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6화 5. 고대 유적의 가디언들Ⅱ (2) >
* * *
-아니, 고작 저거 맞추는 데 열다섯 번이나 시도했다고?
-혹시 바보들인가?
악령의 유적 최하층.
이곳 유적을 창조한 세 악신들은, 까만 수정구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물론 유적에 모여 있는 악신들이 그들의 본체는 아니었다.
신격을 가진 그들은 마음대로 중간계에 내려올 수 없었고, 다만 영력을 이용하여 만든 분신을 내려 보낸 것일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제법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구슬을 들여다보고 있는 세 악신들.
그들이 구경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유적의 시험에 도전 중인 이안과 일행이었다.
-바보라기엔 싸움을 너무 잘하는데…….
-투아레스, 너 혹시 쫄았냐?
-그럴 리가. 다만 저 바보들 때문에 영력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제법 피곤해졌을 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후우…….
악신답게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그들은 지금껏 많은 도전자들을 보아 왔었고, 어떻게 보면 이안 또한 단지 그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하였다.
오랜만에 등장한 도전자의 상태가, 어떤 방향으로든 결코 범상치는 않다는 것 말이다.
-중간자 중에 저 정도 전투력을 가진 개체가 있다는 사실은 제법 놀랍군.
-아니, 그보다 저렇게까지 퍼즐을 못 맞추는 중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놀라워.
-콰트누스의 말에 동의한다. 혹시 일부러 우리의 흉상을 망가뜨리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니까.
-저런 바보들이 대체 어떻게 중간자가 된 거지?
-글쎄. 중간계에 바보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신단에 중간자의 시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건의라도 넣어야겠군.
악신 콰트누스와 라그토스는 처음에 새로운 도전자들이 금방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데 2시간도 넘게 걸린 녀석들이라면, 악령들의 힘이 더 강한 두 번째 관문에서 시작부터 나가떨어질 것이라 짐작했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수정구를 들여다봤던 것은 아니었고, 때문에 이안 일행이 첫 번째 관문에서 오래 걸린 이유가 악령들에 비해 허약해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악신과 달리 투아레느는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첫 번째 관문이 그의 영력으로 만들어진 관문이었고, 때문에 어마어마한 영력이 쭉쭉 빨려 나가는 것을 처음부터 느꼈으니 말이다.
악령을 하나 생성할 때 마다 그의 영력이 소모되는 구조였는데.
이안이 워낙 많은 악령들을 소멸시켰다 보니,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기라도 한 듯 영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빨려 나갔으니까.
‘이러다가 고작 중간자 따위에게 망신을 당하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저 화상들에게 최소 1천 년 동안 놀림 당할 텐데…….’
투아레스는 심란한 표정으로 수정구 안쪽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제 모든 시험을 통과한 이안 일행은, 유적 중심부에 있는 ‘토르가의 마탑’에 발을 들인 상태였다.
지상으로 백층부터, 지하로 이십층까지 이어져 있는, 상하 좌우가 완벽히 대칭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세르가의 성탑과 상반되는 구조를 지닌 토르가의 마탑.
세르가의 성탑에는 최상층에 유적이 있었지만, 이곳 마탑에는 최하층에 유적이 있었다.
도전자들이 지하로 총 이십층까지 이어져 있는 이 지저갱地底坑을 전부 통과해 내려온다면, 마지막 관문을 지키기 위해 그가 직접 녀석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었다.
이번에는 세 악신들 중 그의 차례였으니 말이다.
‘그래. 수백 년 간 지저갱 최하층까지 내려왔던 도전자는 없었어. 아무리 무식하게 생겨먹은 저놈들이라고 해도, 최하층까지 뚫는 건 무리일 거야.’
만약 그의 본체가 직접 나서 도전자를 상대하는 것이라면,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신격을 가지지 못한 중간자 따위는 권능으로 짓뭉개 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도전자를 상대해야 하는 투아레스는 중간계로 현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의 분신일 뿐.
콰트누스와 라그토스에게는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그는 지금 매우 쫄아 있는 상태였다.
‘으, 영력 소모만 좀 덜했어도…….’
투아레스는 이를 잘근잘근 씹으며,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만에 하나 저 괴물 같은 중간자가 최하층까지 내려올 때를 대비해서, 몸 상태를 조금이라도 더 회복시켜야 했으니 말이다.
* * *
어두웠던 통로가 서서히 밝아지며, 돔 형태의 거대한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온통 검붉은 빛깔과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스산한 분위기의 널따란 공터.
그 가운데 솟아 있는 시커먼 탑을 발견한 이안이 두 눈을 반짝였다.
성령의 유적을 경험해 본 이안에게 지금의 상황은 제법 익숙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
이안의 중얼거림에, 릴슨이 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곧바로 물어보았다.
그의 얼굴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던 것이다.
“여기가 어딘데?”
“음……. 본격 유적지?”
“그런 말이야 나도…….”
다소 황당한 이안의 대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릴슨.
하지만 이안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조심해야 해, 형.”
“왜?”
“저 탑에 들어가기 위해서, 아마 어마어마한 결계를 해제해야 할 테니까.”
“어마어마한…… 결계?”
릴슨이 되묻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응. 아마도 지금까지보다 훨씬 어려울 거야.”
이안이 떠올린 것은, 성탑에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성령의 결계였다.
세 마리의 가디언들이 지키고 있던, 괴랄한 난이도의 결계.
‘성령의 유적에선, 앞단의 결계에 비해 이 마지막 결계가 엄청 어려웠지. 구조가 비슷한 걸로 봐선 여기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야.’
머릿속을 복잡하게 굴리면서도 이안은 쉬지 않고 공터를 걸어 탑을 향해 이동하였고, 잠시 후 그 앞에 도착한 이안의 두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뭔가 생각지 못했던 특이점을 발견하였으니 말이다.
‘세르가의 성탑은 지하가 더 깊었는데, 여긴 지상으로 더 높잖아?’
그리고 이안이 그러한 생각을 떠올린 순간 일행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악령의 유적, ‘토르가의 마탑’에 접근하였습니다.
-유적을 지키는 ‘고대의 가디언’들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 * *
세르가의 성탑에서 탑을 지키던 결계는, 도전자의 수준을 책정하는 측정기 같은 역할을 하던 것이었다.
물론 이안이야 최상층에서 한 번에 통과했지만, 도전에 한번 실패할 때마다 지하층으로 떨어져 본인의 수준에 맞는 층으로 도전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은, 그 시스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짐작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등급에 따라서, 보상에 차등을 주도록 설계됐던 것이겠지.’
이안은 성령의 성탑을 전부 클리어했을 때, 무려 수십 개의 ‘성령의 빛’을 얻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화폐처럼 사용하여, 최상층에 있던 유적들을 싸그리 쓸어담았다.
‘성탑으로 들어가는 결계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지 못했더라면 그만 한 보상을 받을 수 없었을 거야.’
확인된 사실은 아니었지만, 확신에 가까운 짐작.
‘그러니 무조건 이번 결계도 한 번에 통과해야 해. 여기엔 성령의 빛 같은 화폐가 아직 없지만, 결국 보상을 획득하기 위한 골자는 비슷할 테니까.’
그래서 이안은 더욱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악령의 유적에서는 지금까지 결계가 등장할 때마다 퀘스트 창이 생성되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안이 그러한 생각들을 떠올릴 때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스륵 하고 생성되었다.
-토르가의 마탑 진입(히든)(돌발)
당신은 악령의 힘을 얻기 위한, 기본적인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그 시험의 관문 끝에서, 드디어 유적이 묻혀 있는 토르가의 마탑에 도착하였다.
마탑에 입장하기 위해, 악신들이 남겨 놓은 마지막 결계를 해제하도록 하라.
결계를 전부 해제한다면, 마탑을 지키는 가디언들이 작동을 멈출 것이다.
탑의 안쪽으로 진입하여 탑의 최하층에 있는 악령의 유적들을 손에 넣도록 하자.
퀘스트 난이도 : S-
퀘스트 조건 : 악령의 시험 Ⅰ,Ⅱ,Ⅲ 클리어.
제한 시간 : 120분
*흉상의 조각을 잘못 맞춘다면, 조립한(획득한) 모든 파편이 소멸됩니다.
*‘정화의 목걸이’ 아이템으로 해제할 수 없는 강력한 결계입니다.
보상 : 토르가의 마탑 진입, ???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의 내용 자체에는 딱히 이해하지 못할 만한 부분이 없었으니 말이다.
새롭게 알게 된 정보 또한, 탑의 상층부가 아닌 하층부로 내려가야 한다는 정도뿐.
‘지금까지처럼 또 퍼즐을 맞춰야 하는 건가?’
하지만 다음 순간.
차분하던 이안의 표정은 점점 더 구겨지기 시작하였다.
퀘스트 창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메시지들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띠링-!
-지금부터 마탑의 주변에 악령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악령들을 처치하면 ‘악마의 파편’을 획득할 수 있으며, 파편들을 조합하여 고대의 석판을 완성해야 합니다.
-총 1,500개의 어둠 파편을 조합하여, 악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세 개의 고대의 석판을 완성하십시오.
-모든 석판을 완성한 뒤 정해진 위치에 배치한다면, 탑을 지키는 가디언들이 작동을 멈출 것입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전부 떠오름과 동시에 탑의 북쪽, 남동쪽, 남서쪽에서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일렁이는 자리에 석판을 끼워 넣어야 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곳에는 묵직한 흑석으로 만들어진 비석 같은 것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고, 비석의 가운데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석판을 끼워 넣을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만들어야 하는 석판의 난이도였다.
“이거 미친 퀘스트 아니야?”
비명에 가까운 릴슨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조각이 총 1,500개래 형.”
“심지어 판이 한 개도 아니고 세 개야.”
“…….”
“어떤 조각이 어떤 판에 속하는지 정도는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게다가 이번에는 시간제한까지 있어.”
“하…….”
퀘스트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이안의 동공은 지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근 1년 동안 이랬나 싶을 정도가 있을 정도로, 정말이지 앞이 캄캄한 상황.
‘나랑 릴슨 형이, 3시간 안에 석판을 전부 맞출 수 있을까?’
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머리를 어떻게 굴려 보더라도,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미션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삼차원 퍼즐이 아닌 이차원 퍼즐이라는 점이었지만, 퍼즐 조각의 개수가 훨씬 더 많은 데다가 무려 세 개의 퍼즐이 섞여 있는 상황이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떤 망할 기획자가 이딴 콘텐츠를 만든 거야?’
콧바람까지 씩씩 뿜어대며, 분노로 부르르 떠는 이안.
그런데 바로 그때.
이안의 머릿속에 무식한 생각이 한 가지 떠올랐다.