이 강력하니 말이다.

그래서 첫 타로 들어온 대미지는 생각보다 더 강력하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기 막기를 활용하여 위력을 감소시킨 덕에 2만 정도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에 들어온 추가 타격이었다.

-차원 마력이 폭발하였습니다!

-추가 차원 마력 피해를 입었습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42,985만큼 감소합니다.

‘이거 대체 뭐야? 대체 무슨 대미지가 이렇게 들어와?’

‘카이자르’라는 녀석의 대검과 맞부딪힌 순간 추가로 연쇄되어 터져 나온 강력한 폭발 공격.

매커니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이 공격에 생명력이 10퍼센트도 넘게 깎여 나갔으니 말이다.

‘대체 무슨 스킬이지?’

단지 카이자르의 풀 스텍에 가까운 차원 마력 저항력으로 인해 발생한 추가 타격이었지만, 정보가 부족한 카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차원 마력 폭발로 인한 추가 타격은 방어력 무시 대미지로 적용되는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카셀로서는 정신이 혼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깡- 까가강-!

상대의 검술과 피지컬 자체가 NPC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무슨 랭커랑 싸우는 것도 아니고……!’

NPC의 전투 센스와 피지컬은 그의 ‘등급’과 비례한다.

유일, 영웅, 전설, 신화.

등급이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AI의 수준이 높아지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NPC의 등급이 높다 하더라도, 카셀은 최상위권의 톱 랭커였다.

그런 카셀과 한낱 NPC가 대등한 수준의 피지컬을 보여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니, 전설 등급의 NPC라도 이정도로 잘 싸우지는 않을 텐데…….’

때문에 혼란에 빠진 카셀은 더욱 버벅일 수밖에 없었고, 카이자르의 검은 그에 비례하여 더 강력히 몰아치기 시작하였다.

“패기가 부족하군. 이래서야 진정한 전사라고 할 수 없지.”

심지어 NPC 주제(?)에, 카셀을 조롱하는 대사까지 날리는 카이자르.

콰아앙-!

카이자르의 연환격에 그대로 격중당한 카셀은, 그대로 후방으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119,480만큼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272,568만큼 감소합니다!

……중략……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패시브 고유 능력 ‘핏빛 전사의 분노’가 발동합니다.

기사대전에서 무려 칼데라스의 기사단원들을 상대로, 2승이나 거둔 실력자가 바로 카셀이다.

때문에 그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초월 레벨이 조금 더 높다고는 하지만, NPC에게 이렇게까지 밀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으니 말이다.

‘이, 이건 기획자의 농간이다!’

차원 마력 폭발이라는 괴상한 스킬(?)부터 시작해서 기가 막힌 수준의 폭발적인 피지컬까지.

퀘스트의 종점도 아니고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은 도입부에서.

이런 괴물을 만난다는 것이, 카셀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하이 엘프 종족의 히든 NPC라도 되는 건가? 아니, 아무리 봐도 엘프 비주얼은 아닌데.’

충격적인 상대의 전투력에, 계속 버벅거리기만 하는 카셀.

극한의 집중력과 히든 스킬들을 이용하여 어찌 어찌 버텨내고는 있었지만, 카셀은 조금씩 말라 죽고 있었다.

“으하하핫! 오랜만에 재밌는 상대로구나!”

반면에 왜 저렇게 신이 난 것인지.

흥에 겨워 검을 휘두르며, 카셀을 몰아붙이는 ‘카이자르’라는 녀석.

사실 카셀의 입장에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카이자르같은 NPC는 카일란 세계관에서 존재하기 어려운 케이스였으니 말이다.

애초에 신화 등급의 NPC인 데다, 이안에게 여러 차례 교육(?)당하며 지속적으로 AI가 단련된 카이자르.

사실 카셀이 그의 검 아래서 이 정도 버텨 낸 것이,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이런 제정신이 아닌 NPC가 다 있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카셀은,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났다곤 하지만, 이대로 버스에서 하차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본 순간.

카셀은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카셀이 안전벨트를 꽉 붙들고 있는 동안, 그가 타고 있던 버스는 이미 부서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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