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2화 6. 화염의 성좌 (1) >
콰쾅-
콰콰콰쾅-!
콰아아!
콜로세움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발음과 진동.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집채만 한 운석은 말 그대로 대전장 전체를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이미 혼란 속에 빠져 있던 오스틴이 그것을 피해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플로아스의 도전자’ 유저의 생명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로터스’ 기사단이 승리하였습니다!
-‘로터스’ 길드에 승점이 1점 부여됩니다.
-전투가 종료되었습니다.
-승리한 유저의 잃어버린 생명력이, 30퍼센트만큼 회복됩니다.
-잠시 후, 로터스 vs 플로아스 제6차전이 시작됩니다.
-현재 스코어 – 4 : 1
……후략……
콜로세움에 있던 모든 유저들의 눈앞에 전장의 상황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원래였으면 폭풍 같은 박수갈채와 함께 환호가 터져 나왔어야 하는 순간.
하지만 어쩐 일인지 콜로세움은 고요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으며, 모두의 시선은 넝마가 된 대전장의 한가운데로 향해 있었다.
심지어 해설자들조차도, 몇 초 동안 침묵하였다.
“메, 메테오라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콜로세움이 침묵에 잠긴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레미르가 떨어뜨린 메테오 때문.
메테오 자체가 8서클의 최상위 마법이기도 하였지만, 단지 그 때문에 유저들이 놀란 것은 아니었다.
이미 중간계가 나오기 전에도, 메테오를 구사하는 랭커는 제법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유저들이 놀란 이유는 메테오가 PVP에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메테오……! 메테오가 소환되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엄청난 퍼포먼스고, 치밀한 설계입니다!
-메테오 캐스팅 시간이, 언제 저렇게 짧아진 건가요?
-그건 저도 의문입니다. 대기실에서 나오자마자 메테오 부터 캐스팅해 두었다고 해도, 이 타이밍에 가능할 지 의문인데 말입니다.
메테오는 화염법사가 쓸 수 있는, 최강의 위력을 가진 광역 공격 마법이다.
하지만 이 스킬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위력이 강력한 만큼 캐스팅 시간이 엄청 길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캐스팅 시간만 5분에 육박하며, 캐스팅이 끝난 뒤에도 거의 1분 뒤에야 운석이 소환된다.
그러다 보니 운석이 소환될 때까지 시간을 끌어줄 동료가 없는 1:1의 PVP에서는, 어지간해서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이 바로 메테오인 것이다.
하지만 대신에 이렇게 소환해 내기만 한다면.
어지간한 기사 클래스도 한 방에 녹여 버릴 수 있는 궁극의 스킬이 바로 메테오였다.
‘후후, 깔끔했어.’
대기실로 소환되기 전, 자신이 만들어 낸 광경을 감상하던 레미르는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방금 전의 허접한 암살자 정도는 어떤 방식으로든 처치할 자신이 있었지만, 건방진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녀석의 멘탈까지,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암살자가 PVP에서 메테오를 맞고 사망하다니……. 당분간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겠지, 킥킥’
해설자의 이야기와 달리, 레미르는 처음부터 메테오를 캐스팅했던 것이 아니었다.
레미르가 처음 메테오라는 카드를 꺼냈던 건, 오스틴이 주제도 모르고 도발하던 시점.
미리 캐스팅해 둔 인페르노 필드와 화염 잠식을 믿은 레미르는, 그 시점부터 과감하게 메테오를 캐스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레미르가 메테오를 캐스팅한 뒤부터 메테오가 떨어져 내릴 때까지 5분이나 되는 긴 시간이 지났던 것일까?
당연히 그것은 아니었다.
레미르가 운석을 소환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분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고, 그것은 용암세트라는 ‘장비빨’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용암 세트의 모든 피스에는 화염 속성 마법 캐스팅 단축이 붙어 있었고, 풀 세트를 착용하면 최종 캐스팅 시간이 다시 절반으로 줄어들어 버리니, 운석이 떨어져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 중에, 캐스팅 시간은 30초도 채 되지 않았던 것.
오히려 캐스팅이 끝나고 소환된 운석이 떨어져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캐스팅보다 더 길었던 것이다.
레미르의 캐스팅이 끝난 시점은 오스틴이 환영술을 발동하던 시점이었고, 그래서 레미르는 화염잠식까지 깔끔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캐스팅이 끝나고 메테오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은 움직임이 자유로웠으니까.
‘멍청한 놈이 도발한다고 시간만 안 썼더라도, 메테오에 맞지는 않았을 텐데.’
레미르는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마법들을 다시 점검하였다.
그녀가 흡족한 이유는 건방진 녀석의 멘탈을 박살 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진짜 힘을 전부 숨긴 채로 이겼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진짜’ 무기인 언령 마법은 아직 꺼내 들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대진표상 다음은 전사 클래스였던 것 같고, 그 다음이 마법사 클래스네.’
레미르는 붉은 로브와 대비되는 새하얀 양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다음 전투를 구상하였다.
전장에 나온 이 순간부터, 그녀는 애초에 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뒤로 갈수록 에이스들이 나오겠지. 전부 다 터뜨려 줘야겠어.’
레미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대기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띠링-!
-로터스 vs 플로아스
-제6차전이 시작됩니다.
-현재 스코어 – 4 : 1
-잠시 후 대전장으로 이동됩니다.
그리고 다시 열린 콜로세움의 문을 향해 레미르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 * *
기사대전의 개막전은,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서 라이브로 시청이 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플랫폼 중에 가장 많은 유저들이 모인 이 공식 커뮤니티는, 지금 트래픽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청자 숫자 자체가 많기도 했지만, 그보단 채팅이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랑해요, 레미르!
-크, 오졌다. 김치 법사 클래스!
-거기서 메테오를 갈겨 버리네. 대체 딜이 얼마 나왔을까?
-플로아스 암살자 놈 개인 화면 좀 보고 싶음. 시스템 메시지에 딜 얼마 박혔는지 확인하고 싶어.
-그나저나 레미르 암살 스킬은 어떻게 막아 낸 걸까? 배리어 종류 마법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좀 미스터리임. 나중에 인터뷰라도 하겠지 뭐.
물론 레미르의 얼굴은 기사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한국 서버의 모든 유저들은 그녀가 레미르임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로터스의 화염법사 중에 이만한 실력과 전투력을 뽐낼 수 있는 이는, 레미르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로터스 길드가 아니라 한국 서버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딱히 다를 건 없었다.
-연승 가자 레미르!
-그래. 플로아스인지 뭔지 쩌리 길드, 다 박살 내 버리자고.
-첫 번째 기사 클래스도 3연승 박았는데, 레미르는 한 5연승 찍어 주려나?
-ㄴㄴ 혼자서 7점 따고 캐리할 듯.
-크, 그럼 진짜 지리겠다.
로터스의 엔트리에 소환술사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던 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레미르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미르는 그런 팬들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기 시작하였다.
-으앗! 화염법사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습니다!
-블링크 계열 공간 마법인 것 같은데, 저 시뻘건 불꽃은 뭐죠?
-처음 보는 마법입니다만, 화염 속성의 공간 왜곡 스킬인 것 같습니다!
-파이어 익스플로전!
-이러면 이동 스킬 빠진 전사 유저 입장에선 피해 낼 방법이 없죠!
-화상 효과 때문에 저항력까지 바닥입니다!
-지속 피해로 전사 유저의 생명력을 계속 갉아먹는 레미르! 아니, 화염법사!
-그냥 이제 레미르라고 하시죠. 사실 레미르가 거의 확실하지 않습니까.
-하, 하핫. 그렇기는 합니다만…….
메테오 한 방으로 순식간에 끝났던 첫 번째 전투와 달리, 레미르의 두 번째 기사대전은 제법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미르가 분전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연승을 이어 가고 싶었던 레미르는 자신의 생명력이 닳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였고, 화염 속성의 지속 피해와 배리어를 이용해 조금씩 상대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공간계열의 마법으로 선공권을 점한 뒤, 지속 피해형 화염마법으로 간사한(?) 대미지 교환을 계속한 것.
자신은 배리어와 화염 잠식 패시브를 이용해 상대의 타격을 막아 내며, 반대로 상대에게는 불씨를 심어 지속적인 피해를 입게 만드는 구도를 계속 가져가니 전사 클래스의 유저는 정말 아무것도 못 하고 타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이 비겁한……!”
그리고 결국 레미르의 생명력을 5퍼센트도 채 깎아 내지 못한 전사 유저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그대로 아웃되고 말았다.
띠링-!
-‘플로아스의 도전자’ 유저의 생명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로터스’ 기사단이 승리하였습니다!
-‘로터스’ 기사단이 승리하였습니다!
-‘로터스’ 길드에 승점이 1점 부여됩니다.
……중략……
-현재 스코어 – 5 : 1
-캬, 이걸로 레미르 클래스 증명인가?
-마크 올리버가 와도 이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글쎄. 올리버 요즘 방송 안탄지 오래돼서, 또 얼마나 강해졌을지 모르긴 함.
-크으! 이런 게 바로 진정한 국위선양이지!
신이 난 한국 서버의 카일란 팬들은, 흥분하여 레미르를 더욱 찬양하였다.
특히나 화염법사를 키우던 유저들은 아예 레미르의 추종자가 되어 있었다.
-레미르 팬클럽 주소 어딘가요? 다음 경기 보기 전에 당장 가입부터 하고 와야겠음요.
-아니, 이거 기본이 안 된 친구네. 화염법사가 레미르 팬클럽 주소도 모른다고?
-그 전에 자세부터 틀렸음. 레미르느님 경기 관전하면서 아직 팬클럽 가입도 안 해 놓다니.
레미르의 파죽지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사클래스의 도전자를 말려 죽인 데 이어, 다음 차례로 등장한 마법사 유저까지.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 주며, 순식간에 삭제시켜 버렸으니 말이다.
-디스펠! 이 타이밍에 디스펠이 터집니다!
-이건 머리싸움에서 완전히 잡아먹힌 거죠!
-처음에 디스펠 모션을 보여 준 건 완벽한 훼이크였어요!
-아, 대전장 전체에 잉걸불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레미르! 레미르가 또 한 번 연승을 가져갑니다!
이로서 3연승까지, 거의 아무런 피해 없이 깔끔하게 챙겨 간 레미르.
띠링-!
-‘로터스’ 기사단이 승리하였습니다!
-‘로터스’길드에 승점이 1점 부여됩니다.
-현재 스코어 – 6 : 1
거기에 다음 차례인 기사 클래스 도전자는 상성부터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녹아 버렸고, 결국 레미르는 파죽의 4연승을 달성하였다.
-현재 스코어 – 7 : 1
네 번의 연승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레미르의 생명력은 70퍼센트가 넘는 수준!
-정말 플로아스 길드, 이대로 레미르 하나에 무너지는 건가요?
-이제 마지막 세 명입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플로아스의 에이스들일 거예요.
-아, 그래도 플로아스의 패배는 이제 거의 확정인 것 같습니다. 로터스에는 레미르 말고도 강력한 랭커들이 많거든요.
-그래도 플로아스는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야 그렇지요. 질 땐 지더라도 최소한 레미르 하나는 잡아줘야 체면이 설 테니까요.
그리고 다섯 번째 기사대전에서 레미르가 만난 상대는, 플로아스 길드의 ‘궁사’ 클래스 유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