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58화 (863/1,027)

< 858화 4. 엘리샤의 발자취 (3) >

* * *

한나절이 훌쩍 지났다.

이안 일행이 대지의 요람에 들어선 것이 이른 오전이었는데,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것과 별개로, 이안 일행은 아직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소득이란, 퀘스트의 진행도에 한정된 것일 뿐.

최초 발견 버프를 등에 업은 덕에 경험치는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만 말이다.

“대체 트로웰의 흔적이라는 게 뭘까?”

“단서가 너무 부족해.”

“난 이런 막막한 퀘스트가 제일 싫더라.”

그리고 이쯤 지날 때까지 퀘스트에 전혀 진척이 없자, 파티원들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이안의 성향 상 퀘스트가 끝날 때까지 이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세 사람의 머릿속에, 온갖 좋지 않은(?) 가정들이 떠오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주일 넘게 퀘스트가 안 끝나면 어떡하지?’

‘이안 형이라면 그때까지 로그아웃조차 못 하게 할지도 모르는데.’

‘제발……. 늦어도 사흘 내로는 끝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 모든 걱정의 근원인 이안은, 무척이나 태평할 뿐이었다.

아니, 이안으로서는 오히려 조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음, 이쪽도 아니었잖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음 필드에는 있겠지 뭐.”

최초발견 버프도 있겠다, 퀘스트에 시간제한도 없겠다.

거기에 사냥감도 넘쳐나겠다.

이안에게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으, 그 흔적이라는 거,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라도 알면 좋을 텐데…….”

조바심이 느껴지는 카노엘의 말에, 이안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였다.

“뭐 필드 한 열댓 바퀴 정도 돌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어?”

“여, 열댓 바퀴……?”

“벌써 한 바퀴 다 돌아가잖아. 사냥 속도 빨라지고 최적화 되면, 하루에 두 바퀴는 돌 수 있지 않겠어?”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쥬르칸이 혼란스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벌써……라니.”

피올란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이안 님, 혹시 퀘스트 깨는 데에는 별 관심 없는 거 아니죠?”

“에이, 설마?”

“아무리 봐도 사냥에 더 관심이 큰 것 같은데…….”

피올란의 말에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이안.

“빙고! 역시 부길마님!”

“…….”

“퀘스트야 포기만 안 하면 언젠가 깨질 테니 딱히 급할 이유가 없잖아요?”

모두가 좌절할 만한 대사를 마지막으로 남긴 이안은, 어슬렁어슬렁 다음 필드로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쥬르칸이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서, 설마 이안이 말대로……. 열댓 바퀴 돌 때까지 퀘스트가 끝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야, 쥬르칸 형.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때만 해도 세 사람은 알지 못했다.

그 무서운 소리가 결국엔 현실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그들은 이미 무시무시한 덫(?)에 걸려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중간계 첫 번째 기사대전의 개막전.

전 세계 카일란 팬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빅 이벤트가, 드디어 막이 올랐다.

조금 특이한 점은, 개막전이 한 경기가 아닌 두 경기라는 사실.

인간 진영과 마족 진영에서 각각 열리는 첫 번째 대결이 개막전이었기 때문에, 개막전이 한 경기가 아닌 두 경기가 된 것이다.

하여 카일란 팬들의 관심은 개막전에 참전하게 되는 네 곳의 길드에게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 그 길드들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 진영

길드명 : 로터스

마스터 : 헤르스

소속 서버 : 한국

VS

길드명 : 플로아스

마스터 : 세르반

소속 서버 : 미국

-마족 진영

길드명 : 다크블러드

마스터 : 루칼

소속 서버 : 영국

VS

길드명 : 그라탄

마스터 : 쿠커

소속 서버 : 베트남

개막전의 길드 네임이 공개되자, 팬들은 환호하였다.

역시 LB사에서는 유저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흥미진진하기 그지없는 대진표를 내놓았으니 말이다.

“크, 역시 개막전엔 로터스가 있을 줄 알았어!”

“로터스가 나온 건 좋지만, 난 좀 아쉬워.”

“뭐가?”

“로터스의 첫 상대로 배정된 플로아스가 너무 약팀이잖아.”

“지금 기사단 창설한 길드 중에 약팀이랄 만한 곳이 있기는 해?”

“비교적 그렇다는 거지.”

“지금 플로아스 무시하는 거임?”

“네가 플로아스에 풀 배팅 하고 오면 바로 인정해 줌.”

“죄송요.”

로터스와 플로아스의 대결은, 사실 대부분의 유저들이 로터스의 승리를 점칠 수밖에 없었다.

무려 미국 서버의 인간 진영 랭킹 3~5위에 랭크되어 있는 플로아스 길드였으나, 로터스는 카일란 종주국인 한국에서도 압도적인 랭킹 1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대진에 불만을 갖는 팬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로터스는 어차피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고, 개막전에서 우승 후보끼리 맞붙는 것을 원하는 팬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플로아스가 로터스에 너무 허무하게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욱 재밌는 것은, 로터스가 들어간 인간 진영의 개막전보다, 오히려 마족 진영의 개막전이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었다.

“히야, 마족 진영은 다크블러드VS그라탄이네? 이거 흥미진진한데?”

“와 씨, 어디가 이길까?”

“아무래도 다크블러드 아니겠음? 요즘 영국 애들, 요르간드가 거의 카이급이라고 설레발 겁나 치던데.”

“에이. 그건 네 말대로 설레발일 뿐이고. 카이는 무슨 얼어 죽을…….”

“뭐, 거기에 요르간드만 있는 건 아니니까. 난 다크블러드가 좀 더 우세할 거라고 봄.”

“난 아슬아슬하게 그라탄이 이긴다고 본다.”

“어째서?”

“동남아 쪽 서버 랭커들이 한국에서 인기가 없어서 그렇지 쿠커나 라루쉔 같은 애들은 진짜 글로벌 0티어 급이거든.”

“그라탄이 베트남 서버 1위였나?”

“맞아.”

그라탄 길드는 이번 기사대전에 참전한 서른두 곳의 길드들 중 유일한 베트남 서버의 길드이자, 세 개의 동남아 서버 길드 중 하나였다.

그리고 유저들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동남아 서버의 길드들은 미, 중, 유럽 등의 서버들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라탄 길드의 경우 한국에서도 마니아가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길드였고, 많은 글로벌 유저들이 ‘탈 동남아급’으로 평가하였기 때문에, 유럽 서버의 신흥 강자인 다크블러드와 팽팽한 대결이 될 것으로 많은 유저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개막전의 대진까지 공개된 이 시점.

소르피스 내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은, 다름 아닌 ‘도박장’이었다.

개막전에 배팅을 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인해, 그리 넓지 않은 도박장의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배팅 끝났으면 빨리 나가슈. 뭘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어.”

“어차피 인간 진영은 로터스 픽할 거잖아. 빨리 찍고 나와. 콜로세움에 자리 잡으러 가야 하니까.”

심지어 배팅할 차원코인이 없는 유저들도 도박장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기사대전을 관람하는 데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지표인 ‘배당률’을, 바로 이 도박장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로터스 : 플로아스 – 1.02 : 34.5

-다크블러드 : 그라탄 – 1.44 : 1.56

“와 34배당이라니……. 플로아스 역배당으로 한번 풀 배팅 질러봐?”

“님, 자제요. 100코인이면 1백만 원이 넘어 지금. 정신 차리라고.”

“플로아스가 미친 척하고 이기면 3천이네.”

“쓸데없는 짓 할 거면 나 소고기나 사 줘.”

실시간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마족 진영 개막전의 배당률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플로아스 쪽에 압도적인 배율의 배당이 걸리는 인간 진영의 개막전.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기 2시간 전 쯤.

도박장에 있던 수많은 도박꾼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데이터가 공개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개막전에 들어가는 각 길드에서 제출한 ‘출전 순서 표’였다.

각 길드에서는 해당 기사대전이 열리지 전에 참전할 열 명의 인원을 등록해야 했고, 경기가 시작되기 1시간 전에 그 목록이 일반 유저들에게도 공개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유저들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로터스의 출전 순서 표였다.

1st – 기사

2nd – 마법사

3rd – 전사

4th – 마법사

……중략……

10th - 흑마법사

출전 순서표에는 유저네임이 공개되지 않는다.

기사대전의 룰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바로, 전투가 끝날 때까지도 참전한 유저의 정체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으니 말이다.

기사대전에 참전하는 유저들은 클래스에 따라 동일한 외형으로 자동 변환되어 참전되고, 유저들은 기사대전을 지켜보며 해당 유저의 정체를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소속 길드와 플레이 스타일, 클래스를 가지고 그가 누구인지 유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클래스만이 명시된 출전표가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경악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잠깐…….”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거 실화임? 로터스 출전표에 소환술사가 없잖아?”

수많은 유저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로터스의 승리를 예측한 이유인 ‘이안갓’의 클래스인 소환술사가 로터스의 출전 목록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 이러면 플로아스에 한번 걸어 볼 만한데?”

“와 씨, 이건 생각도 못했다.”

“나 지금 바로 배팅 수정하고 옴.”

“뭐야, 대체 로터스는 이안을 왜 뺀 걸까?”

“어차피 플로아스는 이길 거라고 판단하고, 이안 전력을 숨기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까지 한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로터스의 출전표 때문에 마지막까지도 다이내믹하기 그지없는 기사대전의 첫날.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드디어 기사대전의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미국 서버의 궁사 랭킹 4위인 체스크.

그는 지금,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로터스, 이 건방진 놈들이 우릴 이렇게까지 무시한다고?’

현재 플로아스 길드 소속인 체스크는 플로아스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었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당연히 출전 목록에 이안이 빠져 있다는 사실 때문.

그 또한 분명히 로터스에 비해 자신들이 약체라는 부분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그것과 별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씩씩거리는 데에는 추가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이안 그놈에게 복수를 해 줄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중간계가 열린 초창기 시절부터 이안에게 약간의 앙금(?)을 가지고 있던 체스크.

랄프, 이니스코와 함께 이안에게 여러 번 당했던 전적이 있는 그는, 이안과 다시 붙을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체스크는, 정령의 도장에서 이안의 강력함을 충분히 경험했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고, 정령계 외의 여러 차원계들을 돌면서 길드의 지원을 빵빵하게 받은 체스크는 강력한 초월 장비들과 히든 피스들을 획득하였다.

특히 며칠 전에는 무려 전설등급의 초월 풀 세트를 맞췄기 때문에, 지금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이안의 힘을 조금만 빼 준다면, 자신이 이안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

하여 이번에야말로 이안에게 매운 맛을 보여 주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로터스의 출전 목록에서 이안이 빠져 버렸으니 체스크로서는 허탈하기 그지없는 것이 당연하였다.

‘후우,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하지만 허탈감과 별개로 이안이 빠졌다는 사실은, 길드 차원에서 좋은 일이기는 하였다.

만약 이안이 참전했다면 체스크 자신을 포함하여 두엇의 랭커를 소모해야 겨우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가 빠졌으니 정말로 로터스를 이겨 볼 각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로터스를 무조건 끌어내려야겠어. 오만의 대가가 얼마나 뼈아픈 것인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느끼게 해주지.’

물론 로터스의 출전 목록에 이안이 빠진 것은 결코 플로아스를 무시해서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체스크는 분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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