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4화 7. 세이카의 심연 (1) >
“설마…… 또 퍼즐인 거냐?”
이안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탄식이 새어 나왔다.
생기 넘치던 표정은 오간 데 없고, 어느새 푸르죽죽하게 죽어 버린 이안의 혈색.
그리고 표정이 구겨진 것은 옆에 있던 릴슨 또한 마찬가지였다.
퍼즐이라면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 그였으니까.
“아니겠지. 그럴 리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정해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머릿속은 점점 더 아득해져만 갔다.
철컥- 철컹-!
쨍쨍한 기계음과 함께, 누가 봐도 퍼즐처럼 생긴 고대의 금속판들이 심연의 탑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꿀꺽.
이어서 마른침을 한차례 삼킨 이안은, 불안한 표정으로 퀘스트 창을 천천히 열어 보았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퀘스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세이카의 심연 진입 (히든)(돌발)’
심연의 유적을 찾아낸 당신들은, 지금까지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었다.
고대의 탑 ‘세이카’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만 하는 일곱 개의 관문을 전부 다 성공적으로 돌파하였으니 말이다.
심연으로 가득한 ‘세이카’에 입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얻는 데 성공한 것.
그리하여 이제 그대들에게 세이카의 심연에 입장하기 위한 마지막 과제가 주어졌다.
고대의 성판들을 움직여 이 마지막 과제를 해결해 낸다면, 심연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 (초월)
퀘스트 조건 : 모든 심연의 관문을 통과한 자.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세이카의 심연’ 입장.
‘심연의 어둠’×20
*퀘스트를 포기할 시 유적 밖으로 강제 소환됩니다.
*퀘스트에 실패한다면, 퀘스트가 갱신됩니다.
(퀘스트가 갱신될 때 마다 내용이 바뀌게 되며, 보상은 하향 조정됩니다.)
*도전자의 클래스에 따라, 도전할 수 있는 퀘스트의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성판을 움직인다는 것 보니…….”
“결국 퍼즐을 맞추라는 소린 거 같은데…….”
이안과 릴슨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퀘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일단 해 보자, 형.”
“그래. 뭐 까짓거, 미친 가디언 흉상도 완성시켰는데 뭘 또 못할까.”
우우웅-!
릴슨과 시선이 마주친 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동시에 퀘스트를 망설임 없이 수락하였다.
그러자 두 사람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고대의 심연, ‘세이카’의 마지막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전자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도전자의 클래스를 확인합니다.
-도전할 수 있는 시험의 종류를 검색합니다.
우우웅-!
거대한 심연의 앞에 선 두 사람은, 멀뚱한 표정으로 시스템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아직까지 이 메시지만 봐서는 어떤 방식으로 퀘스트가 진행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여 잠시 굳어있던 이안과 릴슨.
그런 두 사람의 귓전으로, 커다란 기계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위잉-
철컹, 철컹!
드르륵-!
“뭐, 뭐야?”
당황한 이안과 릴슨의 시선이, 자연스레 소리가 나는 곳으로 휙휙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탑의 주변을 두둥실 떠다니던 석판들이 빠르게 회전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어서 잠시 후, 그중 몇 개의 석판이 두 사람의 앞으로 빠르게 날아왔다.
쐐애애앵-!
철컥-!
그들의 앞에 날아든 석판은 총 일곱 개.
석판의 위에는 각기 다른 문양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고, 그것들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안과 릴슨은, 그것들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하였다.
“뭐지? 이건 궁사 클래스 문양이잖아?”
“이건 전사 클래스인데…….”
“엥, 이건 낯이 익긴 한데, 뭔지 모르겠어.”
“바보야 탐험가 클래스 문양이잖아.”
“아, 탐험가 문양이 이렇게 생겼었지?”
이안과 릴슨은 문양들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전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카일란에 존재하는, 여러 클래스들의 문양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의아한 것은, 십 수 종이 넘는 전투 클래스와 생산 클래스의 문양들 중 왜 일곱 개의 문양만이 나타났냐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의문은 곧바로 풀릴 수 있었다.
-도전자들의 영혼에 흔적이 남아 있는 클래스들 중, 일곱가지 클래스가 소환되었습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그에 맞는 시험이 진행됩니다.
-단, 하나의 성판을 선택하고 나면, 도전하는 모두가 함께 해당 시험을 진행해야 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릴슨이 이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연관되어 있는 클래스들만 생성됐다는 거네.”
“엥, 그런데 전사 클래스는 왜 있는 거지?”
“그야 내가 예전에 전사 클래스 했다가 잘 안 맞아서 갈아탄 전적이 있으니까.”
“…….”
“그나저나 저 특이한 문양은 뭐야?”
“영매사 클래스 문양이야.”
“헐, 너 영매사 클래스도 있었어?”
“형은 대장장이 클래스도 있나 본데?”
“…….”
“근데 요리사는 뭐야?”
“바보냐. 너 가끔 하린이 보조할 때 식재료 다듬기 숙련도 올랐겠지.”
“아, 그러네.”
일곱 개의 성판에 그려져 있는 일곱 종류의 클래스 문양들.
그것들의 종류는, 다음과 같았다.
1. 소환술사
2. 탐험가
3. 궁사
4. 영매사
5. 전사
6. 대장장이
7. 요리사
우웅- 우우웅-
낮은 공명음을 만들어 내며, 일곱 개의 성판들이 두 사람의 앞에서 원형으로 빙글빙글 회전했다.
아마 그 성판들 중 하나를 집어 들면 해당 클래스와 관련된 시험이 시작될 터.
성판을 앞에 두고 잠시 고민하던 이안과 릴슨은, 결국 하나의 성판을 집어 들었다.
“그래도 우리 파티에서 네 비중이 훨씬 높으니까, 소환술사 클래스를 선택하는 게 클리어 확률이 높겠지.”
“우리 둘 다 경험이 있는 궁사 클래스로 가는 건 어때?”
“아냐. 난 무늬만 궁사지 활 제대로 쏠 줄도 모른다고.”
“…….”
“그렇다고 탐험가를 고르기엔 네가 문외한이니까, 그럴 바엔 소환술사를 택하는 게 나아.”
“그래, 그러지 뭐.”
고민할 때에는 신중하지만, 막상 결정되고 나면 거침없이 진행하는 것이 이안의 성향.
이안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환술사 문양의 성판을 집어 들었고, 그와 동시에 까만 바탕이던 성판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소환술사의 시험’을 선택하셨습니다.
-시험에 맞는 성판이 소환됩니다.
쉬이이잉-!
이안의 손에 들려 있던 성판이 황금빛으로 부서지며 허공으로 사라지자, 탑 주위를 돌던 수백개가 넘는 다른 성판들이 또다시 분주하게 회전했다.
이어서 두 사람의 앞으로, 성판이 하나씩 하나씩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철컹- 철컹-!
“뭐, 소환술사와 관련된 퍼즐이라도 맞춰야 하는 건가?”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이안과 릴슨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앞에 두둥실 떠오른 첫 번째 성판을 조심스레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아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응?”
“뭐야, 퍼즐 맞추기가 아니었던 건가?”
두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라면 커다란 그림의 한 조각 같은 것이 날아왔어야 하는데.
성판의 모양 자체가 정사각형이었던 데다, 그 안에 새겨진 모양은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그림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 그림은 이안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털 갈기 늑대잖아?”
“엇, 그러네. 늑대 그림이 여기 왜 있지?”
의아한 표정이 되어 반문하듯 중얼거리는 이안과 릴슨.
그들의 앞으로 성판은 계속해서 날아왔고, 두 사람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열심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총 스물다섯 개의 성판이 날아든 뒤, 두 사람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모든 심연의 성판이 소환되었습니다.
-성판을 제 위치에 배열하여 방진方陣을 완성한다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배열이 끝난 성판을 뒤집으면 해당 위치에 고정됩니다.
-고정된 성판은 다시 되돌릴 수 없으며, 모든 성판을 전부 뒤집는다면 시험이 종료됩니다.
이어서 메시지를 전부 확인한 이안과 릴슨의 동공이, 지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 * *
툭- 투툭-!
허공에 두둥실 떠 있던 성판들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묵직한 금속판이었지만, 신기하게도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를 가진 성판들.
이어서 성판들이 떨어져 내린 바로 옆에, 가로 세로 5×5로 쪼개진 황금빛 퍼즐판이 나타났다.
그것을 확인한 이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물다섯 개의 성판을 여기다 끼워 넣으라는 소리 같은데…….”
이안의 중얼거림에, 릴슨도 입을 열었다.
“일단 배치하고 나서 위치에 확신이 생기면 뒤집어서 픽스하라는 얘기였지?”
“그랬던 것 같아.”
“하, 대체 이건 또 무슨 지랄맞은 퍼즐이야. 차라리 악령의 유적이 더 낫겠어.”
“글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이안은 자리에 주저앉아, 스물 다섯 개의 성판들을 하나씩 다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 성판들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건 전부 소환수 아이콘인데……. 이걸로 무슨 퍼즐을 맞추라는 거지?’
까맣게 죽어 있던 이안의 두 눈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이 또한 악령의 유적 때와 마찬가지로 ‘퍼즐’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콘텐츠였지만, 퍼즐의 장르 자체는 완전히 달라 보였으니 말이다.
이안에게 쥐약인 ‘조형감’ 같은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은 퍼즐이었으니 그로서는 반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난이도가 쉬워 보이진 않지만, 이 편이 백배 낫지.’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이안은 이런 식으로 머리굴리는 것을 좋아한다.
악령의 유적 퍼즐이 재미도 없는 노가다라면, 눈앞에 있는 시험은 머리 굴리는 맛이 있는 콘텐츠인 것이다.
하여 이안은, 무서운 속도로 집중하여 퍼즐에 몰입하기 시작하였다.
딸깍딸깍.
성판을 하나씩 이어서 배치해 보는 이안을 향해, 릴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뭐 하는 거야, 이안?”
“생각.”
“뭔가 단서라도 보이는 거야?”
“그걸 찾고 있는 중이야.”
“…….”
릴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안의 옆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아예 사고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은 그로서는, 의욕이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뭐, 구경이나 하자. 이안이가 해결하면 좋고,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김빠진 표정이 된 릴슨과 별개로, 이안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성판과 성판을 이어서 배치해 봐도, 별다른 접점 같은 것은 안 보이는데…….’
일단 이안은, 성판이 나타난 순서대로 일렬로 배열해 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차례대로 확인하며, 하나씩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털갈기 늑대 다음 녀석은 투견. 그 다음 녀석은 큰꼬리 여우…….’
이안은 성판에 새겨져 있는 스물 다섯 종류의 소환수 아이콘을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커뮤니티에 들어갈 때마다 한번씩 보는 것이 소환수 도감이었으니, 전부 다 눈에 익었던 것이다.
‘분명 규칙을 찾아서 배열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소환수들 마다 갖고 있는 정보부터 전부 분석해야 해.’
이안은 더욱 신중한 표정이 되어, 성판 아래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하였다.
“뭐 하는 거야?”
“분석.”
“무슨 분석?”
“소환수 능력치랑 속성, 일련번호까지 싹 다 적어 보는 중이야.”
“그걸 외우고 있다고?”
“외운 건 아니고.”
“그럼?”
“그냥 아는 거야.”
“…….”
더욱 어이없는 표정이 된 릴슨은 입을 꾹 다물고 이안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이안이 하는 짓거리(?)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부터가 의심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었다.
침묵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하여 성판들을 분석 중인 이안.
그렇게 30여 분 정도가 지났을까?
성판 한 개를 집어 든 이안이, 벌떡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