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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847화 (852/1,027)

< 847화 1. 다시 만난 심연의 군주 (1) >

성령의 유적을 얻기 위해선 탑을 올라야 했고, 악령의 유적을 얻기 위해서는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때문에 ‘세이카의 심연’이라는 이름의 세 번째 탑에 들어선 이안은, 살짝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내려가야 해, 아님 올라가야 해?’

사전에 유물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던 성령, 악령의 유적과 달리.

탑에 들어설 때까지도 이안에게는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혼란도 잠시뿐.

그그긍- 쿵-!

이안 일행의 입장이 끝난 후 탑의 석문이 묵직하게 닫히자 심연의 어둠이 그들을 하나의 길로 인도하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마치 북극의 오로라처럼 생긴 군청빛의 신비로운 기운들이 이안이 움직여야 할 길을 따라 고고하게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저벅저벅.

이안 일행은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것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들은 10여 분 정도를 계속해서 이동하였다.

작은 계단실을 한 칸 오르기도 하였으며, 미로처럼 생긴 좁은 지하 통로를 연달아 지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이안 일행은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지경이 되어 버렸다.

‘오는 길에 있던 구조물들을 대충 기억해 두기는 했는데, 그래도 다시 길을 찾으라면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이안은 살짝 걱정이 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걷는 속도를 늦출 수는 없었다.

속도를 늦추는 순간 길을 안내하는 오로라는 저만치 달아나 버릴 것이고, 저것이 없이는 이 탑 안에서 그대로 미아가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스르륵.

그리고 그렇게 총 20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

띠링-!

이안 일행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심연의 장에 도착하였습니다.

-고대 심연의 군주가 남겨 놓은 세 가지 심연의 방을 발견하였습니다.

-‘심연의 열쇠’를 사용하여 방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 이상의 심연의 방에서 군주의 시험을 통과해야 심연의 군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후략……

무척이나 흥미로워 보이는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처음으로 뻥 뚫린 공터가 이안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어서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걸음을 옮긴 이안은 공터의 세 방향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철문을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그리고 각각의 철문 위에는 작은 시스템 박스가 생성되어 있었다.

-나태의 심연

-혼돈의 심연

-환영의 심연

‘흠, 저기에 하나씩 들어가서 클리어해야 한다는 거지?’

심연의 열쇠는 이안이 퍼즐 판을 맞추면서 얻은 여섯 개의 열쇠들을 말한다.

이 열쇠를 하나 소모할 때마다 세 가지 심연 중 한 곳에 도전할 기회가 생기는 것.

때문에 이안에게는 총 여섯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심연의 방에서 어둠이라는 토큰을 얻을 수 있다 했으니, 어쨌든 저 안에서 어떤 전투가 벌어질 테고…….’

머릿속으로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본 이안은, 성큼성큼 첫 번째 심연의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세 가지 심연의 방 중 이안이 첫 번째로 고른 곳은 ‘나태의 심연’.

이곳을 고른 이유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가장 가까워 보이는 곳으로 먼저 간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딱히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뭘 생각한다고 해서 더 나은 선택지를 알아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말이야.’

인벤토리에서 열쇠를 하나 꺼내 든 이안이, 철문의 열쇠구멍에 그것을 쑥 하고 꽂아 넣었다.

철컥.

그러자 경쾌한 쇳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묵색이었던 철문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그그긍-!

-‘심연의 열쇠’를 소모하였습니다.

-‘나태의 심연’에 도전합니다.

……후략……

하지만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확인하던 이안은 돌연 인상을 팍 구길 수밖에 없었다.

-도전에 실패할 시, 탑의 입구로 강제 소환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면, 한 번 도전했던 심연의 방에 다시 입장할 수 없습니다(시간 내에 다시 복귀에 성공할 시 열쇠를 소모하여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렇지. 괜히 그렇게 길을 복잡하게 만들어 둔 게 아니겠지…….”

“쩝.”

이안과 릴슨이 투덜대는 동안 철문이 천천히 옆으로 밀리면서 열리기 시작하였고, 문 안의 이동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안, 너 길 다 기억해?”

“아니.”

“흠, 내가 탐험가 클래스다 보니 길눈이 좀 밝긴 한데…….”

릴슨은 살짝 걱정스런 표정으로, 기억을 빠르게 더듬어 보았다.

사실 조금 겸손을 떨긴 했지만 길을 찾는 것이야말로 릴슨의 최고 장기 중 하나였다.

때문에 릴슨은 걱정과는 별개로 은근히 기대도 되었다.

드디어 자신이 활약할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으니까.

안타깝게도 그것은 릴슨의 착각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걱정할 거 없어, 형.”

“……?”

“어차피 길 찾아 헤맬 일은 없을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이안의 대꾸에 당황한 표정이 된 릴슨.

하지만 이안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도전에 실패하지 않으면 탑 입구로 돌아갈 일은 없는 거잖아?”

“그, 그건 그렇지.”

“한 큐에 다 깨면 되니까 걱정일랑 접어 두쇼.”

이어서 말을 마친 이안은 먼저 성큼성큼 포털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기계문명의 차원계, 라카토리움.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큰 대도시인 루탄에, 이제는 제법 유저들의 인적이 닿기 시작하였다.

이안이 처음 갔을 때만 하더라도, NPC 이외에는 어떤 존재도 찾아볼 수 없었던 루탄.

하지만 최근 들어 70레벨을 넘긴 랭커들이 많이 늘어났고, 그들 중 최상위권의 마족 유저들이 라카토리움에 입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80~90레벨대의 몬스터들이 출연하는 오염된 대지는, 경험치 파밍에 꿀 같은 장소로 랭커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마계를 진행하던 상당수의 랭커들도, 라카토리움으로 넘어올 정도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라카토리움으로!

-같이 기계 공장 돌릴 70레벨 이상 파티원 모집합니다!

많은 랭커들이 라카토리움으로 넘어온 덕에 커뮤니티에도 종종 관련 게시글이 올라왔고…….

-손재주 스텟 높은 생산 클래스 랭커 구합니다!(대장장이 우대!)

-‘오염된 기계 유적’ 공략하실 파티원 구합니다!

그것들을 본 일반 유저들까지도, 라카토리움이라는 새로운 차원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었다.

“와, 라카토리움? 저기는 앞마당 몬스터 초월 레벨이 70레벨이래.”

“크으, 저런 데에서는 언제 사냥해 보나.”

“부럽다, 부러워. 저런 데 쓸고 다닐 정도 되면, 하루 아이템 파밍만 해도 몇백 이상 그냥 벌 텐데.”

그러나 이런 라카토리움에 대한 유저들의 관심이 달갑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하였다.

그것은 바로, 가장 먼저 이 기계 문명의 콘텐츠들을 선점하고 있던, 다크루나 길드와 같은 선지자들.

그들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랭커들과 콘텐츠를 갈라먹어야 할 상황이 왔으니 이런 변화가 마음에 들 리 없는 것이었다.

“이라한 님, 오늘부로 루탄에 입장한 마족 숫자가 오백이 넘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판톤.”

“얼마 전부터 제법 대형 길드들에서 여길 눈독들이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러다가 기계 유적지가 발견될까 봐 걱정입니다.”

판톤은 최근 다크루나 길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유망주였다.

그는 이라한이 가장 아끼는 길드원이기도 하였고, 때문에 요즘 두 사람은 대부분의 일정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기계 탑의 공헌도를 쌓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유적지를 그저 ‘발견’하는 정도라면 1~2주 내로는 달성하는 놈들이 나오겠지.”

“그렇습니다, 마스터.”

최근 다크루나 길드에서 공략 중인 지역은 라카토리움 서부의 오염된 사막이었다.

무려 초월 80레벨대의 몬스터들이 기본적으로 등장하는 위험지대였지만, 그만큼 경험치와 보상이 짭짤한 곳이 바로 이 사막지대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꿀 같은 지역은 사막의 서북부에 있는 ‘고대의 기계 문명 유적지’였다.

이곳에 등장하는 고대의 오염된 기계 괴수들을 처치하면 낮은 확률로 ‘고대 주화’를 얻을 수 있는데, 사막의 중심부에 있는 ‘제단’에 이 주화를 가져가면 고대 기계문명의 유물을 구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곳은 다크루나 길드도 발견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는 곳이었고, 때문에 이라한을 비롯한 길드의 수뇌부들은 조바심이 나 있는 상태였다.

더 많은 랭커들이 이 콘텐츠에 대해 알게 된다면, 유적지는 고대 주화를 노리는 하이에나들로 바글거리게 될 테니 말이었다.

“그 전에 주화 1천 개를 어떻게든 모아야 하는데…….”

이라한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제단에서 교환할 수 있는 유물들 중 가장 비싸고 높은 등급을 가진 고대의 유물.

무려 ‘전설’ 등급의 초월 장비인 ‘고대의 약탈 검’을 얻기 위해서는 1천 개의 주화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지금껏 다크루나 길드에서 모은 고대 주화가 이미 팔백 개도 넘었기에, 1천 개까지 모으는 것은 며칠이면 충분할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솔린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아, 솔린 님을 기다리는 중이셨습니까?”

“그래. 솔린이 돌아오는 대로 다시 사냥을 시작하려 했는데, 오기로 한 시간이 벌써 10분이나 지났단 말이지.”

솔린은 다크루나 길드의 초창기 때부터, 이라한을 보좌하던 보좌관 같은 존재였다.

때문에 중간계 콘텐츠가 진행되고 나서야 길드원이 된 판톤의 입장에서 솔린은 그야말로 대선배였던 것.

하여 판톤은, 그녀에게 항상 깍듯이 존대하였다.

“으음, 항상 시간 약속은 칼같이 지키시는 분인데, 어쩐 일일까요?”

“그러게 말이다.”

“제가 한번 메시지를 보내 보겠습니다.”

“그러도록.”

판톤은 솔린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길드 채팅 창을 오픈하였다.

하지만 채팅을 채 치기도 전에, 판톤은 다시 메시지 창을 닫게 되었다.

그 사이 기다리던 솔린이, 귀신같이 나타났으니 말이었다.

“후욱, 후욱,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스터.”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솔린을 보며 이라한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적지에서 여기까지 10분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솔린은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잠시 차오른 숨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이라한의 두 눈에 흥미가 어렸다.

그녀의 표정이 최근 들어 가장 심각해 보였으니 말이었다.

뭔가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가져온 것 같은 느낌.

수년간 함께해 온 이라한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의 직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유적지 남쪽에서, 히든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마스터.”

“히든…… 던전?”

“예, 마스터. 그곳에 대한 정보를 좀 확인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히든 던전이라는 이야기에, 이라한과 판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애초에 ‘고대 기계 문명 유적지’ 자체가 특별한 보상들이 가득한 히든 필드였으니 그 안에 있는 히든 던전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라한의 말이 이어지기 전.

솔린은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그대로 두 사람에게 던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이것보다 확실하고 빠른 설명은 없을 테니 말이었다.

띠링-!

-길드원 ‘솔린’이 새로운 던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기계 문명 정복자의 유적(히든)’ 던전의 정보가 공유됩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이라한과 판톤은 곧바로 공유받은 정보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던전에 대한 정보 창을 읽어 내려갈수록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더 상기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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