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40화 (845/1,027)

< 840화 5. 가디언의 비밀 (3) >

* * *

성령의 유적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토큰을 획득한 이안은, 그야말로 입맛에 맞는 유물들을 골라 쇼핑하였다.

악마의 파편을 추가로 더 준다 하더라도 더 이상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

물론 더 주면 유물들을 챙겨다 경매장에 팔아 버리겠지만, 꼭 갖고 싶은 유물이 더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때문에 이안은 미련 없이 유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분노한 악신의 무시무시한(?) 협박이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깔끔히 무시한 이안이었다.

-네놈이 신계로 올라올 날만을 기다리겠노라.

“응? 왜? 아이템 더 줄려고?”

-나, 나쁜 놈!

하여 악령의 유적도 깔끔하게 정복한 뒤, 다시 호른 산맥 밖으로 나온 이안.

마지막으로 유적을 나오는 이안의 눈앞에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 몇 줄이 추가로 떠올랐다.

띠링-!

-악령의 유적을 성공적으로 정복하였습니다!

-악령의 힘을 손에 넣었습니다.

-‘악신, 투아레스의 흉상’ 아이템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악신, 콰트누스의 흉상’ 아이템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악신, 라그토스의 흉상’ 아이템의 봉인이 해제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곧바로 활성화된 흉상의 정보 창을 확인해 보았다.

‘여기에 가디언에 대한 단서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투아레스의 흉상’ 정보 창이 활성화되었다.

-악신, 투아레스의 흉상

등급 : 신화 (초월)

분류 : 잡화

악마의 파편들이 복잡하게 맞물려 만들어진 악신 투아레스의 흉상이다.

악신들은 이 흉상에 강력한 고대의 지식을 담아 두었고, 그것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고대의 전투 병기를 복원해 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흉상을 분해, 분석하여, 고대의 지식을 찾아내자.

악령의 유적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당신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고대의 흉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유물 해체 분석기’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아이템의 정보 창을 쭉 읽은 이안은 두 눈을 꿈뻑였다.

기대했던 대로 흉상 안에 가디언과 관련된 단서가 들어 있었지만, 그 방식이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걸…… 해체해서 분석하라고?”

일단 이안의 기분 상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힘들게 맞춘 퍼즐을 다시 해체하라는 뉘앙스의 설명글.

“아니, 이럴 거면 대체 왜 조립하라고 한 거야?”

게다가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퍼즐 조각들을 분석까지 하라고 하니…….

연구와 분석을 좋아하는 이안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분석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후우.”

한숨을 푹 쉬는 이안에게 릴슨이 다가왔다.

“왜 그래, 이안? 무슨 문제 있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이안을 향해 묻는 릴슨.

릴슨은 지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카일란을 플레이하고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손에 꼽힐 정도.

그도 그럴 것이, 이안 덕에 최상위 등급 유물들을 무더기로 얻었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릴슨은 열 개의 파편밖에 사용하지 못했지만 그것만 해도 네 개의 유물과 교환하였고, 전설 등급의 초월 유물 네 개면 릴슨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소시민이었다.

릴슨의 물음에 이안이 대답하였다.

“아니, 우리 조립했던 흉상 있잖아.”

“아, 맞다! 그게 있었지?”

“그거 봉인이 풀렸거든.”

이안의 대답에 릴슨의 두 눈이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탐험가로서 고대의 유물들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들은 그의 관심 대상일 수밖에 없었고, 특히 가디언들과 같은 고대의 전투 병기들은 릴슨의 탐험가 클래스에 큰 도움이 될 확률이 높았다.

헤벌쭉하던 표정을 어느새 집어넣은 릴슨이 진지한 얼굴로 다시 이안을 향해 물었다.

“가디언에 대한 비밀은 찾은 거야?”

“일단 찾은 것 같기는 해.”

“음……?”

“유물 해체 분석기라는 물건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이야.”

이안의 대답에, 릴슨의 두 눈이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 * *

“아오, 저 맹한 시키!”

“투아레스 저거 AI 설계한 놈 누구야?”

스크린을 응시하던 김의환이 저도 모르게 버럭 분노하였다.

그러자 그의 뒤쪽에 있던 팀원 하나가 슬픈 표정으로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팀장님. 악신답게 자존심이 강해야 할 것 같아서…….”

“쓰읍…….”

하지만 기획자의 자진 신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를 욕할 수는 없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 울적해 보였으니 말이었다.

“휴우, 그래. 이 대리가 무슨 잘못이겠어. 이 사달을 만들어 낸 운영 팀의 박 모 씨부터 처단해야지.”

“…….”

김의환의 이야기에, 순간적으로 ‘박 모 씨’에 대한 분노가 사무실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신입 사원 하나가 슬쩍 입을 열었다.

“팀장님, 저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음, 뭐가?”

“저 친구, 악신이라는 녀석이 왜 이렇게 욕을 못 합니까?”

이어서 신입의 말이 끝나자, 그의 입사 동기인 다른 여사원이 맞장구를 치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악신이랍시고 한다는 욕이 고작 ‘나쁜 놈’이라니요. 쌍욕을 퍼부어 줬으면 속이라도 시원했을 텐데.”

입사하자마자 미친 듯이 이어진 야근 릴레이 때문인지, 두 신입들은 투아레스에게 과몰입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얼핏 보기에 충분히 가질 법한 의문이었지만, 김의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의문에는 충분히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 친구들 아직 신입이라 잘 모르나 본데, 저게 NPC가 유저한테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욕이야.”

“네?”

“생각해봐. 너 NPC한테 개새끼 소 새끼 소리 들으면서 게임 하고 싶겠어?”

“헉, 그건…….”

“쟨 저거보다 나쁜 욕을 몰라. 애초에 그렇게 설계됐으니까.”

“…….”

“투아레스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라고.”

“그렇군요.”

납득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그와 별개로 이안에게 욕해 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운 것인지 입맛을 다시며 본인들의 자리로 돌아간 두 신입들.

그렇게 폭풍 같았던 기획 1팀의 사무실은 새벽을 맞이하였고, 단 한 사람도 잠들지 못한 채 야근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격렬한 분노와 좌절이 가득했던 사무실에는, 어느덧 침묵이 내려앉았다.

항거할 수 없는 야근의 쓰나미에 이제는 모두가 체념해 버린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야근과 더불어 팀의 인원을 증원해 달라는 요청뿐.

물론 매일 아침 이안이 빨리 다른 차원계로 넘어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것은, 필수 일과 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심연의 유적은 며칠 컷일까?”

“아마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거기도 다 털려 있지 않을까?”

“…….”

그렇게 기획 1팀은, 오늘도 고통의 연속이었다.

* * *

한편 기획 팀이 고통 받고 있던 그 무렵.

그 고통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 이안과 릴슨은, 또 바삐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기획 팀이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었더라면 ‘제발 이제는 잠이나 좀 자러 가라, 이 폐인들아!’라고 외쳤을 테지만, 아마 그 말을 들었더라도 두 사람의 기분이 딱히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게임 폐인이라는 말은 두 사람에게 칭찬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었다.

어쨌든 게임 속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부지런한 이안과 릴슨.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비터 스텔라의 한복판이었고, 앞장서 길을 안내하고 있는 이는 릴슨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의 목적지는 이안조차도 알지 못하는 숨겨진 공간이었다.

“아, 이거 참, 내가 이안이 너만 아니었어도 여길 공개하진 않았을 텐데.”

산줄기를 타고 비행하는 아이언의 목덜미에 앉아 생색을 내는 릴슨.

그에 이안이 피식 웃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였다.

“그냥 내가 찾아도 되는데. 아까우면 유물 물리던가.”

“아, 아냐. 그럴 리가! 우리 이안갓 님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뭘 공유하지 못하겠습니까, 흐흐.”

간사한 자본주의의 미소와 함께 바로 바짝 엎드리는 릴슨!

그가 이럴 수밖에 없는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지금 릴슨은 이안에게 유물에 대한 정보를 주는 대가로 전설 등급의 유물 몇 개를 하사받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고대의 가디언과 관련된 퀘스트에 한발 걸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 사실 릴슨이 이안의 한마디에 껌뻑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름이 뭐라고 했지? ‘고대의 신단’이라고?”

이안의 물음에, 릴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맞아, 고대의 신단.”

“거기서 고대의 유물들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그중에 유물 해체 분석기도 있었다는 거고.”

“응. 정확히는 그냥 얻는 게 아니라 비슷한 등급의 유물이 있으면 교환해 주는 개념인데……. 해체 분석기는 아마 영웅 등급일 거야.”

“그렇군.”

“남는 유물 아무거나 하나 공양하면, 얻고도 남을 거란 말이지.”

릴슨의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두 사람을 태운 아이언은 빠르게 비행하여 이동하였다.

좌표 자체가 비터 스텔라의 중심부였으니 호른 산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위치라고 할 수 있었다.

“이쪽이면 네 개 산맥의 딱 정 중앙인 것 같은데…….”

이안의 말에 릴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네 개의 봉우리 기준으로 마름모를 그렸을 때, 완벽히 중앙 지점에 위치한 곳이지.”

“그렇군.”

“처음에 이곳 신단을 찾을 때에도 그렇게 힌트를 얻어서 왔었으니까.”

“아하.”

이안과 대화하던 릴슨은 속으로 살짝 감탄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가 안내하는 대로 이동하는 듯 보였던 이안이, 별건 아니었지만, 또다시 핵심을 짚어 냈으니 말이었다.

‘확실히 이놈은 생태계 파괴종이야.’

그리고 그렇게 10여 분 정도를 더 비행했을까?

이안 일행은 곧 숨겨진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나무만 울창해 보이는 숲이었으나, 발을 딛는 순간 미로처럼 빨려 들어가는 특별한 자연의 결계.

릴슨은 이곳에 여러 번 와 본 것인지 능숙하게 걸음을 옮기며 결계를 뚫었고, 이안은 조용히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띠링-!

-녹음의 결계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셨습니다!

결계의 안쪽까지 들어 선 이안의 눈앞에 유적의 안쪽에 있던 탑만큼이나 웅장한 규모를 가진 새하얀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