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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50화 (855/1,027)

< 850화 2. 유적의 계승자 (1) >

전투는 곧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NPC와 과거에 일면식이 있기 때문인지, 심연의 군주가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대, 이름이 아마 이안이었지?

“맞아. 반갑네, 이거. 인간계에서 만났던 친구를 여기서 또 보게 될 줄이야.”

-고작 지상계의 대리인에 불과하던 인간의 위격이 벌써 이렇게까지 성장하다니…….

“흐흐, 칭찬 고맙수.”

놀라움, 신기함 그리고 호기심.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눈으로 이안을 응시하던 심연의 군주는 천천히 본론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사실 그대가 지금까지 보여 준 능력이면, 나의 마지막 시험은 생략해도 될 터.

“오, 그래?”

-하지만 자네의 행색을 보니 자네는 시험을 생략하길 원하지 않을 것 같군.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이안이 반문하였고, 심연의 군주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자네가 들고 있는 그 검. 악마의 심판검 아닌가.

“맞아. 역시 알아보네.”

-그 힘을 이미 경험했다면, 당연히 심연의 심판검 또한 탐이 날 터.

“그야 당연한 말씀.”

-다른 유물들이야 지금껏 그대가 증명한 능력으로 얼마든지 내줄 수 있으나, 시험 없이 심판검을 내줄 수는 없다네.

그리고 여기까지 들은 이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으니 말이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그럼 얼른 시작하지 그래?”

스르릉-!

악마의 심판검을 뽑아 들며, 의욕적인 표정으로 씨익 웃는 이안.

그런 그와 다시 눈이 마주친 심연의 군주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특이한 녀석이로군.

“뭐가 또?”

-그대라면 이미 나의 힘을 알아봤을 터.

“……?”

-두렵지 않은가?

“전혀.”

-대단한 기개와 용맹이로군.

“아니, 두려울 리가 없잖아. 이미 한번 이긴 상대를 왜 무서워해?”

-그, 그건……!

“오히려 네가 겁먹어야 하는 것 아냐?”

이안은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며, 심연의 군주를 향해 심판검을 겨누었다.

녀석과 대화가 이어질수록 이안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원래 프리패스가 가능한 시험인데, 심판검 때문에 강제로 전투를 해야 하는 거면……. 이거 어쩌면 규격 외의 보상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전투가 시작되려는 이 와중에도, 콘텐츠의 흐름을 생각하며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안과 별개로 심연의 군주는 점점 심기가 불편해지고 있었다.

이안이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패시브 스킬이나 다름없는 도발에 걸려든 것이다.

-어리석은……! 설마 지상계에서 보았던 나의 분신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것인가?

“다를 게 뭔데?”

-무, 물론 중간계에서도 완전한 위격을 발현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격 자체가 다르거늘!

“그래?”

녀석을 약 올리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지, 이안은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럼 한번 드루와 보든가.”

그러자 바로 그 순간…….

고오오-!

공동 전체를 휘감는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이안의 눈앞에 간결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 * *

과거 인간계에서 보았던 심연의 군주는 확실히 강력한 보스였다.

조금 둔하고 느린 대신, 어마어마한 맷집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당시 행성 파괴 무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강력한 정령왕의 심판이 없었더라면, 결코 녀석에게 이길 수 없었을 정도.

‘하지만 그때 정령왕의 심판이 있었다면, 이번엔 악마의 심판 검이 있지.’

위이잉-!

빠르게 모든 소환수를 소환해 낸 이안은 녀석의 주변을 천천히 배회하며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은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전투를 복기하고 있었다.

‘일전에 공략했던 것처럼, 순발력의 차이를 최대한 이용해야겠지?’

물론 같은 자아를 공유하는 보스라고 하여 완전히 스킬과 공격 패턴이 같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카일란은 그렇게 단순한 게임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스타일과 콘셉트 자체는 비슷할 터.

이안은 루가릭스의 저주 계열 흑마법과 엘카릭스의 디버프 계열 슬로우 마법을 이용하여, 녀석의 움직임을 최대한 둔화시켜 보기로 하였다.

“엘, 어스 디케이Earth Decay! 루, 소울 이그저스트Soul Exhaust!”

위이잉-!

슬로우 마법과 같은 디버프 계열의 마법들은 중첩시킬수록 그 시너지가 강력해진다.

물론 완전히 같은 계열의 디버프를 무한정 중첩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지금 이안이 발동시킨 마법들은 완전히 다른 타입의 스킬.

지면을 부식시켜 광역으로 디버프를 거는 스킬이 어스 디케이라면 소울 이그저스트는 단일 대상을 탈진시키는 스킬이었고, 때문에 디버프 계수에 어떤 손실도 없이 완벽히 중첩이 가능한 조합이었다.

기이잉-!

-소환수 ‘루가릭스’가, ‘심연의 군주’ 에게 ‘소울 이그저스트’를 발동하였습니다.

-‘심연의 군주’의 움직임이 20퍼센트만큼 둔화됩니다.

-‘심연의 군주’의 명중률이 1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10초 뒤에 모든 효과가 해제됩니다.

-소환수 ‘엘카릭스’가 ‘어스 디케이’를 발동하였습니다.

-범위 내 모든 적들의 이동속도가 30퍼센트만큼 둔화됩니다.

-범위 내 적들이 움직일 때마다 둔화 계수는 2퍼센트만큼씩 증가하며, 범위에서 벗어난 즉시 모든 효과가 해제됩니다.

주르륵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급격히 둔화되는 심연의 군주.

그르르륵-!

-어리석은 짓을……!

이안은 그 틈에 빠르게 녀석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하였고, 약점을 포착하기 위해 빈틈으로 뛰어들었다.

원래도 둔한 편인 심연의 군주가 둔화 효과까지 중첩되니, 녀석의 움직임을 피하는 것은 이안에게 일도 아닌 터.

이안은 날카롭게 심판 검을 뻗어 내었고, 그것은 정확히 녀석의 약점을 향해 쇄도하였다.

‘일단 가볍게 한 방 먹이고……!’

하지만 이 한 방으로 그렇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녀석의 움직임과 숨겨진 고유 능력들을 끌어내기 위한 탐색전 성격의 공격이었고, 때문에 지옥의 칼날은 물론 악마의 낙인조차 발동시키지 않았으니 말이었다.

‘딜이 얼마나 박히려나.’

그런데 다음 순간.

쐐애액-!

“……!”

이안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피했다고?’

너무도 당연히 박혀 들어갈 것이라 했던 이안의 심판 검이 녀석의 외피를 베는 대신 허공을 갈랐으니 말이었다.

둔화 효과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안의 계산에 의하면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 이안은, 재빨리 상체를 비틀며 방향을 선회하였고,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이안의 우측 어깨를 강타하였다.

콰아앙-!

“커억!”

순간적으로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은 이안은 침착히 몸을 날리며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단 한 방에 생명력이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파악해 내는 것이었다.

-‘심연의 군주’의 고유능력, ‘타임 홀’이 발동하였습니다.

-모든 둔화 효과가 해제됩니다.

-10초 이내에 둔화 효과로 인해 손해 본 움직임을 1초 동안 전부 돌려받습니다.

-‘심연의 군주’의 움직임이 폭발적으로 가속됩니다.

-‘심연의 군주’의 고유 능력 ‘심연의 강타’가 발동합니다.

-‘시간 가속’ 효과로 인해, 해당 고유 능력의 위력이 증폭됩니다.

-‘심연의 군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981,092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모든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컥……!”

이안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사기적인 스킬이 다 있어?’

상황이 이해됨과 동시에, 듣도 보도 못한 종류의 고유 능력에 경악한 것이다.

이안을 당황시킨 고유 능력은 당연히 ‘타임 홀’.

둔화 효과를 빨아들여 순간 가속을 만들어 내는 이 고유 능력은, 그야말로 심연의 군주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대체 어떤 창의력 터진 친구가 이딴 스킬을 생각해 낸 거야?’

아무리 강력한 공격력과 단단한 맷집을 가졌더라도, 압도적인 순발력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이안이 이런 종류의 보스 몬스터를 상대해 왔던 기본적인 방식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 ‘타임 홀’이라는 고유 능력 하나 때문에, 이안이 가지고 있는 모든 둔화 효과가 무력화 되어 버리고 말았다.

골렘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을, 이 고유 능력 하나로 보완한 것이다.

위이잉-!

-소환수 ‘엘카릭스’가 ‘소울 디커버리’ 고유 능력을 사용하였습니다.

-생명력이 50,829만큼 회복됩니다.

-생명력이 50,829만큼 회복됩니다.

-생명력이…….

엘카릭스의 회복 마법으로 빠르게 생명력을 회복한 이안은, 심연의 군주의 다음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었다.

만약 ‘시간 가속’ 효과가 남아 있었더라면 피해 내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렀겠지만, 다행히 골렘은 다시 느려진 상태였다.

‘일단 타임 홀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파악해야 해. 그걸 알아내지 못한다면 승산은 없어.’

보통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은, 스킬의 성능에 비례하여 길어진다.

그리고 타임 홀의 사기적인 스펙을 봤을 때, 결코 재사용 대기 시간이 짧은 능력은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타임 홀로 인해 순간 가속된 심연의 군주의 움직임은, 이안조차도 반응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고, 그 카운터 공격 한 방에 그대로 게임 아웃이 되어 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아직 녀석이 모든 고유 능력을 다 꺼내 보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분명 자체적으로 이 고유 능력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다른 스킬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리고 이안의 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이안.

“……?”

-한 번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면, 너무 허무할 뻔했어.

“잘난 척은.”

이번에는 역으로 이안을 도발한 심연의 군주가 돌연 무릎을 굽히며 양 손을 교차시킨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고오오오!

녀석의 몸이 더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으며, 그에 더해 군청빛의 외피에 더욱 진한 칠흑이 덮이기 시작하였다.

띠링-!

-‘심연의 군주’의 고유 능력 ‘파괴력 강화’가 발동됩니다.

-‘심연의 군주’의 물리 공격력이 12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심연의 군주’의 움직임이 40퍼센트만큼 둔화됩니다.

-‘심연의 군주’의 고유 능력 ‘외피 강화’가 발동됩니다.

-‘심연의 군주’의 물리, 마법 방어력이 9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심연의 군주’의 움직임이 50퍼센트만큼 둔화됩니다.

이어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리기 시작하였다.

‘미친……!’

이제 이 녀석의 모든 공격 매커니즘이 완벽히 이해됨과 동시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으니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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