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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61화 (865/1,027)

< 861화 5. 개막전 (3) >

* * *

오스틴은 당황하였다.

시작부터 레미르의 움직임이,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났으니 말이다.

‘뭐, 뭐 하자는 거야……?’

보통 1:1의 PVP에서 마법사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강력한 광역마법들을 퍼붓는다.

대기 시간에 미리 캐스팅해 놓은 마법들로 승부를 보지 못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마법사가 불리해지니 말이다.

준비해 둔 마법들을 다 소모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캐스팅 시간이 필요하게 되고, 그때부터는 암살자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으니까.

해서 오스틴은 레미르의 광역 마법에 대비하여, 시작부터 모든 가속 버프를 풀가동하였다.

초장에 공격 마법들만 다 피해 낸다면, 그것으로 승기는 굳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스틴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전투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미르는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으니까.

“거기서 뭐 해?”

“…….”

“쫄았어?”

다만 양 손에 커다란 화염을 소환한 채로, 오스틴을 비아냥거리는 레미르.

때문에 오스틴은, 계획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원한다면 먼저 들어가 주지.”

스슥-!

이미 모든 가속버프를 가동시킨 오스틴은 마냥 레미르의 선공을 기다려 줄 수가 없었다.

암살자에게 가속 버프는 비단 민첩성뿐만 아닌 공격의 위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고, 버프 사이클이 한 타임 돌기 전에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제법 큰 손해를 보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것과는 별개로, 오스틴의 스킬은 곧바로 연계되었다.

이런 정도에 스킬 연계가 꼬여 자멸한다면, 랭커라는 타이틀을 버려야 할 것이었다.

‘단숨에 목이 따여 봐야, 암살자 무서운 줄을 알겠지.’

타탓- 쐐애액-!

지면을 박차고 도약한 오스틴의 신형이, 레미르를 향해 맹렬하게 쏘아졌다.

그리고 단숨에 그녀와의 거리를 좁힌 오스틴은 준비해 뒀던 환영술을 그대로 발동시켰다.

스하아앗-!

그러자 마치 몸이 분리되기라도 하듯, 순간적으로 일곱 갈래로 갈라지는 오스틴의 신형.

이어서 그 분신들은, 차례로 레미르를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오스틴의 시야에는 분신이 푸른빛의 환영으로 보이고 있었지만, 아마 레미르가 보기에는 똑같은 암살자 일곱이 달려드는 것으로 보일 것이었다.

‘후후, 과연 이래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마법사의 입장에서 암살자의 단일 스킬 공격은 단 한 방에 사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협적인 것이다.

때문에 환영을 구분할 수 있는 특수한 스킬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일곱 환영들의 모든 공격에 전부 대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일곱 중에 단 하나만이 유효한 진짜 공격이겠지만, 그게 어떤 녀석인지 알 길이 없을 테니 말이었다.

‘자, 이걸로 네가 준비해 둔 마법들을 싹 다 빨아먹어 주마. 진짜는 그 다음부터다.’

그래서 오스틴은, 본신을 제외한 여섯 구의 환영들을 시간차를 두어 먼저 레미르에게 접근시켰다.

그렇게 레미르가 준비한 마법들을 전부 소모시킨 뒤, 자신은 유유히 뒤돌아 빠져나갈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스틴의 계획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아, 레미르 지금 뭐하는 건가요!

-환영들이 접근하는 데도 미동도 않고 있어요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환영과 실체를 구분할 방법이 있는 걸까요?

오스틴의 환영들이 검을 틀어박는 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공격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녀의 주변으로, 은은한 열기가 퍼져 나가고 있을 뿐.

때문에 오스틴은, 더욱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스륵- 스륵-.

벌써 세 번째 환영까지 레미르의 마법들을 전혀 소모시키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대로 여섯 개의 환영이 전부 소모되고 본신만 남았다가는,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는 것.

‘설마 나랑 머리싸움이라도 하자는 건가? 간덩이가 붓다 못해, 불어 터진 거 아냐?’

하여 오스틴은, 즉각적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이 상황 또한 이용해 버리면 되는 것.

스하앗-!

오스틴은 네 번째 분신이 움직인 직후에, 레미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것, 아예 치명타를 먹여 버릴 생각으로 말이다.

‘잔머리를 굴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지.’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암살 스킬 중 가장 강력한 단일스킬을 꺼내어 들었다.

이 한 번으로 저 건방진 마법사 녀석을 그대로 아웃시켜 버릴 생각으로 말이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레미르를 향해 쌍검을 내뻗는 오스틴.

그런데 레미르의 지척까지 접근한 순간 그의 동공이 살짝 확대되었다.

-‘인페르노 필드Inferno Field’에 진입하였습니다.

-‘모든 화염 속성 공격의 위력이, 7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화염 저항’ 능력치가 5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후략……

그저 아우라인 줄 알았던 레미르의 불길들이 작은 범위의 디버프 필드였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디버프 필드는 말 그대로 디버프 필드일 뿐 물리속성인 암살 공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지금 레미르의 화염 공격에 맞아 줄 것도 아니었으니 오스틴은 그대로 팔을 뻗어 레미르의 심장에 검을 내질렀다.

“뒈져라!”

그리고 그 판단은…….

“……!”

오스틴에게 당황을 넘어, 경악을 선사해 주었다.

촤아악-!

-대상의 ‘화염 잠식’ 패시브로 인해 모든 피해가 화염 피해로 적용됩니다.

-‘인페르노 필드’가 발동합니다.

-위력이 7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대상의 화염 저항으로 인해 공격의 위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중략……

-‘로터스의 도전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로터스의 도전자’의 생명력이 326만큼 감소합니다.

“커헉!”

32만도, 3만 2,000도 아닌, 정확히 326이라고 떠올라 있는, 기가 막힌 대미지 수치.

뭐라고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오르기는 했지만, 지금 오스틴의 눈에 그런 것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지금 그가 인지한 것은 마법사에게 기습을 성공시켰는데, 상처도 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다.

“뭐……라고?”

때문에 오스틴은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잠깐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한 나머지 사고회로가 순간적으로 정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통수에서…….

퍼억-!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로터스의 도전자’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인페르노 필드’가 발동합니다.

-‘화염’ 속성 저항력이 대폭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124,980만큼 감소합니다.

잠시 주춤한 그의 뒤통수를, 레미르의 지팡이가 그대로 후려친 것.

“커헉……!”

그리고 지팡이에 맞은 오스틴은, 그대로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무방비 상태에서 제대로 후려 맞은 탓에 볼썽사납게 널브러진 것이다.

이어서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선 오스틴은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황당함과 분노, 그리고 부끄러움.

오스틴의 얼굴은 이 모든 감정이 뒤범벅된 표정이었다.

“으, 으으……!”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레미르의 정신 공격이 이어졌다.

“야, 요즘 암살자들은 지팡이로 때려도 못 피하냐?”

* * *

콜로세움의 한복판에서 펼쳐진, 말 그대로 기가 막힌 상황.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을 대략이라도 이해한 사람은 콜로세움 안에 있는 수만 명 중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심지어 해설진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이었으니 말이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로터스의 마법사가 암살자의 공격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반격했습니다.

-피, 피한 걸까요? 회피 모션은 보지 못했는데요.

-이럴 수가. 지금 당장 LB사에 요청해서, 로그라도 뜯어 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본인들의 역할이 해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건지, 당혹스런 표정으로 횡설수설하는 해설진.

하지만 그 누구도 해설진을 탓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봐도 기이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실 웃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는 바로 나지찬이었다.

‘와우, 인페르노 필드에 화염 잠식이라……. 이걸 이렇게 이용해먹는단 말이지?’

눈앞에서 당한 오스틴보다도 훨씬 더 정확히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나지찬.

그는 진심으로 감탄 어린 표정이 되어 레미르를 응시하고 있었다.

‘인페르노 필드야 그렇다 쳐도, 화염 잠식 타이밍 한번 예술이네. 확신이 있으니까 저런 플레이를 보여 줄 수 있는 거겠지?’

지속 시간이 5분도 넘는 인페르노 필드와 달리 화염 잠식은 패시브임에도 불구하고 발동이 참 까다로운 고유 능력이었다.

피격되는 순간 정확한 타이밍에 ‘불씨’를 가져다 대어야, 해당 공격이 화염에 잠식되며 효과를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레미르의 주변에 둥둥 떠다니는 불덩이가 바로 화염 잠식 패시브로 인한 불씨였던 것.

‘뭐, 애초에 노리고 있었다면 컨트롤 자체가 엄청 힘든 스킬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하네.’

옆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동생을 힐끔 쳐다본 나지찬은 피식 웃으며 다시 전장에 집중하였다.

이미 오스틴의 멘탈은 가루가 되었겠지만, 그래도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제 레미르의 스킬 매커니즘을 모르는 오스틴은 아무것도 못 하고 자멸할 수밖에 없겠네. 인페르노 필드 끝나고 싸우면 조금이나마 승산이 생기겠지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나지찬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씩씩거리는 오스틴을 응시하였다.

화염을 둘둘 두른 핵 지팡이(?)에 맞은 탓에, 생명력이 40퍼센트대로 떨어져 버린 오스틴.

이와중에 다행인 부분은 오스틴이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전의를 상실하는 대신 판단력을 상실해 버린 것 같기는 했지만, 관중의 입장에서는 그 편이 더 재밌을 것이었다.

“이번엔 내가 한번 가도 되지?”

“으드득.”

“여기서 끝나면 너무 재미없으니까, 한번 잘 버텨 보라고.”

히죽히죽 웃어 보인 레미르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캐스팅하였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있던 시뻘건 화염의 불꽃들이 더욱 크게 일렁이며 붉은 기운을 뿜어내었다.

화르륵-!

이어서 머리끝까지 약이 오른 오스틴은 다시 레미르를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다.

“죽여 버린다!”

그러나 오스틴이 채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시점.

대전장 전체에, 거대하고 시뻘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오오오-!

그리고 그것은 오스틴을 그대로 집어삼켜 버릴, 거대한 화염의 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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