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8화 5. 가디언의 비밀 >
꿀꺽.
기획 1팀의 직원들이 절규하던 그 시점, 그들 말고도 이안의 기막힌 행보를 지켜보던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적을 관리하는 세 악신 중 하나인 ‘투아레스’였다.
너무 많은 영력을 소모하여 명상에 잠겨 있던 그는 마탑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본 광경은, 정말 두 눈을 의심케 하는 것.
-저, 저럴 수가……!
저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은 투아레스의 동공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어찌 중간계에 저런 미친 영혼이 존재한단 말인가!’
과거, 신들이 만들어낸 창조물인 고대의 가디언들.
고대 신들은 자신들의 신격을 사용하여 가디언들에게 전투력을 부여하였고, 그것은 평범한 중간자라면 결코 상대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것이었다.
물론 신격을 얻기 직전까지 영혼을 수련한 탈 중간자급의 영혼이라면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지금 이안이 묵사발 낸 가디언은 심지어 세 마리였다.
신격 없이 이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후우우…….
생각지도 못했던 도전자의 전투력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투아레스.
수정구 안에 보이는 도전자는 어느새 유적의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서 있었고, 그것을 보는 투아레스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하게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이걸 어쩐단 말인가. 저 미친놈이라면 1시간 안에 최하층까지 내려올 것 같은데…….’
놀람을 넘어, 혼란과 당황에 빠져 있는 투아레스.
그가 이토록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는 간단하였다.
저 상식 밖의 도전자가 최하층까지 내려온다면, 마지막으로 상대해야 할 이는 바로 그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아직 영력을 절반밖에 회복하지 못했는데…….’
이 악령의 유적에서 투아레스의 역할은, 최하층까지 내려온 도전자의 능력을 측정하여 그에 걸 맞는 자격과 고대의 칭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자격에 따라 유적의 유물들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저 미친 중간자 때문에,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여버렸다.
이대로 상황이 전개된다면, 아마 투아레스의 분신은 이안의 능력을 측정하기도 전에 소멸되어 버릴 것 같았으니 말이다.
쉽게 말해 투아레스는, 분신으로 이안을 상대할 자신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력이 온전했다면 저 녀석을 이길 수 있었을까?’
혼돈 속에서 머릿속으로 몇 가지의 가정을 해 보지만, 투아레스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신격을 가진 본체가 현신하는 게 아닌 이상 이안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으니 말이다.
‘저 시온 속성의 검만 없었어도 어찌해 보는 건데…….’
속으로 괜히 자존심이 상하는 건지, 이안이 들고 있는 성령의 심판 검 탓을 해 보는 투아레스.
물론 악령에게 최악의 상성이라 할 수 있는 시온 속성은 전투에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지만, 결국 그 또한 악신의 비루한 변명일 뿐이었다.
투아레스는 아직 이안이 들고 있는 것이 ‘심판 검’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다만 시온 속성의 무기라는 사실만 알아차린 정도였다.
사실 악령의 유적을 찾는 도전자들이 ‘시온’ 속성의 장비를 준비해 오는 것은, 종종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자, 머리를 잘 굴려 보자, 투아레스.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과연 뭘까?’
도전자가 최하층까지 내려와 그를 묵사발 낸다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대로 중간계의 도전자에게 악신이 패배한 경우는 억겁의 시간동안 고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존심 강한 투아레스는 그런 불명예를 안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저벅- 저벅-.
투아레스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마탑의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는 이안과 일행.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끼던 투아레스는 결국 이안 일행이 탑에 들어오기 직전에야 괜찮은 해답을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그래, 이 방법이라면……!’
하여 이안 일행이 탑 안쪽으로 들어온 순간.
-큼, 크흠……!
그는 정신을 가다듬은 뒤 묵직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혼잣말이 아닌, 마탑 내부 전체에 들릴 커다란 목소리로 말이다.
* * *
성령의 유적에서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유적지에 진입하는 동안 획득 가능했던 ‘성령의 빛’이라는 아이템이었다.
그것을 화폐처럼 활용하여 유물들을 가져갈 수 있었으니, 사실상 그것 자체가 보상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안은 악령의 유적에서 또한, 그런 요소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구조 자체는 비슷할 것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탑 내부에 있을 전당 같은 곳에서, 비슷한 성격의 아이템을 드롭할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서 탑으로 입장하는 이안은 더욱더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그는 지금, 이곳 유적에 있는 모든 유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쓸어 가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아마 이곳 최하층에, 유물들이 묻혀있는 공간이 있을 거야.”
“그래?”
“릴슨 형은 이동하는 동안, 뭐 유물에 대한 단서 같은 게 없는지 유적을 꼼꼼히 관찰해 줘.”
“알겠어. 그야 당연히 탐험가의 몫이지.”
릴슨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이안은, 호기롭게 탑의 입구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탑에 입장한 순간.
이안은 처음부터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려던 이안의 귓전에, 낯설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중간자의 몸으로 고대의 가디언들을 물리치다니, 대단한 영혼이로군.
“……?”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의 시험은 무의미한 바, 그대들에게 모든 ‘악령의 전당’ 통과권을 부여하도록 하노라.
“응?”
이안이 당황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부터 있을 시험에서 ‘성령의 빛’과 같은 토큰(?)을 제대로 한번 쓸어 모아 볼 생각이었는데, 이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더 이상의 시험이 무의미하다고 얘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지? 내 생각이 잘못된 건가? 여긴 성령의 유적과 다르게, 유물을 획득하는 게 교환 방식이 아니었던 건가?’
이안은 살짝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유물을 다 쓸어 가진 못할지언정 ‘악령의 심판 검’만큼은 무조건 얻어야 했는데, 만약 이대로 저 목소리의 주인이 본인 마음대로 보상을 줘 버린다면 선택권 없이 다른 유물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긴 것이다.
‘그럼 아주 곤란한데…….’
하지만 이안에게 더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어느새 이안 일행의 발밑으로 붉은 빛의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을 어디론가 소환하는 워프 게이트 같은 것이었다.
우우웅- 파앗-!
이안이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검붉은 빛으로 가득 차는 시야.
잠시 후 이안 일행의 시야가 다시 밝아질 즈음.
그들의 눈 앞에 수 많은 메시지들이 줄줄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띠링-!
-유적 관리자, ‘투아레스’가 당신들을 소환하였습니다.
-모든 고대의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심연의 시험을 통과한 자(영웅)(초월)’ 칭호를 이미 보유하고 있으므로, 명성(초월)이 10만 만큼 추가로 부여됩니다.
-‘악령의 시험을 통과한 자(영웅)(초월)’ 칭호를 이미 보유하고 있으므로, 명성(초월)이 10만 만큼 추가로 부여됩니다.
-‘성령의 시험을 통과한 자(영웅)(초월)’ 칭호를…….
……중략……
-토르가의 마탑, 최하층으로 이동합니다.
-자격, ‘고대의 전당에 등록된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유적의 관리자’가 당신을 초대하였습니다.
-‘악령의 유적’에 입장합니다.
* * *
-어서 오시게, 도전자여. 기다리고 있었다네.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익숙한 대사.
이안은 자연스레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시선을 움직였고, 그곳에서 목소리와 대사만큼이나 익숙한 외형의 NPC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넌……!”
두 개의 커다란 뿔이 달린 투구에 복잡한 문양이 양각된 갑주를 걸친, 한 눈에 보아도 화려한 외형을 가진 악신 투아레스의 모습.
그 모습을 발견한 이안은 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녀석의 외형이 바로, 첫 번째 결계를 해제하기 위해 조립했던 흉상의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저 갑옷 모양 때문에 얼마나 조각 맞추기가 힘들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노할 상황은 아니었기에, 이안은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네가 이 곳 유적의 관리자였어?”
이안의 물음에, 투아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정확히는 관리자 중의 하나가 바로 나지.
“관리자가 여럿인가 보네.”
-그렇다.
이번에는 이안의 질문에 대답한 투아레스가, 그를 향해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그대의 활약은 잘 지켜보았다. 유적의 힘을 가질 자격이 충분히 있는 실력이더군.
흉악(?)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친절한 투아레스를 보며, 이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그, 그랬어?”
하지만 투아레스는, 그에 아랑곳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 나 관리자의 권한으로, 그대들이 치러야 할 모든 시험을 면제하였다.
“……!”
-그대들에게 유적과 교환할 수 있는 악마의 파편을 부여할 테니 이 안쪽으로 들어가 원하는 유물과 교환하도록 하라.
“음……?”
투아레스의 설명을 듣던 이안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역시나 이곳 악령의 유적에서도 유물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화폐 같은 것이 존재하였고, 거기까지는 크게 이상하지 않았지만 유적 관리자가 그것을 직접 주는 그림이 뭔가 아이러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묘한 표정이 와락 구겨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투아레스의 말이 끝난 뒤 떠오른 메시지의 내용이, 이안의 심기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말이었다.
-‘악신 투아레스의 시험Ⅰ’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악마의 파편’ 아이템을 두 개 획득합니다.
-‘악신 투아레스의 시험Ⅱ’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악마의 파편’ 아이템을…….
……중략……
-‘악신 투아레스의 시험Ⅴ’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악마의 파편’ 아이템을 두 개 획득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치렀어야 했을 시험들이 쭉 나열되면서 전부 클리어 처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고작 열 개의 파편밖에 인벤토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령의 유적과 같은 기준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안의 입장에서는 거의 사기당한 기분일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이안의 그런 내면 상태를 알 리 없는 투아레스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대라면 분명 나의 모든 시험을 통과하였을 것이고, 하여 열 개의 파편을 전부 지급하였다.
생색내듯 이야기하는 투아레스를 보며, 더욱 심기가 불편해진 이안.
“…….”
반면에 인벤토리에 들어온 파편들을 보며, 한껏 고무된 표정의 릴슨.
-이것이라면 어지간한 유물과는 충분히 교환 가능할 터.
“오오……!”
그리고 그런 둘을 한 번씩 응시한 투아레스가, 으쓱한 표정으로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성령의 유적에서처럼 수많은 빛무리가 반짝이며 각기 자리를 찾아가 빛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그 붉은 빛무리들은, 각기 멋들어진 유적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대박!”
환호하는 릴슨을 보며 더욱 만족스런 표정이 된 투아레스가, 두 사람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가, 도전자들이여. 만족스러운가?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으로 이안의 대답을 기다리는 투아레스.
하지만 다음 순간, 투아레스는 거의 똥 씹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이,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이.”
-……?
“지금 나랑 장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