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837화 (842/1,027)

< 837화 5. 고대 유적의 가디언들Ⅱ (3) >

* * *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캄캄한 밤.

10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기획 1팀의 사무실은 불이 밝게 켜져 있었다.

심지어 더욱 슬픈 사실은 지금이 자정이 지난 순간 토요일이 되는 금요일 밤이라는 것이었다.

불금임에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야근 중인 LB사의 기획 1팀.

물론 최근 LB사 내에서는 전혀 위화감 없는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말이다.

“하, 여기는 오늘도 퇴근한 사람이 없네.”

“입사할 때 기획 1팀 갈 뻔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소름 돋네요, 선배.”

“쉿. 안에 들릴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당직이나 서러 가자고.”

“예, 선배. 오늘 야식은 치콜 어때요?”

“크, 치콜 좋지.”

기획 1팀은 최근 LB사 내에서 모든 부서 중 가장 업무 강도가 높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서버 관리를 위해 당직을 서는 당직실의 사무실보다도 더 늦게 불이 꺼지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말이다.

물론 LB사에서 야근수당은 업계 최상급으로 빵빵하게 챙겨주지만, 그것이 부러운 사원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누군가 LB사의 사원들에게 야근 수당이 부럽다는 얘기를 한다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었다.

“응, 야근 안 하고 안 받는 게 더 좋아.”

때문에 오늘도 불이 꺼지지 않는 기획 1팀의 사무실은, LB사 직원들에게 측은함의 대상이었다.

끝나지 않는 야근 지옥 속에서 퀭해져 있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이 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마치 좀비, 혹은 강시를 연상케 하는 창백하고 푸르죽죽한 얼굴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만큼은 아직까지 퇴근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1팀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화기애애해 보였다.

물론 활력과 생기가 넘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희망적인 분위기였으니 말이다.

“캬, 세찬 씨, 진짜 선견지명 대박이네요.”

“그러게. 빨리 사과하세요, 팀장님. 세찬 씨 아니었으면, 우리 오늘도 퇴근 못 했을 거라고요.”

“크으, 윤 대리, 우리의 구원자!”

시끌벅적한 사무실의 분위기 속에서,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남자.

입사 3년차 대리인 윤세찬은, 오늘 기획 1팀의 구원자였다.

그가 설계한 기획으로 인해, 1팀의 직원들이 오랜만에 퇴근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기획은 바로 악력의 유적 모든 결계에 적용되어 있는, 어둠의 파편 퍼즐 맞추기!

만약 이안이 오늘 악령의 심판검까지 얻었다면, 아마 기획팀1팀의 야근은 일주일 추가 연장이 되었을 것이었다.

심판검이 이안의 손에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그의 콘텐츠 파괴력은 더욱 강력해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윤세찬 대리가 기획한 어둠의 파편 퍼즐 덕에, 기획 1팀의 야근은 오늘로서 일단락될 수 있었다.

아니, 적어도 기획 1팀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과? 당연히 해야지. 내가 우리 윤 대리의 선견지명을 모르고 그때 이 갓 기획을 엎으려고 했었다니, 사과하네, 윤 대리. 이걸로 자네 올해 까방권 1회 획득이야!”

사실 윤세찬이 이 퍼즐 기획을 처음 가져왔을 때 김의환은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었다.

결계를 해제하는 데 들어가는 능력과 노력의 비중에서 퍼즐의 비중이 너무 높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 유적이라는 콘텐츠를 총괄하는 그의 입장에서 기획이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

하지만 기획을 엎기에 당시의 일정이 워낙 급박하기도 했었고, 팀 내에서 나름 신선하다는 평가도 제법 있었기 때문에 윤 대리의 기획은 적용되었고, 그대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 이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확실해요, 팀장님.”

“김 주임 말이 맞습니다. 슬슬 퇴근 준비 하시죠.”

“흐아아, 날짜가 바뀌기 전에 퇴근이라니! 넘나 행복한 것!”

악령의 유적 첫 번째 결계부터 세 번째 결계까지.

이안 일행이 이 결계들을 클리어해 가는 과정을 보며, 기획 1팀의 직원들은 대부분 확신하였다.

두 사람의 조형 감각과 퍼즐 맞추기 실력으로는, 절대로 토르가의 마탑에 쉽게 진입할 수 없을 것임을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진입 자체는 가능할 것이었다.

다만 십수 번의 실패 후 난이도 보정을 받은 퍼즐을 클리어해서는, 이안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유적에서 최상급의 클리어 등급을 받아 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유적을 클리어할 수는 있을지언정 악령의 심판 검은 획득할 수 없다.

그 정도만 되도 기획 1팀에게 며칠 정도의 여유는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 불안한데……. 한 10분만 더 기다렸다가 퇴근하자고.”

“에이, 팀장님. 지금까지 보셨잖아요? 변수가 없어요, 변수가.”

“맞습니다. 이안이 지금까지 퍼즐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저들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죠.”

기획 1팀 사무실의 한쪽 벽면에서는, 설치된 대형 TV에서 이안 일행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 번째 결계까지 해제한 뒤, 토르가의 마탑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이안과 릴슨.

그런 그들을 보며, 김의환은 약간의 승리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래, 아무리 이안이 게임신이라도 못 하는 게 하나쯤은 있을 법했어. 그게 퍼즐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물론 이안이 퍼즐에 약하다고 앞으로의 콘텐츠를 퍼즐로 도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약점(?)을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의환의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것이 사실이었다.

‘심판검 세 자루만 안 모여도, 결과적으로 한 달은 벌 수 있을 거야. 그 사이에 우리는 성운과 관련된 콘텐츠를 싹 다 완성해야만 해.’

남아 있는 일말의 불안감 때문에 쿨하게 퇴근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이안이 악령의 심판검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 김의환.

그는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계속해서 앞으로의 일정을 고민하였고, 야근을 최소화시킬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래. 이 일정대로만 가면, 성운 필드 완성하고 이틀 정돈 휴가 다녀올 수 있겠어. 어리버리 윤세찬이가 이런 큰 일을 해낼 줄이야.’

건너편 책상에서 짐을 싸고 있는 윤세찬을 힐끗 본 뒤, 흡족한 미소를 짓는 김의환!

그런데 바로 그때, 기획 팀 한쪽 구석에서 단발마에 가까운 비명이 새어 나왔다.

“어! 저, 저 미친놈이……!”

이곳이 직장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인지 육성으로 욕을 내뱉는 인턴의 목소리!

하지만 인턴이 욕을 했다는 사실은, 이 사무실 안에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 최소 백배 정도는 충격적인 일이, 스크린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안 그냥 퍼즐 맞추기 포기한 것 같은데?”

“저기서 그냥 가디언이랑 싸워 버린다고?”

“서, 설마 이안이 이기는 건 아니겠지?”

퍼즐 맞추기를 아예 포기해 버린 것인지, 아이언의 등에 올라 가디언들을 향해 쇄도하는 이안의 뒷모습.

그 광경을 목격한 1팀의 직원들은, 퇴근하려던 동작을 전부 멈추고 다시 스크린 앞에 모여들었다.

원래대로라면 당연히 유저가 세 마리의 가디언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유저가 이안이라면 얘기는 달라지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꿀꺽.

순식간에 고요해진 사무실 안에 누군가의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김의환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이안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하였다.

‘아니, 대체 왜 퍼즐 맞출 때보다 더 긴장되는 건데?’

물론 마탑에 입장하기 위해 맞춰야 하는 어둠의 파편 퍼즐은, 이안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어려운 것이 맞다.

열 명쯤 되는 파티가 모여 들어와 역할분담을 착착 해가며 맞춰야 겨우 성공할까말까 하도록 설계된 미션이었으니 이안과 릴슨같이 조형감 없는 유저들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퀘스트인 게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즐은 누군가 클리어할 수 있을만한 난이도로 만들어졌고, 저 가디언들은 아니었다.

애초에 유저가 공격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만든 녀석들이 바로 유적의 가디언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미 이안은 가디언을 잡은 전력이 있지. 비록 그게 한 마리씩 따로 상대한 것일지라도 말이야.’

“후으읍!”

한차례 심호흡을 한 김의환은, 떨리는 동공으로 스크린을 응시하였다.

가슴이 너무도 떨린(?) 탓에 화면 시청이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팀의 팀장으로서 콘텐츠 일정을 잡기 위해서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야만 하는 것이다.

누군가 두꺼비집이라도 내려서, 강제로 TV 전원이 꺼지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김의환을 비롯한 기획 1팀의 직원들은 마치 석상처럼 그 자리에 서서 1시간이 지나도록 움직이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들의 표정은 조금씩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이안이 미친 짓(?)을 시작한지 3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으아…….”

“와…….”

모든 팀원들은 할 말을 잃어버린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다.

감탄과 분노, 그리고 좌절.

수많은 감정이 섞여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기획 1팀의 사무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이번엔 비명에 가까운 김의환의 육성이 터져 나왔다.

“철우, 철우 이 개 자식!”

그것은 이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운영 팀의 누군가를 향한 절규라고 할 수 있었다.

* * *

쿠쿵- 쿠우웅-!

자색 빛깔의 날카로운 깃털들이, 파사삭 소리를 내며 어둠 속에 흩어졌다.

이안의 검 끝에 마지막 생명력을 잃고, 허공으로 흩어져 심연 속으로 돌아간 가디언.

심연의 가디언 ‘뮈르’를 마지막으로, 세 마리의 가디언이 전부 전장에서 소멸되어 버린 것이었다.

악령의 힘이 아니면 제대로 된 피해조차 입지 않는 강력한 괴조怪鳥를, 컨트롤과 근성 그리고 집념만으로 결국 잡아 버린 것.

그 과정에서 어떤 실수라도 있었더라면 오히려 이안이 사망에 이르렀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퍼즐에 대한 이안의 분노(?)가 이안의 집중력을 더욱 강화시킨 것이다.

쿵-!

-모든 가디언들이 무력화되었습니다.

-‘토르가의 마탑’ 입구가 개방됩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유적의 주인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후략……

주르륵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마탑의 정 가운데 굳건히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문으로부터 이안 일행이 서 있는 절벽까지, 적암으로 만들어진 붉은 빛깔의 교량橋梁이 마법처럼 이어져 나타났다.

“이, 이게 가능한 거였어.”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한마디를 중얼거리는 릴슨과 그 옆에서 신이 난 아렌!

“와, 역시 주군! 엄청나요!”

그리고 이 비상식적인 상황을 만들어 낸 이안이 붉은 다리 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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