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4화 3. 심판자의 힘 (2) >
* * *
이안은 전율했다.
갖은 노력 끝에 결국 세 곳의 유적을 모두 정복하였고.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세 자루의 심판 검을 전부 손에 넣었다.
그리고 한자리에 모여 모든 힘이 개방된 심판 검의 가치는, 이안이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엄청난 것이었다.
‘봉인이 풀리면서 에고 웨폰이 되다니……. 이거야말로 대박이군.’
그 자체로 자아를 갖는 장비인 에고 웨폰.
에고 웨폰은 이안조차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강력한 랭커라는 사실은, 에고 웨폰을 구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기의 티어, 레벨 대와 상관없이 전설 이상의 등급을 가진 무기에 극악한 확률로 부여되는 것이 자아였으니, 레벨의 고저에 관계없이 에고 웨폰을 얻게 되는 것은 거의 운의 영역이었던 것.
물론 히든 퀘스트나 특수한 제작으로 얻을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초월 레벨과 전투력이 높다고 하여 더 수월해지는 부분은 아니었다.
‘역시 이런 맛에 카일란 하는 거 아니겠어.’
양쪽 입꼬리가 귀에 걸린 채로, 실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이안.
사실 이 세 자루의 심판 검은 이안이 중간계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얻은 에고 웨폰은 아니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물량의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다녔는데, 그동안 한 번도 에고 웨폰이 드롭되지 않았을 리는 없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안에게 필요 없거나 성능이 나쁜 장비에 자아가 붙어서 나왔다는 것.
아무리 에고 웨폰이라 해도 기본 성능이 나쁘면 쓸 수가 없었으니, 중간계에서 한 번도 사용해 본 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안의 서머너 나이트 고유 능력들 중 하나인 ‘바이탈리티 웨폰’의 숙련도는 정체되어 있었다.
자아를 가진 무기에 한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이 스킬은 에고 웨폰 없이 발동이 불가했으니 말이었다.
‘크, 이렇게 되면 드디어 중간계에서도 삼도류를 꺼내 볼 수 있는 건가?’
이안은 오랜만에 바이탈리티 웨폰의 정보 창을 한번 오픈해 보았다.
사용한 지 너무 오래된 스킬이어서, 현재 숙련도가 얼마였는지도 가물가물했으니 말이다.
-바이탈리티 웨폰
분류 : 액티브 스킬
스킬 레벨 : Lv. 12
숙련도 : 72퍼센트
재사용 대기 시간 : 없음
지속 시간 : 15분
서머너 나이트는, 자아를 가진 무기에 한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생명력을 얻은 무기에는 각각의 AI가 부여되며, 착용하지 않더라도 전투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무기의 AI가 향상되며,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무기의 최대 숫자가 늘어납니다.
*바이탈리티 웨폰의 스킬 레벨이 열 단계 상승할 때마다 생명력 부여가 가능한 무기의 갯수가 1개 증가합니다.
현재 생명력 부여가 가능한 무기의 수 : 2
*무기의 자아와의 친밀도가 높아질수록, 무기가 가진 더욱 강력한 잠재력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봉인) : 무기의 최대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면, 숨겨진 능력이 개방됩니다.
‘흠, 그래도 내가 10레벨은 넘게 찍어 뒀었네. 이러면 세 자루 전부 사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군.’
두 자루의 검에 바이탈리티 웨폰을 사용하여 생명력을 불어넣고 나머지 한 자루의 검을 직접 장착하면, 심판 검 세 자루를 휘두르며 날뛰는 삼도류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
“으흐흐흐.”
게다가 심판자의 힘이 깨어나며 세 자루의 검에 공통적으로 생긴 고유 능력인 ‘삼위일체’는, 이러한 삼도류 운용과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스킬이었다.
‘좀비같이 싸우고 싶을 땐 성령의 심판 검을 들고, 극단적인 딜이 필요할 땐 악마의 심판 검을 들고……. 다수의 공격을 버텨 가며 딜탱 역할을 해야 할 때엔, 심연의 심판 검을 활용하면 되겠어.’
이안은 심판 검들의 고유 능력을 마치 음미하기라도 하듯 반복해서 정독하였다.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세 자루의 검에 담겨 있는 고유 능력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심판검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더욱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는 이안.
“릴슨 형.”
“응?”
“먼저 거점에 돌아가 있어.”
“너는?”
“나는 1~2시간 내로 복귀할게.”
“흠, 그러지 뭐.”
릴슨을 먼저 길드 거점에 보내 놓은 이안은, 그 길로 유적을 나와 루판 산맥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콰쾅- 쾅-!
“크흐흐흐, 바로 이거지!”
그리고 그렇게 무아지경 속에서 심판 검들의 모든 능력을 전부 시험해 본 이안은, 릴슨과 약속했던 대로 2시간쯤 뒤 거점으로 복귀하였다.
이제 유적 콘텐츠의 최종 결과물인 가디언들을 깨우기 위해서.
다시 길드 파티에 합류해야 했으니 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길드 랭크를 4티어로 만들어 가디언들을 깨워 내기 위해서는 그가 다시 기사단을 이끌어야 할 것이었다.
* * *
온통 시뻘건 불길과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한 지하의 던전.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의 안에 들어왔다면 이런 분위기일까 싶을 정도로, 울긋불긋한 열기가 작열하는 어두운 필드.
거인들의 땅 엘라시움의 숨겨진 던전인 ‘파괴자의 유적’ 한쪽 구석에는, 독특한 문양이 그려진 길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새카만 두 자루의 검과 해골 문양이 겹쳐져 있는 다소 괴이한 모양의 길드 마크.
그것은 바로 떠오르는 신흥 강자, 다크 블러드 길드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 깃발의 아래에서 몇몇 유저들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이거, 타이밍이 정말 예술이군그래.”
“그러게. 딱 파괴자의 유적을 클리어할 타이밍에 기사대전 일정이 뜨다니 말이야.”
“흐흐, 이렇게 되면 이번 기사대전은 정말 해 볼 만하겠는데?”
“당연하지. 이 파괴자의 암살 검만 있으면, 카이랑 붙어도 제법 비벼 볼 만하겠어.”
“하긴. 사실 피지컬만 놓고 봤을 때 요르간드 너라면 카이보다 부족할 게 없으니 말이야.”
요르간드는 영국서버의 암살자 랭킹 1위 이자 다크블러드 기사단의 기사단장인, 다크블러드 길드의 간판과도 같은 유저의 이름이었다.
폭군이라는 별명이 붙은 카이만큼이나 압도적인 피지컬과 전투력을 가진 유저인 요르간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의 유명세가 영국 서버에 한정되어 있는 이유는 그가 후발주자이기 때문이었다.
중간계가 처음 열리고 카이와 이안이 신의 말판 전장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당시, 요르간드의 레벨은 고작 300레벨 중반에 불과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요르간드는 정말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였다.
여느 게임들이 그렇듯 카일란 또한 후발주자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었고, 거기에 그의 재능과 실력을 알아본 다크블러드 길드에서 그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니.
그 결과 지금은 무려 초월 70레벨을 넘었을 정도까지 성장한 것이다.
물론 카이나 이안과 비교했을 때 10레벨도 넘게 부족했지만, 영국 서버 유저들 사이에서 요르간드는 거의 그들과 동급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카이는 지금 레벨이 몇일까?”
“글쎄, 못해도 85레벨쯤은 넘겼겠지?”
“하긴. 루칼 형이 지금 82레벨이니까, 카이는 한 85레벨쯤 됐다고 봐야겠네.”
“그것도 아마 최소한일 거야.”
“흐흐, 그렇겠지.”
고대 거인의 유적 중 한 곳을 클리어하고 얻은 신화 등급의 초월 장비.
파괴자의 암살 검을 만지작거리는 요르간드의 두 눈은 흥미로움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현재 그의 레벨은 정확히 초월 73레벨.
아마 기사대전이 열리게 될 일주일 뒤면 75레벨은 충분히 찍혀 있을 것이다.
“뭐, 정말 카이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번에 제대로 한 방 먹여 보자고.”
길드 마스터 루칼의 말에, 요르간드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이길 수 없다고? 글쎄, 단정 짓지 마, 형.”
“아무리 네 피지컬이 괴물이라 해도 상대는 카이야.”
“흠.”
“레벨도 10 이상 더 높을 괴물을 상대로 네가 이기는 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루칼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요르간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는 이번에 정말로, 카이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었다.
‘카이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난 녀석의 고유능력 하나하나까지 다 꿰고 있지.’
초월 10레벨 차이는 절대로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한 대 덜 맞고 한 대 더 때린다면, 이길 수 있다는 게 요르간드의 마인드였다.
‘기왕이면 카이도 제압하고 이안까지 무릎 꿇려서, 천공의 기사 타이틀은 내가 가져가야겠어.’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더욱 좋아진 요르간드는 흡족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물론 그의 상상이 실현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지만 말이다.
* * *
“이번 파티는 노엘이, 그리고 피올란 님이랑 쥬르칸이다.”
이안의 말이 떨어지자, 이름이 호명된 세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지금 이안이 언급한 ‘파티’라는 것은 마지막 속성히든 던전인 ‘빙혼의 절곡’을 공략하게 될 파티.
용암 세트와 삭풍 세트가 얼마나 강력한지 충분히 겪어 온 세 사람은,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물론 던전을 공략하기 전에 이안의 혹독한 트레이닝이 먼저 기다리고 있음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지옥훈련(?)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빙혼 세트라는 초월 장비의 매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와, 피올란 누나랑 노엘이는 예상했지만, 마지막 한 명이 누구일진 궁금했었는데…….”
“쥬르칸 형 좋겠네.”
파티에 포함되지 못한 다른 기사단원들이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렇다 해서 불만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안의 선택에 나름의 이유와 기준이 있음은,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올란 님이야 냉기 필드에서 버티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구성원이고. 노엘이는 부단장……. 쥬르칸 형도 다른 기사단원들 중에는 최고 레벨인 데다 유일한 기사 클래스니까 가장 이상적인 파티 구성이지, 뭐.’
이안의 생각을 나름대로 추측해 본 훈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하였다.
직접 삭풍의 절곡을 체험해 본 그로서는 세 사람의 전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이안의 트레이닝이 선행될 테니 불가능할 일도 아니라도 보았다.
“하지만 일주일 내로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훈이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레비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훈아?”
“아, 그게…….”
뒷머리를 살짝 긁적인 훈이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안 형의 트레이닝이 일주일 내로 끝날지 모르겠다는 말이었어.”
“아하.”
“사실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기사대전이 시작하기 전에 빙혼 세트까지 가져오려는 건데, 그 전에 세 사람으로 공략 가능한 스펙이 나올지는 확신이 안 되어서 말이지.”
훈이의 말은 어쩌면 세 사람에게, 기분 나쁜 발언일 수도 있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훈이의 말에 악의가 전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세 사람 또한 그리 속 좁은 인물들은 아니었다.
해서 오히려 카노엘과 피올란은 훈이의 이야기에 동의하며 반대로 이안에게 물어보았다.
“그러게. 훈이 말에 일리가 있어요, 이안 님.”
“맞아, 형. 피올란 님이랑 쥬르칸 님이야 70레벨 후반이지만, 난 이제 겨우 70레벨 초반에 불과한걸. 일주일 안에 빙혼세트 공략 가능한 스펙이 만들어질까?”
그리고 두 사람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였다.
애초에 이안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염두에 두지도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엥? 누가 일주일 안에 트레이닝이 끝난대?”
“으음?”
“헉, 그게 무슨……?”
당황한 기사단원들을 향해,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아마 빨라도 보름은 더 걸릴 거야.”
그리고 이안의 대답에, 황당한 표정이 된 헤르스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세 사람에 이안 너까지 없이, 기사대전에 참전하란 얘기야?”
헤르스의 말이 끝나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이안의 입을 향해 모였다.
기사대전은 보상을 떠나 길드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무척이나 중요한 콘텐츠였고, 때문에 이안의 말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길드원들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태연히 대답할 뿐이었다.
“32강에서 내가 왜 필요해?”
“……?”
“대진표 나오면 다시 보긴 해야겠지만, 아마 리그전 들어가기 전까진 아무나 대충 열 명 들어가도 이길걸?”
그리고 이안의 그 패기 넘치는 대답에, 길드원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