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3화 3. 심판자의 힘 (1) >
-후우, 정말 탈탈 털어 가는군.
“당연하지. 이건 내 노력과 수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뼈아픈 것도 사실이야.
심연의 군주를 성공적으로 제압한 뒤 이안은 정말 막대한 양의 유물을 인벤토리에 쓸어담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얻은 토큰만 해도 막대한 양이었는데, 군주에게 승리하면서 쉰 개의 토큰을 추가로 획득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심연의 심판검을 얻는 데 필요한 토큰이 고작(?) 열두 개였으니 이안과 릴슨이 가진 모든 토큰의 가치는 전체 유물의 절반 이상을 가져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유물을 골라 인벤토리에 차곡차곡 정리 중인 이안.
그의 옆으로 다가온 군주의 영혼이 우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안.
“응?”
-심연의 심장……. 그 물건을 정말 가져갈 생각인가?
“당연하지.”
심연의 군주가 쓰러지며 드롭한 신화 등급의 잡화 아이템인 심연의 심장.
전투가 끝나고 보상 페이즈에 도착했을 때, 심연의 군주는 해당 아이템을 반납하길 부탁하였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서 말이다.
물론 공짜로 돌려 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무려 토큰으로 교환 가능한 유적 목록에도 없는 신화 등급의 목걸이를 주겠다고 하였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사실 무척 솔깃할 만한 제안이었다.
지금껏 세 곳의 유적을 털면서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이 신화 등급의 초월 장신구였고, 녀석이 공유해 준 장신구의 스펙은 등급에 걸맞은 뛰어난 아이템이었으니까.
‘으음, 저게 있으면 확실히 전투력을 좀 더 올릴 수 있겠는데…….’
하지만 이안은 결국 그 제안을 거부하였고, 그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심연의 심장이 당장 이안에게 필요한 물건이라는 것.
심연의 심장 정보 창에는 그것의 용도가 전혀 명시되지 않았으나, 이안은 이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길드 공터에서 잠자고 있는 가디언의 흉상들을 깨우기 위해, 이 심장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만약 이안이 악령의 유적을 아직 정복하지 못한 상태이고, 하여 심장의 용도를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 고민조차 않고 이 제안을 수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안에게 이 심연의 심장은 앞선 두 곳의 유적부터 이어진 콘텐츠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고, 때문에 그 가치를 신화등급의 장신구보다도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 고생을 해서 만든 가디언들인데. 설마 장신구 하나보다 못한 성능을 보이겠어?’
그리고 두 번째 이유.
이것은 조금 단순한 이유였는데,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보다는 어쩌면 직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신격을 가졌다는 최상위 티어 NPC가 저렇게까지 회수하고 싶어 하는 걸 보니,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물건이겠지.’
안달이 난 심연의 군주를 보며, 이 아이템의 가치에 더욱 확신이 든 것이다.
‘저 장신구가 세트 아이템도 아니고, 뭐 언젠가는 신화 등급 장신구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여 이안은 군주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였고…….
-한번 다시 생각해 볼 수 없겠는가.
“응, 없어.”
심연의 군주는 더욱 울적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여러 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로군.
“난 네가 마음에 드는데?”
-젠장, 그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고 가져가는 것인가?
“물론.”
-하아, 네놈과 다시 만날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왠지 난 또 보게 될 것 같은데.”
-…….
이안은 심연의 군주와 투닥거리는 와중에도 획득한 유물들의 정보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넉넉하다 못해 넘쳐나는 양의 토큰을 얻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적의 선택을 해 조금도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모든 유물들을 챙긴 후, 마지막으로 창고 가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안.
‘드디어……!’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벽에 걸린 커다란 대검의 앞에 다가간 이안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것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띠링-!
-‘심연의 어둠’ 아이템을 열두 개 소모합니다.
-‘심연의 심판 검’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추가로 떠올랐다.
-세 자루의 심판 검을 전부 손에 넣으셨습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봉인되어 있던 고대 심판자의 힘이 깨어납니다.
-모든 심판 검에 잠들어 있던 자아가 깨어납니다.
쿠르릉-!
봉인이 해제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심판 검의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커먼 뇌전의 기류.
그것을 지켜보던 심연의 군주는 경악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모든 심판자의 힘이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다니!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세 자루의 심판 검이 두둥실 떠올랐고…….
“……!”
이안은 그 세 자루의 검들 중, 방금 획득한 ‘심연의 심판검’ 정보 창을 오픈해 보았다.
-심연의 심판 검
분류 : 대검
등급 : 신화(초월)
착용 제한 : 알 수 없음
공격력 : 2,725~3,725
영혼 레벨 : Lv. 1
영혼력 : 150
*영혼력은 일반 공격 시 방어력을 무시하는 고정 대미지로 적용됩니다. 영혼레벨이 상승하면 영혼력이 증가합니다.
내구도 : 99,999/99,999
옵션 : 모든 전투 능력 +10퍼센트
모든 비 전투능력 +5퍼센트
치명타 확률 +25퍼센트
치명타 피해 +75퍼센트
‘심연의 심판 검’으로 공격하는 모든 공격에 추가로 ‘어비스’ 속성이 부여됩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액티브)(활성화)
(재사용 대기 시간 : 60초)
고대 심판의 힘이 모두 모여 하나의 신성한 위격을 완성합니다.
필요에 따라 세 가지 속성(시온, 데몬, 어비스) 중 하나를 선택하면, 30초 동안 세 자루의 검이 전부 해당 속성으로 전환됩니다.
‘삼위일체’의 지속 시간 동안, ‘심판자’ 효과가 활성화됩니다.
-심판자
‘심판 검’으로 적을 공격할 때 마다 대상에게 입힌 피해의 5퍼센트를 충전합니다.
‘삼위일체’ 고유 능력의 지속 시간이 종료된 직후 첫 번째 타격한 위치에, 충전된 만큼의 위력을 가진 심판의 번개가 떨어져 내립니다(범위 : 반경 5미터).
심판의 번개로 대상이 처치될 시 모든 ‘심판 검’의 모든 액티브 능력 재사용 대기 시간이 3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나머지 두 자루의 심판 검을 보유한 상태일 때에만 해당 패시브가 활성화됩니다.
-보스 몬스터에게는 심판의 번개 위력이 절반만큼만 적용됩니다.
*심연의 보호 (패시브)
‘무기 막기’ 혹은 ‘방패 막기’로 적의 공격을 방어할 때마다, 흡수한 피해량의 10퍼센트만큼 어비스 속성의 실드가 생성됩니다.
누적된 실드가 최대 생명력의 50퍼센트를 초과할 시 더 이상 실드가 쌓이지 않으며, 초과된 수치만큼 ‘심연의 심판 검’의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실드는 데몬 속성의 공격에 두 배의 피해를 입으며, 시온 속성의 공격에 절반의 피해를 입습니다.
*심연의 낙인 (패시브)
대상에게 연속으로 3회 이상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시 대상에게 ‘심연의 낙인’이 각인됩니다.
‘심연의 낙인’은 15초 동안 지속되며, 낙인이 각인된 대상은 ‘어비스’ 속성의 공격에 한해 150퍼센트만큼 증폭된 피해를 입습니다.
낙인이 각인된 대상의 공격을 방어에 성공할 시, ‘심연의 보호’ 고유 능력으로 쌓이는 실드량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심연의 낙인’은 중첩되지 않습니다.
(심연의 심판 검으로 공격 시에만 적용)
……중략……
고대 심연의 기운을 담은, 강력한 ‘심연의 유물’이다.
고대인들이 성령의 존재들을 상대하기 위해 이 무기를 만들어 냈다고 전해진다.
* * *
중간계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이후.
LB사의 기획 팀에는 몇 가지 고민이 생겨났다.
중간계가 글로벌 통합 서버로 운영되는 만큼, 이런 저런 기존의 시스템과의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민 중 하나가 바로 ‘길드 시스템’과 연관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서버가 다른 유저를 길드원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느냐는 점.
처음 중간계가 열렸을 때만 하더라도 사실 이것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다른 서버의 유저가 길드원이 되면 해당 유저는 지상계의 길드 콘텐츠를 전부 이용할 수 없게 되어 버리니, 그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고민 없이 막아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더욱 글로벌화되고 중간계에 유입되는 유저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이와 관련된 너무 많은 문의가 고객센터에 빗발치기 시작하였다.
중간계에서 친해진 유저들과 길드를 꾸려 가며 플레이하고 싶으니, 타 서버의 유저들도 길드에 받을 수 있도록 제한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획 팀은 이 안건에 대해 대대적인 회의를 하게 되었고, 결국 이 부분을 오픈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다른 서버의 유저가 길드가 속한 서버의 지상계에 입장할 수 없다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할 터.
그러나 무작정 서버 간의 이동을 전부 풀어 버리는 것은 모든 기획자들이 반대하였다.
서버 간의 수준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였고, 이걸 풀어 버리는 순간 후발 서버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버릴 것은 너무 자명한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이에 대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기획 팀이 내놓은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이제부터 서버와 관계없이 길드원을 받을 수 있으나, 한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타 서버의 길드원을 영입할 시 해당 유저가 길드마스터보다 초월 레벨이 낮아야 함.)
-다른 서버에 소속된 길드에 가입할 시 해당 서버의 지상계에 진입할 수 있지만, 본래 속해 있던 서버의 지상계 입장은 금지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획 팀의 결정에, 많은 카일란 유저들은 환호하였다.
길드 선택의 폭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짐과 동시에, 더 다양한 유저들과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로터스 길드에서도, 이 패치에 기뻐하는 유저가 하나 있었다.
‘드, 드디어 료이카 님을 길드에 영입할 수 있겠어!’
그것은 바로, 오래전부터 로터스 길드에 료이카를 영입하고 싶어 했던 훈이.
오랜 시간 정체 중이던 훈이의 연애 전선에 다시 한 줄기 빛이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사실과 별개로 이 패치로 가장 큰 변화를 맞게 된 것은 유럽의 카일란 서버들이었다.
미국이나 중국, 한국 서버 등에 비해 뒤쳐져 있던 유럽 서버의 랭커들이 유럽 연합 길드를 연달아 창설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더해서 그중에서도 마치 신성처럼 떠오르는 두 개의 연합길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독일 서버의 인간 진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인트 라이언’ 길드와 영국 서버의 마계진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다크 블러드’ 길드였다.
그리고 전 세계 카일란 팬들의 관심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이 두 곳의 길드가 이번에 드디어 출사표를 던졌다.
바로 일주일 뒤로 다가오는, 중간계의 첫 번째 기사대전.
전 세계에 방영되는 카일란의 공식적인 E 스포츠 콘텐츠에 처음으로 참전을 선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