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2화 6. 고대의 신단 (2) >
* * *
이안과 릴슨이 악령의 유적을 정복한 뒤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 일주일 동안 이안의 퀘스트 진척은 완전히 멈춰 있었다.
유적의 결계를 해체해 줘야 하는 릴슨이 가내수공업으로 인해 공사가 다망하여, 일단 퍼즐이 전부 완성되기까지 퀘스트 진행을 스톱시켜 둔 것이다.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고작 퍼즐(?)을 맞추는 데에 어떻게 일주일이나 걸렸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300피스정도의 평면 퍼즐을 맞추는 데에도 몇 시간이 걸렸던 릴슨에게 무려 천 피스짜리 입체 퍼즐 세 개를 섞어 두고 맞추라 하였으니, 일주일이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LB사의 기획자들로서는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는 상황!
물론 퀘스트가 멈춰 있다고 하여 이안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이안은 천룡기사단원들을 데리고 하드 트레이닝을 하였으니 말이다.
“자, 이번 길드퀘에서 공헌도 1등 하는 단원에게, ‘악령의 언월도’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 오오!”
“대박! 전설 등급 초월 장비잖아?”
“가져다 팔아도 됩니까?”
“물론! 대신 우리 길드원한테만 파셨으면 합니다.”
“크으!”
“이안갓!”
일주일 동안 이안은, 기사단원들을 완벽히 조련해 둔 상태였다.
반나절마다 한 번씩 유물들을 포상으로 걸며 경쟁을 붙여 놓으니, 그 어떤 때보다 사냥 효율이 잘 나온 것이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채집형 길드 퀘스트마저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수행할 정도!
어차피 인벤토리에 쌓여 있던 유물들을 기사단원들에게 고루 지급할 생각이었던 이안으로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동력장치 레벨 버프 중첩이 막힌 게 좀 아쉽네. 그것만 됐으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했을 텐데.’
문득 동력장치를 떠올린 이안은 한차례 입맛을 다신 뒤,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사단원들을 훑어보았다.
이제 모든 기사단원들의 레벨이 70레벨 중반 이상으로 올라온 탓인지, 확실히 팀 파이트 기준 전투력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느낌이었다.
‘오늘까지 빡세게 굴리고, 내일부턴 다시 노엘이에게 기사단원들을 맡겨 둬야겠어.’
이제 거의 완성되어 가는 퍼즐을 떠올린 이안이 씨익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마 오늘 중으로는 세 개의 가디언 퍼즐이 전부 마무리될 것이었고, 가디언을 복원한 뒤에는 곧바로 심연의 유적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 * *
“후우!”
“형, 이쪽으로! 이제 조각 다섯 개밖에 안 남았어!”
“나도 알아.”
“오, 오오! 맞았다!”
“부탁인데, 정신 사납게 하지 말아 줄래?”
“알겠어, 형.”
“한번 실수하면 다시 처음부터인 거 알지?”
로터스 길드 거점의 구석에 있는, 아담한 크기의 공터.
작은 체육관 크기만 한 이 공터에는, 이안과 릴슨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성인 남성의 세 배는 됨직한 키를 가진 세 개의 조각상 사이를 바쁘게 움직이며, 정성스레 퍼즐 조각을 맞춰 넣고 있는 릴슨과 그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조수 역할을 하고 있는 이안.
그리고 이 거대한 입체퍼즐을 맞추기 위해 맞춤제작된 사다리와 구조물들은 톡톡히 제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신기하지?”
“또 뭐가.”
“흉상들은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거기서 나온 조각들을 다시 조립하니까 엄청 커졌잖아.”
“악신의 흉상들은 속이 꽉 차 있었고, 이 못생긴 새들은 텅 빈 조각상이라 그래.”
“아, 그런 거였어?”
“갑자기 또 화나려고 하니까 조용히 해 줄래?”
“왜 또 화가 나? 다 끝나 가는데.”
“처음에 그거 몰라서 대략 이틀 정도 날렸거든.”
“…….”
“후우, 왜 이렇게 덥지? 아, 또 열불 나네.”
“……이 형, 완전 예민 보스 됐잖아?”
길드원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순하고 착한 릴슨의 성격마저도,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들어 버린 3천 피스의 입체 퍼즐.
조수로서의 모든 역할을 끝낸 이안은, 마지막 조각을 릴슨에게 넘겨준 뒤 구석으로 가 조용히 쭈그려 앉았다.
괜히 말을 더 걸었다가 여기서 실수하여 퍼즐이 무너져 내리기라도 한다면, 릴슨의 멘탈도 같이 가루가 되어 버릴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못생긴 새들이라니. 내 눈에는 간지가 철철 흘러넘치는구먼.’
못 다한 불만은 속으로 꾹꾹 눌러 참으며 숨 죽여 퍼즐의 완성을 기다리는 이안.
이안의 시선은 릴슨이 들고 있는 마지막 퍼즐 조각에 향해 있었으며, 릴슨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가디언의 이마에 달려 있는 커다란 뿔의 한 조각인 듯 보이는, 마지막 퍼즐피스를 맞추기 위해서 말이다.
‘크, 이렇게 어렵게 얻은 녀석들인데, 좀 기대해도 되겠지?’
두근두근.
이어서 퍼즐의 위치를 두 번, 세 번 확인한 릴슨은 조심스레 퍼즐 조각을 위치에 가져다 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제발……!”
릴슨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에 가까운 육성과 함께 마지막 퍼즐 피스가 가디언의 뿔 한 쪽에 맞춰 들어갔다.
스륵- 철컥-!
“……!”
이어서 칠흑색 단색이던 세 마리 가디언들의 조각상 위로, 화려한 빛이 일렁이기 시작하였다.
우우웅-!
마치 물감이 도포되듯.
낮은 공명음과 함께 오색 빛깔로 물드는 가디안의 조각상들.
그것을 지켜보던 릴슨과 이안은 멍한 표정으로 시선을 떼지 못하였고.
다음 순간 두 사람의 눈앞에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고대의 가디언들’ 조각상의 마지막 조각을, 성공적으로 맞추셨습니다!
-‘고대의 가디언들(신화)(초월)’ 조각상이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길드원 ‘릴슨’ 유저가 고대의 힘이 담긴 조각상을 완성하셨습니다!
-조각상 조립을 함께 수행하셨으므로, 명성(초월)이 35,000만큼 증가합니다!
-조각의 소유자이므로, 완성된 조각상의 소유권을 획득하였습니다.
……후략……
각기 다른 세 개의 조각상이었지만, 마치 하나처럼 같은 이름을 가진 ‘고대의 가디언들’ 조각상.
인벤토리 목록에 표기된 조각상을 확인한 이안은, 설레는 마음으로 조각상의 정보 창을 열어 보았다.
그의 추측대로라면 이제 이 조각상들에 ‘가디언 소환석’을 사용하면 될 터.
그 예상이 맞길 바라며, 이안은 조각상의 정보 창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고대의 가디언들 (봉인)
등급 : 신화 (초월)
분류 : 잡화
고대 신들이 자신들의 신격을 담아 제작한, 강력한 고대의 힘이 담긴 유물입니다.
고차원적인 복원기술에 의해 복원된 조각상이며, 세 마리의 강력한 고대의 가디언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력이 깃들지 않아 아직 본연의 힘을 전부 되찾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만약 이 조각상들에 각기 맞는 영혼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강력한 고대의 전투 병기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각상의 봉인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세 개의 소환석과 ‘심연의 심장’이 필요합니다.
(재료 목록)
-성령의 가디언 소환석
-악령의 가디언 소환석
-심연의 가디언 소환석
-심연의 심장
*조각상의 봉인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성령과 악령, 심연의 유적을 정복한 자.
-초월 레벨 80 이상 달성.
-길드 랭크 4티어 이상인 길드에 소속.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응……?”
조각상의 정보 창을 꼼꼼히 읽은 이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하였다.
대체적으로 예상했던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의아한 부분이 몇 가지 보였으니 말이다.
‘일단 소환석을 여기 써서 가디언들을 깨우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조건 몇 개가 좀 특이하네?’
‘심연의 심장’이라는 조건과 ‘성령과 악령, 심연의 유적을 정복한 자’라는 조건은 예상하지는 못했을지언정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심연의 심장은 분명 ‘심연의 유적’에서 얻어야 하는 물건일 것이었고, 결국 세 유적들은 하나의 틀 안에서 연동되어 있었으니.
가디언들을 깨우기 위해 심연의 유적까지 정복해야 한다 해도 충분히 납득이 되었던 것이다.
다만 이안이 이해하기 힘든 것은 마지막 줄에 붙어 있는 조건이었다.
‘길드 랭크 4티어가 왜 필요한 거지? 혹시 이 가디언들이 길드 콘텐츠와 관련이 있었던 건가?’
하지만 이안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본들, 이 한 줄의 단서만으로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
다만 여러 방향으로 두루뭉술하게 예측 정도만 해 볼 수 있었다.
‘뭐 어차피 심연의 심판검을 얻기 위해서라도 곧바로 심연의 유적으로 직행하려고 했었으니 마지막 유적까지 클리어한 뒤에 다시 생각해 보지, 뭐.’
마음을 편히 먹은 이안은, 릴슨에게 조각상의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그리고 그 ‘공유’의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릴슨이 한숨을 푹 쉬며 입을 열었다.
“다 좋은데, 이안아.”
“응?”
“나 조금만 쉬면 안 될까?”
“…….”
“오늘 밤에 푹 자고,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자고.”
릴슨의 아련한(?) 눈빛을 마주한 이안은 차마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가 일주일 동안 퍼즐을 맞추며 얼마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알겠어, 뭐. 그 정도야…….”
“휴.”
“그럼 내일 오전 5시 반에 길드 거점 앞에서 만납시다.”
“아니, 내가 아침이라고 했지, 언제 새벽이라고 했어?”
“5시 반이면 해가 중천이야, 형. 요즘 해가 좀 일찍 뜨더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무튼 그런 걸로 알고, 나는 길드퀘나 깨러 갈게. 길드 티어 4티어 만들려면 조금이라도 공헌도 쌓아 둬야 하니까.”
릴슨을 향해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 낸 이안은, 손을 뻗어 조각상들을 인벤토리 안으로 회수하였다.
이어서 잽싸게 스크롤을 찢은 그는 순식간에 사냥터로 사라져 버렸다.
위이잉-!
“하……. 이런 댕댕이 같은 놈.”
릴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공터 여기저기 널려 있는 연장(?)들을 주섬주섬 챙겨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안이라면 분명 새벽 5시부터 전화를 해서 그를 깨우고도 남을 인물이었고, 어차피 그렇게 될 운명이라면 조금이라도 빠르게 로그아웃하여 눈을 붙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었다.
‘전투 클래스 길드원들이 왜 그렇게 이안이를 두려워하나 했었는데…….’
생산 클래스인 관계로 평소 이안과 함께할 일이 잘 없었던 릴슨.
그는 이번 기회에, 정말 뼈저리게 이안의 무서움(?)을 체험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